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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왕권을 쥐어흔든 여인들이 있었다. 드라마 <여인천하>나 영화 <역린>처럼 <대비, 왕의 여자>는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 왕비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을 경우에 어머니가 수렴청정을 하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역사의 다른 관점에서 표현해냈는 점이 독특했는데 책에서 다루는 정희왕후 윤시, 인수대비 한씨, 정순왕후 김씨, 순원왕후 김씨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권력자들이었다. 유교적인 관점에 비춰보면 현모양처 혹은 헌신적으로 아들 뒷바라지를 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숱하게 방영된 사극에서도 단골 소재이기도 한데 워낙 복선도 많고 극심한 긴장감과 흥미로운 주제들과 에피소드들이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제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역사 속에 비춰진 모습은 그렇게 좋지 못한 것 같다. 조선시대는 항상 두 파로 갈리는 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한쪽 세력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정을 장악해야 했고, 자신의 친족들을 권력의 중심으로 모을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영화 <역린>의 정순왕후 김씨 때문이 아닐까 싶다. 15세의 나이로 정조대왕과 결혼하였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와 권력을 두고 힘겨루기를 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고증을 거친 역사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후대에 사는 사람은 그 당시의 상황을 흥미롭게 읽을만하다. 실록에서 발췌한 문장부터 지인과 서신교환을 한 편지글, 다른 책에서 발췌한 이야기들로 신뢰감을 더해준다. 아무래도 역사를 다룬 책이기에 여인의 시점에서 쓰여졌을 때는 통사적인 시점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유교적인 성향이 강한 성리학 사회인 조선시대에서 여성으로서 막강한 권력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 같다. 대단한 권력욕이다.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고 이들은 행동을 할 때 여느 남성 못지 않은 단호함이 있다. 때로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는데도 비정하게 방치해두기 하고, 12년을 기다려 자신의 아들인 성종을 즉위시키지만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 사이에서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던 인수대비 한씨 등 비록 욕망의 대상은 항상 자신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신라시대의 선덕여왕처럼 자애롭거나 백성을 항상 생각하며 이들을 위해 베푸는 어떤 행동은 없었다. 백성에게 존경받지 못한 채 권력이라는 울타리에 매몰된 채 평생을 살아온 인생은 권력무상이라는 말처럼 허망하게 들릴 뿐이다. 두 파로 갈려졌을 때 자신의 뿌리를 지키고 세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생각에만 골몰한 나머지 백성들의 궁핍함이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지는 못한 한계가 있다. 오히려 왕이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막아설 뿐이었고, 소모적인 정치로 인해 애꿎은 희생자들만 양산해내었다. 이는 조선시대 4대 사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없는 죄도 뒤집어 써서 희생 제물이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다른 관점, 여성의 시각에서 다룬 최초의 역사서이다. 책을 통해 완벽하게 그 당시의 정황들을 완벽하게 복원해 내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선시대를 뒤흔든 4명의 여성들의 행적이 궁금해할 것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참신하고 여성의 권력욕도 남성 못지 않게 더 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극으로 익숙하게 만나왔지만 책을 통해 보다 더 자세한 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양성평등이 당연한 이 시대에 읽는 <대비, 왕의 여자>는 그래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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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구질로 치면 몸쪽으로 묵직하게 들오오는 돌직구라고 할까.'대비, 왕 위의 여자'는 칠테면 쳐보라며 타자와 정면 승부를 마다하지 않는 정통파 투수같은 패기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 책은 탁월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며 최고 권력자로서의 권위를 누린 대비를 거론하고 있는데, 필자는 사료 '조선왕조 실록'을 파고들어 정치인으로서의 대비를 조명하고 있다. 중전이 아닌 대비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신선했지만 일단 진지하게 사료를 분석하고, 친정가문의 사주가 아니라 본인이 상황을 주도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대비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적 영역에서 활동할 수 없었던 조선여성의 정치활동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대비, 왕위의 여자'는 그런 점에서 '여성' 정치인 대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사료를 대하는 자세와 그 해석방식에 대해서 곱씹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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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는 왕가 내에서 왕보다 어른이라는 점을 강조하거나 내명부 안에서 기강을 내세우며 권세부리는 내용이라고 짐작했다. 야사나 내명부 내의 암투를 담아내지 않았을까 했는데, 정사 중심으로 대비의 행적을 파악하고, 각 정치세력의 입장을 돌파하거나 협조하면서 정치를 주도해 갔기에 조선 정치사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정치인으로서 대비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거론되고 있는 대비는 조선 최초의 대비 정희왕후(세조비), 세자인 남편이 죽자 궐 밖으로 나갔다 성종의 모후로 다시 입궁한 인수대비,15세에 66세 영조의 계비가 됐던 정순왕후, 정조의 며느리며 순조의 중전으로 안동김씨 60년 세도 정치의 기반을 닦은 순원왕후 등 넷이다. 문정왕후가 빠진 것이 의외였지만 거론된 대비들은 모두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분명했다.
