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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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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확 다가오는 느낌보다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뭘까가 궁금한 표지이자 제목. <이책은> 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사쿠라기 시노 ---발췌하다 농밀한 언어로 삶의 비애를 담담하게 드러내는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인 사쿠라기 시노는 ‘신 관능파’로 불릴 만큼 성애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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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확 다가오는 느낌보다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뭘까가 궁금한 표지이자 제목.

<이책은>

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사쿠라기 시노 ---발췌하다

농밀한 언어로 삶의 비애를 담담하게 드러내는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인 사쿠라기 시노는 ‘신 관능파’로 불릴 만큼 성애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홋카이도를 무대로 황망한 자연 속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섬세하게 묘파하여 “근경과 원경이 교묘하게 잘 녹아들었다”라는 평을 듣고 있다.

2013년 『호텔 로열(ホテルロ?ヤル)』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문학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사쿠라기 시노는 1965년 홋카이도에서 출생, 중학교 때 하라다 야스코(原田康子)의『만가(挽歌)』를 읽고 문학에 눈떴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예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법원 타이피스트로 일하다가 결혼 후 한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 남편의 임지를 따라 홋카이도 각지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문학이 온전히 발을 디딜 땅을 찾게 된다......

<책내용 맛보기>

줄거리 ---발췌하다

아키쓰 류세이는 화려한 학벌과 모친의 열성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서예가이다. 어머니가 물려준 초라한 서예 교습소를 운영하며 신진 서예가의 등단 창구인 ‘묵룡전’에서 수상해 이름을 떨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반신불수와 치매로 고생하는 병든 어머니를 종일 간병해야 하는 처지이고, 가족의 생계는 보건 교사인 아내 레이코가 모두 책임지고 있다.

어느 날 아키쓰가 개인전을 연 도서관에 한 여자가 등장한다. 젊고 개혁적인 도서관장 하야시바라 노부키의 여동생 준카는 스물다섯이지만 정신은 그에 못 미치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준카는 서예에 관한 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아키쓰 류세이는 그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죽음으로 여동생을 돌봐야만 하는 노부키는 준카와의 생활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에게는 도서관장으로서의 바쁜 업무와 그에 어울리는 야망 그리고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오래된 연인이 있다.
류세이의 아내 레이코는 가족의 생계와 시어머니의 간병을 책임지며, 남편의 서글픈 성공에의 욕망을 그저 스쳐 보내며 살고 있다.
노부키는 고심 끝에 아키쓰 류세이 내외에게 준카를 부탁하고 준카는 서예 교습소에서 보조 교사를 맡게 된다.

재능에 목마른 아키쓰 류세이, 아직도 아들의 성공을 간절하게 바라는 듯한 그의 어머니, 인생에 찾아올 어떤 의미를 기다리는 레이코, 일과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노부키, 그리고 그들 모두가 간직한 순수의 영역 준카. 그들 사이의 관계에서 질투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책 읽은 소감>

첫 만남인 작가이면서 경박하지 않아서 특히 맘에 드는 책을 만났다. 서정적인 느낌이 물씬 다가오는데 그건 밝은쪽이 아닌 우울한 회색빛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충분히 우울을 담고 있는데도 우울하다는 생각이 안든다. 무거운 내용인데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우울한데도 나까지 따라서 우울기가 내몸에 들러붙을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깊은 우울이 오히려 만성화되어 쥐면 바스라질 듯한 무미건조함이 내내 존재할뿐. 그 무미건조함을 알아가는 시간들에도 분명 숨결은 있었다.

 

서예를 다룬 작품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런만치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왔는지. 붓끝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이자 정적인 침묵, 그 침묵을 깨고서 춤을 추듯 움직이는 손놀림. 그 안의 공기는 멈춰 있고 심지어는 숨조차 멈춘 지도 모른 찰나의 순간. 초등때 교본으로 써 본 서예가 전부다. 신문지에 썼었고 교본 위에 습자지를 대고 그대로 썼을뿐인데. 어린 게 잘 썼다며 무척 흡족해 하셨던 내 할아버지...그렇게만 기억되는 시간이지만 서예 붓을 잡았던 그 순간에는 정신집중이 되지 않으면 손끝이 떨렸기에 유독 조용했던 시간이었다.

 

  여자가 등을 곧게 펴고, 가는 븟을 집어 들었다...여자는 꼿꼿하게 앉아 꼼꼼히 붓 끝을 모으더니, 자세를 잡았다.  그녀를 둘러싼 공기의 흐름이 멈췄다.

  붓 끝이 방명록의 첫 칸에 닿았다.  곧게 편 등, 오른쪽 팔꿈치의 각도, 붓놀림, 자세에 한 치의 빈틈도 찾을 수 없다. 다가갈 수가 없다.

  여자는 공들여 이름을 다 쓰더니, 백자로 된 붓 받침에 붓을 내려놓았다.

  '하야시바라 준카' 

  방명록의 첫 줄은 여백을 밀어낼 기세로 꽉 차 있었다.

  경전 사경의 예시본, 혹은 인쇄된 활자라도 목격한 심경이었다.  눈앞에서 쓴 글씨 중에 이런 인상을 주는 글씨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넉 자밖에 되지 않지만 칸 안의 상하좌우 균형에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여백도 완벽했다.  가운데 선을 그어보면 안다.  하지만 선을 긋지 않아도 류세이는 알아봤다.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쓰인 이름.  여자의 글씨에는 사람이 쓴 글씨의 푸근함이나 애교가 없었다.  류세이는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 없이 적힌 해서체에 두려움을 느꼈다.  12~13 페이지

 

준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신의 작품전시장에 홀연히 나타난 미모의 여인. 그 여인이 풍기는 느낌은 긴 머리때문이었나 단아함, 정갈함이었다. 방명록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한 고수를 알아 본 류세이. 류세이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어리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여인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품어져 나왔다. 더구나 자신의 그림 앞에서 혼잣말인 듯 평을 해댄다. 자신이 서서 작품을 배치하며 구상했던 바로 그 자리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내다니...

 

살아내는 것 

류세이는 치매인 노모의 간병인을 하면서 자신의 살아가는 목적인 서예 교습소를 운영한다. 그게 가장으로서의 생계가 될 수 없다는걸 누구보다 잘 안다. 아내 레이코의 속옷이 하루에 두 개 나온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남자다. 모두가 안 믿겠지만 자신만이 아는 치매 연기의 달인 어머니.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묵룡전에서 여봐란 듯이 입상할 때까지만이라도. 지극정성의 보필이 아닌 의무감이기에 어머니를 목 조르고 싶을 때도 있다. 유명 서예가로 만들려 한 어머니의 지극헌신은 고스란히 잊은 채.  불시에 욕실에 들어와 아내를 안을만큼 극적인 상황도 좋아한다. 둘이 같이 있을때 어머니는 유독 리모컨 볼륨을 높이고...목표가 있기에 아내의 눈치를 보며 자존심 상하지만 참을 수 있는 건 살아내는 것이지...

