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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로 살아내기 <67번째 천산갑>을 읽고 ![]() 언제부턴가 '보통(普通)'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보통이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 음식을 주문할 때 양에서부터 음식의 맛, 업무량과 일 혹은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지수까지 하루를 되돌아보며 보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날을 보낸 것 같다. 비범하기보단 평범한 나날들이 계속되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는가마는, 대단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사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특히 요즘같이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이 인정과 존중을 받아야 할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대상이나 현상을 두고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편을 나눠 차별과 혐오를 쏟아내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내 안의 기울어진 양팔저울에 무게추 같은 소설을 얹혀가며 균형을 잡으려고 애쓴다. "어쩐지 다들 당신들을 경시하고 차별하더라니. 그들이 경시한다면, 그건 질투 때문일거야. 당신들은 뭘 근거로 그렇게 짜릿하게 살고 있지. (···) 우리는 짜릿할 수 없어서 당신들을 경시하고 차별하는 거야. 알겠어?"(192쪽, '그녀'의 말) 타이완 작가 천스홍의 <67번째 천산갑>은 어릴 적 타이완에서 광고 아역 모델로 처음 만나 얽히고설킨 인연이 중년에 이르기까지 풀리기는커녕 종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린 시절 함께 찍은 영화가 4K로 복원되어 프랑스의 한 영화제에 초청받게 된 두 남녀가 파리에서 다시 만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이야기하는 대도시의 사랑과 우정을 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천산갑(穿山甲)'이다. 내게 코로나19 시기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배워가는 시간으로, 당시 천산갑이 바이러스의 숙주로 지목되어 멋모르고 혐오할 뻔했다. 그런데 때마침 아이가 보는 멸종 위기 동물 사전을 통해 절멸 위기에 처한 종이라는 사실과 볼수록 귀여운 생김새에 마음이 쓰여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당혹스러웠다. 소설 속 천산갑은 과거에 그와 그녀가 출연한 광고와 영화에서 그 존재감을 뽐낸 것도 모자라 현재까지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이자 두 인생의 수호자로 기능한다. 특히 그가 걸어온 길 위에서 보면 마치 천산갑의 현신인 듯한 인상을 준다. 적을 만나면 몸을 둥글게 말고 꿈쩍도 하지 않는 천산갑처럼 사람들에게 포위될 때마다, 이를테면 배우로서 영화제에 참석한 후 많은 사람들이 탄 버스 안에서 몸을 말아 자신의 빛을 가린다거나, 그녀와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 소매치기 소년들에게 봉변을 당할 때는 그저 몸을 움츠리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또한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그녀에게 잠이 오지 않으면 양(羊)이 아닌 천산갑을 세어보라고 가르쳐준 사람도 다름 아닌 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 매트리스 광고 속에서 천산갑에 둘러싸여 달콤한 잠을 자던 여자 아이는 현실 세계에서는 그러지 못한 채 살아왔다. 너무 이른 나이에 또래의 질투어린 시선을 의식하고 주위 어른의 정서적 폭력을 경험한 탓에 그녀는 스스로를 불안 속에 밀어넣고 날마다 잠 못이뤘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잠을 갈망한 까닭은 잠을 자는 시간만큼은 '보통의 존재'가 될 수 있기에, 즉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어서가 아닐까. 불행 중 다행일까, 오로지 그녀는 그의 곁에서만 단잠을 이룰 수 있었고 천산갑을 세어도 잠 못 이룰 만큼 위태로운 순간마다 그가 나타나 묵묵히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녀를 재우는 천산갑이 되어준다. 그만 보면 자고 싶고 또 할 말이 많은 그녀와 달리 그는 대체로 말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편에 섰다.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상대로 하여금 오해와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지도 몰라서 대답 대신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 눈물은 곧 그 자신의 언어로서 그로부터 줄곧 내리던 눈물은 타인과의 관계를 적셔주는 단비라기보단 온갖 말로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마음의 창과 같은 두 눈에 억수같이 쏟아져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의 신호에 응답한 사람들, 가령 그녀의 셋째 딸과 막내 아들 같이 몸이 약하거나 남다르지만 그와는 같은 성적 취향을 가진 사회적 소수자들과는 기꺼이 많은 말을 나눈다.