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끊임없이 갈등과 모순에 맞딱뜨리는가? 갈등과 모순을 생성하는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연구하는 과학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과학을 업으로 삼고 연구 분야(심리, 뇌과학, AI)와 상관없는 여러 과학 분야의 책들을 꾸준히 읽는 나로서는 위와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것들이었다. 때문에 저자들이 인용한 철학자들의 문구, 몇몇 오래된 심리학 지식이 아니라 내가 읽었던 책에서 배운 과학 지식을 통해서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갈등과 모순에 대한 관점을 먼저 설명해보려 한다. 책의 내용 소개와 서평을 하기에 앞서 모순 자체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심화해보려는 시도이다.
* 이 서평에서는 모순과 역설을 동의어처럼 쓰고 있다.
1. 무한한 세계와 유한한 인간
유럽에서는 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기독교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인해 세상의 시간적 지평이 1만 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지구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태양과 달은 때때로 신비로운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별과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현대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었다. 반면 현대 물리학은 관측가능한 우주의 크기에 관한 추정값이 점점 커지고 있고, 그 범위를 뛰어넘는 다중우주라는 개념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주라는 거대한 존재와 비교해보면 인간은 매우 사소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이 원자 1개를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된 시점도 고작 100년 안쪽에 있고, 우리는 아직도 세상을 이루는 입자들을 얼마나 더 쪼갤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인간이 인식하는 시공간적 크기에 비교하면 작은 쪽으로도 큰 쪽으로도 세계는 거의 무한하다.
반면 인간의 정보 처리 능력은 매우 협소하다. 익숙하거나 연관성이 없는 단어 5개, 숫자 7개가 넘어가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몸을 이루는 수많은 세포들이 끊임없이 분열하며 생성되고 죽어가는 과정에서 처리되는 그 많은 정보를 우리는 인식할 수 없다. 매분 60~80번씩 무의식적으로 쉬는 호흡도 집중하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다. 과거를 기억하는 우리의 기억력도 매우 선택적이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더욱 제한적이다. 괜히 주식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도 '시장 타이밍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한 것은 아닐 것이다.
2. 변화는 상수다
세상이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데 있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브라운 운동'은 분자들이 통계적으로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통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실험적으로 밝혀냈다. 게다가 태평양 동쪽 끝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 서쪽 끝의 대륙을 휩쓰는 태풍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은 아무리 작은 무작위적인 변화라고 긴 시간에 걸친 인과적 사슬로 인해 증폭되어 거대한 변화를 야기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컴퓨터는 인간의 부족한 정보 처리 능력을 보완하고 극대화하여 복잡한 계산을 대신해 주지만, 아직 인류가 구축한 과학적 지식과 계산 능력은 무한한 세상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예측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기상학자에게 1달 뒤 날씨에 대해 물어보라. (연구에 의하면 정치경제 현상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평균 예측 적중률은 침팬지가 무작위로 동전을 던졌을 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3. 정확성과 효율성의 상충이 만드는 역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끊임없이 예측한다. 모든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통해 몸의 물리적 구조를 재편함으로써 미래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적응하고 진화한다. 이러한 능력을 더욱 끌어올린 구조가 신경 시스템이고, 인간은 그러한 신경 시스템을 극단적으로 진화시켜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신경 시스템은 예측을 위한 정보 처리의 많은 비중을 우리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할애한다. 남은 능력 중 일부는 타인과 소통하고 감정과 지식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세상에 대해 배워가는데 사용한다. 그렇게 협력의 시공간적 범위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확대되면서 거대한 지식의 보고를 구축해왔다. 수 천년 전에 쓰인 경전과 문학은 지금도 끊임없이 읽히고 재해석되며 전수되고 있고, 매일같이 셀 수 없는 책, 논문, 뉴스가 쏟아지며 인류의 아카이브는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거의 무한하고 너무 복잡하며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정보 처리 시스템(생명체, 컴퓨터 포함)은 복잡한 세상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정확성을 포기해야 한다. 천천히 산책을 하며 나무를 바라보면 각각의 가지가 뻗은 방향, 울퉁불퉁한 나무 껍질의 질감, 바람에 흔들리는 각각의 이파리의 움직임이 보이겠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며 가로수길을 지나면서 창밖을 보더라도 흩어지듯 스쳐지나가는 뿌연 나무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다. 인간이 대체로 직관을 사용할 때는 효율성이 더욱 높은 우선순위에 놓이지만, 이성을 사용할 때는 정확성에 더욱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다.
