|
인기 소설가인 영국 줄리언 반스의 2013년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읽기 전 관련 소개글에서 픽션과 에세이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이란 사전 지식을 알고 독서를 시작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1부와 2부가 완전한 허구라기 보다는 줄리언 반스의 시각에서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된 장르임을 알 수 있었다. 재연 다큐멘터리처럼 주인공들 즉 프레드 버나비, 사라 베르나르, 펠릭스 투르나숑의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었다. 펠릭스 투르나숑은 필명인 ‘나다르’로도 불리운다.
프랑스 배우이면서 뭍 남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사라 베르나르, 그에게 구애를 펼쳤던 모험가 프레드 버나비의 이야기가 1, 2부에 펼쳐진다.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여기에 투르나숑, 즉 나다르는 열기구가 발명된 이후 기구에 빠져 살다가 기구에 탑승해서 최초로 항공 사진을 찍은 사진가로 등장한다. 셋의 공통점은 당대에 열렬하게 기구를 애호했던 모험가들에 속하였다는 것이다.
군인이던 프레드 버나비는 파리에서 사교계의 최고의 꽃이었던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렇지만 사라는 완곡하면서도 확고하게 그를 거절한다. 거절 사유는 버나비의 개인적인 매력과 조건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연애관(결혼관) 때문이었다. 버나비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만나고 데이트한지 3주만에) 청혼했는데 한 칼에 거절당하자 좌절한다. 그리고 한참후 서른 일곱에 영국에서 결혼했고 1885년 영국-수단 전투에서 전사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1부와 2부에서 펼치는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를 나는 묵묵히 따라갔다.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이었으므로 충분히 흥미있었고, 반스 작가의 능수능란한 내러티브에 빠져들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이야기들이 마지막 3부와 반드시 연결되겠지’하면서 내심 설레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났을 때 약간은 허탈했다. 프레드 버나비와 사라 베르나르의 드라마틱한 연애 사건, 기구를 타고 최초로 사진을 찍었던 나다르의 이야기가 줄리언 반스가 아내를 사별한 것과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지 잘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읽고, 3부 <깊이의 상실>은 두 번 천천히 읽으며 재 음미했다. 역사속 인물들의 사건, 관계는 응당 줄리언 반스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은유, 혹은 비유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소 아쉬었다.
그렇지만, 반스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는지 십분 느낄수 있었다. 더불어 상실감의 깊이, 모든 영역에 퍼져있는 고통,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장례를 치른 전후로 ‘주변 지인’들에게 언어와 행동으로 상처입은 일들만큼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감히 제언하자면 프레드 버나비, 사라 베르나르, 나다르의 이야기와 작가 개인의 아픔을 매개하려 했다면 분량의 배려가 더 있었어야 했다. 앞의 이야기를 더 길게 하던지, 뒤의 아내를 잃은 이후 겪은 변화와 혼란 파트를 늘렸어야 한다. 헌데 책은 정확히 3부가 거의 동일한 페이지인데, 반스 문학에 과문한 블로거 탓인지 구성적인 면에서 굉장히 미진하고 무언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88페이지에서 한면에 걸쳐 반스는 배우자를 잃은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 허영일 수 있는 감정을 자세하게 서술한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3부 전반적으로 반스는 자기의 아픔만이 특별하고,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상실감임을 드러내고 있다. 줄리언 반스의 그녀가 only one이었다는 걸 알겠고 그 유일한 사랑을 잃은 아픔이 얼마나 각별한지는 알겠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온리 원을 잃은 사람은 –당연하게도- 줄리언 반스 작가 한 명만이 아니다. 작가의 통렬한 표현들은 자칫하면 자신의 상실 경험만을 유일하고 특수한 경험으로 ‘형상화’하려는 우를 범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앞에 얘기했듯 뭔가 얘기를 하다 멈춘 듯이 길지 않게 끝나버려서, 편협함으로 오해받을 여지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을 누가 더 아프고, 깊은지 견줄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내를 잃은 사람’과 ‘자식을 잃은 사람’의 아픔, 이것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런 시도를 하려는 가정부터 잘못된 것이지 않는가. 내가 알았던 남자분은 결혼 후 2년도 안되어 아내를 잃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아픔은 반스가 아내와 함께 한 30년보다 덜 한 것인가.
