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할 때면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뜨거운 분노와 피가 끓어오르곤 한다. 강제로 타국을 점령한 가해자인 일본, 그리고 그 아래 아스라이 사라져간 수많은 아까운 생명과 희생으로 점철된 시간은 우리는 '피해자'라고 규정하며 말이다. 그런 시선 아래 과거사를 이야기할 때 수없이 '책임'을 논하며 우리가 받은 피해를 인정받고 그에 따른 적절한 배상이나 보상,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문제의 모든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그러한 폭력이 가능하게끔 만든 당대의 사고체계나 인식, 감수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성찰의 계기로 삼을 때에만 이 시기와 진정한 단절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단순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갈등이나 침략의 시선으로 해석한 역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되짚어가며 이를 재조명하였다. 역사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하며 책임의 여지로 나누는 사건 중심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복잡한 마음, 역사 속 인물들에 집중해 풀이했는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랑하고 실수하며, 꿈꾸고 욕망하는 당시 인물들의 입체적인 모습이 얽힌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가며 식민제국주의를 생각할 때면 '피해와 가해'만을 떠올리던 과거의 좁았던 시야와 생각을 깨뜨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된 책이었다. 그중 하나의 예로, 책의 제목으로도 언급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존재한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동남아시아 일대를 점령한 일본군은 미얀마를 넘어 인도까지 넘보고 있었고, 이를 위해 태국-미얀마를 잇는 철도 건설을 결정하며 이 다리 공사에 연합군 포로와 현지 민간인을 강제 동원했다. 험지에서의 어려운 공사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어나갔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죽음의 철도 공사에 포로감시원 역할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있었다. 일본군에게는 포로들을 제대로 감시하라며 맞았지만, 포로들을 학대하며 현장을 이끌었던 조선인의 얼굴은 포로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우리가 피해자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가해자의 역사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포로감시원들은 그곳에 '강제로' 징용되어 갔다는 사실에도 전범 재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들의 일본인 상관 다수는 재판도 받지 않고 그대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부당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하지만 명령에 따라 저지른 폭력과 포로들에게 오랜 트라우마와 고통을 안겨준 포로감시원 조선인들의 행위는 과연 책임이 없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콰이강 다리 위에 있었던 조선인 감시원들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 중첩된 운명을 살아간 이들의 사연을 인물 중심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과연 '가해와 피해'로만 바라보던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는 시간이 되었고, 그 질문의 끝에 비로소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가해자인 일본의 사람이지만 신분을 숨기고 일제의 괴리인 만주국의 스타가 된 인물이자 전후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했던 리샹란, 질소비료 개발로 식량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염소가스 제조법을 발명하며 대량학살의 시대를 불러온 유대인 프리츠 하버, 약육강식의 질서를 내면화한 인물이자 세간의 비난 속에서 나혜석과 박인덕을 공개 변호한 계몽 지식인 윤치호, 서구 남성의 동양 여성 판타지에 일조한 할리우드 스타이자 나치에 맞선 독일인 마를레네 디트리히, 아프리카 원주민의 사라져가는 삶을 사명을 다해 기록한 나치 연루자 레니 리펜슈탈까지 18개의 대표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각 사건의 인물 중심으로 들여다본 역사는 국가나 민족, 선과 악, 피해와 가해의 논리로 포착하기 어려운 인간의 다양한 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고, 그의 후손이 이어져 또 삶을 반복하며 이어가는 시간이 역사가 되니, 결국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이구나 하는 깨우침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시점을 조금만 달리해 보니 사건의 연속으로 점철되었던 역사는, 다수의 인물들이 이러한 역사에 휘말리고 역사를 만들다가 이윽고 역사가 되는 그 현장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얽혀있고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을 악랄한 가해자인 악마 혹은 애달픈 희생의 피해자로 그리지 않고 각각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며 그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 역사가 그들에게 져야 할 책임을 함께 보려 애쓴 시각이 담긴 글이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겪었던 그 시각을 '피해의 역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가 져야 할 역사적 책임이 없는지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되돌아본다면 지금까지 이어온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용기 있는 제안이기도 했다. 우리가 지나온 지난한 역사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에서 연루된 주체로서 공동의 얽혀있는 역사를 바로 마주할 수 있겠다는 책의 제안이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했다. 파국의 역사 속에서도 상관 몰래 포로들을 위해 열차의 문을 열어두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 오래 회자되는 대단한 사건도, 역사를 바꾸고 뒤흔드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 한 사람의 마음은 포로였던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기록으로 남겨졌고, 이러한 사소한 '선택'은 역사의 흐름 속에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내었다. 이념과 국적, 인종을 넘어 보편을 향했던 작은 선택들을 되돌아보고 곱씹으며 그 섬광 같은 마음을 통해 다른 역사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든다.
