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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에게 한 마디 #
詩 돋는 오전 햇살이 따사롭다. 세상 모든 익명들이여! 당신들도 이제 그만 포근해지길... 큰 소망보다는 작은 리듬을 쓰고 싶다. 어렵사리 핀 미소라 부른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미소다. 개화開花된 밤, 세상 모든 은둔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지나가는 길. 그 길을 쌍둥이 밤이 지나간다. 돌아보며 인사하는 오전의 지난날들이다. 알잖은가, 삶이란 언제나 낮밤晝夜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은 것과 없는 것을 골몰하다가 나는 어느 밤이 되었는데(10쪽, 익명에서 익명에게), 익명의 시인도 그랬다 하네. 그래, 익명이 된 밤들에게 묻는다. “안녕하신가들?”
- 갇혀서 어둠을 물어뜯으며 제 안의 소리를 어두운 곳에 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울다가 다르게 울어보다가 밤에 길들여진다는 건 시간을 소리로 걸어보는 일일까(30쪽, 고양이 도마)
## 방랑에게 몇 마디 ##
길치가 방랑한다? 했다, 방랑. 장소의 맵시보다 훨씬 뒤에 있었던 사람들, 익명의 자유를 기어기어 찾아갔다. 어느 쇼윈도우에 걸친 내가 보였다. 탈의한 마네킹이 날 가리켰던 것도 기억한다. 울면서 ‘어서 가라, 어서 떠나라’ 채근하던 겨울도. 시집에 꽂아둔 승차권을 더듬는 저녁엔 손가락이 기억하는 방향이 있고 승차권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있고(14쪽, 방랑괴객)... 장거리 여행 때마다 차표를 화살표로 접곤 한다. 분홍 화살표, 연두 화살표, 하늘색 화살표... 색색의 책갈피가 흡수한 詩의 양만큼 나도 떠나 있었다. 상투적인 계절을 오래오래 부여잡기 위한 떠남이었는지 모른다. 가장 잘 알면서 모르겠는 날 찾기 위한 떠남이었는지도.
빈집에 저녁이 들어앉고 사나흘쯤 들어앉아 저녁이 빈집의 주인이 되면 물병에는 물 대신 시간이 고인다 몇억 광년 별빛이 처음으로 도착한다 자기 몸속 낯선 사람이 물병을 바라본다(14쪽, 방랑괴객) 빈 컵이 기다리고 있는 빈집에 들어온다는 일은 참으로 기이하다. 혹 기이함이란 채울 수 있는 빈 컵이 항시 마련되어 있다는 그것 아닐까. 물 대신 고인 시인의 저 물병처럼. ## 투명에게 한 마디 ##
투명의 반의 반 만에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런 바람 같은 거 잊고 산지 오래다. 반투명과 불투명의 중간 어디쯤을 무던히도 헤맸던 나. 그렇기에 더 열정적으로 앓았던 건 아닐런지. 그런 와중에 방문하는 한 줄기 빛이라니, 그게 훨씬 반갑고 기쁜 일이었지. 암, 덕분에 잠시 여유로울 수 있었잖아. 그런데 투명아, 어울리니? 이런 나???
침묵을 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진다. 목소리들. 운동과 침묵의 자리를 바꾸어도 괜찮겠다. 투명한 구멍. 우리가 우리 밖으로 엎질러지는, 다시, 시간.(40쪽, 목소리들)
식물처럼 헤어질 수도 있었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 자리에서, 병든지도 모르게 몰래 아프다가 그 자 리에 바스러지는 꿈 헤어져 다시 식물이 되는 꿈 나 의 그늘이 너의 그늘을 만나 습지가 되는 꿈, 불가능 한 물고기가 자란다 수은등 아래(20쪽, 투명)
행운목이 말라가고 있다. 나도 비척이니깐 너도 마땅히 그래야지, 그건 아니었다. 불투명의 멍함 들이 내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식물이고 싶다. “식물아, 적어도 우린 함께 있잖니?” 그러고 보니, 식植.물物. 참 정스럽지 못한 이름이네. 좀 인간적인... 아니다. 이만하고 물의 나라로 가보자.