그럼에도,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그 누구의 도움보다는 자신의 철학과 주체적인 경험속에서 사유(思惟)하였던 4년여를, 미화하지도 않고 숨기는 것도 없이 올곧이, 때로 담담하게 풀어낸 반스의 화법에 수긍하며 독서를 마쳤다. 그의 말대로 반스가 자신의 (앞으로의) 스토리 텔링과 작품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응원하겠다.
키에슬롭스키의 영화 <블루>에서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여인(줄리엣 비노쉬)의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듯 했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전부였고, 우주가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었던 아내를 사별한 반스에게, 외국의 평범한 독자가 위로를 줄 순 없겠지만, 앞으로 그의 창작활동을 지켜보겠다는 한 마디는 꼭 전하고 싶다.
<책 속에서>
마지막 이것, 마지막 저것. 그녀가 마지막으로 읽고 마지막으로 웃은 내 글.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글.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한 온전한 문장.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p.163) 비탄과 대비되는 애도의 문제가 있다. 비탄은 하나의 상태인 반면, 애도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둘을 차별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사이엔 불가피하게 겹치는 면이 있다. (P.144) 비탄은 어쩌면 모든 패턴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훨씬 더 많은 것, 즉 패턴이 존재한다는 믿음마저도 파괴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믿음 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패턴을 찾거나 재정립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들은 그들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패턴들을 믿으며, 그것이 쌓여 생각으로, 이야기로, 진실로 이어지길 바라고 또 그것에 의지한다. 사별의 고통과 무관한 사람인든, 아니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을 구원해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
지난겨울 열기구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떠다니며 터키 중앙의 고원지대인 카파도키아의 바위 굴 곳곳을 내려다보며 미미한 인간의 능력 이상을 만들어낸 자연신 앞에 탄성을 뿜었다. 종교적 탄압을 피해 곳곳에 벌어진 버섯 모양의 동굴 속에 깃들어 살았던 현지인들의 신앙생활을 떠올리며 인간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여러 의미를 띠겠지만 각자 처해진 환경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2008년 아내 팻 캐바나를 뇌종양으로 떠나보낸 뒤 상실의 아픔을 달래며 지내야 했다. 그동안 부인과 함께 했던 추억을 곱씹으며 날실과 씨실로 엮인 인연의 끈이 물리적으로는 끊어졌지만 마음속에 들어있는 그녀를 향한 마음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는 책에 담아 그녀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을 절제하며 담아냈다.
