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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AI시대의 소크라테스>는 AI 시대에 철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사고방식을 탐구하기를 바라는 작가는 특히 "우리에게 소크라테스가 필요하다"는 책의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이 메세지의 의미는 AI가 제공하는 답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비판적 사고와 끊임없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소크라테스가 했던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바로 AI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게 해준다. 책을 읽으며 나는 증강 신체 능력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꼈가. 처음에는 증강 기술이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부자인 사람은 신체마저 강할 수밖에 없을 환경...? 끔찍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기술이 오히려 신체를 훼손해 증강 능력을 얻으려는 불법적 시도를 부추길 가능성을 떠올리니 당장이라도 잔인한 범죄영화 한 편이 금방이다. 기술의 발전이 불러올 부작용과 사회적 갈등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진 느낌이다. AI라는 기술은 분명히 앞으로의 세상에서 강력한 도구지만, 결국 인간의 윤리적 판단과 관리가 그 결과를 결정지을 것이다. 우리는 AI가 제공하는 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는 것이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 책은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AI와 같은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논의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철학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진우의 AI시대의 소크라테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소크라테스인 것이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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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개발 초기 단계에는 기계를 학습시키는 데 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다. 고양이 사진 100장과 강아지 사진 100장 정도로는 아무리 학습을 시도해도 기계가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27-) 우리가 자아를 수량화해 패턴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내면에는 수량화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자기 추적을 통한 자기인식이 계량화될 수 있는 측면에 집중한다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탐구는 인식할 수 없는 어두운 면을 고려한다. (-74-) 인공지능은 확률적으로 뒤따를 수 있는 단어의 순위 목록을 생성한다. 인공지능의 목적은 문장 자체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다음에 나올 단어를 확률적으로 예측해 인간이 쓴 문장과 의미가 일치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입력된 데이터가 많으면,인공지능은 사람들이 통상 쓸 법한 내용을 예측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지성적이다. (-87-)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석사, 박사학위를 딴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AI 시대의 소크라테스』을 통해서, 설명하고,가차이에 대해서,논리적이면서,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에 비해 월등하게 기억력이 좋고, 사실 확인 또한 뛰어나다. 의사나 판사,기자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직엄군으로 일순위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데이터와 지식에 기반한 직업이기 때문이다.공장에서, 물류와 유통에 있어서,인공지능이 가지는 힘은 무시할 수 없으며, 100명의 인간이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을 통해 뚝딱 해결해 나가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문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영역,인공지능이 모방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창의력 도한 인공지능 몫이 되고 있었다. 포토샵,일러스트 뿐만 아니라,AI 가 직접 그린 그림은 인간이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사실적이었다. 이 책은 단언한다. 인공지능이 가지고 잇는 예측과 확률, 패턴에 대해서, 그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이 맥락에 대한 이해 와 철학 그 자체라고 말이다. 인간이 느끼고,생각하고,자유의지를 가지며, 공갘과 이해라는 가치는 결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인간이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해내기 힘들고, 인공지능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인간이 어려워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인간은 스스로 인공지능과 경쟁하지 않으면서, 서로 협력하고, 다른 점을 받아들이면서, 서로 상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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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는 철학
책을 선택한 이유 알파고 바둑 대국은 인공지능의 성장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고,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가공할 인공지능의 위력을 알린다. 거부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알아보기 위해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를 선택한다.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1장 인간과 인공지능의 파트너십 2장 사고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3장 공감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느낄 수 있는가? 4장 의식 있는 인공지능: 기계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5장 포스트휴먼 시대의 디지털 인간 조건 로 구성되었다.
