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름이지만, 허수경이라는 이름이 낯선 시절이 있었다. 어수선하고 뒤숭숭했던 시절에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는 조금은 진부하고, 또 조금은 진솔한 제목의 시집을 들고 나타난 어딘지 어눌해 보이는 경상도 처자였다. 그녀가 들고 나온 시집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고, 또 연약한 것을 끄집어내며, 또 허위를 가치없이 발가벗겼다. 한 풋나기 단발머리 아가씨가 이리도 당당하게 우리 시의 폭을 넓혀버렸던 것이다. 지금은 중견시인의 위치에 서있고, 올해 새로운 시집 "내 영혼 오래되었으나"를 발표하면서 또다시 시문학계에 하나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그녀는,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십수 년전 그 풋나기 시절의 시와 같은 절창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허수경은 매우 능수능란해진 것 같고, 또 매우 고상해진 것 같으며, 일견 독선적으로 보이지만, 당시의 그녀는 푸른 봄 산 같았고, 시원한 바람 같았으며, 가슴에 담은 가장 깊은 상처 같았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어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 폐병쟁이 내 사내 허수경의 가장 강력한 힘은 솔직함과 대담함이었다.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의 폐병쟁이 사내에게 뱀잡고 개잡고, 그것도 모자라서 허벅살 선지피라도 먹이겠다는 이 여인에게서는 순정이나 사랑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불타고 있는 열정과 고통이 머문다. 그녀의 시어들은 어딘가로 마구 달려들고 있고, 그 종착점은 힘없이 식어가고 있는 독자의 마음 속이다. 그 차가운 마음이 타오르는 시어들로 인하여 다시금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나름의 역사의식과 시대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또 그것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시의 뿌리는 한줄기 그곳에서 머물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것을 전면에 내세워 드세게 졸라대거나 독자를 흔들어 깨우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낡은 것이며, 그녀의 전략은 매우 정직하고 진솔하게 다가가 슬쩍 불길을 놓고 돌아오는 선량한 뒷모습이다. 어디 허수경만의 슬픔뿐이겠는가? 사람들 사이에, 사람들 안에 가라앉아있는 슬픔이 함께 술렁거리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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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이 시집에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시적 세련성이 있음과 동시에 80년대를 살아간 젊은이의 고통, 민중의 아픔과 슬픔이 들어있다. 저자가 책 후기에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므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말하듯, 그는 어려운 시대를 언어의 찬란함과 민초들의 삶의 애환을 현장감있게 그림으로 시대를 이기는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물론 지금의 상황하고 이 시집이 처음으로 출판된 시기는 아주 다르다. 그러나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우리에게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이 시대를 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하겠다. [인상깊은구절] 신혼이라 첫날밤에도 내줄 방이 없어 어머니는 모른 척 밤마실 가고 붉은 살집 아들과 속살 고분 며느리가 살 섞다 살 섞다 굽이 굽이야 눌물 거느릴 때 한짐 무거운 짐 벗은 듯 하냥 없다는 듯 어머니는 밤별무리 속을 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