열의 힘으로 하늘 높이 올라 둥둥 떠다니는 열기구를 사랑했던 그는 주입한 가스가 다하면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듯 부인과의 정해진 시간이 다하여 숙명처럼 부부는 이별해야 했다. 보헤미안적 기질에 열기구를 사랑하는 프레드 버나비 대령은 여러 극에 출연하고 있던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 서로를 향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구심점을 찾지 못한 사랑은 표류하는 한 척의 배처럼 쉽사리 길을 찾지 못하였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였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로 잇지 못하고 영원히 결별하는 수순을 밟았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음을 향해 가게 되지만 우리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생각지 않고 지내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 비탄에 젖어 지낼 때가 많다. 숱한 죽음의 예는 예고 없이 올 때가 많아 살아남은 자들에게 아무런 인사도 못한 채 급작스레 세상을 뜨는 죽음의 경우 상실감이 주는 고통만큼이나 자신의 죽음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 무심함으로 비춰져 헤어나기 힘든 허무감을 더한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라고 반스는 지금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는 없지만 가슴속에 강하게 똬리를 틀고 앉은 아내를 잃은 상실감은 커 보인다. 아내에게 말을 걸며 내밀한 감정을 이어가고 싶은 바람을 행하는 반스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은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오선지 위에 낮은 음으로 변주되어 음울함을 더한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아차릴 때마다 애도하는 말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과정으로 상실의 아픔에 젖어 지내는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못한다고 여길 때가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스스로 상실의 아픔을 달래는 사이 숨통을 옥죄던 고통도 조금씩 엷어진다. 반스 역시 아내가 떠난 지 4년째가 되는 해부터 상처를 치유하며 조금씩 나아졌다.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를 반목하며 살던 부부도 배우자의 사별이 주는 아픔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심연 속으로 몰고 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하나의 숙제로 자리하는 경우를 목격할 때가 있다. 생전에 잘해주지 못한 점을 뉘우치고 회한에 젖는 경우도 있을 테고 이제는 지상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절대고독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탄에 젖어 지내는 일보다는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들이며 상대를 사랑하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현재적 삶에 정성을 쏟고 싶은 바람이기도 하다. |
|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그 근거가 너무도 빈약한 탓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내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예상을 하고 로또의 1등 당첨 확률보다 못한, 우연에 가까운 적중률에 환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의 빗나감 때문에 실체적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도 아니요, 예상의 적중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은 오직 현실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실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자신이 제시했던 예상의 근거를 작은 목소리로 수정함으로써 변명에 가까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실이 달라지는 법은 없습니다.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예상치 못했던 현실에 대처하는(아니 '반응하는'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일이기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줄리언 반스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물론 그의 아내 팻 캐바나의 죽음이었지만 그는 이 책에서 개별적인 (팻 캐바나의)죽음과 지극히 개인적인 (작가의)비탄의 모습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삶의 보편적인 패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번역했던 최세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세 이야기의 묶음이다. '비상의 죄(하늘)', '평지에서(땅)', '깊이의 상실(지하)' 이라는 각 장의 제목이 암시하듯, 세 개의 수직적인 층위로 이루어진 구성이다. (원제 'Levelsof life'는 직역하면 '인생의 층위들'이다.) 층위가 다르고, 장르적 성격이 다른 세 이야기는 대동소이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의 것들을 하나로 합쳐보라. 그때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이 문장은 한 가닥 실처럼 세 이야기의 바늘귀를 관통한다." (p.200)
책을 펼치자마자 시작되는 19세기의 '기구를 즐겨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아마도 저으기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캐바나에 대한 회고록 성격의 책이라는 사전 지식을 갖고 있었던 독자라면 의아한 마음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아내와 사별하여 비탄에 잠긴 작가와 기구 또는 기구를 즐겨 탔던 사람들과의 연관성이 전혀 짐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장에서 작가는 기구를 타고 '신의 영역'인 하늘로 비상하여 '땅위에 묶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처음으로 사진에 담았던 나다르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내 에르네스틴을 사랑했던 그는 아내가 죽은 후 '땅 위에서의 삶'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2장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기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사랑의 패턴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그녀를 사랑하는 영국인 장교 프레드 버나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질적인 두 보헤미안인 사라와 프레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완성함으로써 함께 기구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기구가 그렇듯 추락은 결코 순탄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의 쾌락을 찾아 헤매는 사라와 사랑의 완성을 원하는 프레드의 만남은 처음부터 추락을 염두에 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걸요. 그래서 난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고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감각, 쾌락,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어요. 난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감정을 찾아 헤매요. 삶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나의 마음은 어느 누구, 어느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짜릿한 흥분을 원한답니다." (p.93)