|
요즈음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한 역사관이 여러 갈등을 낳고 있다. 뉴라이트 문제 친일 문제 등 여러 문제들로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그 속에서 잊혀졌던 인물들을 되새기고 우리의 역사관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역사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 본다. 대학 때 읽은 E.H. 카(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생각 난다. E.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학의 본질과 역사 연구의 방법론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책으로, 역사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는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가의 해석과 선택이 개입된 것으로 본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가가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주장하며,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사가의 주관적 견해가 역사를 해석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역사가들은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역사는 사실의 선택과 해석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지며, 에 따르면, 역사는 항상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때문에 같은 역사적 사실이라도 시대적 변화와 시기에 따라서 그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관련하여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우리나라 인물들과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지 이야기 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조형근님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였다. 최근 역사 논란과 함께 꼭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다. ![]() 저자인 조형근님은 사회학자. 늦은 나이에 정규직(한림대) 교수가 되었으나 적성을 찾아 사직하고, 파주 교하의 협동조합 책방에서 집필과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동네살이의 일환으로 합창단과 미얀마연대 활동에도 참여 중이다. 제국과 식민지 사이를 헤쳐나간 사람들의 삶, 사랑과 상처에 관심을 기울여온 역사사회학자이기도 하다. 저서로 《우리 안의 친일》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사회》, 공저로 《근대주체와 식민지 규율권력》 《식민지의 일상》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등이 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역사의 후퇴 앞에서 리샹란을 생각하다 2. 〈너의 이름은〉, 기억함으로써 잊는 것 3.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4. 카스바에서의 망향, 자기 연민의 서사를 넘어서기 5. 한국인을 혐오한 어떤 서구인 이야기 6. 세계 일주의 꿈, 돌아와서 만나는 나 7. 에레나를 아시나요? 8. 서구의 시선이 동양 여성을 그릴 때 9.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까? 10. 압록강을 건넌 의사들 11. 재난의 공동체, 무정과 동정을 넘어 12. 식민지에도 스타는 탄생하는가? 13. 사할린 한인, 나의 나라는 어디인가? 14. 혁명과 사랑의 이중주 15. 레니 리펜슈탈, 무지한 아름다움은 무죄일까? 16. 작은 사람은 어떻게 성숙해질까? 17. 〈사운드 오브 뮤직〉 너머 들리지 않는 이야기 18. 별 없이 걸었다 캄캄한 식민의 밤을 ![]() 조형근님의 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친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간 수많은 개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역사서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과는 다른 관점에서, 각기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상호작용했던 동시대 인물들의 연결을 살피며,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사고 체계, 인식, 감수성 등의 유산을 이야기 해 준다. 이는 역사를 과거의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담긴 복잡다단한 인간의 마음과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이끈다. 또한, 이 책은 전통적인 역사적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에게 역사적 책임과 그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조형근은 책을 통해 파리코뮌, 러일전쟁, 의화단운동, 제1차 세계대전, 3.1운동, 제1차 상하이사변, 베를린 올림픽,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역사적 사건 속에서 살아간 다양한 인물들을 조명한다. 이들은 정치인과 군인, 연예인과 작가, 과학자와 지식인, 성을 파는 여성과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와 밀정, 평범한 생활인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 책은 그들의 선택과 행동을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간다. 예를 들어, 일본군에 의해 버마로 강제 징용되어 포로 감시원이 된 조선인들, 신분을 숨기고 일제 괴뢰 만주국의 스타가 되었으나 후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선 일본 평화운동가 리샹란, 염소가스 제조법을 발명하여 대량학살의 시대를 연 프리츠 하버, 약육강식의 질서를 내면화하면서도 이혼녀들을 변호한 윤치호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역사의 주역들이었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숭고하고, 때로는 비열한 선택을 하며, 이 선택들이 새로운 사건으로 이어지는 연쇄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국가와 민족, 선과 악, 승리와 패배, 피해와 가해의 경계를 넘어선 역사의 복합성을 깨닫게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거시적 관점이 아닌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저자는 대규모 전투나 전쟁 같은 큰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휘말린 개인들의 복잡한 감정과 선택을 상세히 다룬다. 예를 들어, 콰이강의 다리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의 이야기에서는 그들이 단순히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던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느낀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드러낸다. 