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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한 논픽션 지금까지 진화론을 "사실"이라고 배웠고 사소한 오류는 있지만 확실한 이론이라고 믿고 있었다. 중력이 존재하는 것처럼 진화도 일어났고 그 끝에 우리 인간이 있다. 아름다운 무지개를 스펙트럼으로 분석하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 하나 하나가 진화를 보여준다. 우주의 시작부터 우리몸 모든 기관이 반박할 수 없는 진화의 증거다. 이 책 [ 신들을 위한 여름 ]을 읽기 전에는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보수, 꼴통, 편협한 일신론자라고 치부했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 뭔가 복잡하고 미묘하게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그렇다고 갑자기 진화가 사실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창조론으로 돌아 선 것은 아니다. 이긴자도 없고 진자도 없는 이상한 재판이었다. 아니, 적도 아군도 없는 이상한 싸움이다. 종교와 과학을 둘러싼 논쟁 자체가 그런 것인가? 갑자기 싸움이란게 무의미해 보이고 허무하다. 2. 이상하지만 타당한 법 20세기가 되면서 진화의 과학적 증거가 축적되고 인류 기원에 대한 다윈의 시각이 힘을 얻게 되었다. 과학의 발전은 반대 급부로 1920년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봉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테네시주에서 그 힘을 보여주었다. 바이블 벨트라고 불리는 미국 기독교의 남부 핵심지역중 하나인 테네시주는 바이블 벨트라고 불리는 명성에 걸맞게 기독교의 세력이 강력한 곳이었다. 1925년 미국 테네시주에서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불법으로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지금의 시각으로는 물론 그 당시에도 말도 되지 않는 법안이었지만 민주적이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통과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얼핏 들으면 합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국민이 결정한다는 이 명제에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누가 반대를 할 수 있을까? 냉소와 무관심이 엇갈렸지만 테네시주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민주주의의 기본 문제 해결방법인 "다수결에 원리"로 통과시킨 법이다. 대부분의 테네시 주민들도 이 법에 동의하였다. 민주주절차에 의해 만들어졌고 대다수 시민이 동의하는 법은 전지전능한가? 3. 이상한 재판 반진화론법을 어긴 사람이 나타났다.기소가 뒤따르고 재판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목적도 불순하고 피고도, 원고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골 작은 마을을 재판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반진화론법을 이용하기로 했다. 동네에서 잡담하던 마을 유지들이 재판을 "유치"하기로 결정한다. 적당한 학교 선생님을 피고로 만들기로 하고 지역 검사가 기소하기로 "합의"한다. 선생님도 자발적으로 재판에 협력하고 증거를 손수 만들고 증인을 뽑는다. 재판을 열기 위해 사건을 일으킨다.
4. 이상한 선수들 피고측과 원고측 변호사들이 구성되었다. 재판을 위해 편을 나누고 보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상대편으로 만났지만 얼마전까지 이들은 적이 아니라 동지였다. 마치 축구 클럽팀 선수들이 각자 국가대표로 뛰면서 다시 만난 것처럼 흩어졌다 모였다. 소수의 권리와 반전운동을 위해 싸우던 변호사들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던 정치가들이 진화론과 창조론의 재판에서 갈라섰다. 싸움은 벌어졌지만 이기기 위한 싸움은 아니었다.