 

묵룡전에만 입상해 봐라...결코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던 자신을 보여주리라...야망이 없는 것도 아닌 류세이. 드러내놓고 야망을 좇지 않는다지만 그렇기에 그 속은 더 야망으로 끓어오른다. 자신만이 아는 야망의 깊이와 넓이는 준카라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발달 장애 여성을 만나면서 급기야 질투로 눈이 뒤집힐 지경이다. 일찌기 본적이 없는, 자신이 평생을 다 바치다시피 노력한 결과물들은 찬란한 비웃음으로 늘 입상하지 못했다는 자조로 바뀐다. '은교'의 노시인이 가진 천부적 능력 앞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제자는 죽음보다도 더 깊은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류세이는 준카에게 습작을 시키면서 관찰하는 것으로 조금은 위안을 삼으며 이런 준카를 알게 된 게 행운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준카를 보면서 질투심을 가졌다. 어쩌면 저런 백치미를 가진 여인에게 엄청난 재능이 있단 말인가.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발휘하지 못할 천부적 재능. 숨죽이며 지켜본 류세이 앞에서 준카는 늘 글씨 끝에 X표를 쳤다. 처음에는 아까웠지만 나중에는 으례 그러려니. 그러던 어느날 준카는 자신의 머리를 자르더니 그걸로 일생일대의 글씨를 써버렸다. 글씨를 쓰는 순간의 그녀는 완전한 어른이면서 광기가 어린 딴사람이다. 그건 그녀만이 가진 순수의 영역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그녀만의 순수의 영역. 사회화가 되지 않은 사람만이 간직한  순수함. 그 순수함의 최고봉인 글씨가 여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구도로 작품이 되었다.

 

살아지는 것

유부남이면서 동료인 물리 선생을 좋아했지만 류세이가 획득했다. 아기 갖기를 원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치매로 이젠 포기했다. 고교 보건 교사로서 상담을 하고...자신은 가장 역할인 헌신으로 포장하면서 적당히 현모양처 역이다. 그 어떤 것들에도 흥미가 일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밝게 생활하지 않는 것도 아닌 여자. 그녀가 머무는 공간이 밝고 따듯한 풍경은 되지만 온기는 없다. 무미건조해서 감흥이 없다. 살아 있으되 특별한 감정이 없는 사람. 대책없는 남편에게 바가지도 긁지 않는다. 치매 환자인 시어머니에게도 마음이 실리지 않으나 표면상으론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데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자신만이 안다.  그녀를 살게 할 그 무엇이 없다. 살아지는 일은 힘들지만 말하지 않는다. 눈을 뜨니 깨는 거고, 일이 있으니 출근하고, 그렇다고 업무를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과 같은 허무를 가졌다 생각되는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노부키라는 도서관 관장이다. 남편 류세이의 서예전이 아니었어도 업무상 한번은 지나쳤던 사람이었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예의바르고 능력있는 듯한 이 남자 왠지 쓸쓸하다. 그 쓸쓸함에 다가가지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고독한 사람들'이라는 책과 DVD '마지막 사랑'을  빌려줄만치 노부키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다. 애당초가 준카의 상담을 위해 다가갔으나 노부키는 알아본거다. 화사하고 밝은 모습과는 다르게 이 여자 외롭네...'모두가 고독한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여행객인가 관광객인가 라는 문구에서 노부키는 밑줄을 쳤었고 레이코는 한참을 머뭇댄다.  둘만이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 분명 있었다.

 

류세이와 산 지도 오래구나, 아기마저 갖지 말자고 약속한 지금에 설레이는 마음이 생겼다니. 준카 일로 도서관 관장을 찾아갔다가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안부 문자에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려 애쓰는 자신을 본다. 몇 번을 읽어본다. 그렇게 류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설레임을 느끼다니. 류세이에게 이 감정이 노출될까봐 조심하는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멈춰지지가 않는다. 왠지 그만이 이 느낌을 공유할 수 있고 그만이 이 느낌을 아는 것 같다. 아니라 할 수 없게 갈아입고 나온 속옷, 류세이는 모를 거라 생각했다. 노부키가 잡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차의 시동을 끄고 올라왔다. 완전하다 느껴지는 합일. 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 같았던 여행이 준카로 인해 완전정지가 되었다.

 

살아간다는 것

구시로의 도서관 관장인 노부키는 훤칠하고 진취적이며 참신하다. 사회적 얼굴이 말해주는 바 그넘은 괜찮았다. 서예가의 전설로 이름을 날리고는 물에 투신한 엄마를 대신해 준카를 할머니가 키웠다. 그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준카를 데려왔다. 이젠 준카와 아버지가 다르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 하긴 남매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엄마는 죽었다. 붓만 잡던 여자, 한번도 웃질 않더니 죽어서야 미소를 띤 모습이라니.

 

이상도 하여라.  다른 건 오래 몰두하지도 못하고 금방 질리는데 도서관 사서일만큼은 즐겁다. 어떠어떠한 책을 독자가 찾을때 그걸 찾아주는 기쁨이 크다. 기득권만을 가진 권력층을 밀어내다시피 지원한 자리인지라 부담과 책임감이 동시에 따른다. 준카를 어쩌나...준카를 위해서도 리나를 위해서도 자신이 확답을 줘야는데 모두가 허무하다. 그 허무를 채워줄 게  없던 차에 레이코라는 여자를 보며 동질감을 감지했다. 레이코를 닮은 여자를 안았지만 오히려 레이코 생각만 더난다.

 

무거운 눈 뭉치와 함께 허무하게 공회전하는 일상을 화단에 버린다. 185 페이지 

 

리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해지지 않은 답을 말해야 한다는건 은근한 압박이자 고통이다. 외면을 하게 되면 할수록 준카가 늘 걸림돌이자 이어짐이 된다. 리나에게라면 준카는 최적의 안심지대다. 할머니 다음으로 준카를 가장 잘 알고 잘 따르는 사람.  준카가 죽기를 바랬던 건 아닌데 준카로 인해 여러 가지 피치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순수의 영역을 간직한 채로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여긴 준카. 그 준카도 미세하게나마 성장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는 자책이 커갈수록, 10시가 되면 그 이후의 시간은 자유롭다는 사실을 인지할수록 준카의 부재는 사실이 된다. 어찌하여 엄마도, 할머니도, 준카도 나를 떠나간 것일까...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이다.

 

순수의 영역이었다.

노부키 오빠랑 리나 언니가 결혼을 하면 좋을텐데...그럼 온천도 함께 갈 수 있고...나는 리나 언니가 좋은데, 노부키 오빠는 왜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리나 언니가 안 온다고 할까. 노부키 오빠는 리나 언니 말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나. 전화로 그 말을 하면서 리나 언니는 한참을 울었다. 나는 슬프다. 노부키 오빠가 미운데 미워하면 안된다, 내 오빠니까. 그렇지만 슬프다. 레이코 사모님은 좋다. 나에게 잘해준다. 류세이 원장님도 좋다. 할머니(치매 걸린 환자)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신다.  사람들은 나보고 바보라고 한다. 나는 왜 바보인지 모르겠다.