단어, 개념, 집합, 범주와 같은 것들은 세상을 효율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이다. 범주화는 세상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기 때문에 기존의 범주로 설명되지 않는 회색 지대의 존재가 종종 드러나기 마련이다. 생명과 죽음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면, 바이러스는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세포를 죽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수정란이 몇 개의 세포로 분열했을 때 낙태는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개념이라는 범주들과 그것의 관계들로 이론을 만드는 학자들은 이러한 회색 지대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이를 더욱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기업가들은 때때로 혁신을 통해 기존에 해결하지 못했던 갈등과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지만, 그에 못지 않게 고려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순을 창조하기도 한다. 우리는 범주화의 효율성을 절대 포기할 수 없고, 끊임없이 생기는 모순은 필연일 것이다.
4. 관점과 차원을 뛰어넘기
모순을 해결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다시 아인슈타인으로 돌아가보자. 아인슈타인은 등속으로 움직이는 전선에서의 전자기력이 기존의 전자기 방정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모순을 사고 실험을 통해 포착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이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으로 물리적 시공간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며, 길이와 시간이 모두 수축하거나 팽창할 수 있다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다. 그리고 300년 이상 지속되어온 뉴턴의 3차원 공간과 독립적인 시간 차원이라는 개념을 4차원 시공간으로 통합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이 개념을 가속 운동하는 계로 확장하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가속 운동이 중력의 작용과 다름이 아님을 이론적으로 설명해내며 중력이 시공간을 왜곡시킨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의 존재는 100년 만에 2016년 관측되었다.
상대성 이론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든 사람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이야기가 모순 해결에 대해 던져주는 교훈은 기존에 우리가 가진 범주, 관점과 차원을 뛰어넘는다면 생산적인 통합과 더욱 정확한 예측에 도달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인식을 지배하던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뛰어넘고 4차원 시공간을 이론화함으로써 100년 후에나 검증될 수 있는 예측을 해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예측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모든 사람은 인류의 문화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교육받고 문명의 혜택을 얻는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세기의 천재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나름의 범주를 구축하고 때때로 이를 뛰어넘고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더욱 나은 설명을 통해 미래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변화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는 말은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삶을 통해서 이러한 문구가 얼마나 강력한지 경험해보았다.
일, 인간관계, 건강 모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내가 맞딱뜨리는 모든 문제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더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몸은 처지고 입은 자극적인 음식을 요구하고 뇌는 잠에 들기를 거부했다. 모순과 갈등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압도적인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최근에 만난 한 교수님은 이런 말을 나에게 해주셨다. "나는 모순을 찾아다닙니다. 모순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고, 이전의 학자들이 설명하지 못한 것들이 숨어있습니다. 과학자로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순을 찾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설명해냄으로써 동료 학자들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나는 이제 이러한 사고 방식에 온 몸으로 동감한다. 매일 반복되는 잠, 운동, 식사에서 오늘은 어제와 무엇이 다른지 더욱 의식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의 몸에 집중하는 모든 활동은 명상을 할 때와 비슷한 뇌의 활동을 유도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인식하고 대처하기 위해 그 시작점은 나의 몸과 마음이 되어야함을 깨닫고 실천한 이후 나는 크고 작은 모순들을 해결해나가고 있다. 이제는 나도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처럼 적극적으로 모순과 역설을 찾아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다.
몸 상태에 집중한 것과는 별개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했던 중요한 활동 중 하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다. 어떤 사건이 나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세상에는 내가 예상하거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도 부지기수로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사실과 내가 공감하지 못하지만 그 나름의 개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함을 수용하는 것이다.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연민과 수용으로 대처하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이유는 상상의 지평이 훨씬 넓어지기 때문인 것도 있는 것 같다. 집착과 두려움이 내가 예상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수용은 반대로 세상이 항상 내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듦으로써 상상력의 공간이 더욱 자유롭게 확장될 수 있다. 모순을 바라보던 감정은 자연스레 두려움에서 호기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책임지고 감당하며 해결해낼 수 있는 모순의 양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모순의 양이 커진다는 것이 아닐까?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현재의 라이프와 미래의 일을 위한 밸런스, 커리어와 가정(혹은 우정), 명분과 실리.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와 모순은 이 책의 저자들이 설명하듯 지속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것들이 많다. 내 경험에 의하면 조바심은 금물이다. 때때로 우리가 알 수 없는 운은 불현듯 다가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문제 해결을 도와줄 때도 있다. 힘든 시기를 이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건강과 인간 관계이기에, 그러한 것들에 충실한 상태로 꾸준히 시도한다면 타이밍은 알 수 없지만 행운의 여신이 가끔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떠올리는 모든 문장, 연구하기 위해 탐색하는 아이디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때가 많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어쩌면 인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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