5. 뻔한 판결 지역주민들 중에서 뽑힌 배심원이 유무죄를 결정하는 미국 재판의 특성상 결말은 미리 나와 있었다. 주민 절대 다수가 기독교 신자이며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1925년 미국 남부지역에서 진화론을 가르친 교사는 유죄판결을 받을 수 밖에. 하지만 교사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고 재판은 흐지부지 끝이 나버렸다. 흥행은 성공했지만 누구도 이기지는 못했다. 6. 애매한 감상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위대한 우리의 진화론자들이 저 보수,꼴통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물리치는 결말을 기대했다. 적어도 진화론의 타당성이 증명되는 그런 재판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난감한 질문이 생겼다. 진화론과 창조론과는 아무 관련없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 대한 의문이었다.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에 의해 비민주적인 법 아래에서 고통을 겪었다. 비민주적인 법이기에 저항권이 받아들여졌고 불법적인 저항도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다. 불법이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불법이며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이 복잡한 문제의 원인은 경제다. 1920년대 세계1차대전이 끝나고 서서히 불황의 그림자가 다가온다. 부동산 투기붐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다. 가진자는 더 가지게 디고 못 가진자는 박탈감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불황은 공포를 가져다준다. 공포는 움츠리게 만들고 사람들을 보수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경제,사회적으로 낙담한 분위기에서 미국은 원리주의자들의 득세를 경험했다. 20세기 말 부터 현재까지 미국은 다시 근본주의라고 불리는 원리주의의 부활을 겪고 있다. 역시 경제가 문제다. 하락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가 근본주의를 100년만에 다시 불러 왔다. 원리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존재했지만 불황을 틈타 그 힘이 강력해지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100년 전의 원리주의자들은 평화를 주장했지만 지금의 근본주의자들은 성전을 불사한다. 불황은 이래 저래 우리에게는 불안 요소이다. *1 100년 전 재판에 나선 선수들은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생각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슷한 성향이었다.평화를 사랑하고 반전주의였고 친 노동자성향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치,경제,사회,종교 모든면에서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다는 것은 왜인가? *2 20세기 말에 교육과정을 마친 나에게 20세기는 성장의 시기였으며 여전히 친숙한 시대다. 19**으로 표시하는 숫자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 20세기라고 하는 시대는 거의 100년 전이다.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20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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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미국 테네시주의 작은 마을 데이턴에서는 세기의 재판이 열렸다. 이른바 ‘스콥스 재판’. ‘원숭이 재판’이라고도 불렸다. 고등학교 교사 스콥스는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말라는 주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이에 따라 반진화론자와 진화론자 사이에 물러설 수 없는 법정 대결이 펼쳐졌다. 이 재판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책(주로 진화에 대한 책)에서 다루면서 반진화론자의 어처구니없는 과학 지식과 완고한 성서직역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결국은 진화론의 승리로 귀결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내가 읽고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억하고 있는 것, 알고 있는 것은 그 정도다.
그런데 그 재판의 맥락과 상황, 그리고 결과는 내가 알고 있는 것, 많은 책들이 간략히 알려주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우선 재판이 벌어지게 된 맥락인데, 그것은 미국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그 세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원리주의자들은 성서에 기초한 교육의 위기를 보았다. 그리고 진화론이 우생학과 연관되어 있다는 데 경계심을 가졌다(우생학은 20세기 과학의 씻을 수 없는 오욕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진화론법’을 제정을 추진했고(학교에서 진화론, 특히 다윈의 자연선택론, 또 특히 인간의 진화를 가르치면 안된다는 법), 그 성과가 최초로 나타난 곳이 바로 테네시주였다. 스콥스 재판이 벌어지기 불과 1, 2년 전의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 근대주의자(이 책 《신들을 위한 여름》에서는 이 재판을 둘러싼 양쪽을 원리주의자와 근대주의자로 부른다)들은 들고 일어난다. 그런데 이 반진화론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양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 문제를 민주주의의 원리, 특히 개인의 자유의 문제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반진화론법에 대해 적극 대응하기로 한다.
그러면 스콥스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인가? 우선 그는 과학교사이긴 했지만 생물 교사가 아니었다. 그가 인류진화에 대해서 수업 시간에 언급한 것은 맞지만, 진화론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근대주의자들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었다. 소송을 성립하기 위해서 수소문했고, 적당한 인물로 낙점되었으며, 의뢰를 했고 스콥스가 응했던 것이다(그 법을 위반했다고 감옥에 들어가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재판 결과 벌금이 부과되었지만, 그 벌금은 오히려 원리주의자의 대표격인 브라이언이 냈다). 그래서 스콥스는 이 재판에서 단순히 매개자의 역할이었을 뿐, 순교자나 희생양은 아니었다.
