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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1), 아들들(2), 분열된 일가(3)
"대지(1), 아들들(2), 분열된 일가(3)" 내용보기
잘 알려지고 영화화된 소설은 낯익기 때문에 책으로는 미루게 된다.한 신문사에서 조사한 독자 1000명이 선정한 책의 5위에 있는 걸 보고 ‘더 미루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게됐다.책이 3부작이라는 걸 이번에야 알게되었고, 시간을 두고 3권을 일독할 기회를 갖게되었다.‘맛깔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을만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이유나 재미중에 ‘다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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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고 영화화된 소설은 낯익기 때문에 책으로는 미루게 된다.


한 신문사에서 조사한 독자 1000명이 선정한 책의 5위에 있는 걸 보고 ‘더 미루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책이 3부작이라는 걸 이번에야 알게되었고, 시간을 두고 3권을 일독할 기회를 갖게되었다.


‘맛깔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을만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이유나 재미중에 ‘다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고 끝이나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주는 이야기이다. 


삶이란 것, 인생이란 것의 모습을 보여주는 ‘삶에 대한 대서사’로 느껴진다.


3권은 3대에 걸친 이야기인데, 1권의 주인공인 ‘왕릉’은 가난한 농부로 태어나서 당시 그 동네의 가장 큰 부잣집의 하녀인 ‘오란’을 아내로 들여 두 사람이 성실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땅을 사들이며 하나씩 일구어 나간다. 그 과정을 따라 읽어가는 재미를 준다.


계속된 기근에 살던 땅을 떠나 도시의 빈민이 되는데 과연 그가 계속된 삶의 굴레를 어떻게 끊고 자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이어진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활이다보니 고향에 돌아갈 돈도 없고, 설령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돈은 생각지도 못할 형편.


이때 왕릉과 오란에게 벌어지는 삶의 ‘우연’은 좀 비약이 큰 듯도 하다.

폭동속에 부잣집에서 얻게 된 재물로 고향으로 돌아오고 다시 농사를 시작하고, 자본이 있고 근면하니 돈이 돈을 계속 키워 나간다. 나중에는 오란이 있던 부잣집을 사들여 동네 최고의 부자가 된다. 


이후 기생에 빠지는 왕릉, 오란이 느끼는 서운함, 그리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제자리를 찾아가는 왕릉의 모습은 멜로드라마의 모습이니 재미있을 밖에.


세 명의 아들, 왕따, 왕얼, 왕후의 각기 다른 모습을 보면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왕릉의 삶이야 어떠했던간에 이 세 아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쉽게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 이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또 다른 흥미를 준다.


2권의 내용은 이 세 아들의 이야기이고 그래서 책의 제목도 ‘아들들’인 것 같다. 


부자로 돈을 불리는데는 큰 관심도 없고 쾌락만 쫓는 왕따, 그와는 반대적 성향으로 돈을 버는데만 관심이 있는 둘째 왕얼.


인생관은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공들여 공부시키지만 치장과 즐거움만 쫓아다니는 왕따의 아들, 아들을 아는 상인의 조수로 보내 장사를 가르치는 왕얼.


세째인 왕후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연적이 되다보니, 집을 떠나 남방으로 가고, 후에 군인이 되서 돌아온다. 자신이 이끌던 세력을 세워 지방 군벌이 된다. 2권 후반부에는 왕후의 분량이 많다.


2대를 거쳐 3대에 와서는 자식들이 많아지니 등장 인물도 좀 늘어나지만 3권의 주인공은 왕후의 아들인 왕위안이다.


여기에 첫째 왕따의 아들인 ‘솅’과 ‘멩’이 나오고, 위안의 이복 동생인 ‘아이란’이 등장하면서 왕릉의 일가는 다양한 모습으로 분열된다. 3권의 제목도 ‘분열된 일가’이다.


강한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가출하여 남방 도시에서 이복 동생인 아이란의 가족과 생활을 하다, 혁명 세력과 결부된 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맞는다.


가족의 재력으로 구출되고 “솅”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유학 생활, 그리고 귀국 후에 아이란의 어머니인 노부인이 수양 딸로 데려온 ‘메이링’을 사랑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있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이야기, 갈등, 역사적 사건, 멜로가 3대에 걸쳐 벌어진다. “왜 이 소설을 좋아할까?” 생각해 보면,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삶의 파노라마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젊음은 화려하지만 늙음은 추하게 느껴지고, “늙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는 소설의 한 구절처럼 삶의 허무를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이러하던 저러하던 시간은 흘러가고 삶의 주인공은 젊은 사람들로 바뀌어 가며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니, 재미있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 싶다.


11/12/2017

a***k 2017.12.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대지(장왕록 장영희 교수 번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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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할 수 있었건, 이 대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건 간에, 최종의 승리자는 저 대지 위의 농민들이라네."영화 <황야의 7인>에서 율 브리너가 마지막으로 행하는 대사입니다. 중국 대륙을 최후로 통일한 정복 왕조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성한 무력을 지녔던 만주족의 청(淸)이었으나, 오늘날 종족적 특성을 지닌 단위로서의 여진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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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할 수 있었건, 이 대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건 간에, 최종의 승리자는 저 대지 위의 농민들이라네."