그들은 일본군에게 맞고, 포로들을 학대하는 가해자였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징용되어 왔다는 사실과 전범 재판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이중적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서술은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 더 복잡한 인간적 현실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를 '인간의 이야기'로서 풀어간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순히 악인과 선인,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전통적 역사적 인물을 넘어,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프리츠 하버의 손녀가 할아버지가 만든 독가스의 해독제를 개발하던 중, 연구 예산이 핵폭탄 개발로 우선 투입된다는 소식에 자살을 선택한 이야기는 과학의 발전이 단지 인류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군 포로 감시원이었던 조선인이 영국인 포로를 구하기 위해 열차 문을 열어준 작은 행동은 역사 속 개인의 작은 선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 속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복잡한지를 강조한다. 그들의 선택은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으며, 그들의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국주의 시기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는 보통 이 시기를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그로 인한 피해로만 이해하려고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폭력을 가능하게 한 당대의 사고 체계, 인식, 감수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과학이 단순히 인류를 구원하는 도구가 아니라, 힘과 경쟁력으로 환원된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과학의 발전이 어떻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가능하게 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현재까지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또한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한국과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서는 베트남인 희생자와 반전 운동가들이 배제되고, 참전 군인만이 기억되고 추모된다. 이는 우리가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에서 국가적 애도를 표하면서도 비극을 야기한 구조에 대한 성찰은 부족함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선택적 기억이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 이 책은 특히 복잡한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할 것 같다. 또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역사적 성찰의 중요성을 깨닫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방식을 재고하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과거의 사건들이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은, 현재 우리 사회를 대립으로 이끌고 있는 역사관에 대한 논쟁에 대한 해법과 함께,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성찰을 제공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화가이자, 작가였다 서양화가 그리고 문필가의 삶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20세기 초 여성 해방운동과 성 평등에 대한 논쟁적 주제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혜석은 일생 동안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작가, 페미니스트, 사회적 논객으로서도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나혜석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서당을 업으로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부터 학문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으로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1913년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 여자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에 입학해 미술를 배웠다. 이때 그녀는 일본의 서양 미술과 함께 다양한 사상과 문학적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녀의 예술적 방향을 결정지었다. 나혜석은 서양화를 공부하며 당시 유럽 미술의 흐름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했다. 그녀는 1915년 귀국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참가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의 작품은 주로 인물화와 풍경화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사실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대표작으로는 '자화상', '영의정 박영효', '정원을 거닐며', '가을의 들판'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여성의 감정과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사회의 억압적인 틀에서 깰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그녀는 또한 여성 예술가로서 겪는 사회적 제약과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작품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그녀의 그림은 여성의 내면과 자유에 대한 탐구를 주요 주제로 삼았다. 특히 자화상을 통해 자아를 직시하는 작품은 그녀가 여성으로서 겪는 갈등과 자기표현의 욕구를 담아냈다. 나혜석은 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문필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녀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1914년 발표한 단편소설 '경희'는 여성의 독립을 주제로 다룬 작품으로,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소설은 여성이 단순히 가족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녀는 이후에도 다양한 논문과 에세이를 통해 여성 해방, 성 평등, 자유연애에 대한 주장을 펼쳤다. 특히 1920년대에 발표한 '이혼 고백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글에서 나혜석은 자신의 이혼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이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대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나혜석은 이로 인해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혜석은 예술가와 작가로서 활동하는 동시에 여성의 권리와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힘썼다. 