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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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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보면, 상경계 학생과 이공계 학생들은 뭔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또 실제 그렇다고 생각해왔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물론 환경적 요인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무시하지 못할 한 가지는 서로 아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상경계를 전공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고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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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보면, 상경계 학생과 이공계 학생들은 뭔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또 실제 그렇다고 생각해왔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물론 환경적 요인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무시하지 못할 한 가지는 서로 아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상경계를 전공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고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기회가 이공계의 지식을 상경계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엔트로피라는 것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관을 그리는 것을 보고 이것 저것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 책을 정말 잘 읽었다는 뿌듯한 마음마져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아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당연시 여겼던 많은 것들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게 된 좋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깊이 생각지 않고 모든 사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나 자신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 마저 느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반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토를 달면서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반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저자와 역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트로피 법칙이 우주의 절대 진리이며 이것을 신봉해야 한다는 식으로까지 이야기를 전개하며,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절대적 진리추구에 대해서는 조금의 사견을 말해보고자 한다.

우선, 에너지에 대한 위기감을 가지고 개인 생활에 있어서도 절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정도라면 왜 문제가 되겠는가. 문제를 제기 했으면 현실적인 수준에서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우리는 망한다라는 식의 논리와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비현실적인 제안을 한다면 어쩌라는 것인가? 또한 에너지라는 것은 저자도 말했듯이 생명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효율성과 질적인 고려가 없이 모든 행동을 단순 에너지 량으로 환산한 비교는 또 하나의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현 시대의 세계관은 매우 나쁜 세계관인 것으로 폄하시키고,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모르는 독자들을 바보취급 한 것은 조금 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노스트라다무스 식의 매우 과격한 예언은 일말의 거부감마저 유발시켜, 저자의 논지가 흐려지면서 신뢰도가 저하되는 문제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국의 중동침략에 대한 예언 등 많은 선지적인 생각을 보여준 대목들이 전체적인 밸런스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근본적인 부분에서 내 자신과 나의 행동,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 점에 대해서는 백번이라도 감사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여담으로 진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금 바라보면, 얼마전 "대한민국은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여의도의 어느 분 말씀이 생각이 나서 쓴웃음을 지으며 두서없는 사견을 마무리 지으려한다.

YES마니아 : 로얄 l*******n 2004.04.07. 신고 공감 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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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에너지는 정말 최선인가 - 엔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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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기 전만 해도 다른 사람들이 '엔트로피란 무엇이지요?'라고 물어본다면 '무질서도?' 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음.. 지금은? 일단 이 책에 대해 좀 써보도록 하고.   이 책은 정말 '인간은 진보 중이다.'라는 생각을 '인간은 멸종 중이다.'라는 생각으로 뒤집어버리리만큼 아주 충격적인 책이었드랬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의 진짜 속 뜻을 살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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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기 전만 해도 다른 사람들이 '엔트로피란 무엇이지요?'라고 물어본다면 '무질서도?'

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음.. 지금은? 일단 이 책에 대해 좀 써보도록 하고.

 

이 책은 정말 '인간은 진보 중이다.'라는 생각을 '인간은 멸종 중이다.'라는 생각으로 뒤집어버리리만큼

아주 충격적인 책이었드랬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의 진짜 속 뜻을 살펴보자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일어났던 '발명'이라는 현상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라는 것...

 

학교에서 이렇게들 배우잖아? 원숭이 비슷한 원시인들이 우가우가 하면서 과일 따먹고 풀 뽑아먹다가 돌도끼니 돌칼이니 여튼 이런 도구를 이용할 줄 알게 되어 농사를 짓게 됐고, 생산성이 갑자기 높아지자 잉여 농작물을 재놓게 됐다.

헌데, 과일 따먹고 풀 뽑아먹는 것과 밭 갈고 농사 짓는 일 중 어느 게 더 편할까?

당연히 전자가 더 편하겠지. 그러면 인간이 미쳤다고 그 편한 일을 때려치우고 새롭게 '어? 도구를 쓰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농사를 지으면 더 많이 얻을 수 있겠지.'라는 행동을 한 걸까?

아니라는 것이다.

 채집 생활에 어느정도 한계가 생기니까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찾다가 도구를 사용하게 됐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에는 농사를 짓지 못하니 어느 정도 농작물을 남길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지금의 핵 발전도 마찬가지...

나는 그저 핵 발전을 '과학 기술 발전의 산물'로만 봤는데.. 다른 시각? 아니, 좀 더 세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과학 기술 발전의 산물'... 맞는 말이지..

살아남고 살아남기 위해 주변에 있는 연료들을 쓰다가 결국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다 뽑아내기도 힘든 핵 에너지를 사용하는데까지 이르렀으니..

 

'그래서 이게 엔트로피랑 무슨 상관이냐.'라고 물어볼 수 있겠는데,

엔트로피란, '유용한 에너지를 사용한 뒤 나온 무용한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척도'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고립계 전체의 에너지는 정해져있다. 하지만 생명체들은 그 안에서 에너지를 쓴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냥 안 쓴다. 무지막지하게 쓴다.

그러면 무용한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척도, 즉 '엔트로피'는 무지막지하게 증가한다.

그렇게 엔트로피가 쌓이고 쌓이다 '엔트로피의 극대점'에 도달하게 되면 고립계 자체의 생명 활동이 정지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 과정에 놓여있고, 엔트로피는 기하급수적(=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네 허...허...허...

 

'태양에너지 같은 대체에너지도 있지 않느냐.'

라는 얘기도 있으며, 나도 이 책을 보며 그 생각을 했는데 역시 그에 대한 언급도 되어있다.

 

인간이 태양 에너지를 쓰는 방법에도 두가지가 있다지요. 능동적인 사용과 수동적인 사용.

능동적인 사용은 우리가 태양 에너지를 어디엔가 축적하는 그런 방식으로 써먹는 것이겠다.

집열판 뭐 이런거 갖다 쓰는 거 있잖냐.

 

근데 생각해보면 집열판이랑 이런거 만들 때도 다 화석 연료 뗀 에너지를 써서 만들 거 아냐. ㅡ,.ㅡ

이런 걸 '외부비용'이라고 하고, 태양열로 얻는 에너지에서 '외부 비용'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뺀 걸

'순 에너지'라 카더이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외부비용 드럽게 많이 들어가고 순 에너지가 안 남아요.'라는 것이드랬다. 