영화 <황야의 7인>에서 율 브리너가 마지막으로 행하는 대사입니다. 중국 대륙을 최후로 통일한 정복 왕조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성한 무력을 지녔던 만주족의 청(淸)이었으나, 오늘날 종족적 특성을 지닌 단위로서의 여진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에조차 경멸 받는 농투성이와 그 후예들은, 폼 안 나고 꼬질꼬질한 모습일지언정, 오늘도 압도적인 머리수를 앞세워 지구촌 곳곳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 개인적으로 아주 어렸을 적에 읽은 고전입니다. 보통 그렇겠지만, 초등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특히 독서 장려 활동을 하던 만나게 된 작품이며, 대개  초등생들이 접하는 한계인 1권이 아닌, 2, 3부의 전질을, 의무가 아닌 흥미로서 읽었던 기억입니다. 저자 펄 벅의 의도는 꼭 그런 게 아니었겠으나, 가난한 농민인 왕룽이 중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제 나름으로 거대한 부를 일궈 가는 과정도, 무에서부터 유를 창출하는 입지전의 성격을 갖고 있어 어린 마음에 일종의 흥분을 불어 넣어 주기도 했던 것 같구요. 또 하나의 다른 동기는, kbs에서 제작, 방영했던 박인환씨 주연의 드라마 <왕룽일가>를 재밌게 보았던 체험이었습니다(등장 인물의 이름과 배경 외에 아무 공통점이 없는, 우리나라 소설가 박영한의 원작이긴 하지만).

부(富)의 형성 과정이 떳떳지 못하여, 필요 이상으로, 혹은 일상적 패턴으로 부자들이 비난을 받는 곳이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서도 부러움의 시선을 받고 있기도 하니, 공동체의 윤리 타락이 거의 추세적 대세를 형성해 가는,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형편이기도 하죠. 소설의 제목도 그러하거니와, 주인공에 부여된 기본 성격도 "정직한 농민"의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 이 소설에서조차, 초기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는 지극히 우연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입니다. 미국이건 어디건 "타인의 위트(정신적 기민함이라는 의미에서)가 다하는 그 시점"을 치고들어가는 게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생존 요령이라고 하지만, 왕룽 부부 역시 철저히 이 원칙에 충실한 방법으로, 거부(巨富) 형성의 기초를 마련한 이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란은, 바로 그 허점을 제공해 준 황부자 댁의 하녀 출신이었으니 말입니다.

재작년 초에 개봉한 <폼페이>의 원작 소설에 나오지만, 사회가 상대적 안정을 누리던 시기에조차 부의 격동적, 우연적 이전, 계층 역전은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이 과정에서, 상속자로서 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열패감은, 본시 그렇게 태어난 하층민의 좌절감을 몇 배는 능가하는 모습으로 발현합니다. 충족되지 못한 동기와 목표의식은 분노로 바뀌고, 이 조악하고 미숙한 감정은 범죄와 패륜의 형태로까지 드러나곤 하죠. "못난 상속인 컴플렉스"는 그래서 현실이건 문학 속에서건 제법 흥미로운 특징적 심리를 이룹니다.

어린이의 독서를 지도하던 그 선생님께선 제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넌 어느 아들이 제일 마음에 드니?" 어려운 문제였고, 지금의 제게는 더욱 난제로 다가옵니다. 질문 자체도 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그 중에 꼭 누구를 골라야 하나요?"), 대체 왜 그런 질문을 제게 하셨는지도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요즘 20대 후반의 여교사들이라면, 가까운 장래 초등학교 교사가 될 이 중에 과연 몇이나 이 작품을 읽고 현장에 임용되고 있을까요? 이는 형식적 교양, 지성/무지를 가르는 어떤 유형적 지표의 마련과는 무관하게, 개인의 영혼에 있어 토양의 비옥도를 형성하는 아주 기초적인 작업이라는 점에서 하는 말입니다. 제자에게 성공적인 성과 인격의 함양을 이뤄 주려면, 일단 교사 자신부터가 인격자, 독서인이라야 한다는 전제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재작년 연휴 초반, 굵직굵직한 뉴스도 많았지만, 유독 한국인들의 시선을 단번에, 강렬하게 잡아챈 소식이, 경상남도 양산에서 벌어진 아파트 방화 미수 사건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사업 자금 마련을 넉넉히 해 주지 않는다고, 적지 않은 규모 한 동을 통째 태워버리려 (딴에는)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거친, 어처구니 없는 희비극이었죠. 그런 부모야 그런 자식을 가진 업보로 해를 입는다 쳐도, 이웃 주민들은 무슨 죄로 피해를 본다는 건지요. 아마 만만찮은 부를 자신 대에 형성한 그 어머니도, 필시 격변의 한국 현대사 와중에서 왕룽, 오란처럼, 일부는 자신의 기민함, 일부는 기막힌 행운으로 그런 기반을 마련했을 텝니다. 못난 자식의 비뚤어진 욕망이 사회에 대한 분노로 바꾸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익애로 버릇을 망가뜨리는 편이 차라리 나은 선택이었을지, 개탄과 경악을 동시에 자아내며, 오랜 고전에 다시 손이 가게 하는 씁쓸한 사건이었습니다.

v*****7 2016.01.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