3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겼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들리지 않는 위로의 말들과 그다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비탄에서 벗어나는 여러 방법들 역시 아내를 잃고 비탄에 잠겼던 작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상실의 고통은 삶의 층위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땅을 딛고 사는 보통의 사람들과의 영원한 단절, 비탄에 잠긴 사람들로 하여금 가치관의 기준이 확실하게 바뀌도록 만든 냉엄한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탄은 시간을 바꾼다. 시간의 길이를,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바꿔놓는다. 오늘 하루가 내일과 전혀 다르지 않게 돼버린 마당에, 굳이 각각의 날들에 별도의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공간 또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 제작법에 의거해 측량된 새로운 지형에 들어서게 된다. '상실의 사마''(무풍지대인) 무심의 호수' '(말라서) 황무지가 된 강' '자기연민의 습지' '기억의 (지하) 동굴' 등을 표시한 17세기 지도와 흡사한 그 지도에서 당신은 당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p.138 ~ p.139)
구름을 뚫고 하늘로 비상한 기구처럼 삶의 층위가 갑자기 변했을 때,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는 일도 땅의 고저를 가늠하는 일도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 되었을 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다만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자조적인 무기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건, 벗어날 수 없는 비탄의 강정이나 혹은 구름을 벗어난 행복의 감정에 충만하건 그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우주의 진행은 무심히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
|
모두 200쪽이 되지 않는 분량에 세 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세 가지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을 지녔고, 층위(level)의 이야기다. 첫 번째 <비상의 죄>는 프레드 버나비, 사라 베르나르, 펠릭스 투르나숑(혹은 나다르)의 기구 비행에 관한 역사적 소묘다. 주로 나다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비행기가 등장하기 전 하늘을 날아 그 위에서 땅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은 이야기, 그러니까 픽션이 아니다. 두 번째 <평지에서>는 앞의 프레드 버나비와 사라 베르나르 사이의 에피소드다. 둘이 잠깐 연인이었다는 설정인데, 이는 작가의 상상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줄리언 반스의 처절한 독백이다. 아내를 잃고 비탄에 젖은 남편으로서 떠나간 이에 대한 사랑과 남겨진 이의 상실에 대해, 고통에 대해 썼다. 이 세 이야기는 구조상 서로 연결이 되는 듯 되지 않는 듯 헷갈리지만, 줄리언 반스는 명백하게 이 세 이야기를 연결짓고 있다. 그 근거는 세 이야기의 첫머리다. 모두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또는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기구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에선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고 하고 있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때로는 합쳐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고"고 하고 있다. 분명히 줄리언 반스는 세 번째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앞의 두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둘이 하나되는 이야기며, 하나였던 이들이 서로 헤어지는 이야기이다. 줄리언 반스는 아내를 잃고 5년 후에 이 글을 썼다. 그 5년 동안 슬픔을 차곡차곡 쌓고, 자신의 사랑이, 그리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되새기고, 되새긴 것처럼 보인다. 아내가 없는 자신이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보려 했고, 그 결과는 사무치는 고통, 비탄이었다. 슬픔은 극복되지 않으며, 여전히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주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우리는 그 우주가 한 일의 부산물일 따름이지만, 그리고 비탄 역시 그것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사랑과 슬픔을, 비탄을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자각한다. <옮긴이의 글>을 보면(대부분의 책에서 옮긴이의 글은 필요가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앞부분 만큼은), 줄리언 반스의 아내는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 팻 캐바나였다. 책 앞머리에도 "팻에게 바친다"라고 되어 있으며, 나중에 확인했지만 작가 소개의 사진도 줄리언 반스는 아내와 함께다. 영국 문단에서 대단한 위상을 지녔던 팻 캐바나는, 그런 역할 말고도 줄리언 반스라는 뛰어난 소설가의 아내로서도 훌륭했다고 한다. 그녀는 2008년 10월 20일 거리에서 뇌졸중으로 쓰려졌고 37일만에 사망했다(이 내용은 줄리언 반스의 글로도 짐작하고 알 수 있다). 줄리언 반스는 오랫동안 아내의 죽음에 대해 침묵했다고 한다. 그동안 지금까지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같은 소설도 발표했지만, 아내의 죽음에 대해서는 줄곧 침묵했다. 그리고 5년 만에 내놓은 게 바로 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였다. 나는 이 우리말 제목이 원래의 제목 《Levels of Life》보다 줄리언 반스의 목소리를 더 많은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죽음으로 내 가족, 특히 아내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해봤지만(그래서 절대 나는 일찍 죽지 않는다고 다짐을 하곤 한다), 아내의 죽음 이후 내 삶이 어떻게 될까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쩌면 상상하기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줄리언 반스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본다. 줄리언 반스처럼 아내가 곁에 있었던 때처럼 이러저런 일들을 하다, 그녀의 부재를 깨닫고 더욱 상실감에 젖게 될까. 아니면 아내의 부재를 잊기 위해 아내와 함께 했던 일들을 일부러 꺼리게 될까. 모르겠다. "고통은 사랑의 증거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해서도 아직은 모르겠다. 나는 아직 사별하지 않았으므로.