조선에서 중전은 정치적인 자리일 수 밖에 없었다. 수면 위로 드러나게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수면 밑으로 정치력을 발휘해야 했던 것이 중전이었다면 그에 비해 대비는 공식적으로 정치의 전면에 나설 기회가 틔였다. 세자 책봉이 되지 않고 왕이 승하했을 때 대비에게 다음 보위 계승자를 지명할 권한이 주어졌고, 또한 어린 나이에 왕이 보위에 오를 경우 수렴청정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대비들이 정치적 실세로 부상하게 된 이력을 보자면 조선정치사에서 순탄하지 못했던 시기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희 왕후는 예종이 숨지자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성종)을 다음 왕으로 지명했는가 하면 그뒤 수렴청정을 했다. 순원왕후 또한 남편인 순조가 사망하자 여덟살인 손자 헌종이 보위에 오른 뒤 수렴청정을 했다. 손자 헌종이 스물 둘 약관의 나이로 숨지자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 이언의 서손인 이원범을 헌종 후계로 지명하고 두번째 수렴청정을 하며 최고권력자로 재등장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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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모두 정상적으로 권력 승계가 이루어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였다. 다시 말하면 대비들이 이렇게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경우는 권력 승계가 급작스레 이루어지거나 보위에 오른 왕의 나이가 어린 경우였다. 정상적인 시국이 아니라 비상시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비상시 대비에게 이렇게 막중한 권한을 줬다는 것이 예상 밖이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차기 대권 결정권을 대비에게 쥐어준 것인지 의아한 일이었다.
아마도 왕족의 정치참여를 막기 위한 방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선 정치 구도상 대비들이 정치 실세로 부상하게 된다는 것은 왕권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남편을 여읜 대비들이 예외없이 자신의 남자 형제를 끌어들여 친정 가문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파워게임을 벌였고, 친정가문 역시 기꺼이 그 역할을 담당하면서, 왕권을 제약하는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외척의 발호는 바로 왕권의 약화로 직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적으로 대비의 선택은 왕조 전체보다는 친정 가문의 이해관계에 우선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순왕후의 신유 박해나 순원왕후의 세도정치 다지기 등 일련의 조치를 보더라도, 제대로 된 정치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대비가 중심이 된 수렴청정 체제는 결국 조선 정치를 퇴행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대비 친정 가문의 이해와 향후 권력 유지를 최우선적으로 하는 조치를 내림으로써,왕권은 제약을 받았고,해결해야 할 난제는 쌓여만 갔던 것이다.
조선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왕권과 신권이 대립과 협조라는 시스템 속에서 작동됐다. 거기에 당파, 외척이 변수로 작용했던 것인데, 후기로 갈수록 당파와 외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됐다. 이후에는 극심한 당쟁 그보다도 더 후진 세도 정치가 횡횡하게 되면서 조선의 정치는 탈봉건,근대화라는 세계사적 흐름과 점점 더 동떨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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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왕위의 여자'를 읽으면서 새삼 되새기게 되는 것은 사료가 가진 힘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그동안 뒷방 늙은이라고 여겨졌던 대비를 최고의 여성권력자로 인정하면서 더욱 다각도로 조선의 정치에 접근하고 분석하게 됐으니. 다른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국역된 사료 데이터는 많은 대중들이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 새로운 컨텐츠를 생산하고 다양하게 역사를 해석하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성실하게 사료에 집중해서 대비를 새롭게 해석한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가시지 않는 점이 있었다. 우선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보위에 집중해서 해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은 1차 사료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언행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독살설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정희왕후가 아들 예종이 죽도록 방치했다거나, 순원왕후는 손자인 헌종을 죽게한 뒤 철종을 보위에 올렸다거나 하는 등 왕이 유고가 생긴 배경에 음모론이 너무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비가 다양한 세력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친정가문을 위해 권력을 휘둘렀다고 하지만, (정순왕후와 정조는 혈연관계가 아니었지만) 왕이나 손자 역시나 혈연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의견에 섣불리 동의하게 되지 않는다.