 

내가 발달 장애를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천부적 재능을 물려받고 싶어서 타고난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교습소 학생이 자신의 스트레스 지수가 극에 달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일뿐. 그 행동을 자신의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평소의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났던 바, 순순히 자백을 한다. 가장 슬프진 시간에, 가장 아름답다 여겼던 풍경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으로 돌아간 건 아닐지...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었듯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지만...

k******5 2014.07.18. 신고 공감 7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구시로, 그 찬란한 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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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은 질투에서 비롯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 ‘사쿠라기 시노’는 비현실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흥미진진한 사건 없이 잔잔한 일상속의 질투, 욕망을 그렸고 작가적 필력으로 나를 그 잔잔한 일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했다   얼마 전 읽은, <긍정의 뇌>의 저자‘질 테일러’는 “인간이 사고에 몰두할 때 좌반구의 뇌와 우반구의 뇌는 뇌량을 통해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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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은 질투에서 비롯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 사쿠라기 시노는 비현실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흥미진진한 사건 없이 잔잔한 일상속의 질투, 욕망을 그렸고 작가적 필력으로 나를 그 잔잔한 일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했다

 

얼마 전 읽은, <긍정의 뇌의 저자질 테일러

인간이 사고에 몰두할 때 좌반구의 뇌와 우반구의 뇌는 뇌량을 통해 쉬지 않고 대화를 하며, 이 내적 대화는 인간 의식의 중요 기준이 된다.”고 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를 인식하고 나의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좌반구의 뇌가, 전체를 보고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은 우반구의 뇌가 하는 일일 것이다. 결국 인간은 두뇌로 인해 두 개의 마음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개의 마음은 평상시에는 잘 분리되지 않고 드러나지도 않지만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큰 자극이 가해지는 순간, 어느 뇌의 작용이 큰가에 따라 상반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순수의 영역주인공들도 들끓는 내면 속 두마음의 불협화음을 꽁꽁 숨겨둔다. 아주 가까운 남편 혹은 아내, 애인 앞일지라도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 속의 순수의 영역은 천부의 서예 능력을 타고났지만, 또래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지적 미숙 상태의 25살의준카’. 그녀는 소녀 같지만 소녀도 아닌, 그 나이 또래의 여성적 매력과는 동떨어진, 성별마저 느껴지지 않는 순수함과 투명성을 지닌 여자다.

 

준카는 구시로 시립 도서관에 새로 부임한 관장 노부키의 여동생인데, 노부키는 25살이나 된 여동생, 준카를 돌보는 것이 힙겹다. 그러면서도 준카를 좋아하고 기꺼이 돌보아줄 뜻도 있는 리나라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혼할 여자가 같이 져야할 큰 짐을 가진 그는 그런 조건을 달고 결혼해서 행복해 질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부키는 어릴 때 자살한 어머니 때문에 준카와 함께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이런 성장 배경이 그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일까.

그는 인간관계가 주는 삶의 재미보다 일에 더 집착하고 때로는 애써 얻은 소중한 것을 무작정 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더 이상 진전이 없다. 그런 그가 레이코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레이코의 요조한 듯 음탕한 묘한 매력에 점점 끌려 들어간다.

 

또 한사람 주요 등장인물은 준카의 천부적 서예 재능을 질투하는 서예작가류세이’.

류세이는 그의 어머니에 의해 만들어진 서예작가이다.

류세이의 어머니 역시 서예작가였지만 현재는 뇌경색으로 누워있다. 아들을 작가로 키웠던 대단한 열정은 그대로 집착으로 변해, 병을 핑계 삼아 아들을 여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

류세이는 한때 창작만 꿈꾸던 순수작가였지만, 부인 레이코의 경제력에 기대어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의 서예교습서를 운영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레이코를 만나 열렬히 구애한 끝에 결혼을 했고, 세상이 자신의 서예실력을 알아주길 기다리지만 기대는 좌절되고 상처를 입는다. 언젠가는 성공하여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부인에게 떳떳한 남편이 되고 싶은 욕망은, 그의 순수함을 점차 변질 시키고 서예 실력도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천부적인 서예실력을 가진 준카를 만나 다시 한 번 절망한다.

 

류세이의 부인인 양호 교사 레이코’.

레이코는 모든 일을 내가 선택하고 책임도 지는 삶,

외로움도 호사롭게 누릴 수 있는 삶,

혼자 시들어가는 삶,

혼자 잠들고 혼자 눈뜨는 삶,

그런 삶의 내면을 지닌 여자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이라는 형태에 그 어떤 기대도 없었고 상대방에게 아내가 있는 것조차 상관없었다. 오로지 상대에 대한 자기의 감정에 따라 움직였다.

류세이의 서예에 대한 재능과 그녀에 대한 류세이의 순수한 열정에 대한 동경으로 결혼한 지 10.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계속된 시어머니 병간호와 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류세이. 세월이 그녀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는지, 아님 변함없는 환경이 그녀의 열정과 동경을 좀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류세이와 결혼할 때 가졌던 동경심과 새롭게 자리잡은 경멸 사이를 오가며 류세이와 시어머니를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주변에 새롭게 등장한 노부키에게 좋은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들 네 사람은 류세이가 시립도서관을 빌려서 개최한 개인전에서 만난다.

준카는 자신이 가진 천부적인 서예 능력을 모른다. 그러므로 류세이가 뭘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오빠 노부키가 누구에게도 신세지는 것이 싫어 정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  레이코가 자신에게 숨기고 오빠 노부키를 만나는지도 모른다. 준카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어떤 것에도 질투 따위의 이기적 감정은 없다, 그녀는 그냥 오빠를 좋아하고 레이코와 류세이 그리고 오빠의 여자 친구 리나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과 욕망을 채우는데 준카를 이용하거나 관계 속에 끼워 넣을 뿐 준카를 한 사람의 인격체, 그 자체로 봐 주지 않는다.

류세이는 준카의 실력을 어떻게 훔칠까,

레이코와 노부키는 준카를 통한 자연스런 만남을.

그리고 리나 역시 멀어지는 노부키 마음을 준카를 통해 얻고자 한다.

 

준카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누사마이바시 다리.

준코를 따라온 서예교습소 원생 요시후미의 비틀린 질투심 때문에 순수의 영역그 자체인 준카는 세상에서 사라진다.

준카의 죽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밀려온 후회와 정화의 시간.

그러나 정화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준카가 남긴 마지막 유작에 또 다른 욕망의 파도가 덮친다.

 

모든 사람의 마음엔 분명 순수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수의 영역은 잠깐 존재할 뿐. 곧 뒤따르는 다른 감정에 덮여버리는 모양이다.

 

**

 

마지막 책장을 덮고 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쓴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순수의 영역의 마지막 장면처럼.

 

순수의 영역을 읽는 내내 감정을 가라앉히고 주변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게 되었다.

아마도 작가가 전달하는 심리 묘사에 나도 걸려들어 주인공의 기분으로 산 모양이다.

 

몇 년 전 홋카이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삿포로에서 오타루 가는 열차를 탔을 때의 기억.

열차가 오타루에 가까워지면서 철로가 바다 옆을 지났다.

바다를 스치듯 달리는 기차.

파도가 제법 거칠었던 바다가 바로 옆에서 출렁이어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광활하고 웅장했던 태평양 바다. 그때 일본이 섬나라라는 것이 몹시 실감났다.