재판은 주로 원리주의자의 대표 브라이언(그는 노회한 정치가였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선거과 근대주의자의 대표 대로(그는 가장 유명한 변호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의 싸움으로 벌어진다. 그 더운 여름날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법원 밖 잔디밭으로까지 옮겨 벌어진 재판에서 다양한 공격과 방어가 이뤄졌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재판 막바지에 대로가 브라이언을 증인으로 세워 그를 모욕 준 사건이었다. 브라이언의 일천한 과학 상식과 성서직역주의와 모순되는 생각을 끄집어 냈다. 이것 때문에 대로는 비난을 받기도 했고, 재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라이언의 갑자기 사망한 것이 이것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사실은 별로 관계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진화론자의 승리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는 원고 측, 즉 원리주의자들의 승리였다. 판사 자체가 원래부터 생각이 기울어진 채로 재판에 임했다. 사실 재판의 결과는 원리주의자들에게 중요했지, 근대주의자들에겐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겼으면 좋았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펼치고, 원리주의자들의 비민주성을 까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재판은 서로가 승리했다고 주장하면서 끝이 났고, 떠들썩했던 데이턴은 원래의 조용한 마을로 돌아갔다. 그 이후 (이후에 몇몇 책에서 기술된 것과는 달리) 원리주의자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반진화론은 몇몇 남부의 주에서 제정되어 통과되었다. 물론 1950년대, 1960년를 거치면서 상황은 변해오긴 했지만, 미국의 국민들은 아직도 신의 존재를 믿는 비율이 매우 높으며,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의 비율에 세계 최고 수준이다(즉, 인간을 하느님의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40%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에는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과학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민주적인 것이고,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근대주의자들이 주장했고, 원리주의자들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창조론을 믿으며, 세금을 내는 학부모들이 원하는 바대로 학교에서는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른바 ‘지적설계’, 혹은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화론과 같은 비율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그리고 미국의 적지 않은 주에서 받아들여진다). 스티븐 제이 굴드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당시의 반진화론법에 대한 대응이 잘못되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과학적 사실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다보니 과학이 아닌 종교까지도 과학의 탈을 쓰고 인정해서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이 이뤄지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몇 년 전에 꽤 떠들썩한 활동을 펼쳤고 여전히 활동중인 ‘교진추(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는 매년 수능의 생명과학 문제에서 진화나 분류 문제에 대해 딴지를 걸고(입증되지 않은 것을 중요한 시험 문제로 낸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과학적 증거가 있음에도), 장관 후보로 지명된 국내 유수 공대의 교수가 청문회장에서 지구의 역사가 6000년 남짓 된다고 밝히는 실정이다. 과학에 눈감고, 종교적 도그마에 빠진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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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이야기.1925년 미국 테네시 주에서 있었던 실재 이야기에요. 1925년 3월 테네시주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의 교육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미국 남부는 20세기 중후반에도 어느 곳은 아주 보수적이던데요. 1920년대 미국은 과학이라고 하면 모든게 통했대요. 신문엔 매일 발명란이 있었을 정도. 그런 분위기에서 세태 영향을 받기 거부한 남부 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테네시 주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라는 법안을 만들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 버틀러 법을 법정으로 가져가서 논쟁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왜냐? 보수 남부를 반대하는 똘기 사람들이 종종 있지요. 