정조가 노론의 수장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확인된 이후 잠잠해진 정조의 독살설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필자가 이덕일씨의 '한가람연구소'에서 공부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이덕일씨가 주장하는 독살설의 연장선으로 여겨지는 점이 없지 않았다. 결국 사료에 덧입혀진 기록하는 자의 관점을, 해석을 걷어내고 또 사료의 해석을 냉철하게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이야말로 다양하게 역사를 해석하는 관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환기시켜 준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가 거의 원천봉쇄됐던 조선시대인만큼 정치무대에 여성이 실세로 등장했다는 점을 환영하고 싶지만, 대비의 부상에 대해서는 그럴 수만은 없다는 점도 안타까웠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치였는지를 생각하면 안타깝게도 그들은 적나라하게 한계를 드러냈던 것이다. 대비는 약자였던 여성의 이익을 대변한 것도 아니고, '여성'이라는 의식을 갖지도 않았다. 정치적 동일성을 가진 당색도 아니고, 가장 1차적인 관계인 혈연, 친정가문 이해를 가장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조선의 정치 시스템을 어지럽히고, 오히려 조선 정치의 봉건성과 난맥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뿌리 깊게 만든 요인이 된 것이다. 조선 말 이 당시 조선이 변화를 받아들이기는 커냥 안으로 곪아가고 썩어가는 것을 가속화하게 만든 것에 정순왕후나 순원왕후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던 조선에서 네 대비들의 정치적 존재감이 두드려졌던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전면에 나서게 된 상황 자체가 정국이 불안정한 시기였고, 그들이 최고 권력자로 부상한 뒤 취한 조치나 결과를 보자면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정치적인 퇴행을 불러들였다는 비판의 소지가 다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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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비를 잃고 아들 위에 군림한 조선 최고의 여성 권력자들, 네 명의 여인들의 치열했던 삶을 마주하면서 더 조선이라는 나라를 좀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영화 <역린>에서 정조와 힘의 대결을 펼치는 젊은 대왕대비 정순왕후와의 힘겨루기를 보면서 서로 정치판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기 위하여 펼치는 암투속에서 늘 불안함에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했던 젊은 왕의 두려움과 불안함에 맞서 힘을 키우는 왕의 노력을 잘 보았다.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어느 누구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왕 위에서 군림하며 왕을 들었다 놨다 그야말로 왕 보다 더한 힘을 가진 조선 최고 여성 권력자로서 그녀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얽힌 역사의 수레바퀴를 따라가며 좀더 조선이라는 나라의 동맥을 보는 기회가 되어 재밌는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은 조선 왕조 네 명의 대비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 최초의 대비 정희왕후 윤씨와 예종, 인수대비 한씨와 성종, 정순왕후 김씨와 정조, 순원왕후 김씨와 헌종에 대한 이야기인데 지아비를 잃고 대비의 자리에 앉은 할머니 혹은 어머니의 말을 효의 나라에서 왕은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비들이 뒷방 늙은이로 앉아 있기 보다는 누구보다도 더 정치를 잘 알고 권력을 쥐고 휘두르며 막강한 힘을 발휘 했다는 것이다.자신의 아들이 죽음에 이르렀어도 그 죽음보다도 다음 왕이 누가 될지에 더 관심을 보이며 앞으로의 행보에 아들의 죽음은 뒷전이었던 정희왕후,그녀는 조선 최초의 대비면서도 언니의 혼사를 가로 채어 자신이 왕비에 오를 만큼 어린시절부터 그녀의 남다른 기질이 엿보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양대군이 크게 부각되어 정희왕후 윤씨의 이야기가 가려졌다면 이 책에서는 수양대군보다 어쩌면 그녀가 더 권력에 우세하지 않았을까.아들 예종이 죽은 날 다음 왕을 거론하며 아들의 죽음은 뒷전으로 두었던 정희왕후 윤씨,예종의 갑작스런 의문사는 혹은 어머니 윤씨의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아들의 상태를 알면서도 일이 이 지경에 이를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윤씨는 대체 어떤 어머니였을까. 아무래도 보통 어머니는 아니었던 것 같다.윤씨가 하나 남은 아들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며 신경 썼던 것은 친정 가문과 정치적 동지였던 훈구 공신 세력들의 안녕과 번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종도 윤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때문에 예종은 임금으로서 자신이 추진하고 싶은 정책을 가로막는 어머니 윤씨에게 자신의 질병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지도 않고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 의경세자가 열아홉에 죽었을 때 한씨의 나이는 스물이었다고 한다. 어린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남편 없는 모진 세월을 홀로 이겨내야만 했다. 궁 밖에서의 12년의 세월은 그녀에겐 혹독한 인고의 세월이었을 것이다.그런 그녀가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르고 그동안 날개를 펴지 못했던 한씨의 야망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도 정치 간섭을 할 수 있다는 정당한 근거를 를 역사적 사실에서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여성정치가로 아들을 왕으로 만든 어머니로 늘 당당했다는 것이다.그런 그녀에게 한가지 흠이란 며느리를 폐하고 사사시킨 행위로 손자 연산군에 의해 불운한 인생으로 마감을 했다는 것은 인과응보일까.
15세에 66세의 영조의 두 번째 왕비가 된 정순,우리가 영화 <역린>에서 만났던 정조와 힘겨루기를 한 정순왕후 김씨,자신의 친정세력을 지켜내기 위하여 정조의 대립 관계를 펼쳤던 김씨,그녀의 수렴청정은 순원왕후 김씨에게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그녀의 힘이 정조보다 약하여 정조가 의문사를 당하지 않고 살았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그런면에서 정조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조선시대 정조의 죽음과 현재 2010년에 발생한 수은중독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 사람의 정조가 종기 치료를 하기 위해 실시한 '연훈방 요법' 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예나 지금이나 중금속 중독은 그야말로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례할 수 있었는데 연훈방 요법을 실시한 그 배경에 김씨의 입김은 작용하지 않았을까. 김씨가 정치적으로 서기 위해서는 정조라는 거추장스런 인물이 없어야만 했다.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던 정순왕후 김씨와 정조,정조의 죽음으로 인해 수렴청정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기도 하지만 영조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던 그녀가 정치 한복판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뒷방 늙은이로 있기 보다는 그녀만의 행동을 했을 것이다.