순수의 영역을 읽는 내내 오타루로 갈 때 보았던 바다가 떠올랐다.

그리고 겨울 홋카이도의 흰색과 회색이 순수의 영역배경지로 겹쳐졌다. 물론 순수의 영역배경은 일정이 짧아 가보지 못했던 구시로라는 곳이지만.

 

 

구시로엔 세계적인 습원이 있어 꼭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순수의 영역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 또 하나 더 생겼다.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이면 구시로 강에 연잎 얼음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구시로 강이 흐르는 누사마이바시 다리에서 연잎 얼음과 시립 도서관을 바라보고 싶다는. 그리고 내 마음의 순수의 영역을 찾아볼 것이라는.

근데 어쩌나.

홋카이도의 방사능 수치가 엄청 높다는데 .....

m***8 2014.07.16.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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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순수의 영역 - 묵직한 한국소설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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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편소설을 읽고 이렇게 묵직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싶다. 그동안 읽는 재미와 스토리 위주의 일본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나에게 일본소설은 가볍게 읽고, 잘 넘어가고, 다 읽고나서는 길게 여운은 없었던 책들이였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서 어떠한 스타일인지, 어떤 문장일지 전혀 아는 것 없이 대강의 줄거리만을 알고 시작했다. 아마 기존의 일본소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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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편소설을 읽고 이렇게 묵직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싶다.

그동안 읽는 재미와 스토리 위주의 일본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나에게 일본소설은 가볍게 읽고, 잘 넘어가고, 다 읽고나서는 길게 여운은 없었던 책들이였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서 어떠한 스타일인지, 어떤 문장일지 전혀 아는 것 없이

대강의 줄거리만을 알고 시작했다.

아마 기존의 일본소설에 대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인상이 나에게 없었다면

다소 어려워보이는 제목때문에 기피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어려운 느낌과는 별개로 정말 잘 넘어갔다.

천재적인 서예 능력을 가졌으나 정신연령은 어린 준카와 그의 재능을 사랑하면서 질투한 류세이.

류세이의 아내이면서 상황에 대한 질투 아닌 질투를 하는 레이코와

준카의 오빠면서 도서관장인 그 자신의 삶을 질투할 수 없었던 노부키.

이야기를 끌고가는 등장인물의 간결함도 좋았고, 개개인의 특성도 좋았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준카를 보면서,

몸은 여자지만 정신은  소녀인 준카를 보면서,

그것이 질투인지, 사랑인지, 연민인지 모를 감정을 가지고 그녀를 지켜보았던 류세이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삶의 특별한 희망도 없이 자기 자리만을 묵묵히 지키던 레이코는

도서관장과 남편을 보면서, 도서관장 옆의 그녀를 보면서 어떤 질투였을까?

 

각 인물들의 묵직한 심리상태가 문장을 통해서, 분위기를 통해서 전해져올때면

이야기 중심에서 문장 중심으로 바뀌는 것 같아서 몇번이고 문장을, 분위기를 곱씹어보았다.

각자가 평온하면 평온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몰랐다면 그냥 저냥 보냈을 시간들이였을텐데

그들의 관계가 맺어지면서 새롭게 떠오른 감정들과 사건들이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서

읽는내내 나도 같이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그 감정들이 무거워서 중간 중간 크게 숨을 쉬어야 할 만큼 인물들 하나하나에 깊숙한 감정이 생겼다.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어떤 결말이 나올지 무척 궁금했는데, 여러가지로 충격적이였다.

그 사건으로 인해 모든 인물이 제 자리를 찾는가 싶었는데, 어쩌면 겉모습일뿐이고

이미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의 시작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참 묘하면서도 여러 색깔을 가지고 있는 듯한 질투라는 감정.

문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자세한 심리를 느꼈기에 동화되서 읽을 수 있던 재밌었던 책이다.

 

작가의 또 다른 책이 궁금해진다.

 

 



d****i 2014.06.09.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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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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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매일의 평범한 일상을 간절히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평범한 매일의 일상에 대해 불연 듯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랬다. 이 평범함이 주는 매일의 시간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내 감정과는 무관하게 책에서 그랬고, 인생을 달관한 듯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그래서 평범하게 돌아가는 내 일상이 권태롭고 무기력해져도 누군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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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매일의 평범한 일상을 간절히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평범한 매일의 일상에 대해 불연 듯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랬다. 이 평범함이 주는 매일의 시간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내 감정과는 무관하게 책에서 그랬고, 인생을 달관한 듯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그래서 평범하게 돌아가는 내 일상이 권태롭고 무기력해져도 누군가는 그걸 간절히 원한다는 말로 나의 무력함을 억눌러 온 것 같다. 이런 평화로움, 이런 평범함에 감사해야 한다고... 근데 어느 날 문득 내 옆에 권태가 찾아왔다. 뭐든 귀찮아지고 뭐든 무감각해지는 그런 감정. 그리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혹 오늘의 나, , 그리고 우리가 아닐까 하는 마음.

 

아키쓰 류세이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중국까지 유학을 다녀온 서예가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그런 열성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물려준 초라한 서예 교습소를 운명하며 서예가의 등장 창구인 묵룡전에 글자를 써낸다. 그리고 거기서 대상으로 수상해 이름을 떨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괴롭다. 반신불수와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간병해야 할 처지고, 때문에 가족의 생계는 보건 교사인 아내가 책임진다. 그런 어느 날 개인전을 열고 있는 도서관에 한 여자가 들어온다. 개혁적인 도서관장 노부키의 여동생 준카가 바로 그녀. 그녀는 스물다섯이지만 어린 아이정도의 지능을 가진 아니 순수함을 지닌 서예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가씨다. 도서관장 노부키는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게 되지만 순수한 동생이 부담스럽다. 또한 오래된 연인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감정이 오가는 게 영 불편하다. 그런 그에게 류세이의 아내 레이코의 이중성이 눈에 들어온다. 준카의 능력을 보던 류세이는 준카를 자신의 교습소 보조 교사로 채용하게 되고 그녀르 곁에 두고, 재능에 대한 욕망으로 감정이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평화로운 것 같은 그들에게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고 모두에게 조금씩 질투가 스며든다. 그리고 찾아온 불행은...

 

책이란 참 묘하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떤 색을 띠느냐에 따라 다른 감동을 제시한다. 지금 내 마음이 권태 혹은 무감정의 절정을 이룬 상태 인가보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애정의 형태와 냄새조차 잊힐 날이 오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할까? (95) 여기서 말하는 애정은 부부간의 애정일 수도 있고, 부모 자식 간의 애정일 수도 있다. 사랑과 정성으로 아들을 키운 엄마는 아들의 성공을 바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들은 생각이 다르다. 어머니의 간병을 10년 넘게 하면서 어머니가 점점 짐처럼 다가온다. 이젠 죽을 때가 된 것은 아닌지 혼잣말로 웅얼거리기도 한다. 어머니의 애정이 지독한 집착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되어 버린다. 비단 그게 부모 자식만일까? 류세이 대신 생계를 꾸려나가는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무담담해진다. 그를 사랑했던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그 무언가를 가진 그들을 서로 질투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아내를 아내는 또 다른 젊은 여자를, 남편은 재능을 가진 준코를... 어른들의 세계는 질투로 만연되지만 준코는 순수하기만 하다. 어린 아이 그대로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로...