그리하여 테네시주 그곳 몇 사람들이 모여 중 고교 체육 코치(스콥스)가 수업에서 고의로 진화론 이야기를 해서 기소 되었고 세기의 원숭이 재판이 시작되었어요.(실재는 이야기 안했다고 어느 단체에서 이것을 이슈화 하기 위해 미리 알렸다고) 양쪽 변호사와 검사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어요. 변호인 측은 성경이 과학의 영역에 들어오면 안된다고 했고 검사측은 인간이 원숭이와 조상이 같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냐고 했답니다. 처음 그 사람들 예상보다 엄청나게 이 시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어요. 상업은 잘 되었어요. 기독교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이곳 상인들이 일부러 사건을 크게 만들었어요. 유럽과 일본으로 실시간 중계가 되고요. (우리 나라는 몰랐겠지요. 전 정말 이럴 때 같은 시기에 다른 곳과 떨어져서 잠든 것이 아파요. 일본 치하였지만 ) 이 사건의 하일라잇은 피고의 변호인이 검사를 증언대에서 질문한 거였어요. 카인은 어디서 신부를 얻었냐고 했어요. 브라이언은 .... 이러 저러해서 결국 진화론에 가벼운 유죄를 선고했어요. 표면적으로는 승리였지만 사실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패배였어요. 브라이언은 일주일 후에 죽었답니다. 이법은 1967년에야 폐지되는데 아직도 진화론과 창조론은 미국에 쟁점으로 남아있대요. 가장 과학이 발달한 곳에서 이 무슨 말일까? 성경은 성경대로 믿고 과학은 과학으로 받아들임이 서로 다른데... 미국의 일부 이런 사람들이 이해가 안돼요.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꾸민 대본이에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실재와는 조금 다르답니다. "사실 브라이언은 진화론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다. 그가 진화론의 교육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다원의 진화론이 니체나 스펜스(Herbert Spencer)의 추종자들에 의해 인종간의 불평등한 취급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무기로 사용할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니체의 초인사상은 타 인종에 비해 생래적으로 우수한 인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인종차별적 정서를 조장하고,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현상에 수용한 스펜스의 사회적 진화론(Social Darwinism)은 특정 사상, 이론, 종교가 자유경쟁을 통해 상대적으로 우수함이 입증된 후에 빠지게 될 아집과 독선의 위험을 수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차대전이 발발한 간접적인 원인도 진화론의 영향이라고 브라이언은 믿었던 것이다. 대로우는 Bryan을 성경의 전문가로 증언대에 올려 심문해서 브라이언은 구약성경의 자구와 현대과학 사이에 조화를 유지해야 하는 넌센스를 연출해 내었다. 그러나 판사는 브라이언의 증언 전체를 사건의 쟁점과 무관한 것이라며 배척했다. 종교적 히스테리, 언론의 해악, 미국의 정치사와 법조사에 우뚝 선 두 거장의 빛나는 법정논쟁, 그 본질에 자리 잡은 헌법 등등 기막힌 볼거리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할 숙제를 제공해 준다. " 두 주인공 같은 변호사 둘은 정말 골격이 큰 사람들입니다...책의 사진들이 좀 인쇄가 안좋군요. 그리고 꼭 그 시대 특히 여름 사진들은 햇빛등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나에게 참 어린 시절 부터 묘한 기분을 줍니다.
또 거기 현장에 헨리 루이스 멩켄 (H. L. Mencken)도 갔었다고요.이 사람은 아무것도 진지한 것 없는 냉혹한 사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리뷰를 지금 쓰는 이유가 100년전 미국에서 이런 논쟁이 이미 있었고 1910년대 부터 과학과 근대 지식을 배운 사람들은 성경 구절 대로 안믿었다고 합니다.그런데 지금 2020년에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어요. 저는 처음 봤어요. 그들 말이 증거가 어딨느냐며, 원숭이가 사람이 되다니...이런 19세기 말 20세기 초 말을 그대로 하더군요. 세상에~~놀랐어요. 과학자들도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종교와 과학 사실을 조화 시키는지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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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전쟁이라 불리던 스콥스 재판. (일명 원숭이 재판)
몇 년 전 온라인을 돌면서 봤던 어느 독자의 리뷰를 보고 궁금해서 구매한 책이다. 요즘에 어울리지 않는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재판이라는 호기심이 생기더라.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미국의 논란이 공립학교 생물 시간의 수업을 두고 싸움으로 이어졌다는데, 이게 1925년에 일어난 스콥스 재판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건, 90년 전의 이야기를 영화처럼 그려내어 마냥 무거워지기 쉬운 주제를 조금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이 묵직한 이야기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부담부터 느꼈으니까...