|
|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엄청난 슬픔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남겨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남겨진 사람이 회상하는 사랑이야기와 사랑을 잃어버린 후의 슬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줄리언 반스의 신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는 저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애드벌룸이 하늘을 날고 있는 표지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기구는 자유를 대변하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기구란 것이 날씨와 바람 같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지배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그 어쩔 수 없는 것을 이용해서 더 높이, 더 멀리 날고 싶은 욕망을 표출한다. 책은 세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는 기구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역사 속 세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근위기병대 대령인 프레드 버나비, 아름답고 매력적인 유태인 출신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저널리스트, 기구 조종사, 사진가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열정적인 남자 펠릭스 투르나숑... 3명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기구에 미친 사람들이고 이들의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하는 프레드 버나비가 사라 베르나르의 매력에 빠진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연인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싶었던 버나비의 바람과는 달리 사라는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의 말을 건넨다. 허나 사람을 프레드 버나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을 속였다고 느끼고 그녀의 곁을 떠나 전장을 돌아다닌다. 결국 각각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지만...
세 번째 이야기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을 온 몸으로 느끼고 사는 한 남자의 절절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이야기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 이처럼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사랑을 한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다.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아픔이나 슬픔이 어느 정도 이해도 가고 공감하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감정이 이해는 되지만 온전히 그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리언 반스는 전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재밌게 읽었기에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인생에 대한 생각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인데 반해 이번 작품은 몰입 면에서나 재미 면에서 전작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http://blog.yes24.com/document/6321993>에서 철없는 젊음이 저지른 잘못을 기억의 심연보다 더 깊은 곳에 숨겼던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던 줄리언 반스입니다. 이 책을 읽고서 저는 ‘기억능력이 신이 인간에 내린 선물이라고 한다면, 그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을 덤으로 주신 것은 기억할 수 있는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프리미엄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작가 줄리언 반스는 정작 자신은 죽은 아내의 기억에 매몰되어 스스로의 삶을 구속하키고 있는 것을 보면, 신이 내려준 선물에 프리미엄을 얹어 받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는 신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아내의 죽음을 붙들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를 꼽을 것입니다. 그녀는 <인생수업; http://blog.joins.com/yang412/9228751>에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하여 담았다고 한다면, <상실수업: http://blog.yes24.com/document/2346003>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당신이 남겨진 이유를 아는가?라는 질문에 로스는 대답은 당신들은 ’살기 위해‘ 남겨졌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읽었을 때는 세상에 살아남을 자신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살다보면 살아지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꼭 같은 것은 아닙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셨을 적에 장례를 주관해주시던 스님께서는 고인을 추모하되 지나치게 슬퍼하지 마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남겨진 사람들이 지나치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돌아가신 분이 가셔야 할 곳으로 떠나지 못하고 붙들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취해야 할 영혼이 이승에 남겨진 사람을 걱정하느라 쉴 수 없게 되는 