 

질투란 멈출 듯 반복해서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백 명이면 백 가지 형태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세기로 혼자만의 시간을 괴롭힌다. (372) 나는 이 책에서 묘사는 감정에 대한 무감각이 좋았다. 나 역시 혹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데 아닌 척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나란 사람.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부모님을 제외한 오로지 나만을 위해 생각하고 살아본 게 너무 오래라 나만을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이, 남편이 나를 행복하게 하면 그게 행복인줄 알았다. 하지만 때론 쓰나미처럼 찾아오는 허허로움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감정에 잠식 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더 즐겁고 행복하다 자기 최면을 걸었던 것은 아닐까? 간만에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감정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지... 혹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질투했던 것은 아닌지.. 오늘 이 기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기분 좋은 포물선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될까? 이 책 묘하게 매력적이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4.08.12.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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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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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뭔가를 앞에 두고 좌절할 때, 그 좌절에 덧입혀지는 건 질투다. 가끔 나는 ‘기분 좋은 질투’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기분 좋은 질투였다. 분명 내가 이루지 못했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어떤 재능이라고 불러도 좋을)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문제였고 내 몫이었다. 그런 순간이 계속 쌓여 결국에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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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뭔가를 앞에 두고 좌절할 때, 그 좌절에 덧입혀지는 건 질투다. 가끔 나는 ‘기분 좋은 질투’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기분 좋은 질투였다. 분명 내가 이루지 못했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어떤 재능이라고 불러도 좋을)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문제였고 내 몫이었다. 그런 순간이 계속 쌓여 결국에는 절망에 이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질투는, 질투로 멈췄을 때 안전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간혹 그런 시간을 경험하면서 그 선을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그 선을 넘어가는 순간, 그 후로 만들어낸 어떤 결과물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온전한 다음도, 나아질 관계도, 없다.

 

어정쩡한 재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서예가 류세이는 매해 서예 대전에서 고배를 마신다. 자신의 재능보다 심사단과 응모자 사이의 관계가 더욱 돈독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류세이의 아내 레이코는 고등학교의 보건 교사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며 치매와 뇌졸중으로 누워있는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한다. 매일 누워서 사는 시어머니는 TV 리모컨과 한 몸이다. 한때 유명한 서예가였던 시어머니가 침묵의 눈빛으로 말하는 건 오직 하나다. 자기 아들 류세이가 서예가로 성공하는 것.

한편 그곳의 도서관장 노부키는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도서관의 활성화를 위해 바쁘다. 그 와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신의 동생 준카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준카는 서예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다. 몸은 어른, 마음은 아직 어린 스물다섯의 서예 천재. 준카의 등장은 류세이, 레이코, 노부키에게 새로운 생각과 관계를 만드는 계기가 되고 그들이 위장하고 있었던 평온의 가면을 벗긴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의 출처, 그 감정에 이름을 부여한다.

 

도서관에서 서예 개인전을 열면서 류세이, 레이코, 노부키 세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날, 갑자기 등장한 준카 역시 설명하기 어려운 그 관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 준카가 류세이의 작품을 본 그 잠깐의 시간에 내놓은 감상은 그에게 준카의 뛰어난 재능을 보게 한다. 오랜 시간 이루려 했으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그 성공. 어머니의 열성도 이루어주지 못했던 부족한 부분을 준카를 통해 알게 된다. 오직 한 가지만 보는 아이, 그 하나에 집중해서 가장 깊은 곳을 보는 눈. 오직 준카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직선으로 곧게 가는 그 시선이 준카에게 만들어준 재능은, 그 재능을 갖고 싶었던 류세이에게(혹은 류세이의 어머니에게)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욕망을 꿈꾸게 한다.

류세이의 서예교습소에 준카가 드나들기 시작하고, 류세이의 아내 레이코는 준카의 오빠 노부키와 준카를 매개로 한 연락이 시작된다. 준카에 대한 그 날의 안부, 보고 같은 소소한 몇 줄의 문장이 두 사람의 답답했던 현실에서 빛나는 찰나의 일상을 만들기도 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시어머니의 간병도 해야 하는, 남편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일상처럼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여자의 손끝에 묻어나는 것은 어떤 설렘...

 

지구상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여행자다.’ (129페이지 / 모두가 고독한 사람들)

 

답답하다. 아쉽다. 안타깝다. 목마르다. 어떤 순간, 그게 성공이든 사랑이든 안정이든, 뭔가를 기다리는 그 간절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서예 천재 소녀 준카의 등장은 어떤 의미일까. 간절하게 그 재능을 찾던 류세이에게는 준카의 천재성이 탐나는 동시에 자학의 시간일 수도 있다. 붓을 고르는 것부터 종이의 펼침, 먹을 갈고 자세를 잡고 글씨를 쓰는 준카의 모습은 익숙한, 별 의미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준카가 완성한 글씨를 보는 류세이나 류세이 어머니의 눈빛은 이미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벅차다. 놀람, 환희, 그리고 자신들이 맛보지 못한 재능에 대한 지독한 질투. 그럴 수 있다. 평생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것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바라보는 시선. 그것을 굳이 질투라 불러야 한다면 질투일 것이다. 그 감정은 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낸 결과물 앞에 등장할 위험한 결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이라도 그 재능을 뽐내고 그 성공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면...? 위험하더라도, 한 번쯤 손을 뻗어보고 싶지는 않을까.

 

무미건조한 자신의 삶이 이제야 보이는 레이코는 또 어떨까. 돌봐야 하는 동생이 부담이고 오래된 연인과의 관계를 정의하지 못하는 노부키의 마음은 뭘까. 단어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지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보이는 그 미세한 흔들림을 계산해야 하고, 마음의 단속이 의미 없어지는 끌림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관계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질투라는 감정이 묘하다. 노부키의 오랜 연인 앞에서 담담한 척 서예 선생의 아내 역할을 하고, 남편의 성공이 레이코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게 평온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판단해 버리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평온을 위장한 감정의 누름이었다고 보인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이 도드라져 보이는 순간이다. 모양은 다를 지언즉 그건 모두 하나의 단어로 부를 수 있기에, 인간이므로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기본일 수 있기에, 억누른다고 해서 영원히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고 무조건 용납될 수 있는 감정의 휘두름이 아니기에 이 소설의 반전이 더욱 선명해진다.

 

질투는, 질투라는 감정으로 끝나야 선하다. 그 선을 넘어가면 자신을 괴롭히는 날카로운 도구가 된다. 그로 인해 흘리는 피 역시 자신의 몫이겠지만, 가능하면 흘리지 않기 위해 감정을 다스리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감정임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스며들 때 따라오는 두려움까지 감당해야 하니 쉽게 허락해서는 안 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의 위장 같은 가면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조금은 숨겨도 좋을 표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욕망으로 인해 끓기 시작하는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늦지 않았을까. 서늘했던 그 시선이 흐를 때가 더 위태로워 보였지만, 더 긴장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팽팽한 긴장감이 보일 때가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빛을 발하는 때가 아닐까 한다.

