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을 정리하다가 예전 시집들을 살펴보고 싶어서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었어요. 이 시집은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기억에 없답니다. 책을 사면 앞에 작은 메모라도 할까 싶어요. 1996년에 출간 된 시집이니 그때는 분명 서점에서 샀을 텐데 아무런 표식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박재삼 시인은 <울음이 타는 가을강>으로 유명한데요.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쯤 어디서 그 시를 읽고 관심이 생겨 시인의 최근 시집을 샀지 싶습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 일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녁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앞날개에 있는 시인의 약력입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강>은 1962년에 나온 첫 시집 《춘향이 마음》에 수록된 시로 알고 있어요. 시인은 평생 가난했지만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맑게 사셨다고 합니다. 이 시집을 출간 한 1년 뒤에 작고하셨어요.
보통 시집의 앞쪽에나 뒷편에 '시인의 말'이 있는 것과 달리 바로 1장으로 시작합니다. 따로 이유가 있어서인지 시인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어요. '시인의 말'을 읽으며 한 권의 시집을 펴내기까지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재미도 있는데 말이죠.
시집 두 번째 수록된 시입니다. 시인들이 시집을 출간하면서 시를 어떻게 배치할까요? 아무래도 앞쪽과 뒷쪽에 힘을 싣지 않을까요? 너무 속된 생각인가요? 다 잘 쓰면 그런 거 신경 쓸 필요가 없지, 라는 말이 뒤통수에 와 박힙니다. 이 시집에는 무제라는 제목의 시가 무려 아홉 편이나 있습니다. 처음 시를 배울 때 이 제목으로 시를 썼다가 책임감 없다고 혼 난 기억이 있습니다. 또 제목 자체가 시와 한몸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제목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는데 박재삼 시인의 마지막 시집에 이 제목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저는 시를 쓰면서 너무 힘을 줄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시가 도대체 뭘까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읽었습니다.
어떤 설명도 없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잘 그려진 시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눈에 불을 밝히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어쩐지 쑥스럽고 불편해서 표현에도 힘을 주는 듯 합니다. 나이 든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면 '어떻게 이렇게 쉽게 쓸 수있지' 라는 생각이 들만큼 편하고 별스럽지 않습니다. 이런 시를 읽으면 꼭 삶이 힘든 것 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해서 위안을 얻게 된답니다.
혹시 시마(詩魔) 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많은 중독들이 그렇지만 시도 한 번 빠지면 좀체 헤어나오지 못하는 마력이 있는 듯 해요. 그래서 제 주변에는 시만 없으면 편하고 좋은데 시 때문에 불편하다고 하면서도 시를 읽고 쓰는 분들이 많답니다. 그리고 시인들이 시에 사로잡혀 힘들다는 푸념을 시집에 슬쩍 끼워넣는 것도 많이 읽었습니다. 박재삼 시인도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역시 그 어떤 중독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표현하고 있지요. 이 믿음이 있어서 시인들은 휴일이 돼도 마음 편히 놀러가지 못하고 시에 매달려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냅니다.
저항과 진보를 기치로 내건 실천문학의 시집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수백권의 시집이 나오는 동안 견고했던 사회모습도 참 많이 변했고요. 한 권의 시집이 독자와 만나는 일에도 깊은 인연이 닿아야 하는가 싶습니다. 쉬지 않고 빠르게 쏟아지는 신간들을 헤치고 만난 이 시집 한 권으로 시와 뜨겁게 살았던 박재삼 시인의 삶을 조금 느껴본 아침입니다.
|
|
그는 오랜 시간 유년을 살고 있다. 가난의 굴레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벗들에 대한 사랑 많은 시간을 유년에 살고 있다. 그의 그 유년은 어찌할 수 없는 눈물의 자락이고 쓰라린 기억이다.
그는 그것을 유려한 언어로 펼쳐 보여 준다. 그는 시각과 청각을 적절히 사용한다. 그 이미지가 한이 된다. 그의 글은 이미지가 늘 살아서 꿈틀댄다 그리고 우리들의 몸에 스멀스멀 기어 오르기도 한다. 그런 마력이 있다. 그의 글은 독자들에게 같이 느낄 것을 강하게 요구해 나가는 서정의 칼날이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별밭을 우리 기억 속에서 찾고 우리는 땅 속에 누워 있는 그의 부모를 만나서 그의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하여 그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그의 언어를 재구성해 보게 된다. 그는 늘 그렇게 살았다. 그는 기억 속에 침잠하여 한을 건져 올렸다. 한의 낚시꾼이 되고 있다. 그 한 속에 애절한 사랑을 담았고 그 사랑은 그리움이 되었다.
이 책도 그의 서정이 잘 녹아 있다. 보여주기 방법을 통해서, 낯설게 보여주기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그의 서정 안에 머무르길 이끄는 하여 우리는 그의 사랑의 자락을 늘상 만지게 된다
|
|
박재삼의 시에는 그리움이 있고 한이 있고 허무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박재삼의 시이다.
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들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이 시를 읽으면 내 안에 있는 모든 욕심이 없어지는 것 같다. 아니 아직까지도 내 안에 살아있는 욕심의 근원을 벗어내려고 몸부림친다.
가난과 슬픔과 눈물의 시인 박재삼. 그의 정신이 그의 시속에 살아남아 영원히 우리의 기억속에 간직되길 원한다.
무엇을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의 욕심을 버릴 때만이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 깨까지..... [인상깊은구절] 아는 사람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금은 나란히 세상을 돌아가서 땅 밑에 누워 계시네. 그 앞을 누군가 지나가도 피차 서로 모를 뿐이네. 하기야 다른 사람들도 거의 비슷하게 이름도 잘 잊고 마네. 그러고 보면 아는 사람이 과연 몇몇이나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