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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국 똥장수들은 대부분 산둥 출신이었다. 청대 이래 중국 내 최대 이주민은 산둥인이었다. 그들은 황제가 사는 베이징에 가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몰려들었지만, 이와 달리 베이징에서 안착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얻은 자리는 점원, 접대부나 잡역부와 같이 도시하층민이 접근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여기에 물장수와 똥장수도 해당된다. 산둥인들이 똥장수를 장악하게 된 것은 팔기군의 화부를 맡아 대거 베이징으로 이주하면서였다. 그들은 분뇨채취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업권을 독점하고 분도(糞道)라는 구역을 나누어 자신들끼리 임대, 양도, 매매를 독점했다. 위더순의 일가는 바로 이러한 관행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저자 신규환 교수는 연세대 의과대학 의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사학을 살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도시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박사 학위도 베이징의 위생행정 분야였다. 이 때 중국 똥장수 이야기를 일부 다루었다.
[민화 속의 북경 똥장수]
[위생국이 촬영한 북경 똥장수. 공식적인 모습은 이처럼 말쑥했다]
[사합원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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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낭만이 철철 넘쳐흘렀을 것만 같은 17세기 프랑스의 거리는 의외로 지저분했다. 너저분히 널려 있는 배설물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이 탄생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요즘에야 집마다 양변기가 설치돼 있어 배설물 처리에 대한 걱정을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는 최근의 일로,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여도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이 우리에게 보편적이었다. 하물며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현대식 시설을 기대하는 건 욕심일 따름이다. 거대한 대륙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아마도 경제적인 지표에 따라 국가를 평가하는 우리의 관점이 힘을 발휘한 탓일 게다. 그러나 문명은 대륙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우리보다 뒤쳐졌단 평가를 받을지라도 대륙은 과거 오랜 기간 동안 우리보다 선진 문명을 누렸다. 전반적으로 앞서 있던 대륙이지만 고민은 유사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남기기 마련인 배설물의 처리는 시대와 장소를 망라하고 많은 이들을 앓게 만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배설물이 비료 대용으로 쓰이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화학비료가 존재치 않았을 게 뻔하고, 인간의 배설물은 무엇보다도 훌륭한 비료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이 말은 배설물이 돈이 된다는 뜻이다. 이익을 좇는 건 자본주의 사회만의 특징이 아니다.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시점일지라도 돈이 되는 똥을 향해 사람들은 당연히 몰려들었다. 그렇게 ‘똥장수’라는 직업이 탄생했다. 그들의 모습은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 듯하다. 양 어깨에 짊어진 혹은 양손에 든 통에는 똥이 넘쳐흐른다. 당연히 지독한 냄새가 났을 것이고, 비위생적인 무언가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파리 등의 벌레도 꽤 꼬였을 것이다. 똥장수들이 앓는 일종의 직업병 중 하나인 기생충 감염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서서 일을 하다보니 하지정맥류도 흔한 질병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똥장수들을 고달프게 했던 건 뭇사람들의 시선이 아닐까 한다. 먹고 싸는 게 사람의 일이라곤 하나 세상 사람 대다수는 자신의 배설물에 대해서조차도 그리 긍정적이지가 못하다. 지역의 위생을 똥장수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똥장수를 대하는 시선은 멸시에 가까웠을 게 분명하다. 똥장수는 분명 도시의 하층민에 속했다. 할당 받은 영역이 존재 하지 않을 경우, 그들의 작업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그들은 도시의 위생을 책임지고 있었기에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었다. 물장수와 더불어 똥장수는 자신이 가진 이러한 지위를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베이징시 인민정부 공안국이 긴급 체포한 20여 명의 똥장수 중 위더순이라는 인물은 똥장수가 하나의 부패한 권력층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물론 위더순은 똥장수 중에서도 인생이 매우 잘 풀린 경우에 해당하긴 한다. 