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소굴 세계문학 두 번째 작품 <닉 애덤스 이야기>는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 헤밍웨이의 작품으로 그의 유년기 이후부터 중년기까지의 삶이 고스란히 문학적으로 뛰어나게 재조립되어 탄생한 캐릭터인 닉 애덤스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 단편만 모아 한 권으로 엮은 작품으로 헤밍웨이의 진솔한 고백과 닉 애덤스의 독창적 사유가 한 몸이 되어 그리는 한 인간의 태어남과 스러짐, 사랑과 이별, 체념과 욕망,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로의 의지를 모두 목격하게 되는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묵묵하게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닉의 세게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느낌이 듭니다.
1부 북부의 숲은 닉의 유년기로 세발의 총성에서 어두운 숲속에 혼자 있지도 못하는 겁쟁이였던 닉은 인디언 마을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의식하고 목격하면서 인생이라는 거대한 여정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바라볼수 있게 됩니다. 인디언 여인의 출산을 돕기 위해 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인디언 마을로 갑니다. “봐, 아기가 태어났다, 닉. 인턴으로 일해 본 소감이 어때?” 닉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그 힘든 과정을 차마 지켜보지 못한 아기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인생의 탄생과 죽음의 양쪽을 경험하는 트라우마를 겪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에게 죽음에 관한 질문을 던진 후 자신을 절대 죽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2부에서는 혼자의 힘으로 청년기의 닉을 만날 수 있으면 3부 전쟁에서는 닉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고 부상을 입고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모습에서 작가 헤밍웨이의 자전적인 내용이 짙어 보입니다. 그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입대를 원했지만 시력 장애로 거부당하고 적십자 부대의 응급차 운전병으로 지원하여 이탈리아로 갔습니다. 그러던 중 다리에 포탄을 맞고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과거가 있었습니다.
전선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전선은 꿈에 나오지 않았고, 헤어날 수 없으리만치 두려운 것은 그 기다란 노란 집과 실제보다 더 넓은 강이었다. ---p.184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글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큰 강으로 4부 병사의 고향 이야기입니다. 전장에서 돌아온 닉이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려 애쓰는 과정을 담은 내용으로 “움직이는 송어를 보자 닉의 심장이 조여 왔다.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며 언덕을 오르며 근육이 쑤시고 날은 무더웠지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글을 쓸 필요도 없고 뭐든 할 필요가 없는 그런 날들이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송어를 바라보는 모습이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도 연상케 합니다. 불에 타 검게 변한 메뚜기를 날려 보내고 강에서 잡은 송어 한 마리를 놓아주는 행위는 정신적 고통에서 탈피하여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자 하는 닉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북부의 숲에서 시작되어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이야기까지 인생의 파노라마를 연상케 해주는 훌륭한 작품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글쓰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 사실은 그래서 글을 썼다. 전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닉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양심의 발로가 아니라 그저 너무 재미있고 그 무엇보다 짜릿해서였다. 잘 쓰는 건 지독히 어렵기도 했다. 수많은 기교가 있었다. 그런 기교를 사용하면 글을 쉽게 써낼 수 있었다. 모두가 기교를 사용했다. 조이스는 수백 가지의 새로운 기교를 발명했다. 새롭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건 아니다. 모든 것은 결구 진부 해진다.---p.276 ![]()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닉 애덤스 이야기는 그의 유년기 이후부터 중년기까지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닉 애덤스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 단편만 모아 한 권으로 엮은 빛소굴 출판사의 시도가 훌륭합니다. 한 인간의 태어남과 스러짐, 사랑과 이별, 체념과 욕망,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로의 의지를 모두 만나게 됩니다. 서른 여덟의 닉은 그의 식지 않는 열정을 아버지와의 경험에 돌립니다. 단편 모음이지만 장편소설 같이 인간의 죽음, 사랑, 전쟁, 치유, 가족 등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일들이 헤밍웨이의 문체로 만나게 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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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이야기 / F. 스콧 피츠제럴드
불멸의 고전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가 자기 안의 첫 목소리를 꺼내 보인 소설이라 할 만하다. 바질 듀크 리라는 이름에 유년의 체온을 이식하고, 한 소년이 허영과 수치, 야심과 고독의 기품, 계급의 냉기와 첫사랑의 열기를 차례로 통과하는 길을 보여 준다. 사건은 때때로 우스꽝스럽게 비틀리고, 열심히 날다가도 갈피를 잃은 먼지처럼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 모든 굴욕과 기쁨이 모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윤곽을 서서히 떠올리게 한다.
바질은 늘 조금 더 멋져 보이고 싶어 한다. 스스로를 연극 무대의 주연으로 상상하고, 무도회장의 조명 아래에서 한 치 더 높이 서고자 한다. 그러나 과장된 몸짓은 금세 들통나고, 번지르르한 말은 어김없이 삐걱거린다. 그 순간들에서 피츠제럴드는 소년을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설픔을 소년의 고유한 광채로 감싼다. 실패는 바질에게 벌이 아니라 언어이다. 그는 넘어지는 법으로 걷는 법을 익히고, 부끄러움의 문장으로 자의식을 문해한다.