 

수동적인 방법은, 정말 어떠한 인위적인 방법을 가하지 않고  그냥 들어오는 태양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에,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구조를 보면 남향이 많다.

뭣땀시냐면 겨울에는 북풍을 막아주는 동시에 낮에 햇빛이 많이 들어오니까.

이런 식으로 에너지에 어떠한 인위적인 방법을 가하지 않고 사람의 태세를 바꾼다... 라고 말하면 적절하려나. 여튼 그렇다. -_-;;

 

요점을 말하자면, '엔트로피의 생성을 막을 길은 없다.

하지만, 엔트로피를 적게 만트는 '저엔트로피 에너지'를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보자.'

이걸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자연 친화적으로 살자.'라는 말이 되겠다.

 

왠지 읽고 나면 좀 답답한 책이다. '눈을 감아봐요. 어둡죠? 그게 댁들 미래에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책이랄까 .-_-

하지만 푸지게 쓰고 있는 우리 삶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j*****0 2012.01.2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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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세상이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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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근본 원리를 해명하다   지난 수 천년은 몇 십 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이러한 역사의 진행 과정의 기저에 깔려 있던 근본 원리는 무엇일까? 즉, 인간이 살아가는 이 현실 세계ㅡ정치•경제•사회의 조직체계ㅡ를 결정짓는 근본원리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다. 잠깐 동안은 진리로 받아들여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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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근본 원리를 해명하다

 

지난 수 천년은 몇 십 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이러한 역사의 진행 과정의 기저에 깔려 있던 근본 원리는 무엇일까, 인간이 살아가는 이 현실 세계ㅡ정치•경제•사회의 조직체계ㅡ를 결정짓는 근본원리는 무엇일까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다잠깐 동안은 진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를 넘어 후대의 사람들까지 수긍시킨 절대적인 이론은 아직 요원하다. 아아, 지구상의 모든 현상을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그리하여 과거를 통합하고, 현재를 설명하고미래의 행복을 보장할 그러한 이론은 정녕 없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그 가능성을 엿보았다이 책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단 두 가지 명제로 이 세상이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해버렸다. 그동안 근본 원리를 찾아 골머리를 썩혀왔던 역사의 지성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다. 그런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읽다 보면, 무지몽매한 나조차도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희망이 싹튼다. 무덤에서 일어난 지성들이 감탄하며 다시 제자리를 찾아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그가 내놓은 해답은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이다. 아마 열역학이란 단어에 생소함을 느낄 사람도 제법 있으리라. 이건 고등학교 물리 과목에나 등장하는 단어니까. 그런데 이 명제들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규명해낸다니나는 고등학교 때 물리1,2 과목을 제법 성공적으로 소화했다고 자부하건만, 이것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과연 이것이 현실 세계와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문명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그가 풀어서 설명하는 열역학 법칙은 다음과 같다. "1법칙은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따라서 창조될 수 없다고 가르친다. 단지 그 형태만 바뀔 뿐이다. 2법칙(엔트로피 법칙)은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고 규정한다. ,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가능한 상태에서 획득불가능한 상태로,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한다는 것이다."(p20) 일견 매우 단순해보인다. 그런데 이게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 원리라고?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어떤 문명이든 특정한 자원을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곧 의식주를 위한 에너지로 사용한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나무를 사용하였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나무가 인구를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자, 인간은 또 다른 자원을 찾았고, 찾아냈다. 나무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문제는 나무보다 석탄이, 석탄보다 석유가 사용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무는 그냥 태우면 되는데, 석탄은 캐야하고, 석유는 퍼올려서 정제까지 해야하지 않던가. 결국 나무보다 석유가 더 쓰기 힘든 자원인 셈이다. 이런 자원을 에너지로 변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기술이다. 에너지 자원을 캐내기 위해 인간이 머리를 굴려왔다는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화석연료의 발견 및 활용으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석탄, 석유는 나무와 다르게 지하에 많은 양이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늘어난 인구는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현재는 도시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 한 명이 생명유지를 위해 소모하는 에너지는 수렵채취시대의 인간에 비해 1000배가 더 많다물론 같은 인간이라서 생존을 위해서는 같은 열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열량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가 그만큼 엄청나다는 뜻이다. 게다가 화석 연료를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과정ㅡ채굴 및 채유운송, 발전ㅡ에서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한 문명에서 쓰이던 에너지 자원이 그 문명의 수요를 충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그 문명은 붕괴되고야 말았다. 나무 자원으로 지탱되던 로마 문명이 멸망한 이유가 바로 이런 까닭이다로마 문명이 붕괴된 이후, 유럽에 찾아온 혼란과 암흑의 시기를 상기하라. 현대의 도시 문명은 주변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빨아들여 유지되고 있다. 또한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제3세계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착취하고 있다. 선진국의 풍요는 제3세계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아니던가? 석유와 천연가스 등은 날로 고갈되어가고 있다지금은 제3세계에서 끌어와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그 수요를 충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른다면? 도시 문명의 붕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우리를 위협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현재 우리의 세계관으로는 인류는 계속 진보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날이 가면 갈수록 무한한 물질적 풍요가 보장되리라 생각한다그런 기치 아래 가능한 한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가 팡팡 써대고 있다. 위험하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를 쓰는 족족 무질서도는 증가한다. 무질서한 에너지는 곧 오염과 혼란을 뜻한다. 이래도 괜찮은걸까? 그럼 괜찮고 말고. 현재의 세계관 하에서는 오염따위는 문제될 것도 없다오염은 과학과 기술로 제거하면 그만이다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리고 이 무질서함은 과학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과학 기술은 기껏해야 에너지 흐름을 더욱 원활하게 할 수 밖에 없다그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에너지로 바뀌는 것에는 속수무책이다. 엔트로피 법칙 명시되어 있듯이,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엄청나게 에너지 소모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쓰레기와 오염은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왜곡시키고 있다. 이미 우리 주변은 날로 오염으로 가득차고 있다이것은 매우 가시적이다. 대기와 수질의 악화는 이미 언론의 단골 메뉴다오염은 인간의 신체에까지 침투한다. 근대 이전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암이나 심혈관 질환은 사망의 제1원인으로 급부상하였다이제 삶의 터전은 물론 삶 자체가 위태한 지경이다. 그런데 여기다 자본은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인위적인 개발을 가하고 있는 지경이다. 자연이 언제까지 버텨줄까이번에는 한 문명만이 와해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가 붕괴하여 인간 종 전체가 절멸할지도 모르겠다.