 

한 천재 소녀의 등장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상당히 궁금했다. 이야기는 자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숨겨진 그 마음을 하나씩 드러내더니, 마지막에 만났던 결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안녕” 하고 손을 흔드는 순간의 의미가 내 예상과는 달랐다. 그 순간 이 소설의 제목을 눈에 담았다. ‘순수의 영역’ 그 중심에 있던 준카의 존재가 가진 힘.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잔잔한 수면 아래에 있던 욕망을 본 순간, 그 순수함의 색은 조금씩 변해가는 건지도 모른다. 미움이란 것을 배우고 행복의 의미가 달라질 테니.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면서, 각자의 입장에서 읊조리듯 하는 말이 나에게 날아올 때 부정할 수 없는 공감이 만든다. 그들이 맞은 결말이 가져올 또 다른 폭풍을 기다린다...

 



n******i 2014.06.15.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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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순수의 영역-사쿠라기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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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띠지를 살짝 걷어 내면 눈처럼 새하얀 색의 표지를 가진 책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순수의 영역'이라는 이름답게 정말 새하얀, 그러한 색이 잘 어울린달까. 같은 작가의 작품이 동시에 나왔다. 단편집인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이라는 제목의 책을 더 먼저 읽었다. 다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편씩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책 표지도 역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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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띠지를 살짝 걷어 내면 눈처럼 새하얀 색의 표지를 가진 책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순수의 영역'이라는 이름답게 정말 새하얀, 그러한 색이 잘 어울린달까. 같은 작가의 작품이 동시에 나왔다. 단편집인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이라는 제목의 책을 더 먼저 읽었다. 다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편씩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책 표지도 역시 하얀색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소녀 한명이 쪼그리고 앉아 말갛게 정면을 쳐다보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책 표지에 있던 소녀는 이 책에서 나오는 준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왠지 모르게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눈망울을 가지고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오버랩되어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신관능파로 불릴만큼 성애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는 사쿠라기 시노. 사실 예전에 와타나베 준이치였나 '실락원'을 읽으면서 일본소설은 장르소설을 제외하면 문학들은 이러한 면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 주의를 추구하는 파가 다로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단편과 장편이 같이 나온 지금 그녀의 작품을 같이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아무래도 단편은 짧은 이야기라 더 많이 농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녀의 관능주의적인 면이 확실히 잘 드러나는 편이다. 한편마다 반드시 나오는 관능적인 장면들로 인하여 자신의 색을 잘 드러내는 작가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오히려 그러한 느낌은 이 책, 장편에서는 덜한 편이다. 단편을 읽고 관능적인 묘사를 기대한다면 혹시나 실망이 클수도 있겠다.  

 

‘질투’라는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이라는 설명답게 이 책은 온전히 그 감정에 충실히 다가가는 편이다. 자신의 전시회를 도서관에서 열지만 손님들은 거의 오지 않는 서예 작가 류세이. 그런 그에게 도서관장 노부키의 동생인 그녀, 준카가 나타난다. 그녀는 아무런 거리낌 없는 모습으로 다가와 자신이 필사적으로 열심히 쓴 작품을 보면서 틀에 박혀있다라는 말을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작가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는 하지 못할 말을 하는그녀. 마침 그녀를 데리러 온 노부키는 당황하여 그녀를 데리고 일단 자리를 피하는데 그녀는 어떠한 인물일까. 세상적으로 본다면 조금은 모자라 보일수도 있는 인물이지만 서예 실력에서 보았을때는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진 그녀 준카. 류세이는 그녀를 자신의 서예학원에 보내달라고 한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그녀는 서예학원에서도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편인데 여기에서 류세이의 질투를 살짝 엿볼수 있다. 과연 그는 정말 그녀를 인정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꼭 마지막에 가서 당선하지 못하는, 그러면서 아내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남자인, 치매라는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봐주어야 하는 그런 남자로만 인식되는 자신이 싫어서 그녀의 실력을 빌어서라도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도서관장인 노부키는 자신의 동생을 돌봐준 동창생이자 여자친구가 따로 있지만 류세이의 아내를 만나게 된 이후로 그녀와 문자를 자주 하면서 그녀에게 또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작가가 원하는 바 대로 '질투'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느낌이 질투라는 걸 전제로 했을때 그는 그녀에게 어떠한 질투를 느겼을까. 능력도 없는 남편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는 그녀에 대한 질투였을까. 오히려 내가 여기서 개인적이으로 주목한 한 사람은 류세이의 어머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로 나오지만 아무도 보지 않을때는 아니 한번씩은 아들이 보는 에서 멀쩡히 행동하는 때가 있는 그녀는 정말로 치매환자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며느리에 대한 질투를 숨기기 위해서 아들로 하여금 돌봄을 받고 싶다는 이유로 환자인 척을 한 것일까. 정확하게 그녀가 어떠한 상태라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이상 행동을 통하여서 작가는 나이들어 병든 그녀이지만 자신의 아들에 대한 또는 자신의 며느리에 대한 질투라는 감정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주인공의 직업이 서예가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묵향이라는 단어가 가끔 나오는 편이다. 어린 시절 서예학원에 다닌 적이있다. 그래서 나도 그 묵향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너무나도 생각지 못한 충격적인 결말에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붓글씨를 통해서 다스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벼루에 물을 붓고 살짝 갈아본다. 짙은 먹물색이 되면 붓을 담구어 끝을 잘 정리하고 한 글자씩 적어 본다. 순수의 영역. 어디선가 은은히 묵향이 배어나는 듯하다.

 

 

 



이달의 사락 b***8 2014.06.0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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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우리 삶에서 질투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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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 사쿠라기 시노 / 전새롬 / 북이십일 아르테]   제목 : [순수의 영역] 우리 삶에서 질투심이란.   1.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굉장히 만족스럽다. 책 표지 안쪽에 있는 저자 소개글 중에 몇 구절이 눈에 띈다. <순수의 영역>을 다 읽고 나면 이 구절이 이해될 것이다.       - 농밀한 언어로 삶의 비애를 담담하게 드러내는 탁월한 문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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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 사쿠라기 시노 / 전새롬 / 북이십일 아르테]

 

제목 : [순수의 영역] 우리 삶에서 질투심이란.

 

1.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굉장히 만족스럽다. 책 표지 안쪽에 있는 저자 소개글 중에 몇 구절이 눈에 띈다. <순수의 영역>을 다 읽고 나면 이 구절이 이해될 것이다.

 

    - 농밀한 언어로 삶의 비애를 담담하게 드러내는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
    - ‘신관능파’로 불릴 만큼 성애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 작품의 대부분은 훗카이도를 무대로 황망한 자연 속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섬세하게 묘파하여 “근경과 원경이 교묘하게 잘 녹아들었다”라는 평.