읽는 동안 사춘기의 밤이 되살아난다. 못 견디게 초조해서 불 꺼진 방에서 혼자 대사를 중얼거리던 순간, 거울 앞에서 어른의 얼굴을 흉내 내던 습관, 누군가의 시선을 빌려 나를 증명하고 싶던 충동이 다시 심장을 뛰게 한다. 타락과 방황이라 불렀던 시간은 사실 미숙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그 미숙이야말로 나를 지금의 나로 밀어 올린 힘이었다는 것을, 바질의 장면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시대와 언어가 달라도 이 자전적 단면이 현재의 나를 정확히 찌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같은 행성의 중력 아래 서 있다. 사랑받고 싶고, 눈부시고 싶고, 넘어져도 이름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그 보편의 중력이 세대를 건너 우리를 끌어당긴다.
소설 곳곳에는 ‘공연’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강당 무대, 학예회, 파티, 교정의 소란—바질은 끊임없이 무대에 오른다. 관객은 동급생일 때도 있고, 동네의 소녀들일 때도 있고, 때로는 자기 자신이다. 그 무대에서 그는 이기기도 하고 패하기도 한다. 이겼을 때의 환호는 짧고, 졌을 때의 침묵은 길다. 그러나 길게 남는 것은 언제나 침묵 쪽이다. 그 침묵 속에서 바질은 비로소 자기의 박자를 듣는다. 타인의 박자에 발을 맞추던 소년이, 언젠가 자기의 박자로 걷기 시작하는 순간—피츠제럴드는 그 조용한 변화를 섬세한 리듬으로 기록한다. 계급의 공기는 더 서늘하다. 중서부의 흙냄새와 동부의 광택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존재한다. 바질이 문턱에서 겪는 주저와 경외, 약간의 분노와 더 많은 동경이 한 번씩 겹쳐지며, ‘태생’이라는 두 글자가 자존의 표면을 긁어댄다. 피츠제럴드는 설교하지 않고 사실만을 기록한다. 소년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어떤 문지기를 확인하고, 그 확인이 남기는 미세한 흉터를 애써 긁지 않으려 한다. 그 흉터의 촉감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독자는 바질보다 한 걸음 혹은, 반 걸음 먼저 눈치챈다.
사랑의 장면 또한 미심쩍음과 눈부심 사이를 왕복한다. 바질은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확인의 욕망 때문에 사랑을 자주 오해한다. 이름과 얼굴이 바뀌어도 본질은 같다. 사랑은 늘 ‘내가 누구로 보이는지’와 얽히고, 그 얽힘은 곧장 허영의 그림자를 부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사랑을 희화하지 않는다. 다만 소년에게 필요한 ‘패배의 온도’를 알려줄 뿐이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온도—그 적정함을 알게 되는 일이 그를 다음 계단으로 올려 보낸다. 3. 흑백의 잔향 그리고 갈무리 이 책은 유년의 흑백 필름을 길게 상영하는 시사회처럼 다가온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가난과 상처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아이의 상상력을 보여준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냉소와 순정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자의식을 들춰 보인다면, 바질의 이야기는 그 둘 사이의 비어 있는 칸을 촘촘히 메운다. 어른 흉내와 아이의 본색이 번갈아 교차하는 사춘기의 진폭, 성공보다 ‘인격의 씨앗’을 남기는 실패의 문장, 눈부심과 그림자가 서로를 부양하는 방식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환원된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나면, 내 안에서 오래 묵은 흑백영화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빛이 부족한 화면이야말로 감정의 농도를 더 선명히 보여 준다는 사실을, 나는 바질의 계절을 통해 다시 배운다. 요약하자면, 이 소설은 ‘아스팔트 틈을 가르는 새싹’의 생을 기록한 성장기다. 화려함은 늘 문지기를 동반하고, 실패는 종종 가장 솔직한 스승이 되며, 부끄러움은 때로 품격(혹은 인격)의 씨앗이 된다. 피츠제럴드는 그 오래된 진실을 사춘기의 체온으로 다시 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일은, 어둠 속에서 숨을 참고 있던 내 어린 목소리를 조용히 깨우는 일과도 같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어느 틈을 찾아 자라난다. #스콧피츠제럴드 #바질이야기 |
| 『바질 이야기』는 한 인물의 선택과 감정이 어떻게 삶의 균형을 서서히 무너뜨리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바질이라는 존재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지키려는 마음과,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화려한 사건보다 내면의 동요와 윤리적 갈등을 세밀하게 그려, 읽을수록 인물의 판단을 쉽게 단정할 수 없게 만든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다. |
![]() 빛소굴 세계문학전집-001 바질 이야기 빛소굴 협찬 도서입니다.