조선 최고의 여성 권력자였던 네 명의 대비들은 뒷방 늙은이로 있기 보다는 누구보다도 정치의 한복판에서 쥐락펴락하면서 정치판을 뒤흔들었다.비록 글을 몰라도 어린 나이부터 정치판에서 습득을 하였기에 더 정치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녀들의 정치 여정과 여자로 어머니로의 삶의 여정은 그야말로 역경과 고난의 삶이지만 누군가의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정치가로 우뚝 서서 호령을 했다는 것이다.친정이 살고 자신이 사는 길이라면 가교가 되어 어느 세력이나 손을 잡고 자신의 힘을 펼쳤던 여인들,때론 그녀들에 의해 왕이 바뀌고 세력이 바뀌고 정치 판도가 바뀌는 그 속에서도 결코 나약한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줄 알았던 여성 정치인의 삶은 파란만장하지만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고 역사라는 것을.역사책을 읽다보면 왕이나 대비나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이 행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안쓰럽고 씁쓸하다.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끌어 내려야만 내가 올라갈 수 있고 최고의 자리에 있는 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했던 그 치열했던 삶이 혹은 권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하지만 네 명의 여성 정치가는 여성으로 당당하게 남성의 힘에 맞섰다는 것이다.지금 현재에도 여성들의 힘이 더 커져가고 있다고 한편에서는 말하고 있는데 남성들이 가지지 못한 여성만의 특성이 조선시대 정치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음을 그리고 지금 그대 여자라는 나약함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여성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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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대비라는 말만 들어도 섬뜩할만한 기억을 남겨준 역사드라마 <이산>이 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정순대비는 참으로 교활하면서도 포악하기 그지 없는 노른 벽파의 수장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우며 정조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었다. 16에 아버지벌되는 사람에게 시집오면서 궁으로 들어온 정순대비는 겉으로는 평화롭고 별 일 일어날것 같지 않은 궁궐생활을 시작하지만 곧 세력의 거대한 벽앞에서 자기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깨닫게 된다. 그 드라마에서 아주 강하게 자리잡은 것은 사도세자를 없애는데 총지휘를 했다는 것, 그리고 정조를 살해하기 위해 무수히 공들였다는 것, 말 그대로 정조가 즉위한 후 대왕대비가 되었음에도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서 최후 발악을 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왜 그랬을까? 그렇게까지 했어야 할 이유? 그냥 대왕대비로 궁궐에 어른이 되어 그 대접 받으며 조용히 지내도 충분히 오래 살았을텐데 하는 의문점들이 든다. 대비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을까. 살아남기 위해서 살벌한 궁궐의 암투속을 뚫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얼마나 발악했을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무서운 여자들이다. 단지 그냥 무서운 여자들이 아니다. 한 집단을 이끌 정도의 리더십과 뛰어난 순발력, 포웅력, 재치가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가능했겠는가? 말 그대로 대비는 뒷방을 지키는 늙은이가 아니었다. 지아비를 잃고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아들 위에 군림한 조선 최고의 여성 권력자들,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정치 역정을 사료를 통해 생생하게 복원된 최초의 역사서, 이 책은 그러했던 대비들의 이야기를 우리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아들 예종이 죽도록 방치한 비정한 어머니 정희왕후, 성종을 즉위하게 만들고 성종이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던 인수대비, 법적 아들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법적 손자인 정조까지 죽게 한 노른 벽하의 수장 정순왕후, 손자 헌종을 수렴청정하고 헌종을 사망하게 만든 후 바로 철종까지 수렴청정하면서 조선 후기 안동 김씨 60년 세도정치의 문을 연 순원왕후, 이들 모두가 권력 투쟁의 한복판에서 일생을 보냈다. 이들은 오아세자빈이나 왕비를 지나 대비가 되는 과정에서 일찌감치 정치판에 입문했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현장에서 학습한 것이다.그리고 각 정치 세력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자신과 자신의 친정 가문이 살아남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알고 있었고 고민했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이다. 단순한 권력싸움에 휘말린 꼭두각시가 아닌 대리권력을 행사한 조종당한 한낮 뒷방 여자가 아닌 세상을 주름잡고 당당하게 정치에 입문하여 자신의 터를 닦아나간 최고의 여성 권력자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록하고 승자만을 내세운다. 살아남아 승자가 되어 내가 쓰고싶은 대로 써갈긴것이 오늘 날 우리가 기억하는 지난날의 역사다. 그들도 그들만의 논리가 존재했을 터, 약자의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 그들을 나쁘게 바라보는 편견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서 버릴까 한다. 역사서는 늘 이렇듯 신선한 충격으로 그저 뭣 모르고 웃고 떠들며 때로는 슬픔에잠겨 드라마속에서 역사를 찾아 헤메던 나를 구원해주고 나를 일깨워준다. 나도 역사의 일부분에서 살았었더라면 그때 나는 어디서 무었을 하며 살았을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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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의 여자, 대비
여차하면, ‘왕을 죽여라.’ ‘왕을 바꿔라’가 아니고, 왕을 죽인다. 아 이 얼마나 섬뜩한 말인가? 이 말은 왕의 할머니 입에서 나온 말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죽인다고 말하지 않아도 죽이는 것과 다름 없다. 최근 정조의 암살을 그린 역린 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화제라 되었었다. 영화는 당이 서로 다른 손자 임금과 할머니의 대결 구도로 그려졌다. 물론 영화에서는 정조가 이긴 걸로 되었다. 하지만, 역사의 저 후반부 끝까지 가보면, 최후의 승자는 정조가 아닌, 할머니 정순왕후였다. 정조 사후 5년을 더 사는 동안, 정조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다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세상을 욺직이는 건 왕이지만, 왕을 움직이는 건, 역시 여인이었던가? 가깝게는 왕과 한 이불을 덥고 자며 살을 섞는 중전, 그 중전과 대립각을 세우면 왕을 좌지우지하는 대비, 바로 왕의 어머니, 그리고 왕의 할머니까지 살아 있다면, 왕노릇도 이 보다 더 힘들수는 없을 것이다. 여인의 정치참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예컨대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에서만 보더라도 이 말을 의미를 충분히 증명해 낼 수 있다. 암탉은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과연 참말일까? 암탉도 울기 나름일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여왕이 나라를 다스렸던 시대가 있었다. 바로 신라시대에는 3명의 여왕이 나라를 다스린 바 있다. 물론 잘 다스린 왕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왕도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영국의 경우도 엘리자베스 1세의 경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유럽의 제해권을 장악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암탉이 울어 집안이 망하지 않은 대표적인 경우이다.