 

작가에 따라 표현 방식이 다르다. 어떤 작가는 굉장히 빠르고 과장된 표현, 앞서가는 표현을 써서 독자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반면 어떤 작가는 무덤덤한 표현으로 감정을 천천히 이끈다. 단어 하나 떨어뜨려 놓고, 무심한 듯 묘사 한 줄을 써 놓는데 그게 독자의 마음을 잡아두는 것이다. 이 작가의 특성은 후자다. ‘농밀한 언어’를 이해할만하다.

 

‘신관능파’, ‘성애 문학’이라는 표현 때문에 성을 묘사한 부분을 찾아봤다. 이 책에서 그런 부분은 몇 번 나오지 않는다. 그마저도 표현이 과하거나 노골적이지도 않다. 정적인 묘사만으로 인물들 간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도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 어느 지역을 소재로 꾸준히 작품을 쓴다면, 작가의 작품 속에는 그 지역의 사계와 지역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가 있게 마련이어서 작품이 더해갈수록 지역에 대한 작가의 애정도 깊어지고 지역 문화도 성장한다. 지역에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지역기반의 작품을 꾸준히 펴내는 것도 작가의 이력에, 작품의 연계성에 도움이 될 것 같다.

 

2.
<순수의 영역>은 쓸쓸하고 아쉬운, 섬세하지만 우울한 내용이다. 삶에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소설이다. 이것을 허무함 또는 황망함이라고 해도 되겠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슬픔에 빠지진 않는다. (등장인물도, 독자도) 그저 한 숨을 길게 내쉴 뿐이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생각, 그래서 삶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이 소설은 인간의 질투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 질투라 하면 남녀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좁은 의미의 질투다. 인간은 자존감이 위협 받을 때 질투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 커질 때도 질투를 한다. 고마움이 때론 증오심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질투 때문에 그렇다.

 

     질투란 멈출 듯 반복해서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백 명이면 백 가지 형태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세기로, 혼자만의 시간을 괴롭힌다. -372p.

 

서예가로 명성을 얻고 싶은 류세이. 그러나 서예 대전에서 연거푸 떨어지고 자신의 재능을 아쉬워한다. 어머니는 몇 년 째 병석에 누워있고 생활비는 아내가 떠맡고 있다. 아내 레이코는 무덤덤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레이코는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불만은 없다. 수입에 대해서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 라는 아내의 말을 빌미로, 쌓이는 부채감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깊은 내면에는 고마움을 감싼 엷은 질투심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 25p.

 

류세이는 개인전에서 천부적인 서예 재능을 지닌 준카를 만나게 된다. 준카는 발달장애로 지적능력이 조금 부족하다. 류세이는 그녀의 재능에 질투를 하면서 한편으론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야망도 드러낸다.

 

준카의 오빠인 노부키는 동생을 통해서 알게 된 레이코에게 끌린다. 레이코도 병든 어머니를 모시는 자신과 동생을 보살피는 노부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조금 마음이 끌린다. 류세이는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느끼는 질투심, 부채감이 탕감되는 느낌을 받는다. 등장인물 사이에 부러움과 고마움, 미안함이 질투라는 감정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대혼란에 빠진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자존심과 상대방의 자존심,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한다. 내 자존심이 중요하듯 그의 자존심도 중요하므로. 그렇게 질투는 양보와 이해로 서로를 성장시킨다. 인생에서 한 단계 성숙한다.

 

3.
원제목은 무구의 영역(無垢의 領域)이다. 무구(無垢). 티끌하나 없는 영역을 말한다(불교용어).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추악함을 떠나 청정함. 곧, 번뇌가 없음. 2. 더러움이 없는 자, 곧 여래(如來). 3. 유마(維摩). 책 속에서 말하는 순수(무구)는 어떤 의미일까.

 

준카의 순수한 모습(질투심이 없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질투심에 남을 시기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준카는 그런 감정을 모른다. 소설 말미에 가면 이야기의 연결고리였던 준코가 죽고 등장인물들은 평소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동안의 질투는 접어두고, 또 준카가 죽는 사건 때문에 어떤 질투는 사라지기도 했다. 질투가 없는 마음, 그래서 마음의 번뇌가 없는 상태. 그것을 순수-무구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생에서 질투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질투감이 없다는 게 이토록 슬픈 일인 줄은 몰랐다. 인간으로서 뭔가 소중한 게 누락되어 있다. 이러는 동안에도 일상은 차츰 되돌아온다. 그조차 지금은 슬프다. - 307p.

 

삶의 근간을 흔드는 질투심이 아니라면 삶에서 질투는 때론 필요한 요소다.

 

이 소설에서 한 축을 이루는 또 하나 요소는 등장인물들이 어느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장면이다. 영화 <마지막 사랑>의 원작으로 국내에는 <모두가 고독한 사람들> 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다음의 내용이 여러 번 나온다.

 

     관광객이라는 것은 대체로 수주일 또는 수개월 뒤에는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애당초 돌아올 집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상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여러 해에 걸쳐 이동하는 것이 여행자다. - 138p.

 

관광객과 여행자의 비유를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 동요와 변화, 상황들을 이야기한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여행자. 준카야말로 진정한 여행자인지도 모른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이동하고 있다. 그에 비해서 자신들은 관광객인지 여행자인지를 묻는다. 원래 자리로 돌아왔으니 관광객인가, 조금씩 변해서 바뀌었으니 여행자인가.

 

한겨울 차가운 날씨와 정갈한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기억해둘만한 작가다.

o*****a 2015.01.05.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순수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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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세이는 서예교습소 사범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서예가의 길을 걷게 된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그때는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있던 레이코를 자신이 아내로 맞아 별다른 일없이 살아오고 있다. 류세이의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여 식사를 챙기고, 배변을 도와야 하는 것을 빼면, 아이가 없이도 서로 납득하며 지낸다. 도서관에서 개인전을 하던 류세이는 우산을 썼음에도 비를 맞으며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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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세이는 서예교습소 사범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서예가의 길을 걷게 된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그때는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있던 레이코를 자신이 아내로 맞아 별다른 일없이 살아오고 있다. 류세이의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여 식사를 챙기고, 배변을 도와야 하는 것을 빼면, 아이가 없이도 서로 납득하며 지낸다. 도서관에서 개인전을 하던 류세이는 우산을 썼음에도 비를 맞으며 들어온 젊은 여성이 신경쓰인다. 몸짓과 방명록의 서체가 뛰어나고, 자신이 고민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말해주는 그녀가 마음을 끈다. 도서관 관장인 노부키는 여동생 준카의 말에 무례함을 느끼고 사과한다. 류세이는 준카를 자신의 서예교실 보조교사로 시키고 싶다고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준카는 여러과정을 거쳐 노부키에게 오게 된다. 하지만 둘이 있는 시간은 어색하고 당황스럽고, 그렇다고 성인의 의식이 없는 준카를 혼자 둘 수도 없어 염치없지만 류세이에게 부탁한다. 노부키는 개인전이 끝날 무렵에 온 레이코와의 만남 후, 그녀가 자꾸 생각난다. 그래서 준카의 핑계를 대고 보건교사라는 그녀에게 상담을 하며 메일을, 문자를 주고 받는다.

