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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조아나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루도비코가 '조아나의 이단자' 로 불리게 된 원인이라고들 하는 몇 가지 표면적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들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어떤 내면적 운명에서 이 호칭이 정당한 것이 되었는지, 루도비코의 삶의 양식이 어떤 특별한 철학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런데도 그는 질문을 자제했고, 그로 인해 충분한 보상도 받았다. (-15-) "루치노 스카라보타,그대는 우리 신성한 교회의 위안을 저버려서는 안되며, 그대의 아이들은 가톨릭교도들의 공동체에서 멀리 추방되어서는 안 되오. 그대에 대한 나쁜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거나 그대가 진심으로 고해를 하고, 참회와 회개를 하고, 하느님의 도움으로 길에서 걸림돌을 치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오. 그러니 스카라보타,먼저 내게 마음을 열고 , 그대가 무슨 일로 비방을 당하고 있으며,그대를 괴롭히고 있는 죄악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고백하시오." (-52-) "너는 저 아래 조아나에 있는 나에게 와서 학교에 다니렴. 아가타. 거기서 읽고 쓰는 것을 배우게 될 거야. 나는 너에게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가르쳐주고 ,하느님의 계율도 가르쳐 줄 거야.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일곱 가지 중요한 죄악을 깨닫고 피할 수 있는지도 가르쳐 주지. 그러면 너는 매주 내게 고해를 하게 될 거야." (-117-) 레네가 물건들로 가득 찬 구멍가게의 어두운 방으로 가는 도안 선로지기는 집에서 열심히 토비아스와 놀아주는 데 몰두했다. 아이는 틸의 무릎 위에 앉아 그가 숲에서 가져온 몇 개의 솔방울을 가지고 놀았다. (-166-) 그 열차는 충분한 운행시간이 있었고,이곳저곳에서 작업을 한 인부들을 태우거나 반대로 내려주기 위해 도처에서 정차할 수 있었다. 틸의 초소에 이르기 한참 전에 열차는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끼익, 덜커덩, 딸깍, 삐거덕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멀리 저녁의 적막 속으로 뚫고 들어왔고, 마침내 열차는 한 번 길게 늘어져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202-) 1911년 노벨 문학상은 벨기에 작가 모리스 메테르링크(1862-1949) 였으며, 1913년 노벨 문학상은 수상자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1861-1941)였다. 두 사람 사이에, 1912년 노벨 문학상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이었다.그가 쓴 책 『조아나의 이단자』에는 두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조아나의 이단자」 은 노벨 문학상 수상 후에 쓰여졌다면, 중편소설 「선로지기 틸」 은 1887년 발표되었다. 소설 『조아나의 이단자』은 독일 자연문학의 정수이며, 1918년 발표되어, 20여 년 동안 독일인에게 사랑받았다. 종교적 가치관과 군국주의가 혼재되었던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로 대표하는 독일 사회는 1918년 당시 매우 혼란스러운 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그 시절에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발생시킨 히틀러의 정치적 노선에 협력한 바 있다. 그의 작품 「선로지기 틸」 은 산업 혁명 이후,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었던 그 당시의 유럽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부자들 사이에 가난한 직업은 철도 노동자, 선로지기 틸을 주인공으로하여,내면 속 고통의 근원적인 문제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 소설에 이어서 출간된 「조아나의 이단자」 는 종교적 가치관이 서서히 무너지고,인간의 나약함을 표면화하고 있었다. 성직자로서, 눈앞에 보았던 근친상관에 대해서, 고해와 회계로 성스러운 교회의 가치를 회복하고자하였다. 소설 「조아나의 이단자」은 전쟁이 본격화된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독일 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에 대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힌트르 제공하고 있다. 사랑과 연민, 자연, 종교적 교리,이 요소들이 모여서,독일사회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돋보이고 있다.자연과 사랑 속에 숨겨진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나약한 본성에 대해서, 삶의 균형을 잡고자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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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전 소설을 읽고 싶던 차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라는 점과 제목 '이단자'에서 짐작되는 종교적 갈등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조아나의 이단자》는 <조아나의 이단자>, <선로지기 틸>이라는 두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먼저 <조아나의 이단자> 는 조아나 지역의 성직자 프란체스코가 근친상간으로 낳은 목자의 딸 아가타를 사랑하게 되면서 성직자가 파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단일한 사건이 전개되고 단일한 인상을 주는 액자식 구성으로 산 속 오두막에서 살아가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단자'로 불리는 목자 루도비코가 이 작품을 펴낸이에게 이전에 있었던 성직자 프란체스코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형식으로 이야기에 신뢰감을 부여해 실제 있었던 조아나 마을의 성직자와 목자 소녀와의 사랑을 전해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우프트만의 가장 성공적인 산문으로 평가받은 <조아나의 이단자>는 당시 함부로 입에 올리기도 힘들었을 듯한 근친상간, 성직자의 세속적 욕망 더 나아가 육체적 탐닉 등 극단적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놀랍다. 