 

이로써 현대인들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풍요에 대한 믿음이 산산이 무너진다이 냉철한 분석은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는 현재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좋지 않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무심하게 보여준다. 너무 비관적인가? 아니다그는 문제의 지적에서 그치지 않는다그는 인류의 존속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할 방향ㅡ세계관, 가치관, 삶의 방식ㅡ을 제시한다그것은 엔트로피 법칙에 순응하는, 저엔트로피 지향적인 삶의 방식이다. , 에너지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자연과의 공존을 꾀하는 것,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여 분산적이고 지역적인 사회를 유지하는 것. 저자는 선회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한다언제 선회할런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단다. 하지만 어서 빨리 선회하지 않으면, 더 많은 고통과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삶의 방식은 요즘 내가 읽던 일군의 책들ㅡ법정 스님, 톨스토이, 니어링 부부, <오래된 미래등ㅡ 의 주제의식과 비슷하다다시말해, 내가 진정 만족스럽고 행복이 만연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똑 닮아있다. 저자도 말한다. 이것은 인류 사상 최고의 현자들ㅡ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그리고 간디까지ㅡ이 공통적으로리 주장해온 바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결국 평온하고 지속적인 행복이 존재하는 곳에 인류의 미래도 존재하나 보다.

 

여기까지 그의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일견 완벽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다. 나는 문명의 비대화와 에너지의 관계, 그리고 그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들을 생각해보았다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끊이질 않았다원시 시대에는 부족 간의 싸움이었고, 근대에는 국가 간의 싸움이었다. 어떤 공동체든간에 힘이 있기만 하면 곧잘 타 문명에 대한 침략과 정복을 자행했다기원전00b7후에 걸쳐 꾸준히 영토를 확장해온 최초의 제국주의 국가 로마나, 16세기에 마야문명을 정복한 스페인, 18-19세기에 제3세계를 침탈한 서구세력, 20세기에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한 일본까지여기서 힘이 있다는 것은 곧 인구 수가 많거나 또는 기술ㅡ전쟁도구ㅡ에서 우위를 점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구수와 기술 둘 다 문명 내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운용할 수 있느냐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 문명이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가졌을 때 필연적으로 비대화될 수 밖에 없으며, 동시에 과도한 에너지 소모로 붕괴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하나 더. 기술의 발전은 에너지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문명의 비대화에 기여한다만일 기술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면, 문명도 일정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적 욕구는 기술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계속해서 기술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 덕에 문명은 더욱 커져만 간다. 이 지점에서 인정 욕구는 문명의 확장을 가속화한다. 한 공동체에서 인정 받고 싶은 욕구는 전쟁을 통한 타 문명의 착취라는 형태로 실현되기 때문이다발전된 기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따라서 문명이 점점 더 커져간다. 이 두 가지 욕구는 인류라는 종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강력한 동인으로 작동한 매우 근원적인 욕구이다이것은 자본주의의 탐욕과는 구분된다. 그렇다면 문명이 비대화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을지. 이제 와서 이런 욕구을 억제할 수 있을까.

 

으음.... 이 부분은 좀 더 생각을 명확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밤을 샜더니 정신이 혼미해서 원..

 

 

다소 개인적인 깨달음

 

 육 개월간 읽은 책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다이번 독서로 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덕분에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몇몇 생각들이 다소 명확해졌다. 그 생각을 기반으로 하여 인류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이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좀 더 진일보된 사고를 하게 되었다그러나 아직은 좀 더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관련된 정보들을 적극 취합해볼 필요가 있다허나, 분명한 것은 나의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실제의 삶까지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나는 예전부터 인간과 사회의 본질은 복잡하기보단 분명 단순하리라는 생각을 견지해왔다. 세상의 현상들은 그 얽힘이 복잡하기 그지 없지만, 실제로 그것은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와 잎사귀에 지나지 않으리따라서 뿌리까지 파고들면 그 현상의 근본을 파악할 수 있으리. 이 책은 그러한 근본 원리를 규명해냄으로써, 가장 복잡한 세상을 가장 단순한 논리로 설명한다. , 진화론과 더불어 엔트로피 법칙은 세상을 가장 단순하고도 냉철하게 파악할 수 있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수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책에서 다소 독단성이 느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시야와 통찰력이 엄청나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경외감이 절로 느껴진다. 하나의 원리로 광범위한 분야의 진실을 속속들이 규명해내고, 또 그것을 취합하여 하나의 견해로 제시할 수 있다니. 게다가 부분부분에서도 뛰어난 통찰력이 한껏 느껴진다. 아예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이다지금 내 수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과학에 무지한 나조차도 이다지도 쉽게 이해하다니독자에 대한 배려마저도 흠 잡을 데가 없다.

 

이제야 읽은 것이 조금 후회스럽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이런 충격을 받은 이유는 그만큼 내 안에 쌓인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부터 그의 다음 저서들을 부지런히 읽으면 될 일이다지금 나는 그의 생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무지 궁금하다ㅡ이 책은 1980년에 쓰여졌다그의 다음 저서들ㅡ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ㅡ을 읽을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다.

 

 

 

 

 

구절

 

"어떤 사회의 세계관에서든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세계관이 자신의 행동방식이나 현실인식방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구성원 대부분이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즉 세계관이란 것은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만큼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철저히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p19)

 

"세계의 유용한 에너지는 끊임없이 무용한 에너지의 형태로 분산된다. 인간은 가장 먼저 손에 넣을 수 있는 에너지부터 쓰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대의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보다 더 구하기 어려운 에너지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나무를 베는 것보다 석탄을 캐고 처리하는 것이 더 힘들다. 유전을 개발하고 석유를 뽑아 올리는 것은 더 어렵다. 원자력 발전은 더더욱 어렵다. (...)