어느 독자의 말처럼, 참 웃긴 이 이야기를 무겁지만 재밌게 소화할 수 있다니, 나처럼 과학에 문외한이고 어렵게만 느끼는 독자에게 과학을 조금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흥미로우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될 주제의 재판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으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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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무더운 여름, 미국 남부 테네시 주에 있는 데이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재판이 열렸다. 보통 ‘스콥스 재판(Scopes trial)’이라고 부르는 이 재판의 피고인은 바로 스콥스라는 이름의 교사였다. 스콥스는 생물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됐다. 나중에 이 재판은 ‘원숭이 재판’이라는 묘한 별칭이 붙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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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번영을 위한 우발적인 사건. 세기의 재판으로 진화하다
신들을 위한 싸움. 에드워드. J. 라슨. 글항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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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하나는 400페이지에 달하는 신문 르뽀기사 읽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르포기사를 400페이지째 계속 읽고 있는 느낌은 매우 지루하다는 것. 물론 이 기사가 과거 미국에서 출간되었던 스콥스 재판에 관한 기록들 보다 훨씬 진실에 가깝게 객관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퓰리처상도 수상한 이유가 되었겠지만 너무나도 객관적으로 접근한 신문기사 스타일의 문체와 내용편집 때문에 매우 지루하다는 점은 필히 고려해야 한다. 만약 스콥스 재판에 관한 역사적인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도라면, 이 책만한 것은 없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스콥스 재판 이후, 후대에 신의 법정이라는 제목으로 연극과 영화가 제작되고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자들에 의해 씌여진 스콥스 재판 역사기록물들은 상당히 왜곡되었고, 이런 역사왜곡이 후대의 진화론대 반진화론의 싸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다고 이 책은 적시한다. 스콥스 재판은 광신도들에 의해 시작된 재판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근대론자 또는 불가지론자들에 의한 기획으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신의 법정 연극,영화에서 악랄한 근본주의자로 묘사되고 있는 브라이언은 성경직역주의자이긴 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노동계,진보계열에서 상당한 업적을 이루었던 개혁적인 정치인이었음 이 책은 부각시킨다. 즉 애초에 법을 어긴다고 해도 처벌조항은 없는 그저 상징적인 반진화론법으로 만들것을 주장했을 정도로 매우 이치에 밝고 현실적인 사람이었음을 밝혀준다. 어쨌든, 이 책은 이 책의 홍보문구 처럼 그렇게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재판기록은 분명 아니다. 기사형식으로 사건과 해설 위주의 기록문이라 박진감,흥미감이 떨어지는 이유도 있고 중세시대의 마녀사냥 재판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유죄 판결이 나도 그저 소액의 벌금만 물면 되는 그리 절박하지 않은 분위기도 한몫 했을 것이다. 차라리 약간의 픽션을 가미하더라도 법정드라마 식으로 재구성 했으면 훨씬 재밌는 책이 되었을 텐데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진화론대 반진화론자들의 깊이 있는 논리싸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각 진영의 변호인들이 재판때 변론했던 내용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몇문장만 요약해서 전달하고, 그에 따르는 당시의 분위기, 상황, 언론의 반응 묘사가 오히려 주를 이룬다. 박진감 넘치는 법정 변론 대결묘사는 그리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스콥스 재판을 둘러싼 미국의 역사를 잘 알게 해주고.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 같이 엄청나게 종교다원화되어 있는 국가의 국민은 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기독교라는 종교에 심하게 경도 되어있고, 이로 인한 갈등이 지역마다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미국인 10명중 9명이 신을 믿고, 4분의 3이 기적을 믿는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고 종교에서 매우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어쩌면 색다른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아랍권이 아닌, 미국,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제공하는 훈훈한 종교로부터의 자유로운 바람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스콥스 재판이 세기의 재판이라 마치 이 재판 이후 종교의 시대가 저물고, 과학의 시대가 온 것처럼 상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황은 더 복잡해진 미국사회를 이책은 말미에 보여준다. 앞에서 언급했던 신의 법정이라는 연극과 영화. 그리고 다소 역사를 왜곡해 서술한 다양한 스콥스 재판관련 저작물을 통해 분위기가 과학이 승리하는 듯한 분위기가 일시 형성되었지만, 오히려 근본주의 기독교 진영에서는 창조과학론이라는 진화론에 대비되는 유사과학을 통해 역전을 도모한다. 창조과학을 진화론과 동일 선상에서 교육해야한다는 새로운 법이 만들어 지고 10년 이상 유지되는 등. 엎치락 뒤치락하는 양상을 보이다가 지금은 거의 정치권의 대립마냥 진실과 진리는 별로 안중에 없고, 그저 우격다짐으로 서로 분리되어 자신의 것만 주장하는 미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분리주의가 성행하면서 근본주의 기독교는 자신들만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하여 왕성하게 세를 불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창조과학론의 영향은 우리나라에도 심하게 불어 닥쳐서 복음주의에 근거한 포항의 모대학을 설립하게 되는데 까지 이르렀고, 보수적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창조과학론 서적들이 꾸준하게 읽혀지고 자신들의 신앙을 공고히 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확실하게 드는 생각 한가지는 인류에게 진보라고 하는게 있다면, 그것은 종교는 오히려 진보의 발걸음을 부여잡고 태클거는 쪽으로 영향을 거의 미쳤고, 과학에 의한 인류의 이성과 계몽만이 진보의 발걸음에 힘을 보탠다는 사실이다. 물론 종교라고 해서 반드시 태클 거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클을 건다고 할때의 그 종교는 거의 근본주의 종교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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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콥스 재판의 역사적 의의를 되찾다!