그러나 신부가 하느님을 버리고 소녀와의 사랑을 택하는 과정의 복합적인 내면심리가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신부의 심리에 어느정도 공감하면서 읽게 되었다. 성직자 프란체스코가 매혹적인 자연을 접하면서 인간의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프란체스코가 성직자의 옷을 벗고 목자로서 자연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에서 자연을 중심으로 하면서 철학적인 측면을 강조한 독일 자연주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다. 두번째 이야기 <선로지기 틸>은 선로지기 틸의 삶이 파국을 맞게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첫번째 부인이 나은 아들 토비아스를 지키기 위해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난폭한 두 번째 아내의 폭력에 굴복한 틸은 토비아스의 학대에 모른척 한다. 사고로 선로 위에서 토비아스를 잃은 틸은 유혈적인 종말을 선택함으로써 비극적 운명의 결말을 맞는다. 두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오랫만에 배경과 인물의 심리가 치밀한 묘사의 작품을 읽는 재미와 독일 자연주의 문학에 빠지는 시간이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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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아나의 이단자 -글쓴이 :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업체명 : 작가와 비평 -후기내용 : 노벨문학상 작품으로서 어떤 심오한 세계가 펼쳐질지 표지에서부터 많은 기대감이 들었다 책은 조아나의 이단자와 선로지기 틸 두편의 노벨레가 수록되어 있다 카톨릭 신부가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결과를 그린 조아나의 이단자의 성직자가 신과 인간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 그 당시 중세의 심리학적인 면을 잘 표현한 책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중세시대의 당시의 교회에서 우상숭배하던 다른 신들이나 적대적인 하느님을 위협하는 힘에 대한 이러한 내용 멘트들도 적혀있는 것을 보아서 그 당시에 어떻게 다른 신들을 이단이라고 배척하면서 대했는지에 대해 어떤 느낌의 분위기인지 그 당시의 시대상의 느낌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러한 시대에 당시 정서상으로 천륜을 저버리고 태어난 딸의 사랑 과정을 그린다는 것은 대단히 신적으로는 말이 안되지만 인간의 생명적인 윤리학과 그동안의 정, 정감으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두 가지의 대립된 고뇌가 얼마나 어려운지 참 판단하는게 힘들었을 것 같은 이야기라고 보여진다 그 다음 편인 선로지기 틸은 내면의 양극적 성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인자가 되는 가난한 소시민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책으로서 상류계급의 주인공을 다루어 온 전통적인 독일 노벨레의 틀을 깬 작품으로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새삼 잘 느끼게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평범한 옛날 기차의 선로지기 역무원이었던 틸의 삶은 그의 죽은 첫번째 부인과 현존하는 두번째 부인과 자신의 자제인 두번째 부인으로부터 학대받는 토비아스의 무언의 경계속에서 충격적인 심리적인 상항으로 치닫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겪게 되면서 이어지는 선로지기 틸의 파국적인 이야기가 그려진 책으로서 인간의 선이 어떻게 악으로 이어지는지 그 당시의 느낌을 잘 살린 시대상의 책이라고 보여진다 두 작품을 통해서 독일문학의 옛날 고전적인 느낌과 독일 자연주의문학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1887년 선로지기 틸을 발표하면서 각광받았던 이후부터 그가 사망한 1946년까지 어떠한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는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책 표지 덮개 첫부분에 나와있으니 참고할만하다 유럽의 세계관과 종교관과 인간적 내면의 세계를 섬세하게 잘 그려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이 펼쳐낸 조아나의 이단자 책을 적극 추천드리는 바이다!!! ![]() ![]() ![]()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자연주의 #하우프트만 #노벨문학상 #독일소설 #외국소설 #이관우 #게르하르트하우프트만 #작가와비평 #조아나의이단자 #책추천 |
![]() 이 책 『조아나의 이단자』를 읽으면서 독자는 유럽 문명의 근간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짙게 배어 있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이 책은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소설 작품 2편을 묶었다. 표제작인 「조아나의 이단자」와 함께 「선로지기 틸」 등 두 편이 수록돼 있다. 「조아나의 이단자」는 하우프트만의 가장 성공적인 산문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유럽에 가장 널리 퍼져 있던 가톨릭 신부가 어느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결과를 액자형 소설 구조로 풀어간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혼란하고 궁핍했던 시대에 독자층이 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작품집이다. 두 세계대전에서 모두 전쟁을 일으킨 측의 독일은 패전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분위기가 매우 경직되고 어두웠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로서의 가톨릭 신부는 성직자로서 신과 인간 중 어느 쪽에 서야 하는지 갈등하고 고뇌하는 프란체스코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선로지기 틸」은 전쟁 이전에 발표된 작품으로 저자 하우프트만을 문학적으로 인정받게 한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소설은 첫 번째 여인과의 결혼으로 낳은 사랑하는 아들이 둘째 부인에 의해 죽음에 이르자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정신이상자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선로지기 틸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독일인(윈리원칙적이며 융통성 없는)인 