역사 소에서 누군가가 뭔가 좀더 나은 방법을 발명하면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진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사실 이른바 '더 나은 방법'이란 에너지를 추출하기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개발된 '다른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윌킨슨이 말한대로 각 단계가 진행될때마다 개발되는 새로운 방법은 궁극적으로 앞선 단계보다 더 많은 일 또는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 이외의 도구에 의해 수행되기는 하지만 말이다."(p106~p107)

 

"경제학자들은 영원하고 무한한 물질적 진보의 패러다임을 신봉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과 기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에 끈질기게 매달린다. 그러나 인간의 에너지, 기계적 에너지 또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뭔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소비될 때마다 전체 환경은 더 큰 무질서와 쓰레기가 생겨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제2법칙을 통해 알고 있다. 또한 어떤 가치있는 것을 생산해도 결국 그것은 쓰레기 또는 분산된 에너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처럼 인간이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지 결국에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유용한 물건을 '영원히' 축적해나간다는 의미에서의 '물질적' 진보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p175)

 

"고엔트로피 문화에서 삶의 주요 목표는 에너지 흐름을 이용하여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내고 모든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해방이란 더 많은 부의 축적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환경을 변환시켜 이를 착취하는 것이 일차적인 가치가 된다.

사회에서 신을 쫓아내버린 고엔트로피 가치체계는 지상천국을 건설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았고 존재의 궁극적 목표를 모든 가능한 물질적 욕구(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를 충족하는 데 두었다. 우리에게 '현실'이란 측정, 계량화, 실험가능한 것으로 변했다. 우리는 질적이고, 영신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것을 외면했다. 이원주의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여기서 이원주의란 우리의 마음이 몸과 서로 떨어지고 우리의 몸이 주변환경으로부터 괴리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물질적 진보, 효율, 전문화 같은 개념을 숭상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 공동체, 전통이 파괴되었다. 물리적 활동을 제한하는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제외한 모든 절대적인 것들이 잊혀졌다.

우리의 새로운 세계관과 사회 시스템은 이들이 태어난 바로 그 과정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우리 사회의 엔트로피는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점점 심해져가는 혼란의 와중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로 전락했다. 생물학자들이 옛날부터 알고 있던 진실을 우리는 매일 실감한다. 그것은 어떤 생물도 자신이 쏟아놓은 쓰레기 한가운데서는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p265~p266)

 



b******a 2010.09.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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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한 저엔트로피 사회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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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표지와 함께 서울대 추천도서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가진 이 책은 그것을 펼쳐보기도 전에 나를 지레 겁먹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이 재미있는 책을 미안하게도 몇 달간 책장에 꽂아두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전에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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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표지와 함께 서울대 추천도서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가진 이 책은 그것을 펼쳐보기도 전에 나를 지레 겁먹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이 재미있는 책을 미안하게도 몇 달간 책장에 꽂아두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전에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지나갔고 결국 ‘엔트로피’를 집어 들기로 했다. 비록 다른 책이지만 같은 저자가 썼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의 소망과 조금이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사이, 그것은 최근 내가 사유했던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였다. 정부의 규제가 있어야 옳은가? 아니면 시장의 자유를 추구해야 옳은가?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한 결과 나는 두 가지의 절충안이라는 다소 비열한 해결책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즉, 나는 모든 경제공황의 원인을 체제 속에서 적응한 후 그 체제의 허점을 노리는  인간의 탐욕이라고 보고 그것을 제거 할 수 있도록 두 가지의 경제정책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렇게 양극단에서 오락가락하던 나에게 모든 사회 체제속에 기본적으로 한 가지의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엔트로피’ 즉, 제2법칙 이론이다. 열역학 제2법칙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자연 상태는 무질서한 상태로 흘러가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제2법칙을 실생활에서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사용한 자원은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해서 재사용 될 수 없는 것으로 변하고, 시간도 역시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법칙이 우리의 사회의 기본 체제가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부정하는 이론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우려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계론적 사회관이라 일컬어지는 이론인데,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이 기계론적 사회관에 입각해서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로 인식했고, 모든 것을 인간의 생활을 이롭게 하는데 투자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인간들은 스스로 윤택한 삶을 유지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은 이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지속적인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해 인구의 팽창이 급속도로 이루어졌으며, 팽창한 인구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점차 기술이라는 도구는 파괴적으로 변해갔다. 그 때문에 자연의 파괴는 점차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실업률이 증가하고, 치안은 악화되고, 방위비용이 증가하며, 새로운 질병이 창궐하고,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는 비극적인 현재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시켜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실용론을 펼치지만 저자는 고엔트로피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로의 회귀. 즉, 저엔트로피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 말은 우리의 생활에 있는 모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언제까지 한정되어 있는 자원에 의존할 것인가? 지금 당장 에너지를 극도로 소모시키는 모든 산업자원의 사용을 중단하고 태양에너지와 같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의 힘을 이용하여 궁극적으로는 자급자족의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저엔트로피 사회로의 회귀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극복해야 우리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는 이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지만 결코 무시할 수도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우리가 자원을 착취해 나간다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각종 통계자료가 제시하는 분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 사회는 친환경ㆍ녹색성장이라는 구호가 유행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희망적인 구호로 뒷공작을 꾸미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차츰 오염물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으며, 자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면 우리는 저자가 이야기한 사람들 중에 실용노선을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라면 실용론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바로 모든 것을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과감히 버려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환경오염의 중심이 되는 것들, 우리들의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 불필요하다면 버려야 한다.

 

그것들을 오염물 규제로 묶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설사 기적적으로 재생가능한 자원으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몸체를 이루는 것은 전부 이 땅의 자원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우리의 편익을 위해서 언제까지 자연을 희생시킬 것인가? 불필요한 것들의 사용을 차츰 줄여나가고 궁극적으로는 제거해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특정한 환경의 에너지 상황이 그 시대, 그 환경에서  형성되는 기본틀을 규정한다.

우리는 시간을 뒤로 돌리거나 엔트로피 과정을 역행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엔트로피 과정이 바랭하는 속도를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개인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행복은 공백상태를 남기고 위기는 발명의 시대를 남긴다. 

