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들이 성격은 불교사상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들은 불교를 믿었고 부처님의 밥을 먹고 자랐다.
나도 불교가 종교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하지만 간혹 싸움이 나거나 하면(어쩔 때는 깡패들의 싸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도 제일 마음이 편한 종교가 불교였다. 그래서 이 부처님 밥을 먹고 자란 이 시들이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멸치는 눈이 작고 나도 눈이 작고 하지만 멸치는 살아서 바다를 다 보았고 나는 바다를 다 볼 수 없다.
“멸치의 눈은 지금 죽음까지 보고 있다” 는 이 말이 새삼 돋보이는 건 나는 그 죽음을
안 보려고 회피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멸치의 열반」의 멸치는 아마도 지금쯤 다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교의 윤회사상이 정말로 있다면 아마 그렇겠지.
「선인장을 위한 연가」는 故 이재성*을 위하여 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안타까운 시.
한 마디로 이 시를 이야기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인종차별, 하연 얼굴을 가진 사람, 살색 얼굴을 가진 사람, 검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한다. 그리고 반대로 차별을 받곤 한다.
L․A 폭동이 아마 1992년 4월에 일어난 경찰관이 흑인을 폭행한 것이 TV에 나오면서 폭동으로 확대된 사건으로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죽어간 우리의 한국교민 중에 한 사람인 이 재성 군
‘이 재성’군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죽어야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인간은 지구상에 사는 것들 중에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인종은 우월하고 어떤 인종은 차별받아야 하는지….
아직도 지구 어디에선가는 인종차별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런 것들은 없어져야 나쁜 녀석이 아닌가 싶다.
「늙은 산」은 아버지였다. 어린 자식들을 키워내는 데에 모든 힘을 쏟아낸 아버지의
‘등’이였다.
그 등은 점점 가라앉았고 휘어져 보인다.
왠지 모르게 “동구 밖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시의 화자와 나의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낭창낭창’이라는 말이 크게 들린다. 「가족」은 어떤 넝쿨일까? 나도 조금 생각해봐야겠다.
낭창낭창이라는 말처럼 조금 탄력있게 자꾸 흔들려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 가족이 아닐까.
나는 그래서 가족이란 ‘끈끈넝쿨’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우리의 역사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역사다. 누구를 침략하지도 못하고 침략만 당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한 가지 왜 남의 나라가 우리의 삶을 갈라놓았는가.
남의 나라가 개입만 안했어도 아마 우리가 갈라져서 이 좁은 땅덩이에서 살지는 않았으리라.
일본, 소련(러시아),미국 이 나라들이 없었다면 다른 나라가 개입했을 것이다.
그러니 남의 나라 탓하기보다는 우리의 힘이 약했음을 탓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힘이 있었다면 분단된 조국이 아닌 통일된 조국에서 우리는 살았으리라.
김치 통일, 개나리 통일보다는 민족 통일이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마 이 시의 화자도 그것을 마음속에서 원했으리라. 나는 믿는다.
「김치통일, 개나리 통일」을 읽고서.
이 시들은 종교적인 색체가 강하다. 그리고 조국을 생각하고, 우리의 민족을 생각한다.
그리고 좁게는 가족을 생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