그녀는 1920년대 후반부터 여성 단체인 조선여자 교육 협회, 근우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여성 교육과 사회적 권리 신장에 앞장섰다. 또한 그녀는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여러 강연과 집회에 참여하여, 여성이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역에서도 평등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일제 감정기 시대에 주장하였다. 나혜석은 당시 여성에게 강요된 전통적 역할을 비판하며,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입장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고, 나혜석은 이로 인해 많은 비판과 사회적 억압을 경험했다. 특히 자유연애와 여성의 성적 자유에 대한 그녀의 주장은 많은 반감을 샀다. 나혜석의 세계 여행 나혜석의 세계여행은 그녀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예술과 사상, 그리고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혜석은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세계 여행을 했으며, 이 기간 동안 서양 문물을 직접 접하고 자신의 예술 세계와 사회적 인식을 변화 시켰다. 1927년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이 일본 영사관의 직책으로 파리로 발령받자 그와 함께 유럽으로 떠났다. 나혜석에게 이 여행은 단순한 동반자로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세계를 체험하고자 하는 중요한 기회였다. 당시 나혜석은 이미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었으며, 이번 여행을 통해 서양의 예술적 흐름과 문화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적 경계를 넓히려는 의도가 강했다. 나혜석은 남편과 함께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서양의 미술과 문화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머물며 당시 유럽의 예술적 중심지인 파리의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서양의 현대 미술과 다양한 예술 사조를 접했다. 이때 그녀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미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녀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혜석은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여행 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그렸다. 또한 나혜석은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국의 예술과 문화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방식을 목격했다. 유럽의 여성들이 보다 자유롭게 사회 활동을 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혜석은 자신의 여성 해방에 대한 생각을 더욱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유럽을 여행한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방문했다. 미국에서의 경험 역시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서구 사회의 발전과 현대화된 문물을 목격한 나혜석은 한국의 낙후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나혜석은 소르본 대학에서 청강을 하며 서양 철학과 사상에 대해 배웠다. 그녀는 서양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여성 해방 사상 등을 접하며 자신의 사상적 지평을 넓혔다. 이러한 경험은 나혜석이 이후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와 성적 자유, 독립을 주장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특히 나혜석은 서구의 예술과 문학이 개인의 감정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러한 방식으로 예술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이 시기의 나혜석 작품에는 개인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나혜석의 세계 여행은 그녀의 예술적, 사상적 성숙을 가져왔지만, 그녀의 개인적 삶에는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 여행 중에 중국 상하이에서 동료 최린과의 연애 사건이 발생하면서 나혜석의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았다. 1929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 그녀는 이 사건으로 인해 남편 김우영과 이혼하게 되었다. 나혜석의 세계여행은 그녀에게 예술적, 사상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안겨주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삶에 큰 위기를 가져왔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 서양 문물과 예술을 직접 체험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또한 이 여행은 그녀가 여성 해방과 성적 자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일제 제국주의 시절 나혜석의 삶은 그 당시 일반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기회가 부여되어 이렇게 역사에 남을 소재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나혜석 외 다른 인물도 역사 속의 3차원적 인물로 서술한 책이 있다. 그 책은 조현근 선생님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한겨레출판>이다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한다. 이 책에서는 이 시대는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세상이 서로 깊이 연루된 시기”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틀 지은 가장 가까운 과거”라고 규정한다 이 책에서는 이 시기의 대륙을 넘나드는 동시대 인물들의 크로스웍을 통해 역사를 전개해 나간다. (동시다발적인 역사적인 서술 이어지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제국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움직이고 반응하는 개인의 감정, 사고 체계, 그리고 욕망과 실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이 책은 역사적 사건을 국가와 민족의 중심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집중한다. 각 인물들의 삶이 연결되고, 그 연결의 맥락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 책의 저자는 큰 시간을 할애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역사가 일방적으로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다시 역사를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책은 다차원인 상호작용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만, 그 시대의 역사적 유물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지도 서술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당대 인물들이 형성한 사고 체계와 감수성이 오늘날에도 깊숙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 시대에 형성된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나 인종적 편견이 현대 사회의 구조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 분석한다. 