지구라는 폐쇄계에 내재하는 물리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이 우리 스스로를 완전히 구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의 생존과 다른 모든 생물종의 생존은 자연과 화해하고 생태계와 협동하며 살아가려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경제학자들은 영원하고 무한한 물질적 진보의 패러다임을 신봉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과 기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에 끈질기게 매달린다. 그러나 인간의 에너지, 기계적 에너지 또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뭔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소비될 때마다 전체 환경은 더 큰 무질서와 쓰레기가 생겨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깨달음이란 뭔가를 '경험'하는 것인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깨달음을 '성취'하려고 몸부림 친다.
 


k*******7 2009.06.04.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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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본질의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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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너무나도 유명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런데 알은 깨고 나와야 하는 세계여야 하는가. 그 당위성은 아주 냉엄하고도 비관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에서 설파된다. 어떤 세계를. 왜.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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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너무나도 유명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런데 알은 깨고 나와야 하는 세계여야 하는가. 그 당위성은 아주 냉엄하고도 비관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에서 설파된다. 어떤 세계를. 왜. 무엇을 위해. 우리는 하나의 세계관에 의해 의식의 한계성을 지닌다. 삶 자체에 깊숙이 스며있고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세계관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 대부분의 삶의 목표는 물질적 풍요와 욕망에 대한 충족을 들 수 있다. 사회 활동 자체가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과정인 것이다. 기술은 이러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진보해왔으며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올려 놓았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열역학 제2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총량이 증가한 다는 것은 무용한 에너지의 증가를 의미하고 이것은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를 의미한다. 물론 에너지가 전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가 살 수 있게 하는 포괄적인 자원의 한계를 말한다. 또한 엔트로피의 증가는 무질서를 양산하기 때문에 인류의 시스템은 비대해지고, 전문화되어 간다. 그 비대함을 유지 관리 하기 위해 더욱 더 고 엔트로피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브레이크 없이 인류는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이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이 책에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한들 마이너스 엔트로피는 폐쇄계에서는 불가하다. 단지 엔트로피의 증가만을 가속화 시킬 뿐이다. 인구의 증가는 더욱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그것이 나무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그리고 원자력으로 얻기 힘들고 위험한 대상으로 옮겨 가고만 있지 전혀 개선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자연은 순환하는 것이고, 인간은 언젠가는 땅에 묻히기 마련 아닌가. 다만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중히 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절벽으로 달리는 우리의 ‘숙명적인 아주 먼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현재의 삶에도 그 영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를 생각해보면 알 것 같다. 오염과 혼란, 각종 위험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삶이 바로 고 엔트로피 문화가 만들어낸 부산물 아니던가. 간단히 이 책의 주제를 말한다면, 오만한 인간 중심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저성정, 저 엔트로피 문화를 형성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자연과의 동화를 통하여 공존을 모색하라. 제목만 보아서는 물리학 관련 서적 같지만, 이 책의 성격은 주제만큼이나 복합적이다. 동양 철학과 종교의 사상을 말하고, 생태주의와 저성장과 분배를 논한다. 분배 없이 저성장을 논하는 것은 선진국의 횡포이며, 서양의 물질중심, 자연의 식민화를 비판하면서 동양사상에서 그 대안을 찾는 등 그 범위와 깊이에 있어서 흥미를 돋군다. '전쟁 준비는 인간 활동 중 가장 많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키는 활동이다. 미사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뿐이다. 파괴를 위해 사용하거나 고물이 될 때까지 보관하다가 폐기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미사일을 만드는 데 들어간 지구의 자원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후손들이 쓸 쟁기를 빼앗아 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197p
k*******0 2004.12.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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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2법칙 - 엔트로피를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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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군대에서 우연찮게 고참이 빌려줘서 읽게 되었다. 아마 1992년쯤 되었을것이다. 당시 열역학 기본법칙에 대한 고찰이 없던 상태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류가 발전하고 끝없는 진보를 이루어나갈것이라는 기계론적 사고에 열역학 2법칙을 이용한 엔트로피의 증가를 다룬 내용은 진보를 떠나 종말론에 가까운 정신적 충격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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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군대에서 우연찮게 고참이 빌려줘서 읽게 되었다. 아마 1992년쯤 되었을것이다. 당시 열역학 기본법칙에 대한 고찰이 없던 상태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류가 발전하고 끝없는 진보를 이루어나갈것이라는 기계론적 사고에 열역학 2법칙을 이용한 엔트로피의 증가를 다룬 내용은 진보를 떠나 종말론에 가까운 정신적 충격이었다고 할수 있다. 오랜시간이 지나서 이책을 다시 선택한 이유는 에너지업계에 종사하면서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에너지의 흐름과 환경 변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고픈 생각에서이다. 에너지 아니 인간활동과 환경과는 분명한 연관관계가 있다. 지금도 끊임없이 개발이 이루어지고 에너지의 사용이 증가되면서 우리의 환경은 끝없이 파괴되고 있다. 이 지구와 자연은 현재의 우리것이 아닌 미래의 우리 자손들의 것임을 알아야하고 좀더 자연친화적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소비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지구라는 폐쇄계에 내재하는 물리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완전히 구할 수 있는 길이다. 에너지의 흐름이 클수록 사회는 더욱 효율적이 되고 문명은 더욱 진보하여 세계는 더욱 질서있게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제까지 우리가 지구에 입힌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자연적 재생 과정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준다면 우리와 모든 생명은 지구상에서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적 패러다임에 의해서 시간 경과에 따른 과학과 문명의 발전은 인간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어 끝없는 진보를 이룰것이라는 생각에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접합하였을 때 세계관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주는 핵심문구라고 생각이 들었음
s****e 2005.12.09.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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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관한 물구나무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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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식 개발에 대한 단순한(?) 경고일까, 아니면 현대 사회문명 전체를 향한 거대한 반항일까? 제레미 리프킨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이번 책 역시 ‘엔트로피’라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하지만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던 용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체 그만의 거침없는 독설(!)을 내뿜고 있었다. 쉽게 쓰여진 이 책은 경제학, 농업, 수송, 군대, 교육,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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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식 개발에 대한 단순한(?) 경고일까, 아니면 현대 사회문명 전체를 향한 거대한 반항일까? 제레미 리프킨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이번 책 역시 ‘엔트로피’라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하지만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던 용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체 그만의 거침없는 독설(!)을 내뿜고 있었다. 쉽게 쓰여진 이 책은 경제학, 농업, 수송, 군대, 교육, 건강 등… 사회 각 부분에서 보여지는 발전이 결코 우리가 믿는 진보나 생산성의 향상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보다 적은 사람으로 보다 많은 가치의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현실이 발전이 아니라니, 처음에는 의야해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환경 오염이나 기술발전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 기기를 작동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 등,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진보라고 믿어온 그 과정을 통해 전체적 생산의 효율성의 저하를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용이 간편하고 더 많은 열량을 발산시킨다고 믿었던 에너지원 역시도, 인류는 사용하기 가장 쉬운 에너지부터 사용해왔으며, 에너지의 변화는 에너지 환경 조건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수동적 적응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었노라는 그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그와 관련된 믿음이 모두 깨어지고 말았다. 나무를 더 이상 연료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인류는 자신의 에너지원을 석탄으로 변화했으며, 현재는 석유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적응의 의미를 뛰어넘는 듯 했다. 지구 환경의 변화와 동시에 공룡이라는 하나의 종이 멸종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던 지난 날의 역사는 앞으로 인류의 역사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용불가능한 에너지의 양을 의미하는 엔트로피가 열역학 법칙에 근거, 끊임없이 증가할 수 밖에 없노라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도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할지라도 새로운 에너지원을 창조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인간은 에너지원의 고갈과 함께 멸망할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오직 하나, 엔트로피 과정의 진행속도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노라는 그의 이야기만이 우리에게 희망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그것은 베이컨에서부터 이어지는 자연과 인간을 분류시키고, 자연을 하나의 측정, 수치화 가능한 객체로서 파악하는 현 세대의 세계관에 대한 변화가 존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국부적 엔트로피 감소만을 전체로 파악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신기술, 신연료의 개발을 꿈꾸는 수많은 거대자본과 기업들의 움직임이 나에게는 하나의 우려로 다가온다. 제3 세계에서 보여지는 개별적이고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의 육성을 장려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아갈 길이라고 아무리 역설을 할지라도 역사는 결코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의 시원시원한 논변과 상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음은 어쩌면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음을 반영하는 듯 하다. 막상 닥쳐서 그제서야 후회하고 지난 날을 그리워하는 실수를 다시금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저자의 경고가 지금 이 순간에도 충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이달의 사락 q*****2 2003.02.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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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도 언젠간 식는다 - 인류의 묵시록 '엔트로피'
"태양도 언젠간 식는다 - 인류의 묵시록 '엔트로피'" 내용보기
열역학 제 1법칙과 2법칙은 물질 문영의 한계를 규정하는 과학 법칙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제 1법칙,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제 2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 1법칙을 살펴 보자. 우주는 광활한가? 광활하다. 그렇다면 우주는 무한한가? 무한하지 않다! 우주는 광활하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별은 끊임없이 생성되지만 그것은 진정
"태양도 언젠간 식는다 - 인류의 묵시록 '엔트로피'" 내용보기

