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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번에 읽은 카렌 암스트롱의 '붓다' 처럼 문화 인류학적인 측면에서의 붓다의 일생과 가르침을 다루고 있다. 불교라는 종교의 '교조'로서 윤색 되기 전의 붓다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책의 내용과 함께 실린 사진은 붓다의 흔적을 보여주는 동시에 무상함마저 가르치고 있다.
붓다의 일생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많은 부분을 알고 있지만 저자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나 덧붙임을 새로이 알게 되어 재미있다.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나마 부처님의 제자 중 중요한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 책을 읽으므로써 새로이 깨닫게 된 것은 붓다가 왕자 시절 배운 통치술이 붓다 생존 당시 교단을 급격히 확장 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저자의 해석이다. 생각해 보면 붓다는 세계 성인 중에서 상대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나 제후들의 낙점을 받기 위해 전전했던 공자와는 달리 당대의 왕들이나 상인들에게 든든한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교단의 확장이 불교 교리의 우수성과 함께 붓다 자신의포교 방법론의 우수성을 지적하고 그것이 어릴 때 배운 통치술에 도움을 받았다고 해석한다.
나이들면 어떤 사람의 행위를 보면 그 행위의 저의나 원인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릴 때부터 무조건적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 기억 속에 낙인이 찍혀 있으면 커서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 때도 있다. 일종의 세뇌의 힘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면에서 용감하다. 붓다를 좀더 인간적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또한 그동안 한문으로만 전해졌던 붓다의 일생에서 벗어나 산스크리트어에서 한문으로 번역될 때의 의도나 오역까지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인도 문화와 중국문화의 차이를 설명해주어서 고맙다.
다만 당시의 인도상황에 대한 지도가 있었으면 더 이해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
< 책 내용 중>
*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란 파도타기이다. 우주 안에서 완전히 똑 같은 조건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파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파도를 타는 사람은 작은 보드 하나에 의지해서 파도를 탄다. 파도라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파도를 타는 사람은 그것을 정확히 읽고 파도로부터 자유롭다. 이것이 중도의 실천자가 변화하는 파도에 빠지지 않으면서 얻게 되는 고굥한 행복인 것이다. 중도란 변화 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는 정확한 인식에 기초한다. 현실을 사는데 있어서 시중 즉 시의적절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러한 상황판단은 곧 적중을 파생하고 이는 득중으로 귀결한다. 정확한 현실판단은 내적으로는 고요함을 그리고 외적으로는 유효적절한 실천을 수반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중도란 실천의 의미가 된다. 변화라는 연기의 세계 속에서 가장 유효적절한 내외의 실천이 바로 중도인 것이다. 그렇기 대문에 중도를 얻게 되면 안으로는 번뇌가 미치니 못하고 밖으로는 원망이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 공이란? 공이란 실체는 없지만 작용은 있다는 말이다. 실체란 변함없는 것을, 그리고 작용이란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연기나 무상, 무아의 교리와 맥을 같이 한다. 발간 장미가 있다고 하자. 이것이 빨간색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여러 색 중에서 빨간색을 반사하는 것이 인간의 눈에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빨간색으로 인간에게 보이는 것이지 그 자체가 빨간색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좀 더 논의를 진전시켜보면 모든 인간이 같은 빨간 장미를 봐도 그 인식되는 색깔은 각기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것은 각 개인의 눈과 장미를 보는 조건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한 사람이 보는 빨간색도 두 눈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두 눈 사이에 빛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미세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빨간 장미의 빨강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닌 가변적인 어떤 범주에 대한 지징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만일 장미의 빨강이라는 색이 고정된 실체라면 모든 인간은 그것을 똑같이 인식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색은 특수한 관계 속에서 편차를 수반한다. 이러한 특수한 관계를 '연기'라고 하고 색의 편차에 따른 비규정성을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일고 이 때 나의 판단과 관련 된 부분의 정당성은 '중도'가 된다. 연기가 현상적이라면, 공은 본체적이고 중도는 실천적인 것이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는 공히 '변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불교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불교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어려운 것이다. 불교는 단지 이런한 현실을 반영해서 정리해 주고 있을 뿐이다. 붓다의 깨달음은 바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바로보기'라고 하겠다.
위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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