어쨌건 그는 강간, 폭행 사주 등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자신의 부정함을 가리기 위해 같은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똥장수들의 입장을 외면한 채 국가편에 서기도 했다. 일상에서 자행되는 똥장수들의 폭력은 정부로선 골칫거리였다. 국가가 위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돈이 되는 것에 대해 통제력을 지니려는 국가의 욕구가 만나자 똥장수를 향해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중국의 개혁은 성공적이었다. 똥장수가 가가호호 방문해 배설물을 수거하는 풍경은 오늘날 상상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낯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개혁으로 인해 그 존재조차도 부정당한 똥장수들이 겪었을 혼란까지 성공이라는 단어로 수식하기란 곤란할 것이다. 사회 전반에 이득이 되는 것이 언제나 개인에게도 이득은 아니다. 여느 때보다도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다. 매년 전도유망한 직종과 사양길에 접어든 직종 등을 다룬 기사를 접하곤 한다. 똥장수, 물장수가 더는 유효한 직업이 아니듯 현재 많은 이들에게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많은 직업들이 머지않아 과거로 불리게 될 것이다. 특정 직업이 사라지는 이유가 꼭 기술의 발달이란 법은 없다. 똥장수가 그러했듯 오늘날에도 국가 권력에 의해 그 존재를 배반당하는 직업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똥장수들의 폭력과 국가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폭력, 어느 쪽이 더/덜 폭력적이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왠지 무의미하지 싶다. 결국 소외당한 건 인간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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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고 사회인이 되기 직전까지 적(籍)을 두었던 산골집은 재래식 화장실에 우물물을 퍼올리던 펌프가 먹고 마시고 배설해 주던 생활의 근간이었다.재래식 화장실은 치간(측간)이라고 했다.태어나기 전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깊게 땅을 파서 만들어 놓은 일명 똥통은 장방형에 위에는 두꺼운 목재를 촘촘하게 배열시키고 뒤를 보는 곳만 약간 틈을 벌여 놓았고,옆에는 뒤엄자리라고 하여 온갖 음식물 찌꺼기 및 밥을 짓고 난 뒤 남은 재를 쌓아 놓았다.소변은 두엄자리에서 보고 변은 목재 사이에서 보게 되는데 배설할 시간이 되면 늘상 가는 곳임에도 변뇨가 뒤섞여 코를 찌르는 냄새를 적응하지 못했다.특히 여름날에는 파리떼,모기,애벌레 등이 들끓기도 했다.날이 풀리고 얼었던 땅이 녹게 되면 할아버지는 머슴과 같이 똥담는 통에 통국자로 퍼올려 양어깨에 지고 밭에 거름으로 쓰기도 했다.오랜 세월 분뇨에 익숙했던 할아버지께서는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거름을 주기 위해 묵묵히 고샅을 지나 밭으로 향하던 모습이 선연하기만 하다.
도회지 역시 마찬가지였다.대학을 다니면서 몇 차례 자취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경제적인 관계로 수세식화장실이 딸린 집은 얻지 못하고 고가(古家)를 전전긍긍했다.1980년대 중반 무렵이고 서울의 변두리쪽이어서인지 문화주택이라고 하는 빨간기와집은 으례 재래식 화장실이었다.그런데 재래식 화장실의 변뇨를 퍼가는 차량이 정기적으로 정해진 시간대(주로 아침)에 구역을 도는데,중간고사,기말고사 철이 다가오면 새벽 일찍 도서관 자리를 잡고 아침밥을 먹으러 자취집에 들르는데,분뇨차량이 눈에 들어오면서 고약한 냄새가 풀풀 날리면서 입을 막고 뜀박질을 하곤 했던 시절이 있다.그후 도시개발화가 이루어지고 재랙식이 수세식으로 바뀌면서 고약스럽고 소름 끼치는 냄새를 맡지 않게 되었다.
지금 그 시절 우물물,펌프질을 해서 퍼올린 물,재래식 화장실 등은 생활수준과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거의 사라져 간 생활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현대는 초국적 종자기업이 만든 농약과 비료,종자를 사용하고 있는 시대이다 보니 분뇨처리는 공공하수도에 의해 수세화되어 종말처리를 한다든지 정화조로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위생적이고 환경적인 측면에서 생활의 편리함과 질병의 우려가 없으니 매우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한다.사람이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본능행위가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 일일이 손으로 퍼나르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이 있었다.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인력거가 사람을 맞이하고 태워다 주기도 하고,깨끗한 물을 원하는 세대에게는 물장사가 새벽잠을 깨우기도 했으며,분뇨차가 없었을 때에는 똥장수들이 찾아와 분뇨를 퍼가면서 수고비를 주기도 했다.