열역학 제 1법칙과 2법칙은 물질 문영의 한계를 규정하는 과학 법칙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법칙,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
제 2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제 1법칙을 살펴 보자. 우주는 광활한가? 광활하다. 그렇다면 우주는 무한한가?

무한하지 않다!

우주는 광활하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별은 끊임없이 생성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창조가 아니다. 별은 다른 차원의 우주로부터 '뿅'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다. 별은 우주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수 많은 물질을 재료로 탄생한다.

이처럼 에너지는(또는 물질)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할 뿐 창조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우주는 생성될 초기에 갖고 있던 에너지에서 한 톨의 가감도 없이 평생을 살아간다.
가난하게 태어난 우주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부자로 태어난 우주는 평생 부자로 살 수 있다. 삼라만상의 빈부 법칙은 우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만약 인간에게 열역학 제 1법칙만 존재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자원 고갈이나 환경 문제로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됐을 거다. 문제는 열역학 제 2법칙이다. 열역학 제 2법칙은 우리의 우주에서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기아 자동차의 모닝은 1리터의 휘발류로 19km를 주행할 수 있다. 휘발류 1리터는 모닝의 엔진 내부에서 격렬하게 연소하며 수백 킬로그램의 쇳덩이를 19km 전진 시키고 추가로
그 쇳덩이로 하여금 바닥과 마찰을 일으켜 열과 소음을 발생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휘발류는?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탄화수소와 아황산가스로 변신하여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바이 바이 블랙 버드.(Bye bye black bird)

우리는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탄화수소와 아황산가스 그리고 이미 변환된 운동, 열, 소음 에너지를 거꾸로 돌려 휘발류 1리터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마디로
낙장불입. 특유의 유용함으로 어디에 사용되더라도 제 몫을 다할 수 있었던 휘발류 1리터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매연이 되버렸다. 열역학에서는 이같은 매연, 유용성 제로의에너지들을 엔트로피라 부른다. 정리해 보자.

휘발류 1리터라는 에너지는 자동차의 엔진 내부에서 연소하며 다양한 찌꺼기와 각종 에너지로 변환된다. 이 변환된 에너지들의 총량은 언제나 이전의 에너지, 즉 석유 1리터의
에너지량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 1법칙이다.

한편 휘발류 1리터가 유용성 제로의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 그리고 이 에너지는 결코 휘발류 1리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이다.

 

 

 

 

 

 

열역학 제 1, 2법칙이 인류에게 제시하는 미래는 참으로 암울하다. 자원은 언젠가 고갈된다. 인류의 역사 또한 언젠가 그 바퀴를 멈출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진보라 불러왔던 모든 일들, 자연을 정복하고 그 위에 올라 승리의 노래를 불렀던 지난 날들이 사실은 우리의 몸을 짓밟고 우리의 생명을 태워 전진시킨 폭주 기관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레미 러프킨은 그동안 우리 인간이 가져왔던 진보에 대한 맹신이 기계론적 사고관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지구에 기계론적 사고관을 최초로 끌어 들인 것은 누구인가? 17세기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베이컨의 관점은 명확했다. 관찰을 통해 객관적 지식을 발견해 내고 일체의 추상적 관념을 배제하는 것. 베이컨은 장도를 휘둘러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인 평화의 다리를 싹뚝 잘라 버렸다. 베이컨은 인간과 자연의 평등 관계를 주체(관찰하는 자)와 객체(관찰 당하는 것)라는 주종 관계로 전복시켰다.