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계속 걸었다. 앞을 향해 계속 걸었다. 그래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살아 있어야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384쪽) 그는 자기 앞을 가로막는 시련에 그저 침묵하고 멈춰 서서 울고만 있지 않았다. 그때마다 걷고 또 걸으면서 자신을 향한 세상의 목소리를 소거하거나 세상의 시선을 차단해왔다. 그녀에게 잠이 그러하듯 그 역시 지쳐버린 삶을 돌보고 지키기 위한 행위가 산책이라 볼 수 있겠다. 오랫만에 파리에서 재회한 두 사람의 일과표에 각각 차지하는 넓이는 다를지언정 잠과 산책, 두 글자가 나란히 적혀 있는 걸 보면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결코 녹록지 않은 일임을 느끼게 된다. 꿈 속에서, 길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익숙하고도 낯선 자기와 상대의 모습을 재발견하면서 두 사람은 소리내지 않고도, 울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법을 조금씩 알아나간다. 두 인물의 거의 모든 물성은 서로 대척점에 놓여 있지만 어떻게든 각자 바라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자기 삶을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점에서 둘은 상통하는 존재들로 여겨진다.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임에도 작가가 묘사한 것들을 머릿 속으로 그리다가 주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눈으로 밟아왔던 문장길을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문득 누군가가 원어로 낭독하는 걸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그 빈도가 더 심해질 듯했다. 남자를 지시하는 '그(他)', 여자를 가리키는 '그녀(?)', 사람 이외의 사물을 지칭하는 '그것(?, 소설에서는 '천산갑'에 해당)'를 중국어로 쓸 때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지만, 소리내어 발음하면 모두 '타(ta)'로 읽히기 때문이다. 독자 가운데 누구든 언젠가 셋 중 어느 하나의 자리에 설 수 있고 그땐 이전과는 다른 것들을 겪고 감각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만 같다. 자연 생태계에서 천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인간'에 의해 고난에 빠진 천산갑, 즉 소설 속 그와 그녀 그리고 그(천산갑)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보통의 삶에 이르는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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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와 다르다. 당연하다. 달라서 너에게 끌렸다. 달라서 너를 좋아한다. 달라서 너를 모르겠다. 그래도 너를 이해할 수 있다. 아니, 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젠 안다. 너와 나는 다르다는 건 우리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걸. 그냥 너는 너이고 나는 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곁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천쓰홍의 『67번째 천산갑』 속 ‘그녀’와 ‘그’를 보면서 그런 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확인한다. 둘은 어린 시절 침대 매트리스 광고 모델을 했다. 어려운 건 없었다. 침대에서 편하게 잠들면 됐다. 소년과 소녀는 처음부터 아주 잘 잤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잠 친구였다. 편안한 둘의 모습 덕분에 광고는 성공했고 소년과 소녀는 유명세를 치렀다. 모델을 시작으로 소녀는 방송에 자주 등장했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트리스 광고 꼬리표가 붙었다. 그것은 소녀가 바라는 삶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녀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걸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다. 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엄마를 향해, 대학 시절 남자친구와 연인에게, 모델 광고 속 자신의 모습에 반한 남편에게도. 안타깝게도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그녀의 현재도 다르지 않았다. 타이완 거물 정치인의 아내가 되었고 장성한 자식도 두었지만 불면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타이완이 아닌 파리의 비좁고 남루한 아파트에서 지낸다. 