오래전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서 장금이를 조선 최초로 여성 어의에 앉히려는 중종의 확고함은 대신 그 어느 누구도 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중종도 어찌할 수 없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였다. 그리고 여인천하라는 드라마에서도 조선의 권력 최정점에는 왕이 아닌, 대비가 있었다. 중종사후, 인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곧 죽고 그의 동생이 보위에 올라 명종이 되는데, 명종 치세에는 왕권을 능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이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중종의 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였다. 이보다 앞서 태종 이방원의 처도 남자 못지 않은 여장부였다. 1차 왕자의 난 때 머뭇거리는 이방원에게 갑주를 직접 입혀준 여인이 바로 이방원의 처였다고 한다. 1차2차 왕자의 난을 치르고 나서 이방원은 조선의 왕이 되었고, 그의 처 또한 왕비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조선은 여인들의 천하이기도 하였다. 왕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휘두른 여인이 제법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인들은 진정 철의 여인들로 모두 다 하나같이 조선을 좌지락우지락 하며 한 세상을 풍미했던 여걸들이었다. 조선 최초의 대비, 정희왕후, 왕을 정할 수 있었던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있던 여인, 인수대비, 애비 없는 자식을 기어코 왕으로 만든 위대한 여인이자 성종의 모후, 15살 꽃다운 나이에 66세 노인인 영조에게 시집 간 정순왕후, 부부간의 즐거움 보다는 권력을 택한 여인 그리고 조선이 멸망에 이른 궁극적인 원인인 세도정치의 시대를 열였던 안동김씨가의 순원왕후 까지 이 책에서는 네 명의 대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선선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왕을 주목하고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저자가 여성이라서 그런지 조선시대 여성, 권력의 정점에 선 대비에 대해 주목하였다. 조선은 분명 남성 중심의 사회였는데, 그 권력 속 깊숙한 곳에 여성이 있었다. 왕보다 낮으면서 왕보다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변고가 생겼을 때는 왕의 자리를 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하여 대비, 즉 왕의 어머니와 할머니이다. 왕을 움직인 여인들, 혹은 왕과 대결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대비, 왕 위의 여자>는 아주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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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왕 위의 여자 인문서원 김수지 지음
여자로써 최고의 권력의 자리 대비, 아이러니 하게 남편인 왕이 죽은 뒤에서야 정치적으로 전면 개입할수 있었다. 조선시대 왕권과 신권이 강렬하게 부딪칠때 태풍의 핵으로 대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들 예종이 죽도록 방치한 비정한 어머니 정희왕후 윤씨, 예종이 개혁을 시도 하려 하지만 때때마다 막아서는 윤씨이다. 예종이 죽은후에도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다음의 왕 성종을 지목했다. 예종 사후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은데 피부의 변색이 있었는데도 아팠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실록의 기록도 미미하다. 단종의 미안한 마음때문인지 단종의 누나인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를 거두어 기른다. 윤씨는 내세에 자신이 지옥불에 빠질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세금을 탕감하거나 내전에 불상을 들여 놓고 치성을 들었다고 한다. 계유정난의 사육신들의 가족들을 방면도 했다. 이것으로 과연 면죄부가 될까 궁금해진다. 세조의 비로 세상에 남부러울것 없이 세상의 한획을 그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성종은 지아비를 먼저 보내고 홀로 보내는 여인 셋을 상전을 모셔야 했다. 성종의 모 인수대비 한씨는 세조의 며느리로 남편이 자신이 임신중에 19살 나이로 죽었다. 이것을 빌미로 성종을 휘어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나이 열일곱에 동궁를 모셨는데, 4년 사이에 아침에는 양전을 모시고 저물어서야 궁에 들어오니 일찍이 하루도 온전하게 우리 왕을 모시지 못하였으며, 때마침 우리 왕이 편치 않으시어서 다른 곳에서 거처를 옮겨셨는데, 내가 시질(병간호)을 하고 싶었으나 주상을 회임하였으므로, 슬픔을 어이 다 말할수 있으랴!....' (성종실록) 별다른 힘이 없었던 한씨는 자신의 윗대의 끈으로 명나라 친정 고모 공신부인 한씨를 통해 힘을 얻어 낸다. 그 후 명나라의 억지스러운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조정의 큰 골치덩어리가 되었다. '내훈' 은 한씨가 성종 6년에 여성을 위한 수신 교양서이다. 