베이컨이 기계 패러다임의 초석을 닦자마자 그 위에 집을 지은 것이 바로 데카르트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이성은 유례없이 지위가 향상
된다.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이라는 세 단어로 이 세상 전부를 연역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잘 익은 과일을 정성스레 포장해 차곡차곡 상자에 담듯 데카르트는 이 세계를 자신이 짜 놓은 이성의 틀 안에 쓸어 넣기 시작했다. 틀 밖으로 삐져 나온 가지들은 무참히 잘려 나갔다. 변화 무쌍하고, 그리하여 예측 불허였던 이 세계는 데카르트의 상자에 담겨 매끈한 상품이 되었다. 이 상품을 대량 생산해 전 세계에 보급한 사람은, 고전 역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이었다.

아이작 뉴턴에게 있어 세계란 '수'였다. 뉴턴에게 중요한 것은 떨어지는 사과, 그 하나하나가 가진 고유성과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적, 구체적으로 측정 가능한 사과의 위치와 속도였다.

뉴턴의 방정식에서는 좌변과 우변이 얼마든지 자리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이 특정 방향으로 진행했다면 그것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한게
아니었다. 모닝이 생산한 엔트로피는 정확히 그 반대 작용을 통해 1리터의 석유로 돌아갈 수 있다! 뉴턴에게 있어 세계란 힘과 운동량, 위치와 속도로 기술 될 수 있는 정교한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현실 세계에 닥친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자동차가 늘어나 교통 정체가 심해졌다고? 그럼 도로를 만들면 되지. 도로를 만들어 농경지가 없어졌다고? 그럼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어! 바다가 메워져 갯벌이 사라졌다고? 그럼...

기계 패러다임의 사고 안에선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또 다시 문제를 일으켜 결국 거대한 문제의 누더기로 변해버린다. 안타깝지만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대다수는 아직까지 이 패러다임 안에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똑똑이들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

 

 

엔트로피 법칙이 소개된 것은 무려 수 십년도 전의 일이지만 우리의 세계는 이제서야 겨우 그 법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듯 하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대체 에너지 개발 붐과 환경 보호의 목소리는 확실히 10년 전과 비교해 봐도 놀라울 만큼 커졌다.

하지만 우리의 지구는 여전히 기계 패러다임에 심취한 근대적 엘리트들이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그들은 쇼핑몰을 운영하고 도시를 계획하며 자동차와 석유를 생산한다. 그들은 제일 먼저 당신에게 자동차를 권한다. 자동차가 불필요한 이동 시간을 줄여주고 더 많은 여가를 보장해 준다고 속삭인다.

자동차를 가진 우리들은 아주 신이 난다. 이제 이동에는 자신있다. 비교적 먼 거리도 자동차만 있다면야 어려움 없이 왕래할 수 있다. 이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도심에 집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근대적 엘리트들은 두 번째로 대도시 인근에 베드 타운을 만들어 자동차를 가진 우리를 그 곳으로 인도한다. 두 도시를 잇는 8차선 왕복 도로는 자동차와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에 딸린 사은품이다. 이 사은품 위로 쉴새 없이 석유가 쏟아진다.

한편 베드 타운 안에는 대형 쇼핑몰이 들어선다. 예전에는 집 앞 마다 슈퍼마켓이 있었다. 그 때는 자동차를 가져갈 필요도 없이 걸어서 그때 그때 필요한 물건을 사 오면 됐었다. 요즘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사은품 위로 석유를 질질 흘리며 대형 쇼핑몰로 향한다. 매번 오는 건 귀찮기 때문에 카트 안에는 일 주일동안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될만큼 충분한 물건들이 담긴다. 이 와중에 식료품 점에선 1팩에 2천원하는 냉동 만두가 무려 2팩에 3천원으로 1+1 판촉 행사가 벌어진다. 알뜰한 주부는 무려 천원이나 아낄 수 있다며 냉동 만두 2팩을 집어든다. 그렇게 알뜰한 주부의 식탁엔 공짜 만두 한 팩이 간식으로 올라오고 만두 한 팩의 칼로리를 사이 좋게 나눠 먹은 그 집 식구들은, 전부 돼지가 된다.


이것이 바로 도시와 자동차와 석유와 도로, 그리고 쇼핑몰을 지배하는 자들의 마스터 플랜이다. 이 놀이에 놀아나는 동안 도시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괴물이 되고 그 안에서 인간은 피둥피둥 살이 찐 돼지로 전락한다. 우리는 지금 초 고엔트로피 사회에 살고 있다.

 

 

 

 

 

 

제레미 러프킨의 주장은 당연히 우리 사회를 저엔트로피 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쇼핑몰을 몰아 낸 뒤 소상 공인의 슈퍼 마켓을 다시 내 집 앞에 들이는 것. 아주 좋은 생각이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열역학 제 2법칙과 제레미 러프킨의 '엔트로피'가 왜 향락 주의자와 낙관론자들의 관심을 피해갔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의아스러웠다. 무슨 소리 하는건지 모르겠다고?

열역학 제 2법칙은 인류의 미래에 드리운 암울한 묵시록이다. 우리가 아무리 저엔트로피 사회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끝내는 우주의 에너지 고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해,

태양도 언젠간 식는다.