불행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사람을 위로하는데 아주 서툴거나 상투적이어서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반스의 경우 가까운 사람들의 위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반스의 아내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아내의 죽음에 무능력하기만 했던 자신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더욱 친지들의 위로에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죽은 후, 그녀의 실명을 언급하기를 꺼리고, 비탄의 감정을 극복하길 은연중에 강요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에 대한 분노, ‘내세의 재회’라는 종교적 환몽에도 기대지 못한 무신론자의 황량한 현실 등을 고통스럽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새로운 삶의 패턴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었으나 지속되는 아내와 다시 살아가는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죽은 아내에게 말을 걸고 죽은 아내를 꿈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자신의 해법을 죽은 아내를 찾아 지옥까지 들어갔던 오르페우스와 비유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그는 19세기말 한창 유행했던 열기구에 미쳤던 사람들을 끌어왔습니다. 열기구를 타고 비상하여 지상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나다르를 비롯하여 열기구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첫 번째 에피소드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비상의 죄’입니다. 그때까지 새들과 신의 영역이었던 하늘로 날아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역시 열기구를 사랑했던 버나비와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라는 실존인물을 엮어 열기구와 사랑이라는 동행할 수 없는 운명을 하나로 묶어내려다 실패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는 슬픔 이야기는 사랑하는 아내가 떨어져 있는 지옥으로 아내를 구하러 가는 오르페우스에 자신을 비유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작가가 하늘과 지상 그리고 지하로 나누어 배치한 사랑의 구조가 실감나지 않았던 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망각이라는 프리미엄에 눈을 돌릴 줄 모르는 주인공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바로 퀴블러 로스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원제 Levels of Life 저자 줄리언 반스 | 역자 최세희 | 다산책방 | 2014.05.20 | 페이지 207
줄리언 반스의 뮤즈이자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 팻 캐바나가 뇌종양으로 사망 후 5년 만에 입을 연 줄리언 반스가 아내에 관해 쓴 회고록 에세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상실의 고통을 구구절절한 감정폭발이 아닌 소름 끼치도록 담백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사랑과 이별의 비가입니다.
1장 비상의 죄, 2장 평지에서, 3장 깊이의 상실, 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는 것으로 시작하는 세 이야기의 첫 문장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에서 결국 하나의 점으로 합쳐지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일으킵니다. <비상의 죄>는 기구 비행을 통해 높은 곳을 열망하며 자유를 대변하는 의미를 가진 기구 예찬 이야기입니다. <평지에서>는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사랑의 진실을, 날아오르다 떨어지는 기구와 접점을 이뤄 이야기합니다. <깊이의 상실>에서야 드디어 줄리언 반스 자신의 사별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바람과 날씨의 권력에 영합하는 자유를 의미하는 기구 비행. 항공술과 사진 두 가지를 최초로 하나로 합친 19세기 인물 나다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합쳐진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다며 줄리언 반스는 이런 항공술이 이카루스의 비극처럼 비상의 죄, 혹자에게는 분수를 넘어서는 짓으로 알려진 죄를 사하여 주었다고 말합니다. 자유를 누리되 변덕스러운 자연 때문에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어 위험하기도 한 기구 비행을 통해 사랑의 균형을 이야기하고, 상승과 추락을 동시에 품은 기구 특유의 모순적 속성을 통해 비상에서 평지로의 추락인 상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 - p109
줄리언 반스는 삶의 심장, 심장의 생명인 아내를 잃은 슬픔의 단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별과 상실의 고통을 이야기한 <차마 울지 못하는 당신을 위하여> 책에서도 말했듯 충분한 애도야말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 중심이 되듯 줄리언 반스는 사별 후 겪은 그의 비탄과 상실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 사별의 슬픔은 인간으로서의 상태이지 의학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며, 그 고통과 더불어 다른 모든 것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은 있어도 치유해주는 약은 없다. 』 - p116
'세상이 그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하며 정작 불상사가 일어났을 때 기분 전환 거리나 조언은 다 필요 없을 정도로 인생의 무심함에 대한 분노를 겪기도 합니다. 사람은 비탄을 이겨내게 돼 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더 강한 인간이 된다는 언어도단적인 말에 분노하고, 사별한 사람 그 자신조차 진실을 말하지 못하며, 회피하고 방어적이고 움츠러든 자세를 강요하는 이 시대의 삭막함을 이야기합니다.