이 책은 개인의 내면적 동기와 감정, 그들의 일상적 선택과 실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랑, 실수, 욕망, 좌절과 같은 인간적 경험들이 그 시대의 역사적 구조와 맞물려 어떻게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있어 역사에 대한 책임 연대주의를 각인시킨다. 역사라는 틀 속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어떤 책임을 졌는지, 그리고 현대의 독자들이 이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라는 부채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함께 살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역사와 그 연루된 책임을 깊이 탐구하며, 현대의 독자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을 느끼게 끔한다. 결국, 이 책은 제국주의 시대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나열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삶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현대인들에게 책임을 묻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책을 한 번이 아닌 두세 번 아니 서너 번 정도의 반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
|
|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다시 겪어야 했으며, 고 김용균 씨의 산재 사고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일터에서 스러져 간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젠더 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잊지 않겠다’는 말만이 공허하게 남는다. 우리 사회는 대체 무엇을 기억해 온 것인가? 혹은 누가 그 기억을 소홀히 다루었는가? 역사 속 비극을 단순히 잊지 않고 기억하는 행위만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어려운 듯하다. 역사적 사건이 결코 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느끼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비로소 그 기억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도 모른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는 근현대 시기의 식민지 조선을 비롯해 제국주의 일본과 당시 서구 사회의 여러 개인이 국가나 민족의 경계를 넘어 관계 맺은 방식을 보여주며 넓은 시각으로 역사를 조망한다.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만을 보여주기보다 그 속의 다양한 개인을 조명하는 저자의 서술 방식은 국가 내에서 다양한 개인의 경험이 항상 국가나 민족 단위로 묶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책에서 식민지 조선과 관계된 타국의 개인들이 조명되는 모습을 통해 독자는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어 온 방식이 결코 단선적이지 않으며, 역사 속에서 누구든 완전한 피해자나 가해자로서만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타자의 입장에 ‘연루’되는 역사 인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초반부에 제시된 식민지 조선과 일본 제국주의 속 여러 개인을 다룬 부분에서 피해·가해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소속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일본군의 포로였던 연합군 병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일본군 포로였던 알리스터 어쿼트의 회고록 《잊힌 하이랜더 부대원》에는 그가 태국과 버마(미얀마)를 잇는 콰이강의 다리 공사에 동원되었을 때 겪은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폭력 행위가 서술되었다. 포로감시원은 주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동원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폭력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동시에 이 폭력 뒤에는 물자 부족과 폭력적인 일본군의 포로 대우 관습, 상명하복 문화라는 맥락이 존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완전한 피해자로도, 가해자로도 분류될 수 없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피해와 가해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는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잭 런던의 동양인 혐오를 소개하며, 이 혐오가 최근 한국에서 다른 나라를 얕보는 형태로 재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다. 전쟁 시기 여성에 대한 인식도 비교적 최근까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풋라이트 익스프레스〉에 등장한 동양 직업여성 캐릭터 ‘상하이 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약소국의 여성은 국가에 의해 자행된 성착취 제도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으며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성적으로 대상화되었다.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문제임에도 자국 남성들은 이들을 동정하거나 수치스러운 존재로 바라봤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미군과 한국 정부에 의해 자행된 기지촌 미군 ‘위안부’ 문제는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우리나라 역시 전쟁 시기 성매매에 적극 가담했다는 책임에서 그다지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외에 파리코뮌 현장에서 활동한 조선인의 사례, 영화사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나 나치에 가담했다는 비판을 받는 레니 리펜슈탈, 평범한 ‘작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역사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 독일인 등 서구의 이야기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어지는 역사와 역사의 가해자로서 인식해야 할 책임을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역사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자문하게 한다. 