하우프트만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하층민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들의 편에 서 왔기에 가난한 소시민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소설을 쓴 것은 자연스러운 맥락이었다고 당시 문학계는 평가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틸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는 대립적이며 분열적인 성향을 부각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지식계급의 주인공을 다루어 온 전통적인 독일 노벨레(소설)의 틀을 깬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을 통해 하우프트만의 문학적 특성을 더욱 새롭고 깊이 있게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출판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또 인물과 환경을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한 문장을 직접 접함으로써 독일 자연주의 문학이 가진 특별한 면모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솔직히 독자가 잘 몰랐던 작가이다. 더욱이 191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데도 이름이 다소 낯설었다. 더욱이 표제어에 있는 '이단자'란 단어 때문에 종교 소설 같은 느낌이어서 더 낯설었다. 유럽은 로마 제국 시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이후 유럽 문명 내내 사회와 정치에까지 종교의 영향력이 컸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십자군 전쟁을 200년 동안 치렀다. 뿐만 아니라 수장인 교황은 전쟁과 왕에 대한 영향력도 끼쳤다. 이슬람교의 오스만 제국이 대단한 위세를 떨칠 때는 유럽 많은 나라의 중심으로 맞서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조아나의 이단자」는 작은 마을의 가톨릭 신부가 겪는 종교적 갈등을 다뤘다. 이 책의 초판은 1918년에 출간됐고, 이후 1945년까지 100판이 출판됐다고 한다. 이 작품이 이렇게 인기를 끈 것은 섬세하고 관능적인 성애 묘사라고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가톨릭의 종교적 위세가 대단했던 때이니만큼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성직자의 일탈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더 독일의 서민층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아닐까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신앙의 세계와 세속, 정신과 감각, 현실과 신화 등 양립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작가적 역량이 탁월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톨릭 신부의 일탈은 권위에 대한 반항이며 저항으로 읽힐 수 있고, 독일의 권위적이고 억압적 권력에의 저항 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던 사회 분위기도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복합적 내면 심리와 그것의 결과를 치밀하고 유려하게 그려나가면서 공감 영역을 최대화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결혼과 순결에 있어 특별히 엄격한 가톨릭교의 신부가 알프스 고산목장에 은거하는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결과를 그린 이 작품은 소재의 희귀성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저자 하우프트만이 극단적 소재와 내용을 취한 데에는 육체와 성애에 대해 지나치게 적대적인 가톨릭교의 경직성과 완고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하우프트만은 신부와 소녀의 합일을 통해 세로운 창조적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섰다고 묘사는 데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신부가 하느님을 버리면서까지 이룬 소녀와의 결합이야말로 모든 것을 뛰어넘는 창조적 사랑의 구현이며, 그럼으로써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저주받고 버림받은 삶에서 소녀를 진정으로 구원한 성직자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작품에 대해 이 책의 역자 이관우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은 성직자가 신과 인간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야 하는지에 대한 쉽게 풀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신부와 소녀와의 사랑이 낳은 깊은 산 속에서 염소치기 목자로 사는 둘만의 은둔적 삶이 비루하기보다는 순수하고 고상하게 보이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역자는 또 1차 세계대전 발발 5년째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자연, 사랑, 신화라는 테마를 통해 전쟁의 공포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자연이나 사랑을 통한 시간초월성의 체험은 사람을 문명의 시간에서 끌어내 신화 속으로 이끌었다. 비평가 만프레트 슈니히트는 하우프트만이 이 작품을 통해 대립을 주관적이고 유토피아적으로 중재하는 신비적이며 원초적인 세계인 '제2의 현실'을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신화와 현실을 한꺼번에 바라보는 것, 즉 신화적 형식과 자연주의적 형식의 특별한 병립은 이 작품의 매력과 문화적 가치를 높인다고 평가했다"고 전한다. 책에 따르면 좁은 성직의 세계를 떠나 자연과 사랑에서 시간의 초월을 체험하는 것은 신부 프란체스코가 문명의 시간을 벗어나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그는 매혹적이 자연을 접하면서 내면에서 열정적인 사랑이 싹트는 것을 체험한다. 또한 그는 야성적인 자연 그대로의 아잉이자 근친상간으로 추방당한 고산지대 목자의 딸인 아가타에 대한 사랑을 통해 새로운 인간이 된다. 감정과 체험이 신화적 원형 속으로 흘러들어간 그는 낙원에서 지은 원죄에서 벗어나 아담과 이브를 통해 인간이 된다. 프란체스코와 아가타는 새로운 아담이며 새로운 이브로서 서로의 합일을 완수한다. "프란체스코는 더 이상 프란체스코가 아니었고, 막 하느님의 숨결에 의해 단 하나의 아담으로, 단 하나의 에덴동산의 주인으로 깨어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를 빼고는 죄 없는 창조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별들이 천상의 음을 울리며 행복을 노래했다. 