『 '우리'는 씻겨가고 이제 '나'만 남았다. 』 - p181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고독의 문제, 사랑의 증거로서의 고통, 비탄의 함정... 이런 상실의 단계를 겪으며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그의 답은 '아내가 살아있다면 그러길 바랐을 모습대로' 아내의 부재를 견디며 아내의 실재를 마음속에 품게 됩니다. 애도에 성공한다는 것이 기억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인지, 잊어버리는 데 성공한다는 것인지 사별 정리 보상의 의미를 묻습니다. '과거적 현재형'으로 딱히 현재에 존재하지 않지만, 완전히 과거에 속하지도 않고 그 사이 어딘가의 시제에 속하듯 결국 살아있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죽음이, 곧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것으로 줄리언 반스는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사별의 고통을 비상, 추락, 그리고 깊이로 이야기하는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읽으며 기만적이고도 세속적인 위안을 경계하고 사랑의 증거로서의 고통을 공감하게 됩니다. 죽음이 가져온 비탄, 아내와 함께했던 마지막 일들을 잔잔히 내뱉는 그를 보며 상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한 줄리언 반스와 팻 캐바나가 부러워집니다.
|
|
남편과 아내.
실제로 팻 캐바나(Pat Kavanagh)는 소설가인 줄리 언 반스(Julian Barnes)의 아내이자 에이전트로서, 평생 문학적 동지이자 동반자였다.
줄리언 반스의 모든 작품은 '팻에게 바친다'는 헌사로 시작한다.
1979년 결혼 이후 2008년 팻이 뇌종양으로 죽을 때까지 이 둘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줄리언 반스는 작가로서의 이력 뿐 아니라 일상 생활의 모든 부분을 그녀와 함께했다.
가장 오랫동안 본 건 바로 이 사진이다. 특이한 게 이 둘은 나란히 서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팻이 반스의 뒤에 서 있다.
젊은 반스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미소를 띨 수 있었던 건 등 뒤에 서 있는 팻에 대한 사랑과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속 반스를 오래오래 보게 된다.
저런 미소. 저렇게 웃게 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관계. 줄리언 반스와 팻 캐바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부부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의 원제는 『Levels of Life』인데 몇몇 사진들을 보며,
삶의 층위들.
원서로 사서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작가, 줄리언 반스가 아내 팻과 사별한 후, 그녀를 잃은 상실감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인생의 층위들(Levels of Life)'인데 사실 처음에 1부, 2부를 읽으면서는 이 이야기들이 왜 나오고 있는지 사뭇 어리둥절해진다. 그러다 3부 드디어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그가 왜 앞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했는가가 너무도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이는 어쩌면 그의 글쓰기 유형인 걸까? 단 두 권만을 읽어보고 이렇게 단정짓기는 힘들겠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 2부를 읽으며 완벽하게 1부가 이해가 되었었는데... 1부 '비상의 죄'에서는 기구를 타고 하늘에 올랐던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마치 다큐와 같은 형식으로 하늘과 창공에 오를 수 있는 비행의 기구와 상승의 환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2부 '평지에서'는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열기구 신봉자인 프레드 버나비와의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허구의 로맨스랄까. 마지막 3부, '깊이의 상실'에서는 드디어 작가의 이야기, 그가 아내를 잃으며 느꼈을 상실과 사별의 아픔, 즉 어쩌면 한없이 추락해버린 지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비상은 사랑의 환희와 떨림, 최고조의 기쁨과 자유에 대한 메타포이며, 상실은 추락과 이어지는 것이다. 기구비행을 통해 사랑의 여러 감정과 상실감을 이렇게 표현해 내다니. 사랑은 진실과 마법의 접점이 아닐까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고. 처음에는 아니었대도 결국 그렇게 누구나 예외없이, 어김없이, 때론 그 둘 모두에게. 왜냐면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상실을 겪게 될 테니까.