그 때가 오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가 아무리 저엔트로피 사회를 탄탄하게 구축했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레미 러프킨의 걱정은 뭘까?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50억년의 시간을(태양이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는 시간) 다 쓰지 못하고 멸망하는 것? 미안하지만 태양도 언젠간 죽는다. 그렇다면 그 날이 오기 전까지 흥청망청 즐겨 보자는 생각이 정말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나는 현재처럼 고엔트로피 사회를 유지하려는 낙관론자와 향락주의자들이 열역학 제 2법칙을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의아하다. 그 먼 미래를 생각하기엔 우리에게 닥친 위기가 너무나 실감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지구를 살리자는 둥 자연을 보호하자는 둥 그 모든 훌륭한 생각들은 사실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게 분명하다. 언젠가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이면 곤란하지'라는 생각. 어쩌면 이같은 인간의 이기심이, 지구를 구하려는 행동의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p.s - 이 리뷰가 횡설수설 갈피를 못 잡는 이유는 이미 엇나간 문장에 또 다시 애꿎은 문장을 추가하는, 이른바 고엔트로피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s*******r 2011.11.2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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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손에 들고 도대체 엔트로피가 뭘까 하는 기분으로 뒤적거렸을 때 열역학 제 2법칙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때 나에게 물 밀 듯 들어온 생각은 이 책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책이구나 . 하는 것이 였다. 나는 과학을 못한다. (특히 물리는 거의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이 열역학이라는거 자체에 무언가 어렵고 복잡한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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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손에 들고 도대체 엔트로피가 뭘까 하는 기분으로 뒤적거렸을 때 열역학 제 2법칙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때 나에게 물 밀 듯 들어온 생각은 이 책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책이구나 . 하는 것이 였다. 나는 과학을 못한다. (특히 물리는 거의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잘은 모르지만 이 열역학이라는거 자체에 무언가 어렵고 복잡한 냄새가 가득 났기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에 질려 버렸다. 그리고 걱정이 앞섰다. 도대체 무엇을 느꼈다고 해야하나.. 하고 말이다.하지만 읽어나가기 시작한 나는 나의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가득 메운 글씨들이 어려운 화학적 설명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나는 만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 여러 만화를 접하다 보면 판타지 만화에서는 그 세계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있다. 독자는 자연스레, 노력하지 않아도 그 만화의 세계에 . 현실과는 전혀 다른 그 세계관을 흡수한다 . 그렇듯이 우리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도 (내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게 깨닫고 의식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 이 시대의 세계관이 있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이 세계관의 변화로써 이야기를 시작한다.그리고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 우리의 세계관이 잘못되었다고. 열역학 제 2법칙이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일정한 벌금. 즉 무용의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잘 이해한 것 맞나요?) 그런데 이 엔트로피라는 것은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작은 움직임에도 유용한 에너지는 줄어든다. 그리고 한번 소진되버린 에너지는 어떤 의미에서도 되돌릴 수 없는 것. 결국 언젠가는 고갈되고 만다 .<폐쇄계에서 물질 엔트로피는 궁극적으로 극대점을 지향한다> 여기서 극대적이란 물론, 지구의 종말. 이겠지 작가는 어떤 것을 강요하지도 추천하지도 않는다. 이 사실을 받아드리라는 강요도 없다. 그저 너무나 담담하게 설명하고. 이제 선택의 권한을 독자 모두에게 주고 있다.그것도 여러 유형을 들어주면서 말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계속해서 대답을 촉구하고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이 사실을 받아드릴 것입니까?어떻게 구 세계관을 버리고 . 이 사실을 . 이 진실이라는 이름의 어떻게 보면 참혹한 현실을. 그저 우리가 회피하고 있는 것뿐일지 모르는 이 사실을 . 어떻게 받아드릴 것입니까? 당신도 회피하겠습니까? 아니면 절망하시겠습니까? 아니면...우리에게, 나에게 선택을 묻는다 .사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지금 지구는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모든 에너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길로 달려 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그리고 많이 졸리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나 찬찬히 늘어 놓는 이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내가 다시 망각하지 전에 생각해야 겠다. 나는 제레미 리프킨이 제시하는 유형 중에 몇 번째의 사람이 될 것인가?
YES마니아 : 로얄 l****l 2002.12.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구,환경,에너지 문제를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기술낙관론자의 환상을 깨드릴 결정적 한방
"인구,환경,에너지 문제를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기술낙관론자의 환상을 깨드릴 결정적 한방" 내용보기
이 책은 미국에서 1980년에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34년전의 책인데, 지금 읽어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예언자적 통찰력으로 가득차 있다. 열역학 2법칙을 물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문명을 비판하고 예언하는 확고부동한 법칙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을 못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시험을 위해 달달 외웠던,.. 그래서 아직까지도 세계를 이루고 구
"인구,환경,에너지 문제를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기술낙관론자의 환상을 깨드릴 결정적 한방" 내용보기

이 책은 미국에서 1980년에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34년전의 책인데, 지금 읽어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예언자적 통찰력으로 가득차 있다. 열역학 2법칙을 물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문명을 비판하고 예언하는 확고부동한 법칙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을 못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시험을 위해 달달 외웠던,.. 그래서 아직까지도 세계를 이루고 구성하는 확고부동한 근거를 제공하는 법칙으로 알고 있었던 뉴턴의 법칙들. 그 법칙들이 이미 폐기될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물리학 교과서를 도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허무한 배신감을 금하기 어렵다.

 사실 환경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라, 다양한 환경문제 글과 서적과 기사를 통해 화석연료를 기반한 현대문명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문명전환으로 인한 혼란을 예상하고 자급자족의 능력을 계발하고 자발적 가난과 소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는 삶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리고 기술개발로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의 삶을 방식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 낙관론자들이 인류가 처한 환경,인구,에너지 문제를 기술혁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그것을 반박할 만한 확고 부동한 근거 제시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책이 미국에서 출간되고 난후, 무려 34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 책을 접했고, 이제는  기술낙관론자들의 허구성을 밝혀줄 확실한 근거를 손에 쥔 것 같다. 열역학 2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조금만 깨어서 물질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 폐기의 에너지 흐름을 살펴볼 수만 있다면 정말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확고한 진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뭔가 생산하여 부가가치를 생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에너지의 폐기와 쓰레기로 남는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 지구의 바다는 프라스틱 섬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다의 흐름이 돌고 도는 환류지점마다 플라스틱의 거대섬을 이루고 있고 미세분자로 조깨어 져서 먹이사슬을 통해 우리 인체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각 국가 마다 에너지 흐름의 최종물질인 각종 쓰레기 처리에 과부하가 걸려 해결방법에 골머리를 앓고 있고 청정 발전이라 속여왔던 핵에너지는 인류역사를 몇배나 뛰어넘는 반감기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기술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못해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가 된지 오래다.

지구가 40억년동안 축척해 온 재생불가능한 에너지를 불과 몇백년만에 흥청망청 사용하면서 이뤄낸 현대의 인류문명, 마치 영원히 지속할 것처럼 가르치고 배워왔던 우리 후손들에게 닥찰 문명전환의 위기는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명전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서서히 연착륙시키깅 위해서는 당장, 모든 분야의 문명 패러다임을 능동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자발적으로 적응하고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 

 

YES마니아 : 로얄 c*****e 2014.07.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