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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화의 단편 소설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에서는 단편의 묘미와 풍미, 잔잔한 전율이나 감동, 위화 특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소설집은 위화가 십여 년을 써 왔던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저자는 이 단편들이 저자 스스로 문학 체험 속에서 겪었던 여정들을 기록한 것이고, 그 여정들이 저자의 상상 속 최면 속에서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집에 실린 17편의 단편은 각각의 맛깔을 가지고 있다. 「18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는 주인공이 얻어 탄 차에서 맞는 어느 하루를 그리고 있다. 「오래된 사랑 이야기」는 결혼한 지 10여 년이 흐른 부부가 갈등을 하는 이야기다. 처남 매부지간인 친구 석강과 곤산의 이야기인 「벗」 등등 다양한 삶들이 제 멋을 가지고 등장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성격도 특이하지만, 아마도 그 이야기 속의 공통점은 다들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얼마 전에 타계하신 소설가 이문구 님이 소설 끝머리에 다신 발문은 그 특징을 참으로 재미있게 달고 있다. 그 소설의 주인공들은 바로 위화의 사람들인 것이다. 위화가 만들어 내는 위화 특유의 사람들. 어딘가 모자라거나 골목의 부랑아, 또는 얄팍한 불량배 같은 이들이 바로 위화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문구 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작품에 단골로 출현하는 허름한 중국인들에게 임자 잘 만났다는 인사를 주고 싶다고. 참고로 이 발문은 이문구 산문집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의 9번째 산문에 그대로 전제되어 있다. [인상깊은구절] 차 문을 열고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다행히 의자는 떼어 가지 않았다. 약간 위로가 되었다. 휘발유 새는 냄새가 났다. 내 몸에서 흘러내린 피 냄새 같았다. 밖에는 바람이 점차 매서워지고 있었지만, 의자에 드러누운 나는 약간의 온기를 느꼈다. 트럭은 겉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마음은 아직도 건강하고 아직도 따뜻한 것 같았다.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줄곧 여관을 찾아 헤맸는데, 여관이 바로 여기에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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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나서 세상에 이름 한 번 날리고 싶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특히 21세기를 사는 우리네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지 수많은 타인에게 자기를 알리기 위해서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전에 대한 인간의 의지는 곧 세상과 나의 보다 빠른 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시대에 위화는 이름 없이 사는 인물들을 통해서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걸까. 그러나 이런 무모함은 오히려 극과 극이 통한다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이름 없이 산다는 인간들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단편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에 실린 17편은 크게 세 가지 주제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약간 덜 떨어져서 늘 타인에게 무시 당하고 손해만 보는 어리숙하고 순박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18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 내게는 이름이 없다, 왜 음악이 없는 걸까, 난 쥐새끼), 우연과 필연에 의해 황당한 상황을 겪지만 결국은 그걸 받아들이고 겸허해지는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내가 왜 결혼을 해야하죠, 북서풍이 불어오는 오후에, 죽음의 기록, 공중분해), 한 인물 또는 가까운 관계의 두 인물 간 인생의 결을 담담하고 애잔하게 스케치하듯 보여주는 작품들(오래된 사랑 이야기, 선혈의 매화검, 두 사람의 역사, 운명, 깡총깡총, 황혼 속의 소년)과 김동리의 황토기를 떠오르게 하는 <벗>, 난해한 서술과 구성으로 위화의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과거사와 형벌>, 순진무구한 형제의 어처구니 없는 호기심의 발동에 웃음을 터트리게 한 <충수>를 다 읽고 나서 요즘 우리 나라 단편 소설들의 과도한 상징성과 화려하고 기교가 넘친 작품들의 가식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위화의 단편 소설은 너도 나도 자기 잘 난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기를 쓰는 오늘날 인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익명의 인간들이 있음으로 너희가 존재한다,고... [인상깊은구절] "당신이 나한테 두 아들을 낳아주었지만, 똑바로 말하면 충수 두 개를 안겨준 셈이지. 평소에도 아무 짝에 쓸모가 없더니, 위급한 지경에선 도리어 목숨까지 앗아갈 뻔했으니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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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생인 작가 '위화'의 저력은 대단하다.
