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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파괴된 상태여서 어쩌면 더 쉬웠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것들을 고려할 필요 없이 의도한 대로 전부를 생성하면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로지 성장만을 부르짖느라 많은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도시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우리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치 않았다. 그저 겉에서 볼 때 얼마나 멋진가에 대해 생각했으며, 과거의 지저분함, 저개발 상태를 지우는 데에 급급했다. 그 결과 우리의 도시는 보기에는 나름 괜찮을 수도 있으나 많은 불편을 낳기 시작했다. 신체가 건강한 이들이라면 그 불편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문제는 사회적 약자로 지칭되는 이들은 기본적인 생활조차도 버겁다는 사실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곤 있으나 많은 건물이 여전히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들에게 열려있지 못하다. 어찌 보면 아주 낮다 싶은 턱 때문인데, 휠체어는 어김없이 그 턱에 걸리고는 한다.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철거 추세인 듯한 육교의 경우 다수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릎 관절이 약한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는 길을 건너는 일이 상당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파악 가능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뒤늦게 우리사회는 그동안 놓쳐왔던 이들에 대해 떠올렸고, 더딘 속도로나마 모두를 향해 열린사회로 나아가고자 애쓰고 있다. 인권은 인간의 권리를 줄인 말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가 무시당하는 처사는 분명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껏 우리 스스로 누려야 할 권리를 애써 누리지 않으려 들었고, 내가 누리지 않으므로 타인도 누려서는 아니 된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인권을 계속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가 인권을 중시하고 있으며, 인권이 더는 무시해서는 아니 될 무언가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도시들의 실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경우 프랑코 독재시기에 맞서 싸우면서 숱한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역사를 지녔다. 극한 상황을 경험해본 이들은 누구보다도 타인을 향해 열린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바르셀로나는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을 끌어안아 반차별정책과 평등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고 한다. 독일 뉘른베르크라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대인 학살이다.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뉘른베르크법’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뉘른베르크는 지난 날의 과오로부터 배운 바가 많았다. 보편적인 인권을 도시정책의 기본 틀로 삼아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을 펼칠 때 활용하고 있었다. 시장 직속이나 독립된 활동을 하는 시립인권사무소의 존재는 뉘른베르크가 인권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사례도 눈여겨볼만 했다. 국가 부도 사태로 온 국민이 신음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최대 3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군부 독재 정권 시절에 납치되어 살해당하고 사라진 끔찍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 바로 아르헨티나다. 과거사를 청산하는 동시에 원주민의 빈곤과 차별문제를 혁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민관 협조 하에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책의 제목이 ‘인권도시’이기 때문이었을 텐데 인권을 추구하는 대상이 도시라는 점은 시사할 바가 컸다. 우리도 지방자치시대를 살고 있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미약한 편이나 일부 앞서 나가는 곳도 분명 있다. 지난해였던가, 성북구와 노원구가 시도한 생활임금은 큰 파장을 낳았다. 그보다 앞서 더 큰 논란을 낳은 무상급식 문제 역시 학생들의 인권 문제와 결합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이슈를 접함에 있어 어느 쪽에 중요도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 누군가가 이득을 취하다 보면 다른 누군가는 소외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모든 이가 만족할 수야 없겠지만 한 번 더 고민하고 생각해봄으로써 차별을 겪는 이의 수를 줄일 수 있다면 그리 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붕괴된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오늘날 노력의 효과를 배가할 수 있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