## 침묵의 발열發熱 ##
무열이니 발열인 것이다. 열을 식히려고 찬물샤워를 한다. 몸이 식는다. 아니 그런데 마음은 뭘 하나, 따라 식지 않고. 여기 식물과 어둠과 익명 그리고 투명이 총출동한 시간들을 떠도는 물이 있다. 이를 침묵이라 한다. 침묵의 아우성. 모르는 슬픔이 나 몰래 옷을 벗는다 - 다 벗은 너는 지금, 다 벗은 늪의 식물 같다(52~3쪽, 물의 나라)
당신만 빠졌다. 자주 그렇듯 사랑만 뒤처져 온다. 내가 나의 발에서 계속 태어나는 내 짐승을 견디(61쪽, 새벽에 걷기)는 사이, 문이 활짝 열렸음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당신. 그리하여 책장은 느리게 나무로 돌아가(56쪽, 오전의 책장)고, 나는 다시금, 여지없이 소문이 되고 만다. 창이든 문이든 잘만 들고나는 그에 반해, 당신만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그늘처럼 멀찌감치 서 있기만 해, 하루가 더딘 것이다. 요일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시인의 것과는 사뭇 다른 요일들이다. 사랑보다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더한 목요일은 시인의 것. 특정인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할 특정 요일의 감정에 역행하는 오늘은 금요일. 개인에게 특정인으로 끼어들어 갖은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당신. 온갖 익명의 고통들이 일으키는 바람은 아주 적게 꽃을 피우곤 나몰라라 도망가기 일쑤. 이상하고 평범한 이름을 거울에 달에 새기곤 그리움으로 곧바로 웅크릴 줄 아는 밤. 좀 더 침묵할 수 있었다. 모든 것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 네 동공에 빛나던 내 얼굴이 자꾸만 가렵고 잠은 먼 데서 졸고 끝이라는 단어는 더 끝을 향해 달리고 새벽은 어두운 거울에서 움켜쥘 수 없는 낱말들로 굴절되는데, 호명 하는 모든 것들에게 내 이름을 나누어 주는데, 그것 들끼리 격렬한 사랑을 하러 창문 밖으로 기어 나가는 데, 시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시를 쓰고 있다는 어두 운 믿음만 있는데, 나는 두 손을 모으는데, 껌검한 짐 승을 데리고 네가 와서 문장을 밀고 있는데, 장미와 포크와 익어가는 홍시를 던져놓고 가는데, 너와 내가 같은 인칭으로 뛰어들던 새벽을 지나, 다시 어떤 날 들의 새벽인데,(90쪽, 채널)
나도 물고기가 될 테다. 식물의 줄기를 흐르는. 詩人의 사이프러스처럼. 고흐가 타고 오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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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에서, 익명에게 박진성 왜 여기 있니 얼마나 찾았는데 네 목소리만 들리더구나 내 귀로 분명 들었는데 너는 그냥 종이들이구나 숨은 것과 없는 것을 골몰하다가 나는 어느 밤이 되었는데 너는 그걸 과일이라 부르는구나 오래전에 나는 죽었는데 너는 손목을 잡고 싶다는구나 네가 흘리고 간 그림자는 성대만 가졌구나 나는 기차가 되었는데 너는 그걸 아르헨티나라고 말하는구나 좁은 방에서 비명을 지르는데 너는 오빠가 드디어 나타났다고 웃는구나 팔레스타인 여자를 언니로 바꾸는 기술을 네게서 배운다 우리는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푸른 공기였지만 아파트 복도의 새벽 두시였지만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안 보이는 폭력들에 대해서 더 안보이는 죽음들에 대해서 말해야만 했지 선언문이 되는 순간 목소리를 잃을까봐 너는 두려워했다 사랑하는 방식은 도시의 숲에서 배울 것, 아니다 사랑은 배우는 게 아니다 나무의 목소리를 나무에게 돌려주는 게 사랑이라고 너는 말했지 그렇다면 나는 내 귀를 걸어둘게 바람에 빵집에 거대한 크레인의 공중에 그리고 네가 쓰지 못한 문장들에 떠도는 귀들을 걸어둘게 목소리들의 주인은, 움직임라고 해둘게 p . 10 , 11 박진성 시집 ㅡ식물의 밤 ㅡ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떠도는 귀들을 걸어 놓겠데 ... 풍문으로, 멀리 떠도는 소문으로 라도 그대 소식 한자락 듣겠다는 말처럼 따듯하네 ... 내 귀를 얼마든 걸어 놓겠다니 ... 다 못한 말이나 속엣말들을 위해 문장이라고 했지만 편지같이 ... 기다리는 마음 . 쫑긋하고 세운 오롯한 마음 예쁘구나 . 참 ...어떤 얼굴인지는 몰라도 그 귀 참 잘 생겼겠네 그런 말 하는 고 입도 참 예쁘겠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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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도 박 진 성 시 오늘밤은 파충류 도감만 보기로 온도가 온도계에 짧은 몸을 세우고 발끝을 떨기로 몸속에 피 말고 다른 것이 흐르기로 왜 여기 있니 도마뱀의 정지한 눈아 착한 대륙 같구나 도마뱀의 눈에는 식물원이 살기로 죽은 바다가 살 기로 내 약시의 희망의 흰색 힘줄도 살기로 우리는 무얼 잘못한 것 같다 왼쪽 눈빛과 오른쪽 눈빛이 다른 것처럼 그걸 들킨 것처럼 p. 39 박진성 시집 《식물의 밤 》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예전에 우리 관직 중엔 좌시중 " 이 있었단걸 첨 알았지 뭐야 고려때부터 ...물론 영화 얘길하는 김연수작가가 짚어 준 거지만 그런데..그 좌시중 ㅡ을 나는 손님 " 이란 영화의 그 좌시" 가 떠오르는 거야. 시중을 드는 역 ㅡ이어서 좌시중 일텐데.. 좌시 ㅡ는 앉아 보고 있지 않음 : 부정문으로 쓸 경우 ㅡ (혹은 보고있음 ) 을 표현할 때 쓰곤 하는데.. 손님에서 이장이 그 말을 쓰니.. 아들이 입 단속 하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웃긴 장면이 연출되면서 ... 입을 벌리면 두고 보지 않을것 이란 의미 인데...거기까지 해석 못한 아들 ..과 손님 .. 그리고 영화를 말하는 저 작가의 좌시중 도.. 왕의 의중을 살피지 않지.. 무얼 잘못한 거냐.. 들킨 걸...말하나.. 내심을.. 뭐..그런 생각이..얼켜서...시를 읽다 잡문을 쓴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