무림(武林)의 고수가 아닌 문림(文林)의 고수 '위화'
1. 18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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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세권을 먼저 보고, 단편소설집을 보았다. 장편은 한 사람, 한 집안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단편집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열일곱편의 이야기가 있으니까. 이야기를 보다보면 장편에 나왔던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쓰면서 장편에 등장시킬 사람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비슷한 사람을 등장시켰을 수도 있다. 단편소설에서 느껴지는 것은 긴장감, 알 수 없는 결말인데 위화의 소설도 그렇다. 그래서 한번만 보고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그저 이야기만을 봤을 뿐이니까 말이다. 위화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것 같다. 장편부터 위화가 쓴 소설을 여러편 봤는데, 그것을 볼 때 중국 거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번 단편소설에서도 그랬다. 중국은 땅도 넓고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람이 많으리라고 본다. 위화가 보여준 사람들은 중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서민이 아닐까 싶다. 하긴 어디든 서민이 한 나라를 이끌어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화의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것 하나는 바로 해학이다. 위화는 글쓰기가 심신의 건강에 이롭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심신의 건강 많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희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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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역사'를 읽으면서 나는 과거에 어떤 꿈을 꾸었고 지금은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나를 생각해봤다. 너무도 가슴 절절히 사랑하기때문일까? 위화는 조금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일상적인 말투로 그려냈다. 아들앞에서 치욕적인 모습을 보인 아버지의 비장한 복수를 회상하며 스스로는 쥐새끼처럼 다시 비굴해지는 나, 개새끼라고 불리는 것을 아랑곳하지않고 자신때문에 개가 죽었다는 사실에 정신을 못차리는 나, 아버지가 제 몸을 스스로 수술하도록 하려고 의사는 부르지 않고 맹장이 터지도록 놔둔 아들들 등등.
위화의 소설에서 결혼은 누구의 말처럼 '무덤'으로 나타난다. '오래된 사랑이야기'에서 소년은 소녀와의 결혼 후 지속적인 권태를 느끼고, '공중분해'에서 당조신은 결혼자체를 거부하며 연애만을 즐기며 결혼한 친구들을 마지막까지 비웃는다. 하지만 위화가 그리는 결혼의 권태는 그의 소설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작가의 소설은 '사람아. 사람아(제목이 가물가물함)' 이후 처음인 것 같은데, 그래도 비슷한 문화권의 글이라 그런지 공감대 형성이 쉬웠다. 오랫만에 만난 단편이라 낯설기는 했지만 이 가을에 책읽은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 [인상깊은구절] 소녀의 목소리는 열여섯 살 때 이미 결정되었다. 그후 10여년 동안 똑같은 그 목소리는 거의 매일 귓가에 맴돌았다. 너무 익숙한 목소리는 나의 모든 격정을 말끔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덜커덩거리는 버스를 타고 40리 밖 어딘가로 가고 있었지. 네가 임신했는지 검사하려고 말이야. 그때 나는 정말 혼이 나가고 얼이 빠져 있었지. -넌 혼이 나간 적 없어. 그녀는 내말을 잘랐다. 널 알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니가 혼이 나간 적은 단 한 번뿐이야. - 내가 물었다. 그게 언젠데? - 그녀가 대답했다. "지금" |
| <인생>이라는 영화를 어린시절에 만나 눈물을 흘렸고,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며 웃음을 터뜨렸었다. 그러나.. <내게는 이름이 없다>는 손에서 놓을 수 없으면서도 강하게 거부감이 드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분명히 있을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있어서는 안될 것만 같은 이야기들. 나는 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갔을까. "위화의 소설이기 때문에"라는 의무감이었을까. 다행히 '선혈의 매화검'에서 한숨을 돌리고 나머지를 다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는 끝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일상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