구름은 게걸스럽게 풀을 뜯어먹는 소들처럼 흥얼거렸고, 자색 과일들은 달콤한 황홀감과 맛있는 생기를 내뿜었으며, 나무둥치들은 향기로운 진액을 땀으로 흘렸고, 꽃들은 맛있는 향신료를 흩뿌렸다.(p.134) 이 과일 속에는 힘차게 뛰는 씨가 들어 잇어 경쾌하게 움직이는 맥동이 세차게 고동쳤다고 저자는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일을 먹을 때면 그것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자신의 풍요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점점 더 맛있고 정선된 기쁨을 선사했다고 덧붙인다. 즉 저자는 이 창조물과 다시 얻은 낙원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창조주 가까이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하느님은 여기에서 자신의 작업을 끝내지도 그대로 놔두지도 않았고, 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창조적인 손, 창조적인 정신, 창조적인 힘은 사라지지 않았고, 작품 속에서 창조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낙원의 모든 부분과 사지 하나하나가 창조적인 상태로 머물고 있었다. 방금 도자공의 작업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프란체스코-아담은 자신이 주변을 창조하는 자라고 느꼈다. 바깥세상적인 황홀함에 젖어 그는 하느님의 딸인 이브를 감지하고 바라보았다. 그녀를 형성했던 사랑은 여전히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었고, 아버지가 그녀의 몸을 위해 사용했던 온갖 소재들 중 가장 훌륭한 소재는 아직도 어떤 흙먼지로도 더렵혀지지 않는 초지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창조물 또한 몸을 떨고, 부풀어 오르고, 불꽃 같이 열렬한 천상의 창조력에 의해 빛을 내면서 아담과 한몸으로 융화되기를 재촉했다. 아담은 그녀와 함께 새로운 완성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아가타와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코와 아가타, 신부이자 좋은 집안 태생의 젊은이와 배척받고 멸시받는 양치기 아이는 손에 손을 맞잡고 밤중에 비밀통로를 따라 언덕을 기어오른 최초의 인간 커플이었다. 그들은 가장 깊숙한 은신처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영혼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황홀감을 느끼며 세속의 달콤한 기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들은 감동했다. 그들은 은혜와 선택을 받았다고 느꼈고, 이런 느낌이 끝없는 행복과 섞여 진정으로 장엄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느꼈고, 입맞춤으로 결합되었지만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운명을 느꼈다. 그것은 마지막 수수께끼였다. 그것은 하느님은 어째서 창조를 했으며, 어째서 세상에 죽음을 가져와 그것을 받아들이게 했느냐는 것이었다. 이후 이들은 움막으로 자리를 옮겨 정사를 나눈다. "그는 아가타의 벌린 입술 사이로 뿜어 나오는 유혹의 입김을 들이마셨다. 그는 소녀의 속눈썹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우 욕정의 눈물에, 뺨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에 연달아 입맞춤했다."(p.142~143) 이 대목까지가 아마 관능적 표현과 성애의 희열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가톨릭계의 반발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독일 등 유럽의 상황이 이를 문제 삼을 한가한 형편이 아닐 수도 있었을지도, 혹은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보자면 오히려 비유적 표현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평가했을지도 독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선로지기 틸」은 1888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지만 하우프트만을 문학적으로 인정받게 한 첫 작품이라고 한다. 저자 자신도 "그것과 함께 나는 작가로서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밝혔다고 역자는 전한다. 이 작품은 첫 번째 여인과의 결혼으로 낳은 사랑하는 아들이 둘째 부인에 의해 죽음에 이르자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정신이상자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선로지기 틸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한다. 틸의 근무지인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오더 사이에 있는 조그만 간수초소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로지기 틸은 당직을 서거나 아파서 눕는 날을 빼고는 일요일마다 언제나 노이-치타우의 교회 안에 앉아있었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그가 아팠던 적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열차의 화차에서 떨어져 내린 석탄덩이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에 맞아 다리가 박살난 채 철길 옆 도랑에 내동댕이처졌다. 또 한 번은 쏜살같이 달려가던 급행열차에서 그의 가슴 한가운데로 날아든 포도주병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사고 외에는 어떤 것도 그가 시간이 날 때면 곧장 교회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p.156) 하우프트만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하층민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그들의 편에 서 왔기에 그가 가난한 소시민적인 선로지기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은 결코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이관우는 설명한다. 틸의 운명은 내면을 양분하고 있는 정신과 본능의 양극적 대립에 의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틸이 내면의 양극성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비극적 사태의 전개 과정은 틸, 첫 부인을 만나, 둘째 부인 레네 등 세 중심인물들 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정확히 관찰할 수 있다. 