이 글은 20세기 초 중국 베이징의 하층민의 고단한 삶을 시기별로 전해주고 있다.베이징의 똥장수는 그 자체가 삶을 지탱해 주는 생계거리이기에 똥을 집하처리하는 똥공장(분창)과 일정구역의 똥장수를 관리하는 분도 그리고 가가호호 돌아다니면서 똥을 푸는 똥장수가 마치 피라미드와 같이 이권과 생존권이 얽혀져 있다.시대가 바뀌면서 사람의 의식구조도 바뀌지만 직종도 명멸하기 마련이다.인구 14억에 가까운 중국은 오랜 기간 봉건적이고 사회주의의 틀에서 깨어난지 불과 30여 년 밖에는 되지 않았다.그러한 까닭에 중국인민이 먹고 사는 문제가 급선무이었기에 위생관념,환경오염과 같은 선진문화의 도입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공장노동자,인력거꾼,똥장수,물장수들은 시민들을 상대로 돈을 뜯기도 하고 물주로부터 부당한 노동조건을 당하게 되면 태업(怠業)도 불사했다.비록 똥장수이지만 조직망이 갖춰져 있어 혹시라도 농한기(農閑期)를 이용하여 외지에서 떠돌이 똥장수와 기존의 똥장수가 부딪히기라도 하면 밥줄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여 똥장수들은 피터지도록 싸우기도 했다.똥장수는 위에 분도주(糞道主)가 있고 그 위에는 기업형 분창주(糞廠主)가 있었다.특히 분창주는 이권과 관련하여 시정부와 긴밀한 결탁관계를 맺었기에,분창주는 막강한 분벌을 이용하여 세력을 확대하고 부녀자 납치,강간 그외 축재도 어마어마하기만 했다.베이징 시정부는 분벌악패를 근절한다는 명목하에 위더순과 순싱구이 등을 법정에 내세운다.사안의 경중에 따라 사형,징역,교화노동 등에 처하게 된다.
중국 하층민의 직업인 물장수부터 똥장수,인력거꾼,접대부 등에 대한 기원은 명대부터 시작하여 청조,그리고 민국시기,난징정부시기,일본점령기,베이징정부시기 등으로 나뉘어 똥장수들의 삶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또한 똥장수들의 대부분이 산동성 출신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며 이들은 베이징에서 동향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지연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20세기 초 중국은 위생시설이 극히 열악한 시절이어서인지 똥장수들은 기생충병,하지정맥류,결핵,위장병 등을 주로 앓았다.일종의 직업병이다.일본이 중국 정부를 삼키면서 도시계획에 들어가고 분변개혁을 하게 되면서 똥장수들은 그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퇴출될 불안감에 폭동을 일으키기도 한다.위생처리가 안된 물로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 등 당시 중국의 환경오염은 일반인들에게 각종 질병을 안겨 주었다.이질,두창,티푸스,성홍열,콜레라 등이다.똥장수 중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똥장수들은 윗선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많지 않은 급료로 식구를 부양해 나가야 했다.1950년대 초 분벌악패(糞閥惡覇)의 주동자들을 체포.처벌하면서 위생개혁,환경문제로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갔던 것으로 보여진다.이 글을 읽으면서 지난 한국사회의 물장수,똥장수,인력거꾼,접대부(기생) 등과 관련한 그들의 애환을 음미해 보는 소중한 역사학습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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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똥장수’라는 독특한 직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청나라 말, 일제의 침략과 독립, 그리고 중화민국과 중국공산당의 지배가 차례로 교대되고 있던 격동기에,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던 베이징에서 활동하던 이 특수직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풀어낸다.
2. 감상평 。。。。。。。
똥장수라는 직업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그 실제 메커니즘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아직 구식 변소가 일반적이었던 근대에, 변을 처리하는 방법은 인력을 동원해 직접 퍼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렇게 수거된 변들은 어디로 갔을까? 똥장수들에 의해 수거된 폐기물들은 분창(糞廠, 똥창고)이라고 불리는 시설에 모아졌고, 분창주들은 그렇게 모아진 변들을 말리고 숙성시켜서 농사에 필요한 퇴비로 가공해 재판매했다. 똥장수들은 분창주들에게 고용되어 일정한 대가를 받고 일을 했다.
그런데 여기엔 또 한 가지 단계가 있었으니, 일정한 범위의 집들로부터 분뇨를 수거할 수 있는 권리인 ‘분도’라는 개념이 존재했던 것이다. 자신의 분도를 갖지 못한 똥장수들은 분뇨를 수거하기 위해 분도주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없었던 똥장수들은 각 가정으로부터 소위 떡값이나 용돈을 뜯어내곤 했는데, 그 분도 안에서는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분야였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이 직업이 돌아가는 구조만을 설명하는 게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 이 책이 서술하고 있는 기간은 대단히 역동적인 시대였다. 정부 당국자들은 그 폐해가 심했던지 ‘분벌’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었던 이 분뇨처리과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개혁조치들을 시도하지만, 이득을 뺏기지 않으려는 관련 업자들의 반발로 쉽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특정한 목적을 지닌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역사란 파면 팔수록 재미있는 것들이 튀어나오는 보물상자 같다. 크게 보면 크게 보는 대로, 또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 나름대로 정말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해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내가 이래서 역사를 좋아한다. 중국 근현대의 사회 하층에 속해있던 사람들의 생생한 한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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