연인 J를 떠난 보낸 슬픔에 빠져 무기력한 삶을 이어갈 뿐이다. 도대체 그에겐 어떤 시간이 있었던 것일까. 유년 시절 그토록 친밀했던 그와 그녀는 서로의 삶을 모른 채 중년이 되어 마주하게 된다. 과거 함께 촬영한 영화 때문이다. 어린 시절 천산갑과 함께 찍은 영화로 현재 4K로 복원되어 낭트에서 열리는 회고전에 초정 된 것이다.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그 천산갑은 아주 예민한 동물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돈을 목적으로 천산갑 양식을 시작하지만 천산갑은 소년에게만 자신을 내준다. 마치 소년이 동족인 것처럼. 어쩌면 소년은 천산갑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천산갑과 함께 잠드는 신비로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아이라면 나를 잠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 파리에 도착한 이후 그의 곁에서 그녀는 푹 잘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앞에선 뭐든 말할 수 있었다. 유년 시절을 지나 학창 시절,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곁에 있었던 그에게 그녀는 수다쟁이가 된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다. ![]()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와 그녀의 삶을 들려준다. 그가 사랑한 J에 대해서, J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녀가 잃은 어린 딸 ‘팡싼’을 향한 애틋함과 소식이 닿지 않는 아들에 대해서. 삭제된 줄 알았던 기억의 장면이 하나씩 되살아난다. 팡싼의 마지막 모습, 어린 누나를 보러 온 아들, 자신에게 돈만 요구하다 쓰레기 집에서 고독사한 엄마. 그를 찾았던 시간. 그녀의 모든 걸 아는 그에게 토해내고 싶었던 순간. 그도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그녀가 찾는 아들의 소식이다. 파리에서 만난 그녀의 아들을 만났다는 것, 아들과 사랑을 나눴다는 것. 그녀의 남편은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병이라 치부하고 고치려 했지만 그녀는 아들과 함께 달아난다. 그 순간 그녀는 그를 떠올렸을까? 그의 파리 아파트에서 아들의 안경을 발견했지만 그녀는 묻지 않는다. 그의 곁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 파리를 산책하고 천산갑을 닮은 미끄럼틀에서 비를 본다. 그가 만나는 이상한 사람을 함께 만난다. 요가하는 남자, 헤어숍 원장, 숲에서 맨몸으로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그 모두가 그가 J를 통해 맺은 관계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아들도 함께 했을 거라 생각한다. 서로가 닮은 사람들. 이제는 그녀도 그들을 닮아간다. 그 모두가 67번째 천산갑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영화 같기도 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여행 같기도 하니까. 왜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결말을 갈구할까. 사람들은 화해나 파국, 여행의 종점, 도로의 끝, 우기의 끝, 서설의 강림을 기대했다. 지금부터는 즐거움만 있거나 영원히 슬플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인생에선 원래 선명한 마침표가 없다. 종종 작별인사를 건넬 기회를 놓치고, 눈을 뜨건 감건 영원히 못 보는 경우도 있다. (133쪽) 그와 그녀는 낭트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아니 도착지가 낭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미 낭트여도 어디든 갈 수 있다. 그와의 작별에 미소를 보낼 수 있었다. 그는 그의 길을, 그녀는 그녀의 길을 갈 것이다. 어디 있든 서로를 기억하고 서로를 지지한다는 걸 안다. 파리와 타이완을 배경으로 만든 한 편의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를 본 기분이다. 숨은 천산갑을 찾는 느낌이랄까. 너와 나는 다르다. 너를 알아가는 중이며 조금씩 닮아간다. 서서히 스며든다. 그러다 달라서 부딪히고 달라서 반했지만 끝내 이별한다. 너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그걸 배운다. 다르다는 건 이처럼 굉장하다.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다. |
| 천쓰홍 작가의 책 이걸로 두번째, 김태성 역자의 책도 두번째인데 두 책 모두 옮긴이의 말이 너무 좋음… “어쨌든 제발 생각 좀 해 보라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음 마지막은 가히 웄음이 나옴. 대도시의사랑법같애 |
| 대만 작가 중 가장 최고라고 생각되는 천쓰홍의 67번째 천산갑.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고 몰입감이 굉장해서 흥미로웠다. 따뜻한 차와 함께하면 더욱 더 좋은 책. 나이 상관없이 모두가 읽어볼 만한 책이므로 예스24 이용자분들에게 매우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