첫 부인이 낳은 아들 토비아스 또한 결정적 역할을 한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이 아이의 사체를 들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깜짝 놀라 계단을 타고 올라가 위층 거실로 들어갔는데, 그곳의 문 또한 활짝 열려 있었다. 그들은 여러 차례 부인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은 벽에 있는 성냥으로 불을 켰고, 번쩍이는 불빛이 끔찍스런 파괴의 모습을 드려내 주었다. "살인이다! 살인!" 레네가 피투성이로 누워 있었는데, 두개골이 파괴되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p.206) 저자 : 게르하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슐레지엔의 바트잘츠브룬 출생하였다. C.하우프트만의 동생인 그는 어릴 때 경건한 종교적 환경에서 자라나 한때 조각을 공부하다가 후에 예나대학·베를린대학에서 생물학·철학을 공부하였다. A.홀츠, J.슐라프가 제창하는 ‘철저한 자연주의’의 영향하에 처녀희곡 『해뜨기 전』(1889)을 발표하고, 일약 자연주의 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이어 가정비극 『쓸쓸한 사람들』(1891)에서는 삼각관계로 고민하는 무력한 남편을 묘사하였고, 직공들의 반란을 다룬 군중극 『직조공들』(1892)로 극단에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걸작 희극 『비버 모피』(1893)를 비롯하여 『마부 헨셸』(1898) 등의 사실극이 발표되었다. 한편, 점차 상징적·낭만적 경향이 짙어져 몽환극 『한넬레의 승천』(1894), 서정미 넘치는 낭만적 상징극 『침종』(1896), 『그리고 피파는 춤춘다』(1906) 등을 거쳐 후년의 인형극 『축전극』(1913), 최후의 대작 『아트리덴 사부극』(1941∼1949)에 이르는 작품계열이 있다. 그 밖에 단편소설로는 에로스의 승리를 구가한 걸작 『소아나의 이단자』(1918), 장편으로는 종교적 사상체험을 담은 『기독광』(1910) 등이 있다. 서정시인 『틸 오일렌슈피겔』(1927)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 민족의 도의적인 분기를 일깨웠으며, 서정시집으로 『오색서』(1888) 등을 남겼다. 하우프트만은 자연주의에서 출발하였으며, 그 완성자인 동시에 그 초극자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문학에 공통된 관념적인 묘사를 피하고 하층민에서 영웅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인간과 생의 고뇌 그 자체를 사실적이면서도 구상적으로 부각시킨 점에서 독일로서는 독자적인 작가였다. 19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기독광』과 『소아나의 이교도』는 박찬기 번역으로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역자 : 이관우 공주사범대학 독어교육과와 고려대학교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독일 뮌헨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공주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과장, 신문방송사 주간, 언어교육원장, 평생교육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공주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독일 단화의 이론과 실제』, 『독일문화의 이해』,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삶과 문학』, 『ARD 방송독일어』, 『독일의 역사와 문화』, 『시사독일어』, 『문학 속의 삶』, 번역서로는 『인류사를 이끈 운명의 순간들』(슈테판 츠바이크), 『붉은 고양이』(루이제 린저 외), 『괴테 자서전』(괴테), 『압록강은 흐른다』(이미륵), 『윤무』(아르투어 슈니츨러), 『톨레도의 유대여인』(프란츠 그릴파르처)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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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이라는 작가는 이 책 <조아나의 이단자>으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독자의 내면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발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의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독일의 자랑스러운 문학가로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작가이기에 더욱 명성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내면과 그 본질에 대해서 깊이있고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잘 들여다보며 그 스토리를 풀어내는 이야기에 저절로 관심이 기울여집니다. 또한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독일의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도 유명하다고 하니 작가 민감하게 전달해주는 인간적인 내면의 고통과 그로 인한 슬픔에 대해서 처절하게 느껴보는 의미있는 독서를 해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집에는 대표제목으로 나와 있는 '조아나의 이단자'는 물론이고, '선로지기 틸'이라는 작품까지 두 편의 작품이 담겨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 책의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남매 사이에서 태어나게 된 아이를 카톨릭 신부, 즉 성직자가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져서 몰입도가 더 높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성직자의 고뇌를 고스란히 바라보게 되는데, 신이냐, 인간이냐에 대한 선택의 기로와 갈등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인간이 가지는 내면의 미묘한 기류와 그 힘든 선택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로에 선 갈등에 대해 균형감 있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어서 더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또 '선로지기 틸'을 읽으면서도 인생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대한 생각들을 모아보게 되고 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에 대한 사랑, 아내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뇌를 또한 해보게 만들어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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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19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의 작가입니다. 