베트남 출신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보인 부도덕성을 숨겼음을 지적하며 “세계가 기억의 예술을 어떻게 형성하고 다시 그것이 어떻게 세계를 형성하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기능했다고 비판한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는 세계가 나아갈 방향성을 좌우하는 문제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역사와 더 넓고 깊게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피해를 애도하면서도 가해 사실에 눈 감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한 나라 안에서 같은 역사를 겪었더라도 젠더나 계급 정체성에 따라 그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역사 속 인물과의 연루를 통해 배웠다. 이 책으로 역사 속 인물들과 관계되며 ‘연루됨의 윤리’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면 수많은 타자의 입장에 서 보며 반복되듯 이어지는 사회 속에서 져야 할 ‘내 몫의 책임’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조형근/한겨레출판19세기 말 ~ 20세기 중반 근대사를 관통하는 통찰력 넘치는 시선으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이야기, 바로 조형근 저자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다.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를 역사 속으로 이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우리의 선조가 지나온 시간처럼 역사임을 그 지속성을, 연결성을, 책임을 일깨워 준다. ![]() 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연재되었던 <조형근의 역사의 뒤페이지>를 책으로 엮었다. 총 18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동양의 작은 나라 한반도가 연루된,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의 인물을, 사건을, 역사를 풀어놓는다.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시작된 독서는 조형근 저자의 예리하고 명징한 서술로 역사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사고할 수 있었다. 에피소드 마무리에 그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남겨진 과제이자 살아가는 자세가 되어줄 묵직한 울림을 건네는 책이다. 조형근 저자는 "거칠고 자의적인 표현은 가급적 삼가려 한다"면서도 1장에서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밝히고 있다. 공명하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좀 더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리에 걸맞은 언행과 책임의식 그리고 사명감을 절절히 바라게 되는 요즘, 숨이 트이는 문장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희생자들과 연결되는 방식은 비극이 남긴 과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데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얽히고설켜 되새김질하듯 인물이나 사건들이 등장하여 환기시킨다. 이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역사의 뒤페이지답게 소설, 영화, 노래, 스포츠 등 친숙한 소재로 이끌어내는 역사적 사실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참담한 비극 앞에 이토록 작은 호의가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게도 된다. 다만 어쿼트는 이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됐다. 희망은 어쩌면 여기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당대에 미국 작가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인 잭 런던은 한국인을 혐오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끔찍했다. 겁 많고 나약하며 게으르고 도둑질 잘 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가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욕구를 느낄 정도로 한국인에 대한 강한 혐오를 피력한 잭 런던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서구에 의한 세계 지배를 당위로 받아들이는 사회진화론자였다. 약육강식이 세상의 진리라 믿는 사회진화론자들이 조선에도 있었다. 유길준, 윤치호. 조형근 저자는 이런 사상이 얼마나 무서우면서도 무지한지 잘 짚어준다. 약소민족, 피지배자인 조선인이 이런 자학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빤한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폄하한 3.1운동의 의의가 잘 말해주고 있다. <상하이 릴>, <상하이에서 돌아온 리루>, <에레나>, <나비 부인>, <미스 사이공>. 동양 여성을 향한 서구의 환상을 다루면서 한국 현대사에서 망각되는 이야기를 들추어낸다.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위안부에서 비롯된 양공주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다. 조형근 저자의 균형 잡힌 시선이 인상적이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보듬아야 할 것인가. 타자에게 입힌 상처를 기억할 때만, 우리가 입은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 그 균형을 잡기 전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 <너의 이름은>, <콰이강의 다리>, <바베트의 만찬>,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유명한 영화들이 역사적 사건과 비극과 연결되어 확장되어간다. 단순히 향유하고 감동받는 데 그쳤던 감상이 비평을 넘어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유하는, 의식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신일선, 나혜석, 박인덕, 이덕요, 이애리수, 이순탁, 이미륵 등 시대를 넘어 자신이 믿는 신념대로 열정적으로 살아간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양철북>, <만세전>, <무정> 등 문학작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동정을 넘어 해결로, 연민을 넘어 연대로 가는 길이 아직 먼 이유다. 그래도 그 길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짐하는 말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동지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해야 하는 고통, 참으로 무섭다. 일제가 심은 의혹의 씨앗, 밀정. 혁명가들은 사방이 캄캄한데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 이토록 연결되어 있었던가. 새삼 무심히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무지가 결코 면죄부가 아님을 무겁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연결된 이 세계를 외면하지 말고 들여다보며 연대하는 걸음을 익히도록 이끌어주는 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콰이강의다리위에조선인이있었네, #조형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
