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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中華)에 담긴 조선인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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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족이라고 불렀다. 동쪽에 있는 오랑캐(夷)라고 여겼다는 뜻이다. 요컨대 중국인들은 자신이 중심(中)에 있고 보편 문화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중화(中華)사상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18세기 중엽에 출간된 이중환의 지리서인 ‘택리지’를 보면 한반도의 모양을 중원 대륙에 읍(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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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족이라고 불렀다. 동쪽에 있는 오랑캐(夷)라고 여겼다는 뜻이다. 요컨대 중국인들은 자신이 중심(中)에 있고 보편 문화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중화(中華)사상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18세기 중엽에 출간된 이중환의 지리서인 ‘택리지’를 보면 한반도의 모양을 중원 대륙에 읍(揖)하는 노인의 형상으로 묘사했다. 또 그는 한양 천도 후 300년이 지난 즈음에 조선이 ‘작은 중화’를 이뤘다고 평했다. 조선을 작은 중화로 표현했다는 것은 중국을 중화의 원류로 봤다는 뜻이다. 요컨대 조선이 중화 문명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17세기 김수홍이 그린 지도인 ‘천하고금대총편람도’와 ‘조선팔도고금총람도’를 보면 중심에는 중원 대륙이 있고 그 옆에 조선이 강조돼 있다. 지도에는 지명과 함께 그 지역에 관련된 역사적 인물이 수록돼 있다. 그런데 인물 모두는 중화 문명과 관련된 인물이고 지도의 제목 가운데 ‘고금(古今)’은 예로부터 현재까지라며 시기를 한정하고 있는데, 지금(今)은 명나라까지만 다루고 있다. 즉 김수홍의 세계관에 청나라는 없었다. 김수홍은 중원 대륙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는 명나라에서 끝났다고 본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인 김상용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했다. 가족이 당한 현실적인 아픔까지 지도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세계관은 두 사람의 평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선말 의병 운동가인 유인석의 세계관도 위의 두 사람과 닮아 있다. 유인석은 중원에 중화 국가가 없는 현실에서 조선이 문화적으로 중화였다고 평한다. 그러니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시도는 중화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은 위정척사파의 거두인 최익현의 논리에 연결돼 있다. 요컨대 조선 지식인이 가지고 있었던 중화사상은 사대에만 그친 게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논리로 연결됐다. 이는 중화를 자주(自主)적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세기 민족주의 사학의 거두인 신채호는 중화주의를 ‘노예사상’으로 보고 조선이 주인이라는 ‘낭가사상’을 주장했다. 낭가사상을 바탕으로 일본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자는 것이 신채호의 역사적 시각이었다.

이렇듯 중화라는 단어에는 조선인들의 가치관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중화는 조선 지식인의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키워드인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중화요리집’이라는 간판이 새롭게 보인다.

e****n 2014.07.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