영미문학의 거장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연작 단편소설집을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는데 첫 번째 책으로는 스콧피츠제럴드의 <바질 이야기>입니다. 빛소굴 세계문학 서포터즈로 활동하게 되어 새해를 맞아 기분 좋은 출발입니다. 주인공 바질은 청소년기 특유의 종잡을 수 없는 감정기복과 예민하고 도취적인 성향으로 곧잘 문제에 휘말리고 마는 중산층 소년의 이야기로 성장소설로 기대가 됩니다. 저자 피츠제럴드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부와 계급의 이면과 사랑을 향한 욕망, 젊은이들의 갈등등을 미국인들의 꿈과 실망을 주제로 많이 다뤘습니다. 이 작품은 풋내기 소년 바질을 통해 1920년대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질은 피츠제럴드의 작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인물로 미국 중서부 중산층 출신에 자신감이 지나처 오만함까지 보이며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야심가이자 이루지 못할 로맨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청년입니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중산층 자녀로 또래 사이에서 그런대로 존재감을 자랑하며 평화롭게 지내던 바질은 동부 뉴욕주의 기숙학교로 옮겨 간 후 자신이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없고 가장 가난한 아이라는 경제적, 사회적 열등감을 처음 맛보게 되며 좌절하게 되는데 부유하고 유쾌하며 매혹적인 이 사람들은 뉴욕의 화려한 댄스파티와 비밀스러운 카페에서, 혹은 가을 달 아래의 옥상 정원에서 이루어질 눈부신 만남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고 바질은 이런 낭만적인 일에는 나중에 낄 수 있으리라며 완벽한 인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바질은 야망의 황홀경에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완벽한 인생의 요건들을 작성하게 됩니다.
바질의 눈에 그 저택은 호화로움을 압축해 놓은 신세계로 보였다.이 섬의 발 하나 디딜 만큼의 작은 딸이 그의 고향에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는 제임스 J. 힐 저택보다 값어치가 높다는 사실은 가슴 설레고 낭만적이었다. ---p.179 완벽한 인생 중에서 ![]()
미니 비블은 바질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그를 냉정히 평가해 봅니다 그의 탄탄하면서도 우아한 몸, 햇볕에 그을린 피부의 선명하고 따스한 색깔, 그녀가 한때 무척 낭만적이라 생각했던 반짝이는 흑발. 미니 비블은 그의 얼굴에서 다른 무언가 느낍니다. 바질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느꼈듯이. 어떤 징조를, 운명의 암시를, 그리고 자신의 인장을 세상에 찍고야 말겠다는, 자기 뜻대로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 이상의 고집을 보고 맙니다. 바질은 자신에게 마음을 내어 주지 않는 미니 비블이나 조베나 도시 같은 소녀들에게 집착하여 그들의 사랑을 얻어내고자 노력하는데 그 노력이 지나쳐 오히려 우습게 끝납니다. 저자 피츠제럴드가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사랑보다 더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바질이야기를 이렇게 전개된다고 독자는 생각합니다. 사랑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미래를 위해 노력을 다짐하는 주인공을 통해 과거 작가 자신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지네브라 킹과 헤어진 일 등 자전적인 면이 이 작품에 들어있습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또 무언가는 포기해야 하는 청춘들에게 깊은 연민과 공감이 가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질처럼 미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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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민이 같았던 시기를 지나 첫사랑에 눈을 뜨고, 그로 인해 마음고생도 하면서 점차 남자가 되어가는 바질의 이야기는 참 인상 깊었다. 역시 청소년기의 시절은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미성숙하지만 참 찬란하고 눈부셔! 더불어 피츠제럴드의 자전적인 인물이라 하니 더 흥미로웠다. 인물들이 감정에 솔직하고 책에서 나타나는 직설적인 표현들은 고전을 읽는 묘미라면 묘미! 마지막으로 표지가 정말 맘에 들어서 그냥 표지만 봐도 행복함.. ??ㅋㅋ ??P.53 다만, 석 달의 기나긴 봄에 품었던 막연하고 들뜬 열망이 그럭저럭 충족되었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그 열망은 지난주 인화점에 도달했다. 확 타올라 폭발하 고 재만 남았다. 바질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여름을 향해 미련없이 고개를 돌렸다. ??P.230 그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지만, 바질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매혹이 장소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오래도록 흔해 빠진 거리나 한낱 도시 이름 하나마저도 특유의 빛과 한결같은 소리를 발산하며 그의 영혼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그녀에게만 몰두하느라 주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가 없다 해도 세상이 텅 빈 느낌은 없었지만, 처음 보는 방들과 정원들에서도 그는 홀린 듯 그녀를 찾아다녔다. |
| 세계적인 대문호 헤밍웨이의 자서전적 이야기인 닉 애담스 이야기. 그리고 영미문학의 거장인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단편이야기인 바질 이야기. 둘다 특별한 형식의 재미를 주는 책들이라서 기대가 된다. 향후 몇몇일은 기대속에 즐거움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