|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휘파람을 불 수 있게 되면서 정말 많이 따라 부른 그 노래 제목이 영화 속에서 나오던 "보기대령 행진곡(Colonel Bogey March)"이었구나.라는 지점에서 웃음이 나왔다. '연결됨' '연루됨' 이 책에서 말하는 18개의 이야기 속에 나와 우리가 그 이야기와 연루되고 연결되었다는 것은 보통의 다른 이야기와 달리 내게 더욱 흥미와 관심을 끄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책을 다 읽고 이런 구성, 이런 소재의 이야기, 이런 화두가 있었던 책을 최근에 읽은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휘파람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이 책의 제목이자 세 번째 이야기인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이야기를 먼저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연결됨, 연루됨. 지금이야 가깝다 할지 모르겠지만 타이, 미얀마 국경 지점에 포로수용소 이야기, 휘파람을 불던 그 군인들과 그들의 간수 이야기가 아닌 간수의 보조, 포로들의 직접적인 생활을 제어하던 사람들, 포로감시원이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사실 슬프다. 얼마 전 어느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일본 국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참 원론적인 이야기다.라고 반감은 들었으나 어찌 반박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는데~ 이젠 난 이 책을 읽고 그에게 묻고 싶다. 그럼 포로감시원(잘 감시하는지 감시당하며, 잘 때리라고 늘 맞는 사람)이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범자로 재판은 받았으니 일본 국적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에 따른 보상과 배상에서 또는 전쟁 후 그 지옥 같은 곳을 나올 때에는 왜 일본 국적자의 대우를 받지 못했는가? 묻고 싶다. 그 시절 우리 모두는 일본 국적으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는가? 서류에 적힌 잉크 무늬만을 말하는 것인가? 답답하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이면 참으로 서글프고 속상하다. 사할린 이야기가 또 그러하다. 일본 경찰에 의해 죽고 고문당하고 그다음은 소련 그리고 정작 그곳에서 나올 때 대한민국에서 도움의 손길은 없다. 분명 우리 사람인데 무국적. 그 속에서 고려인과 사할린 거주자의 갈등, 다른 이야기 속에 임시 정부 내에서 서로가 밀정이라 고발하고 해를 가하는 그런 시대적 상황을 관통해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답답해지는 이야기의 연속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모르고 살았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한겨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하니포터 서평단에 목을 매는 이유일까? 싶다.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 속에서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추천해 주고 가르쳐주는 지인이 되어버린~ 한겨레 마케터님은 갑작스러운 고백? 에 당황할 듯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휘발되어 버릴 것이 아까운 몇 문장을 기록해놓고자 한다. 연루됨의 윤리 참사 이후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으는 대신 ㅡ 이전으로 돌아가자며 '부흥'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나는 감시원이 문을 열어두는 걸 하락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고.... 아무도 탈출하지 않았다. 탈출은커녕 도착하자마자 문을 닫음으로써 호의를 베푼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의심받지 않도록~ 고의적인 태만함이 바로 유죄 나비부인에서 미스 사이공으로... 불평등을 각인한 문화적 텍스트 재난 disaster는 별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갈길을 잃은 재난 상황 "어쩌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이 아닐까?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타인의 영혼을 괴롭히지 말라." 그만 써야 할 듯하다. 글자수 제한이 있으니~ 밀린 책이 많지만 긴 연휴 기간 한번 더 읽게 될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글을 적었습니다. #콰이강의다리위에조선인이있었네 #조형근 #하니포터9기 #책추천 #한겨레출판사 #한겨레출판 |
![]() ? 나와 우리는 어쩌다 이런 세상에서 살게 됐을까? ? 오늘의 우리를 만든 과거는 어떤 세상이었을까? ? 역사 교과서에 적혀 있는 이야기 말고 다른 일은 없었을까? 이 책은 이런 호기심이 모여 세상에 나오게 됐다. 게다가 우리는 인간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 역사가 그들에게 져야 할 책임에 대한 질문을 놓을 수 없다. 인간은 ‘연루됨’ 자체가 인간의 실존 조건이고, ‘자신을 역사에 연루시키는 일.’ 그 자체가 인간 고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열여덟 개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연루됨의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책의 서문에서...) 전쟁, 자연재해, 과학과 문학 등에서 파생된 어떠한 거대한 역사인들 결국 모든 건 인간의 이야기다. 나와는 연루되지 않은 것 같은 이들의 이야기. 과연 그럴까. 우리는 어떻게든 연루되어 있다.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의 뒷면. 우리는 지금부터 조형근 저자를 통해 그것들을 들여다 볼 것이다.
이 책엔 흔히 세상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사와는 살짝 거리가 먼 나조차도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책을 펴자마자 쉼없이 쭉 읽어 나갔다. 한 주제를 이야기 하면서 연관된 영화나 역사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데 복잡하다는 생각은 커녕 오히려 흥미를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그러나 그저 ‘이면에 있는 색다른 이야기’에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제목에서도 한 이야기의 다양한 견해를 엿볼 수 있고 (나는 소제목을 훑는 데 맛이 들렸었다 ㅎㅎ),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을 때마다 등장하는 깨우침의 문장들이 처음엔 잔잔한 충격을 주다가 나중에는 마지막을 기대하며 읽게 돼서 책 읽는 맛이 났던 것 같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 법한, 우리와도 연루된 사람들의 이야기. 조형근 저자의 서문에 등장한 ‘생각해보면 호기심만큼 큰 힘도 찾기 어렵다.’라는 문장처럼, 이 책은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내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내게 색다른 신선함으로 다가 온 책이다. ! 이 책은 옳은 말을 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은 이들을 위해 준비된 이야기다. 이런 ‘옛날이야기’라면 하염없이 읽고 싶다. _ 장일호, <시사IN> 기자, <슬픔의 방문> 저자 *이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겨레출판 #조형근 #콰이강의다리위에조선인이있었네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서평단 #서포터즈 #북스타그램 #역사 #역사책 |