그가 태어나고 죽은 슐레지엔(혹은 실레시아)은 18세기 프로이센에 의해 병합되었으며, 그전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렸으나 사실은 원래 슬라브인들이 널리 터잡고 살던 고장입니다. 하우프트만은 죽을 때도 슐레지엔에서 죽었는데,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면 이런 배경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하우프트만은 자연주의 사조에 속한 작가입니다. 부르주아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유럽에서 자리잡고 전례없는 풍요가 사회에 넘쳤지만 많은 빈민층이 발생해 인도주의적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상에 충격을 받은 문인들이 자연주의 사조를 일으켰고, 프랑스의 에밀 졸라는 이 하우프트만보다 대략 20년 정도 연상으로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자연주의 문학이 흔히 그렇듯 이 책에 실린 그의 두 중편도 독자들에게 다소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성이라는 건 보통은 사람들 사이에 흔쾌히 전달이 되기 마련이라서, 이 작품들도 발표 당시에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작품에 스민 보편적 휴머니즘으로부터 얼마든지 감동 받을 수 있겠습니다. Soana는 이 작품의 배경인데, 빙하호(氷河湖)인 루가노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름을 가진 곳은 많으나, 루가노 인근에 실제로 그런 지명은 없으니 가상의 배경으로 보는 게 맞겠습니다. 스위스 소속이라고 해도 이탈리아어권이니 소아나라고 읽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이 소설이 독일어로 쓰였으므로 조아나라고 표기된 듯합니다. 이단자라는 단어는 캐릭터 루도비코를 가리켜 이 소설 내내 불리는데, 이 Ketzer라는 말은 중세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가혹하게 탄압받은 카타리 파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도 이 카타리 파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므로 이름이 익숙합니다. 어떤 고정된 교의가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며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프란체스코 신부. 실제로 수백 년 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도 이런 성품이었고 당대 주류 성직자들로부터 이단시되기도 하면서 기어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고산지대의 버림받은 일가(p70)" 미국의 애팔래치아도 그렇고, 산악 지대에서 다른 이들과 떨어져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때로 근친상간이라는 끔찍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며, 혹은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그런 부당한 편견을 받습니다. 프란체스코 신부도 "그 저주받은 스카라보타 남매(p79)"에 대해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으나, 자신 역시 과거에 후작의 어린 셋째 딸에게 일시 느꼈던 불측한 감정이 생각나기에, 타인을 함부로 단죄하는 데 보다 신중해지려 노력합니다. 모두가 짐작할 수 있듯 야생의 소녀 아가타는 스카라보타 남매의 딸이며, 아무리 그녀가 죄악의 소생이라 한들 그녀 자신만큼은 (아직은) 어떤 죄악에도 물들지 않은, 그 누구보다도 순결한 존재입니다. 반면, 고귀한 가문의 소생이고 어려서부터 성직을 택했으며 별다른 일탈만 없었다면 주교, 추기경직에도 무난히 오르리라 주변의 기대(p125)를 받던 프란체스코는, 독자인 제가 보기엔 애초에 신부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젊은 나이였다고는 하나 어쩌면 가는 곳마다 그처럼이나 이성의 유혹에 취약해지며, 마침내 자신을 낙원의 아담(p135)에 비길 정도가 되었으니... 소녀 자신이 근친혼의 소생인데다, 성직자라는 사람이 어린 여성과 간음하여 이중삼중의 죄를 지었으니 그를 타매하고 축출한 마을 사람들더러 무지몽매하다고 비판할 수도 없을 듯합니다. 프란체스코 신부는 가뜩이나 취약했던 아가타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망쳐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29년 역시 노벨상을 받은 독일 작가 토마스 만도 장편 <선택된 인간>을 발표했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이 중편이 그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박식한 은둔자 루도비코가 그토록이나 풍성한 지적 배경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어려서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교육을 잘 받은 덕이겠고, 바로 이 사람이 프란체스코 신부 본인임도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사실 저는 처음에 이 사람이 프란체스코와 아가타 사이의 소생인 줄 잘못 알았네요). <선로지기 틸>도 한없이 슬프고 답답해지는 사연이지만, 하우프트만 고유의 인도주의 철학과 치밀한 자연주의 기법 덕에 독자는 그의 진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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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라는 단어는 왜 그런지 마음에 듭니다. 누군가와 어긋나는, 당시의 시대와 맞지 않는, 그런 단어죠.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의 아이콘(?) 과 같은 생각도 하곤 합니다. 그런 제목 덕택인지 저의 눈길을 끌어 서평단을 신청하였는데 운 좋게도 당첨이 되어 읽을 수 있게 되었네요. ![]()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이 쓴 '조아나의 이단자'는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의 작품답게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 ![]() 차례가 매우 단촐합니다. 