유교적 부녀자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고전을 엮을 것이지만 무조건 남성에게 순종적으로 따르기만 한다는 책도 아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아는것도 많다는 뜻이다. 한씨는 글도 알고 책도 많이 읽은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빠른 머리회전이 있을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영조의 두번에 15살 어린 색시 정순왕후 김씨 이다. 영조는 혈통은 있지만 가난한 집안의 딸이 새 왕비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대로 전개가 되지 않았다. 드라마 이산에서 보아왔던 인물이라서 일까 제일 이해하기 쉬운 인물이었다. 김씨는 결혼후 3년만에 사도세자를 죽인다. 정조가 있을 때는 쥐죽은듯 있다가 정조의 죽음이후에는 순조를 수렴청정하기 이르렀다. 정조의 병에도 경면주사라른 것을 태워 수은 중독에 이르게 했다고 할수 있다. 제대로 된 환기가 정조를 죽게 만든 것이다. 아쉽다. 또 아쉽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필요없지만 만약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김씨의 시대의 막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순왕후 김씨는 자신의 친정가문, 노론 벽파 정권의 공고한 집권을 위해 정치 전면에 나서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핏줄 하나 없는 구중궁궐속의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서 얼만 많은 피가 필요 했을까 생각해 본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 김씨. 정조의 사람보는 안목이 무척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김조순의 딸로써 몸 맞추기 전술로 김씨는 대궐의 안주인이 된다. 안동김씨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 김씨는 순조가 죽고 난후 손자인 헌종(8세)을 즉위시켰다. 당연히 전례에 따라 수렴청정을 행했다. 그 후 철종까지 수렴청정을 하였으니 안동김씨 일가의 60년 행복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강화도령 이원범이 철종이 된사연은 가장 어리고 미혼이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둔것이다. 헌종의 죽음에도 의혹은 넘쳐난다. 대내(대비 김씨)에서 입진했다. 김씨가 주는 약을 먹고 있다고 실록에 쓰여 있다. 내의원이 아닌 대내에서 약을 먹었다는 것만으로 의혹을 살만하지만 22살의 헌종이 하루에만 죽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할수 없다. 의관들의 책임을 묻는 것조차 없었다는 것은 김씨가 손을 썼다는 것을 알수 있다. 또 철종또한 안동김씨 사위로 만들어 버린다.
여자로 태어나 아버지말을 듣다가 결혼후 남편말에 순종하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말을 듣는다고 했던가 그런데 조선의 대비를 보면은 딸로 태어나 세자빈, 그리고 왕비, 그리고 대비를 거쳐 최고의 권력을 움켜줄수 있었다. 왕비의 재산또한 개인적으로 관리할수 있으니 뒷돈 대기도 좋았을 것이면 세금또한 없다. 그러니 힘이 있을수 밖에 없다. 몇십년을 기다리고 있으며 지렁이에서 용이 될수 있었던 것이다. 대비 그녀들은 진정 행복했을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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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이어온 조선의 역사이야기는 거의 왕에 관한 역사라 할수 있을 정도로 편향된 점이 없지 않다. 한때 천편일률적으로 역사책 내용이 비슷했지만 요즘 시중에 나오는 역사책은 다양한 연구가 실시 되고 있음을 느낄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시각의 역사를 다룬 내용을 재미있 게 읽을수가 있다. 사극을 보면 왕과 대비의 갈등이 그려지는 것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드라마 전개상 그냥 짜넣은 대본의 일부 인줄만 알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조선와 중심의 역사를 읽었고 알고만 있었던 본인이 얼마 나 무지 했었나를 느낄수 있었다.
[대비, 왕 위의 여자]의 저자의 이력은 약간 독특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감춰진 광주사태 의 진실을 접하고는 진정한 역사의 올바른 배움을 뒤늦게 시작한 분이셨다. 많은 공부를 통해 남성 중심적 이고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인식의 다른 시각을 가질수 있게 되었고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조선통치에 관한 영향을 연구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며 그 결과물이 이 책을 통해 처음 세상에 나왔다. 이책을 읽어보니 여느 역사책과는 다른 색다른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조선 왕을 위주로 한 역사서 가 대부분인 현 시점에서 대비와 왕과의 갈등은 미미하게 나오는데 대부분이다. 세도정치와 당파로 분류 된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역사관은 이제 그 사이에 왕과 대비의 세력다툼의 인식이 자리를 잡게 했다. 철저한 남성중심의 사회로만 알고 있었던 조선의 사회에서도 남편이 죽고 자식이 결혼을 해도 국가에 세금을 내야하는 호주로서의 자리는 철저하게 여성이 이름을 올린것만도 10%가 넘었다니 내가 상 상했던것 이상의 사회였음을 알수 있었다.