아내를 잃은 슬픔과 비탄의 감정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승화시켜내다니. 아니 무엇보다 그는 이토록 아내를 깊이 사랑했었던걸까. 왜 난 그의 아내 팻이 한편 부러워지는지 모르겠다. 30년을 함께 살아오면서도 여전히 깊이 사랑하고 문학적 동지였을 그녀. 누군가와의 실연, 상실로 인한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과연 극복이란 것은 기억하는데 있는 것일지, 아니면 잊어버리는데 있는 것인지 나 역시 대답하기 참 어려운. 그러나 그 아픔의 깊이만큼은 그가 잃은 사랑의 깊이를 상징할 것이다. 역자의 말처럼 이 고통이 사랑에 대한 증거였다는 부조리를 받아들이며, 결국 상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
|
슬픔을 견뎌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처절한 마음을 추스리고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극한을 감내하는 것이다. 더 큰 감정을 만들어내는것이야말로 죽을것같은 슬픔을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극도의 고통으로 스스로를 내던질 때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는 명작을 만들어낸다. 냉소적이면서도 감정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의존적인 한 개인이 나락에 떨어져서 만들어내는 작품이 어찌 평범할 수 있겠는가.
젊은 시절 나는 믿을 수 없을만큼 사랑했던 사람을 아무런 준비도 되지 못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예감조차도 못한 시기에 잃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묘지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세상은 짜증스럽도록 무심했다. 청소부는 여전히 밤새 취객이 내뱉은 토사물을 치우고 있었고, 학생들은 학교 전 정거장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벨을 누르고 내렸다. 앞차를 들이받은 SUV승용차는 앞차 운전자와 실랑이 중이었고, 육교를 올라가기 부담스러운 할머니 한 분은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작가의 표현에 특히 공감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거의 매일 밤 병원을 나서면, 그냥 하루 일과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내가 분한 마음으로 노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들은 어쩌면 저렇게 게으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기들의 무심한 옆얼굴을 여보란 듯 보여주고 있단 말인가. 세상이 이제 이렇게 변하려는 참인데. (p.112)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p.110)라는 작가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다. 모든 인간이 죽을 확률이 100%라는 말처럼, 모든 사랑이 고통으로 끝날 확률 또한 100%이다. 다만, 내가 떠나느냐 남겨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3가지의 이야기가 하나의 큰 주제를 위해 무관한듯 연관되어 있다. 1부는 19세기에 기구를 타고 하늘에 올랐던 실존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2부는 그 중 프레드 버나비와 사라 베르나르의 사랑을 픽션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비로소 3부에서 작가는 그녀의 죽은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는 추 역할을 하는 문장은 각 소설의 첫번 째 문장이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p.11)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p.51)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p.109)
첫 번째는 이 합쳐짐으로 인해 세상은 변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이 합쳐짐으로 인해 파멸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러한 파멸로 인한 공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애초에 두 가지를 합쳤던 총합보다 큰 빈자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유서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토록 허무한 모든 것들을 너희들처럼 무심하게 지나치고, 또 욕망하는 삶이 뭐가 중요하냐며 이제 나는 떠날거라고 말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는 견뎌내고 있다. 김용택 시인이 말했던 어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살다보면 수가 날텐디, 죽긴 왜 죽어.' 그렇다. 어쨌든 남겨진 이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살아 남아서 누구에게든 이 슬픔을 알리려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처절한 기록이 소설처럼 읽히지 않고 유서처럼 읽히는 이유가 그런 이유다. 하지만, 한편으로 유서처럼 읽히지 않고, 열정'으로 느껴지는 이유 또한 그런 이유라는게 책장을 덮고 나서의 내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