중간중간의 소제목도 없이 '조아나의 이단자', '선로지기 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로지기 틸'이 먼저 쓰여진 작품이지만 '조아나의 이단자'가 좀 더 인상 깊었던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간단한 차례는 사실 처음 본 것 같네요. 독일하면 뭔가 무뚝뚝한 느낌인데, 문학에서도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 어느 한 순간에 이성에게 반한다...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책들은 아주 많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현실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문체가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지만, 설정 자체가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것도 있습니다. 카톨릭 신부가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검열을 당할만한 내용이라는 생각도 했는데,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랑을 낭만보다는 현실적 감정을 담아 표현하면서 과연 노벨문학상을 받을만 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다만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중간에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문장에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점, 소제목과 같이 장면의 전환이 느껴지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가볍게 읽기에는 무거운 내용이기도 하였습니다. 첫사랑이지만 이른바 첫사랑의 풋풋한 감정이 느껴지는 묘사가 없었고, 신에게 자신을 바친 성직자가 느끼는 이성적 감정의 표현은 유교 문화(?)에 익숙해진 저에겐 나름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파격적인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재미있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불쾌감이라기 보다는 사실적인 묘사를 하여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였습니다. 있을 법한 이야기로 말이죠. ![]() '선로지기 틸'은 하우프트만의 데뷔작입니다. 설정이 꽤나 막장스러운데, 당시에는 무척이나 파격적이었을 거라 봅니다. 1800년대에 첫 결혼으로 낳은 아들이 두 번째 부인에 의해 죽게 된다는 건 요즘 막장 드라마 수준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로 인해 정신이상자가 되어 살인을 저지른다... 호러 범죄 스릴러 드라마에 정말 어울릴 것 같은 내용입니다. 틸에게 살해 당하는 건 누굴까요... 흥미로운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 분명 요즘이라면 특출난 내용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주제와 설정입니다. 하지만 무려 100년이 넘는 과거에 쓰여진 소설이라면 전통을 깬 파격적인 선구자라고 할 수 있겠죠. 독특한 문체로 신선한 글을 써냈던 하우프트만에게 찬사를 보내며, 독일 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아나의이단자 #작가와비평 #게르하르트하우프트만 #이관우 #서평이벤트 #외국소설 #독일소설 #노벨문학상 #하우프트만 #자연주의 |
?![]() ![]() ![]() 서평_조아나의 이단자_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_작가와비평
표지색부터 고전적이다. 연갈색. 십자가 그림에 모자를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떤 사제가 기도를 하는 모습인데 뭔가 으스스 한 느낌을 준다.
‘조아나의 이단자’ -독일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인 하우프트만의 두 작품을 통해 소시민의 고난과 비애를 깊이 있게 마주해보자. -이 책에는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두 편의 노벨레가 수록되어 있다. 참 다사다난한 인생을 산 작가였다. 세계 전쟁을 겪은 분이셨고 놀라운 건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에 대해 긍정적 논평을 달아줬다는 건데 전쟁 후 많은 논란이 오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문학사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었다. 거기다가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건 실로 대단한 것이다. ‘조아나의 이단자’는 웅장한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소설과 더불어 소시민의 비애와 궁핍한 삶을 그린 산문 문학이었다. 거기에 종교적인 이야기임에도 당시 14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 오브 베스트셀러였다. 어쩌면 재미 그 자체보다는 서민의 삶을 잘 녹여낸 소설이었기에 공감을 샀던 게 아닐까 싶다. 가톨릭 신부가 어느 남매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하게 되는 설정부터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물 설정이었을 듯하다. 그러면서도 사랑의 과정을 액자식 구조로 기가막히게 이끌어가서 과연 대가다운 면모의 작품이었다. ‘선로지기 틸’은 작가의 데뷔가 이었다. 거기다가 첫 작품으로 문학적으로도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설정부터가 흥미롭다. 첫 번째 여인과의 결혼으로 낳은 사랑하는 아들이 둘째 부인에 의해 죽음에 이르자 이를 극복하지 못한 체 정신이상자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정말 드라마틱 하고 요즘같이 장르물이 각광받는 시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끝내주는 소설이다. 아마도 이런 부분 때문에 드라마화되어 영상으로도 제작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이런 특출난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으며 파격적이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 적극 추천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조아나의이단자 #게르하르트하우프트만 #작가와비평 #책과콩나무 ? |