책은 조선왕조에서 대표적인 대비의 수렴청정을 한 네명을 소개한다. 정희왕후 윤씨와 예종, 인수대비 한씨와 성종, 정순왕후 김씨와 정조, 순원왕후 김씨와 헌종.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내용을 보면 대비의 수렴정정이 왕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할머니로서의 그런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의 관계가 아니라 그것이 악용이 되어 왕과 대비의 권력투쟁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보아왔던 드라마의 전개상 대비와의 갈등이 조선시대 현실정치속에서는 더욱 심하고 위험한 관계 였다는 것을 이책을 통해 느낄수 있었다. 좋은 관계로 협력자의 관계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은 유교를 법치로 내세우는 대비를 절대로 무시할수가 없음을 시대배경이 말해준다. 그 갈등사이에 역사의 정치적 발전은 개혁과 퇴보를 반복하며 이어져나아갔다. 또 세도정치란 단어의 뜻이 "세상의 도" 라는 의미에서 "세력싸움"의 의미로 변질이 되어 이 책을 읽어보는 독자라면 대비를 좋게 보기 힘들것 같다. 대비와의 권력싸움에서 세를 빼았긴 조선의 왕은 암살 당하는 운명을 맞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대비의 수렴청정은 그 다음 대비의 수렴청정 정치로 경험이 이어져 내려가 대비 친족의 세력 확산으 로 이어져 조선은 부정부패의 수렁에 빠지게 되고 조선후기엔 민란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저자의 대비와 왕의 갈등을 연구해 나온 이 역사서에 저자의 안타까움이 많이 묻어남을 느낄수가 있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수 없다지만, 정조가 그렇게 갑자기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그렇게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정순왕후 김씨의 열정적인 왕권 축소 의지가 결국 조선의 패망을 재촉한 셈이 된 것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다는 말을 역사책을 읽을때마다 느낄수 있다. 이것은 시대가 바뀌어 지금도 되풀이 되는 권세를 등에 업고 일어나는 눈쌀을 찌뿌리게 하는 일들이 줄어들지 않는 현시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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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정치의 최고의 권력자는 의심할 것도 없이 왕이다. 왕좌에 앉아 있는 자 그만이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며 좌지우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 위에 또 하나의 권력자가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대비의 지위에 앉는 순간 국왕의 권력은 또 하나의 국왕인 대비를 통하여 나오게 된다. 두 권력은 끊임없이 충돌하여 조정을 뒤흔들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면의 세상이 만천하에 공개되므로 조선 역사상 이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대비들이 또 있을까 한다. 책속의 인물 중 가장 주목하고 싶은 인물은 정순황후 김씨와 정조라고 생각된다. 정조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군주이다.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노론에 의하여 비극적인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 상황을 목도한 인물이다. 정순왕후는 15세의 나이에 66세의 영조의 두 번째 왕비가 된 인물이다. 정순왕후는 영조 사후 정조에 대하여 지속적인 권력을 휘두른 인물이다. 평생 궁궐에서 지낸 정순왕후는 권력의 속성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친정을 향한 권력 부침이 심한 인물이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정조의 죽음이다. 정조가 죽임을 당할 때의 기록과 21세기 현대 의학적 근거를 통하여 치밀하게 파헤친 점은 놀랄만한 성과이다. 일부에서 정조의 죽음은 독살(타살)이 아닌 병환으로 인한 급사라고 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여 타살임이 확실해진 것이다. 현재 상영 중인 역린의 한 장면이 불현 듯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치밀한 구성과 철저한 고증으로 대비라는 권력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독자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길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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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치의 중심에 여자들이 있었다. 사실 사극을 보더라도, 여자들은 조용히 애낳고 투기만 부리는 것은 아니였다. 구중궁궐 안에서 그녀들은 정치적 권력을 탐하고 남자들 사이에서도 정치의 중심에서 움직였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 까 한다. 그녀들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되고, 그녀의 지아비가 왕이었으니. 그녀들은 어떻게 정치에 개입하였고, 조선을 주물렀는지, 조선시대 대비 4명에 대해서 샅샅들이 소개하는 책이었다.
그녀들은 여장부였다. 대비라는 자리가 가녀린 그녀들을 독단적이고, 무자비한 대비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녀들 자체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녀들은 조용히 자신의 시대가 오기를 기다렸으며, 그것을 이뤄냈고 때론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르기도 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슬퍼할 겨를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평범한 여인들이 아니었던 그녀들은 그녀들이기에 그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왕조 대비 4명은 조선 최초의 대비였던, 50세에 대비자리에 올랐던 정희왕후 윤씨를 시작으로 해서 인수대비 한씨, 정순왕후 김씨, 순원왕후 김씨 를 이야기한다. 냉정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나라도 내 친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내가 그 상황의 대비라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을 꺼낼 수는 없었겠으나,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지어 뚜렷하게 밝혀지지 못한 왕인 아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 어설프게 무마한 정황을 보면서, 그 죽음의 진실은 무엇인가. 정녕 대비가 관계된 일이었을까. 라는 의심은 끝내 풀지 못했지만, 여러 정황들을 들어서, 저자는 손가락을 그 누구로 가리키고 있다.