1925년 테네시주의 데이턴에서는 쇠퇴해가는 마을의 앞날을 걱정하는 몇몇 인사가 모였다. 그들은 마을의 지명도를 높여 다시 한 번 발전의 원동력을 얻고자 했다. 그들의 바램과 책략이 시대적 정황과도 잘 맞물려 돌아간 결과, 데이턴에서는 그 해에 세기의 재판이 열릴 터였다. 그 유명한 '스콥스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스콥스 재판의 과정과 결과로 인해, 진화론과 창조론 두 적대적 세력 간의 평행선이 더욱 확연하게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후로도 두 세력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채 나란히 시대를 달리고 있다. 계속되는 전문적 지식의 증가로 인해 양측의 대립은 학문의 장에서 갈수록 첨예해지는 것 같다. 물론 모든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이 대세를 이룬지는 이미 오래다. 이 무더운 초여름에 잘 쓰여진 에드워드 라슨의 <신들을 위한 여름>을 통해 스콥스 재판을 들여다보니, 이틀 정도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었다! 게다가 오타도 눈에 띄지 않았고 번역도 매끄러워서 책 읽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저자가 안내해주는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통해 우리는 스콥스 재판이 열렸던 데이턴에서, 일대 격전이 치러졌음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원고와 피고는 자신의 삶을 걸고 맞섰다. 데이턴은 지적이고 종교적인 세계관의 전쟁터였다. 그곳에서 양측을 둘러싼 배후 세력도 자신들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이러한데도 스콥스 재판은 호사가들에 의해 풍자와 희화화의 대표적 소재거리로만 이용되어 온 측면이 있다. 너무 가벼운 취급을 당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이 중대한 사건을 하나의 역사적 에피소드로 여겨지게 만들었을까? <신들을 위한 여름>을 통해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양 측의 대표 주자격이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클래런스 대로라는 두 인사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전문적 식견을 지닌 이들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 시대의 유명인사였다. 브라이언과 대로는 청중들의 설득을 생명으로 삼았던 정치가와 변호사였다. 또한 그들은 청중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던 달변가였다. 그래서 다분히 상대를 감정적으로 대했고, 대중을 선동했으며, 자신들을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평판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소신으로 인해 이 재판에 참여했을 것이지만!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창조론을 옹호했던 브라이언은 재판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고 적혀 있다! 저자 에드워드 라슨은 과학과 신학, 학문과 종교, 정교 분리, 주의 제도와 법, 개인의 자유와 다수의 이익을 위한 통제 등 복잡한 개념이 얽혀 자칫 난해해질 수도 있는 스콥스 재판을 우리가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도록 저술했다. 또한 전후의 시대적, 정치적, 사상적 맥락도 일목요연하게 조명해 줌으로서 사건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그 사안이 아직도 미완료라는 사실도 잘 보여준다. 특히 등장 인물들의 개성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잘 보여줌으로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몰입시키고 있다. 아마도 스콥스 재판의 원인이 되었던 인간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지닌 입장에 대한 확신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생명의 기원이라는 사안은 결코 견해나 개념의 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을 넘어선 종교와 신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 시대가 다양한 견해를 인정하자는 분위기일지라도, 이 사안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여지를 결코 주지 않는다. 물론 유신론적 진화를 인정하는 애매한 입장도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법학과 과학사를 전공한 저자 에드워드 라슨은 생명의 기원을 다루었던 스콥스 재판의 역사적 의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스콥스 재판을 매우 공평하게 진술하고, 그 당시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끔 독자를 이끌어 간다. 사건과 영역의 특성상 쉽지 않음에도 저자는 역사가 본연의 자세를 끝까지 유지했다.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십다. 물론 저자의 주관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층 밀착되어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 신들을 위한 전쟁은 역사의 장에서, 학문의 장에서, 개인들의 세계관적 대화의 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또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양측이 불을 뿜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역사는 흥미롭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역자와 출판사에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