![]() ![]() ![]()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처음 들어본 작가이다. 내가 아는 독일 작가라면 하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정도이다. 물론 이들의 작품도 모두 읽은 건 아니라서 독일 문학에 대해 무언가 안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러니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이라는 이름은 낯설기 그지없을 뿐이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작가를 검색해보았다. 독일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극작품의 형식에 새로운 틀을 만들고, 사실주의와 몽환적 공상을 결합한 작품들을 쓰고, 자연주의 희곡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19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직조공들>>, <<한넬레의 승천>> 등이 있다고 한다. <<조아나의 이단자>>에는 그의 중단편 작품인 <조아나의 이단자><선로지기>라는 두 작품이 실려 있다. 두 작품 모두 상당히 흥미로웠다. 옳고 그릇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여전히 부족한지라 무어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라서 작가가 표현한 고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뿐이다. 또한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에 가만히 있을 부모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두 가지 화두가 모두 이성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본능에 따르는 것이 더 인간답다고 얘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본능 혹은 마음의 이끌림에 따른다는 것이 결코 옳지만은 않다. 그 결과가 누구도 납득할 수 없다면 말이다. 흥미로운 소설을 읽고,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이번 연휴 기간에 읽어야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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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마주하면서 나는 문득 이러한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특히 주인공인 남학생이 오래도록 집과 학교 밖에 오르는 모범생 같은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한 순간 우연히 눈에 들어온 상대에게 이성적 끌림을 느끼게 되었을때! 과연 나는 그 주인공의 내적 감정을 시작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혹여 그것은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짧은 격렬함일까? 아니면 하늘에서 눈꽃이 내리는 것과 같이 느리지만 영원할 것 같은 황홀함일까? 더욱이 경험없는 그가 나름의 사랑의 감정을 완성시킬때, 과연 상대를 마주하며 어떠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 이처럼 위의 다양한 상상을 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 스스로가 어느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할 때, (흔히) 그들이 처한 환경과 경험 등에 기댄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대상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이미지 등에 빗대어 비유하거나 또는 은유적으로 둘러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 나는 보다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알게 모르게 '낭만주의의 문학사조'를 따르려 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을 살다보면 의외로 위의 '아름다운 문장의 포장'은 사랑의 시작과 완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상대에게 나의 진실됨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볼 때, 나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사조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 소설의 이야기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사랑의 본질'에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소설에 표현되는 여러 문장들을 마주하면서, 나는 해당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문장들의 난해함에 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줄거리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짧지만 분명한 소설의 흐름과는 달리, 그 와중 주인공이 느낀 감정에 대한 저자의 표현... 그야말로 주인공이 오늘날까지 쌓아온 지성과 상식,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또 다른 감정이 개입되고 또 지배 당할때.,' 이른바 주인공의 내면에 피어나는 감정의 모습은 흔히 '첫사랑의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다른 소설들과 달랐으며, 특히 지금껏 종교인(사제)로서의 정체성과 점차 거부할 수 없는 감정 사이에서의 혼란에 대한 묘사 등이 보다 '솔직하기에'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기 껄끄러웠다. 다만 이미 21세기의 '막장 스토리에' 면역이 된 나에게 있어선 이전 '원초적 본능'에 해당하는 위의 이야기 따위는그다지 파격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해당 글이 지어진 1918년에는 아직 카톨릭이 지니는 종교적 가치와 함께, 낭만주의적 가치에 입각한 이성과 합리성이 사회의 미덕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에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한 사제의 이야기와 당시 사회 전반에 뿌리깊은 도시노동자의 (저임금과 착취 등의) 가혹한 현실을 과감하게 드러낸 저자의 '사실적인' 문학적 색채는 흔히 파격을 넘어,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단점.... 이 책의 표현법을 빌리자면 '이교도적 결함'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마치 '거울과 같은 역활'을 해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감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