정치가 휘몰아치는 그곳에서 막강한 권력을 뒤에서 펼친 그녀들이었지만, 그 속내는 상당히 외롭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신선한 점은 대비를 중심으로 정치의 권력을 뽑아내었다는 점이다. 정치의 한복판에 뒷방 늙은이로서가 아니라, 정치를 주물렀던 대비들의 이야기.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속에서 빠짐없이, 끼어 있을 것이다. 그 사서 속의 이야기들이 그녀들의 기분을 만족시켜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윤씨는 한명회를 비롯한 훈구 공신 세력들이 내세운 허수아비 얼굴 마담이 아니었다. 아니 정치 역학 관계상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 볼 수 있다. 훈구 공신 세력들은 윤씨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이나 권세와 실익을 자기들만 독점하는 일들을 추진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국정의 최종 결정권자는 윤씨였고 윤씨의 권력욕은 누구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윤씨는 비록 글은 알지 못했지만 수렴청정으로 누리는 정치 권력의 달콤함을 최대한 만끽하고 있었다. 윤씨는 국정 전반을 관리하며 운영할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p.70)
성종이 모후의 말을 잘 들어서 세 발 달린 요괴 암탉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선정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씨는 소신을 굽힌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들을 왕으로 만든 어머니로서 언제나 당당했다. 그러나 며느리를 패하고 사사시킨 행위는 결국 분노한 손자 연산군에 의해 불운하게 인생을 마감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지나친 당당함의 응보일까. (p.147)
권력은 누군가를 살리고 죽일 수 있는 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 자체일 경우가 많다. 실제 내용보다는 과장된 페인트 모션, 즉 죽이는 게 아니라 죽일 수도 있다는 협박으로 상대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밀고 당기기 정치 행위의 기본이다. 이것이 정직함이나 원칙만으로 정치판에서 승부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번 당대의 패배자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p.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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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서태후' 등만 생각했지 조선에도 나라를 뒤흔들 권력의 힘을 틀어쥔 여인들이 있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왕권을 흔든 4명의 여인들은 정희왕후 윤씨, 인수대비 한씨, 정순왕후 김씨, 순원왕후 김씨 다. 여인천하. 여성의 인권이 고려, 신라 등에 비해 현저히 낮았던 조선에서 큰소리 치고 살았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졌다.
정희왕후 윤씨는 조선 최초의 대비였다. 그녀 이전에도 대비는 있었지만 조선 건국 이래 남편이 먼저 죽어 대비가 된 최초의 여인은 정희왕후란다. 그렇다면 앞선 대비들은 모두 남편보다 먼저 죽었다는 이야기인데......사극 속 정희왕후는 한결같이 어질고 착한 시어머니로 묘사되어 있었다. 간혹 정치적으로 강하게 묘사될 때조차도 권력지향적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윗전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대비 왕 위의 여자]에서 정희왕후는 세조를 도와 대궐로 들어온 당찬 여인으로 해석되어져 있는데 대권을 성취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권력을 충분히 누리다 간 복많은 여인의 모습 바로 그 것이었다.
반면에 제 것을 빼앗기고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다시 찾은 인수대비 한씨의 경우에는 jtbc사극에서 보여진 것처럼 기회를 만들고 위기를 극복하며 다져진 내공으로 아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갔던 경우다. 안방 규방에만 가두어 놓기에 그녀의 재능은 너무나 탁월했다. 정치 간섭에 대한 정당한 근거도 확보하면서 글에 능통하고 어학에 재주가 있는 만능 재주꾼으로 대궐의 실질적인 안주인 노릇을 장기간 해왔다. 아들 사후에도 그러했으나 손자대에 이르러 며느리를 사사한 과거가 들통나 불운한 죽음을 맞이하고만 인수대비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머릿 속에서.
아들을 살리고자 남편을 갖다 받친 것인지 친정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 남편을 배신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혜경궁 홍씨와 평생 원수처럼 상극이었던 정순왕후 김씨는 66세 영조에게 시집온 15세의 어린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야심은 입궐 후 하루가 달리 커져만 갔다. 사도 세자를 죽이고 정조를 죽이면서까지 권력을 탐했다. 원수같은 홍국영과도 손을 맞잡을만큼 비즈니스적 사고가 탁월했으며 정치판에서 뼈를 굵혀온 노련한 정치인들조차 치마폭에서 쥐락펴락했으니 실로 조선의 '미실'처럼 여겨지는 여인이기도 했다. 정조의 죽음이 아까우면 아까울수록 그녀의 존재가 미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그녀가 정적이 아니라 정조의 마음맞는 짝으로 운명지어졌었다면 조선은 좀 더 굳건한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정조의 며느리가 안동김씨 가문의 60년 독재를 구축하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가문에서 그녀는 든든한 보험같은 딸이었을 것이다. 친정 가문을 살리기 위해 나라를 흔든 이 여인은 입궁까지 장장 4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했다. 인수대비에 비해서는 그 기다림이 미미할지 모르나 첫 스타트가 위태로웠던 일이 그녀에게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살아남아야 하는 당위성을 전하고 그녀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정치는 복잡미묘한 것이라 별로 관심을 두며 살지 말아야지 하고 있지만 과거 역사 속 정치를 보면 지금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잘 하는 정치란 드물다. 칭찬받는 역사가 드문 것처럼. 하지만 남자들만의 링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 의외로 그들을 장기말로 두었던 여인들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어 놀랄 때가 있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