류세이는 준카의 재능이 부러우면서도 놀랍다. 준카는 위작에 소질이 있었고, 그를 안 할머니로부터 흉내낸 글자는 찢으라고 배웠다고 한다. 아쉽기도 했지만, 곧 익숙해지고 글씨의 단점을 꿰뚫어보는 준카의 가르침에 서예교실도 활기차다. 류세이는 레이코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준카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노부키와 연락을 주고받는 듯하는 레이코가 신경쓰이지만 한편으로는 노부키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교차한다. 그렇게 서로가 미묘한 감정으로 지내는 날이 이어지고, 변할 듯 변하지 않는 관계는 준카가 살해당하면서 균형이 깨진다.

주위가 모두 어른인 곳에서 사는 어른아이가 있다. 어른이기를 강요받지는 않지만, 자신이 그 사실을 실감하고 있는 어른이다. 그런 그 사람의 세계에 정말 아이의 순수를 가진 생명체가 등장한다. 서로가 비슷한 부류임을 느꼈는지,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사랑에 빠진건 순간이었다. 아내인 레이코는 아내로 여자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준코도 사랑한다. 그녀의 재능을 사랑하고, 그녀의 글씨를 사랑한다. 자신과 닮아있지만, 자신은 결코 하지 못할 글씨에게로의 순수함이 그녀를 더 빛나게 한다.


책은 감정이 모순된 사람들이 나온다. 류세이가 준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투하지 않는 레이코. 어머니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자랐음에도 지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에게서 해방되고 싶어 어머니를 죽이는 상상을 하고, 어머니가 실은 일어날 수 있음에도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시험을 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며 자신이 준카를 좋아하는 것은 아내와 별개라면서 아내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길 바라는 류세이. 그리고 이유모를 행동을 하는 그의 어머니. 아주 오래된 연인 리나와의 끈을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 채 유부녀인 레이코를 좋아하며, 할머니가 남기고 간 반쪽짜리 동생의 존재가 귀찮으면서도 동생의 존재가 자신을 좀더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노부키.

 

순수의 영역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통 감추고 살아가는 선한이의 가면속에 숨겨진 욕망이 여과없이 드러나고 오고가는 대화나 몸짓, 문자속에서 숨은 진의를 찾으려 눈을 번뜩인다. 그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보여주는 건 순수의 영역에 존재하는 준카뿐이다. 갑자기 만나게 된 순수에 누군가는 거부감을 느꼈고, 누군가는 질투를 했으며, 누군가는 동화되었다. 정작 본인은 잔잔해보이는 듯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고는 사라졌지만.

어찌보면 외도라고도 생각될 수 있는 감정들이 그리 불순하게만은 느껴지지 않고, 왠지 모르게 납득이 ​간다. 그럴수도 있겠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나조차도 이상하긴 하지만, 책을 보다보면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달까. 류세이는 언뜻보면 거동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수발을 들며 잘 운영되지 않는 서예교실을 하면서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서예혼을 불태우고 있어 꽤나 불행한 듯하게도 나오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가끔가다 어머니의 목을 조르고 싶은 기분은 느낄지언정 속 편한 공간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이유를 붙여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진해서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였다. 그리고 이 말은 나를 표현한 말 같아 오랜시간 이 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책을 덮은 지금도. 

 

 

m********r 2014.06.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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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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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새롬씨가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냈다고 써있는데, 그 때문인지 심각한 오류가 두군데 있습니다. 첫번째는 레이코와 남동생 부인과의 관계를 꾸준히 동서라고  했습니다만 이는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죠. 동서는 남자형제들의 부인간 또는 여자 형제들의 남편 사이를 일컫는 호칭입니다. 두번째는 한자 독음의 문제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류세이가 묵룡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작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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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새롬씨가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냈다고 써있는데, 그 때문인지 심각한 오류가 두군데 있습니다.

첫번째는 레이코와 남동생 부인과의 관계를 꾸준히 동서라고  했습니다만 이는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죠.

동서는 남자형제들의 부인간 또는 여자 형제들의 남편 사이를 일컫는 호칭입니다.

두번째는 한자 독음의 문제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류세이가 묵룡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작품이 화룡점청이라고 나옵니다만 이는 화룡점정입니다. 睛은 눈동자 정이죠. 일본에서 오래 살아서 한자에는 자신이 있는 건지 성의가 없는 건지...

그리고 몰라서 그런데 번역서에는 감수라 할까, 그런게 없이 번역자가 원고를 넘기면 그대로 활자화해서 책을 펴는 건가요? 아니면 감수를 한 사람도 똑같이 모르는 건가요?

안그래도 요새 한글이 산으로 가고있는데 책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5 2014.10.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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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아름다움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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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하다. 부정적인 반응으로서의 먹먹함이 아니라 잘 읽었다는 것과 잘 지켰다는 것과 잘 느꼈다는 것을 합친 것에서 오는 먹먹함. 남들이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저마다의 개개인은 지독히도 쓸쓸하고 고단하게 건너야 할 시간이 있는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사람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생, 축복만큼이나 무겁게 지워진 짐을 이고서.   나와는 전혀 맞물리는 지점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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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하다. 부정적인 반응으로서의 먹먹함이 아니라 잘 읽었다는 것과 잘 지켰다는 것과 잘 느꼈다는 것을 합친 것에서 오는 먹먹함. 남들이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저마다의 개개인은 지독히도 쓸쓸하고 고단하게 건너야 할 시간이 있는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사람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생, 축복만큼이나 무겁게 지워진 짐을 이고서.

 

나와는 전혀 맞물리는 지점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짐작만으로도 이렇게 암담하고 처절하고 슬플 수 있는 것이었는지. 내 감수성의 힘이라기보다는 작가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감하면서 젖어들도록 하는 힘. 내 아픔처럼, 내 허무함처럼, 내 욕망처럼, 내 이기심처럼, 내 위선처럼, 그러면서 내 사랑처럼.

 

그랬다. 내내 아픈 마음으로 읽혔다. 나쁜 사람 하나도 없는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 할 어떤 몫으로서의 삶. 피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으나 굳이 그러지도 않고, 받아들이는 자신의 이중성을 스스로 격려했다가 혼냈다가 되풀이하면서, 뻔히 보이는 미래에 마땅히 준비할 것까지 물리치면서, 하루하루 매시간 매초마다 이렇게 힘겨운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나를 가여운 심정으로 들여다보고, 또 마찬가지의 상대를 들여다보려고 기어이 애를 쓰는 나를 비난하면서 우리는 모두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 끝이 어떤 모습인지까지 다 알만하다 하면서.

 

'질투'. 나는 이 단어를, 이 단어에 쌓여 있는 사람의 욕망을, 내 안의 '질투'를 좋아하고 아낀다. 어떤 경우에  질투는 견디고 살아가는 데 상당히 큰 힘이 되어 주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잦은 경험으로 알아버렸다.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조차 내게는 힘이 될 정도이니까. 소설 속 인물들이 마음에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질투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어서, 질투하는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볼 줄 알아서, 질투 때문에 다가오는 시간이 힘들어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꺼이 질투하는 마음에 자신을 맡길 줄 알아서.

 

일본소설이 자꾸만 와 닿는 게 어째 거북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을 읽고 올리는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4.07.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