![]() 이 책은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는 사회학자 조형근이 시사주간지 《시사IN》에 연재한 《조형근의 역사 뒤페이지》 의 원고를 대폭 보강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한반도와 아시아, 서구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얽힌 역사를 살펴본다. 총 1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는데,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는 세 번째 글에 해당한다. 이 책에는 파리코뮌, 러일전쟁, 의화단운동,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 10월 혁명 등에서부터 베트남전쟁까지 굵직굵직한 근현대사를 다룬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를 위해 썼으며, 민족사의 정기를 확립한다든가,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미래에 대비한다든가 하는 거창한 목적은 없다고 밝힌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우리는 어쩌다가 지금과 같은 세상에 살게 되었는지, 오늘의 우리를 만든 가까운 과거는 어떤 세상이었는지 이러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은 없다고 했으나 독자인 나는 책에 실린 글들을 읽어나가면서 역사가 전하는 무거운 교훈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역사에 휘말리고 어느 시점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연루된다’라는 동사를 활용하여 ‘연루됨의 윤리’라는 표현을 이끌어 낸다. 저자는 역사에 연루된 사람들의 책임에 대해 시종일관 질문을 던지고 관습적인 인식을 재고하게 만든다. 여기서 관습적인 인식의 대표적인 예로는 일제 식민지하에 조선인은 피해자였으며, 일본 제국은 야만 무도한 가해자였다는 기억이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서있던 조선인은 누구였을까 책에 실린 열여덟 개의 글 중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이 책의 제목에 활용된 이 글은 바로 연루된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서 있었던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전쟁 물자 수송을 위해 태국과 버마(오늘날의 미얀마)를 잇는 철도 건설 현장에서 일한 포로감시원들이다. 철도 공사 현장에는 대략 1000여 명의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26만 명의 연합군 병사를 일본군의 포로로 만들었다. 일본은 포로 감시 인력이 부족하자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서 포로감시원 역할을 할 민간인, ‘군속’을 ‘모집’했다. 모집이라고는 하나 관이 지목해서 강권하면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식민지 조선인들 중에는 포로감시원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1925년 전남 보성의 가난한 소작농 집 첫째 아들로 태어난 이학래는 포로감시원이 되었는데 그는 이 모집이 ’사실은 강제 징용인 셈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역사에 연루된다. 철도 건설 현장에 포로감시원으로 투입된 조선인은 때려야 한다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하고 편안한 방구석에서 이 글을 읽는 나는 나의 부모님들의 부모님들이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당한 학대를 결코 알 수 없기에 감히 그들의 선택을 어느 한쪽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굽이굽이 흐르는 역사뿐만 아니라 짧디짧은 인생에서조차 쉬운 결론은 없다. 매 순간 이 모든 복잡함을 불편함을 기꺼이 껴안아야 한다. 나는 참혹하고 복잡한 슬픔을 느낀다. 동시에 폭력과 학대와 살육과 제노사이드의 현장에서 비껴있는 지금 이 순간의 시대와 공간에 살고 있음은 항상 감사히 여긴다. 따라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가한 학대를 받은 사람들의 후손들이 우리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면 기꺼이 머리를 숙여 사과할 것이다.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를 하는 것은 우리의 공동의 책임이며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나는 연루됨의 역사와 윤리를 이야기하는 좋은 책들을 통해 복잡한 현실을 미약하게나마 배우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집단적 망각 상태에서 편안하고 손쉬운 ‘피해자 정체성’만 선택하는 듯하다. 우리는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찬 존재이다. 우리는 상황이 허락하거나 또는 역사에 휘말릴 때 그 어떤 것이든 행할 수 있다. 나의 부모님의 부모님이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듯 후손인 나도 어느 지점에서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우리는 이 역사를 결코 잊어선 안된다. 역사를 읽으면서 인간 본성의 역사를 더듬는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
역사의 과정에서 완벽히 옳고 그름이란 존재할까?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콰이강 다리 건설에 얽힌 일본군의 만행은 각종 윤리적 논쟁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런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에 대해 소개하는데 우리는 이런 인물들과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특히 현재 조선의 식민지 상황 자체를 어쩔 수 없다며 정당화 하는 주장들이 등장하고 있는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우리는 친일행위에 앞장 섰지만 이후에 친일 행위를 사죄하고 국가의 잘못을 되돌리고자 노력한 리샹란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나치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주장하며 나치를 위해 영화를 만든 레펜슈탈같은 인물들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나라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책에서는 근대 독립운동 과정에서의 밀정의 문제도 언급된다.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했을까. 동정과 연민이라는 것도 그저 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다. 보여지기 위한 하나의 포장에 불과한 경우이기도 했다. 또 우리는 거대한 사건에 휩쓸렸다며 개인의 잘못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또 약육강식의 사고를 인정하며 약자의 시도들을 무시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근대의 동서양의 역사적 사건들을 건너며 다양한 윤리, 정치철학적 문제들을 제시한다. 큰 사건보다 역사의 개개인을 밝히며 행동의 원인들을 추적해 나가는데, 굉장히 몰입감 넘치고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 이어진다. 우리는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를 통해 이런 역사 속에서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