1장 인간과 인공지능의 파트너십 에서는 조용한 혁명은 변화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급격한 변화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은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다. 인공지능의 존재를 확실히 확인시키고, 삶과 사회에 혁명적 영향을 가지고 다가온 것은 챗GPT의 출현이다. 대화형 맥락에서 인간과 유사한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성하도록 설계된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이다. 기계가 인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로운 인지 혁명의 전조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간이 기계와 대화를 나누는 시대다.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물을 수 있으며, 물음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기계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질수록, 대화 상대가 기계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 혁신과 혁명의 핵심이다. 사고방식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기술은 드물다. 사고방식과 소통방식에 혁명적 영향을 미칠 인공지능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이성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은 직관이 없다. 사고방식의 혁명은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이성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해서, 대상의 성질에 관해 선험적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통찰할 수 없다. 이성은 자신의 설계에 따라, 자기 자신이 생산하는 것만을 이해한다. 질문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거부할 수도 없고,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기술도 더욱더 중요해진다. 챗GPT에게 무엇을 질문하든 답을 얻을 수 있지만, 질문과 응답은 대화를 하듯 반복적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인간의 판단력과 의사소통 기술을 사용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예리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중심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질문에 답하더라도, 소피스트 처럼 결코 지혜를 주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답변은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고 명료하다. 소크라테스적 질문의 핵심은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고다. 과학혁명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이성으로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올수록,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느끼는가, 자유의지의 의미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2장 사고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아무리 잘 모방해도, 기계가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것이 남아있는지, 인공지능은 인간만이 가진 본성에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추론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오류 가능성이 있다. 생각을 스스로 검토해야 하며, 생각은 결국 의심이다. 새로운 철학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인간으로 살 수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데카르트식 정신과 신체의 이원론을 잠시 배제하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자기 인식이다. 자발적 감시는 감시가 아니라는 착각에서, 우리 자신을 추적하고 기록함으로써, 감시의 데이터를 산출한다. 지식은 언제든지 개인을 통제할 권력으로 작용한다. 인공지능은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식할 수 있고, 미래의 행동을 에측하며, 제어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우리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무지를 이해의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현대는 이해의 개념을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축소한다. 수량화된 자기 인식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에 관한 지혜를 결코 제공하지 못한다. 수리 능력은 수학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해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이해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면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패턴을 발견하고, 모델로 분석하며, 예측하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짧은 시간에 처리한다. 유사성이 서로 중복되고 교차하는 복잡한 연결망을 통해 패턴을 인식하고 세계를 이해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대신 생각하고 추론하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인공지능을 의심하지 않으면 의심하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이론도 이념도 위기에 처한다. 3장 공감하는 인공지능: 기계는 느낄 수 있는가? 에서는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못한 영역은 몸과 감정이다. 인간의 상호작용에 필수적인 공감과 정서적 이해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감정과 공감은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이다. 감정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처리하고 이해하며,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인공지능의 한 분야다. 감정 인공지능에서 중요한 것은, 기계가 감정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가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공감마저 정복한다면, 인간의 공감과 기계의 공감에 대해 물어야 한다. 공감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간의 감성 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모방한다. 감정 인공지능은 감정의 현상학에 기반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상자 속의 딱정벌레 사고실험에서, 현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건 무의미하는 건 무의미하다.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탁월한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에, 포커페이스는 인공지능 기술로 종말을 고할 운명이다. 인간은 모든 것과 관계를 맺으며, 관계의 의미를 세계로 파악한다. 도구적 존재에는 세계가 이미 항상 현존한다. 감정 인공지능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감정과 공감을 사용해야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로봇은 규칙을 따르지만, 감정 없이 행동한다. 사이코패스 로봇의 가능성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을 전제하는 감정, 인간의 자기의식의 문제로 이끈다. 4장 의식 있는 인공지능: 기계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에서는 인공지능 시대는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보다 우월한 데서, 비롯되는 두려움이 싹트는 시대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것은 의식을 인간성 자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인공지능에게, 수많은 정보와 결론에 이르는 추론 방식,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도덕적 규칙까지 부여하지만, 인공지능이 어떻게 답과 결론에 이르는지 알지 못한다. 페르소나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소통하려고 작동시키는 외적 인격을 가리킨다. 마음은 주체와 주체 사이를 연결하는 상호주관성의 영역이다.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이 마음이었다면, 마음이 작동하는 근본 방식이 의식이다. 의식은 바깥의 대상을 경험하는 동시에, 경험하는 자기 자신을 느끼고 경험하게 해준다. 인공지능은 뇌를 모델로 만들어진 정보 처리 프로그램이다. 객관적 사실과 기능은 설명할 수 있어도, 주관적인 경험은 설명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의식이라는 환영이 필요하다. 의식과 마음이라는 환영을 믿는 것이 해로운지, 환영을 파괴하는 것이 더 해로운지는, 인공지능 시대가 말해줄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무엇을 바꿔놓을지 파악한다는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쇼펜하우어는 생명 운동의 주체를 의지로 파악한다. 자유의지는 몸이 산출하는 욕망에 수반되는 현상이다. 자유의지는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에 관한 문제다. 자유의지는 행위를 할 때 외부의 힘이 결정한 것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느끼게 해준다. 인공지능은 역설적으로 몸과 분리된 기계, 신체와 분리된 정신을 절대화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진정한 인간성에 관한 꿈을 꿔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만드는 세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어떤 세계를 만드는가다. 5장 포스트휴먼 시대의 디지털 인간 조건 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체성을 위협함으로써, 인간 조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음을 기능적으로 모방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트랜스휴머니즘 시대다. 기술적 전환은 특이점에 도달할 때 이뤄질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에 인간 조건을 성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묻는 일이다. 노동의 인간적 조건은 삶 자체다.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고 잉여가치가 부를 만든다. 정신 노동도 그 자체로 노동이다. 인간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일자리는 없다. 인공지능의 본성은 노동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노동과 일자리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노동이 없으면 공감도, 사회적 인정과 접촉도 줄어든다. 노동 없는 사회는 더 끔찍한 디스토피아며, 인공지능은 노동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인공지능의 최종 목적은 세계 정복으로 보인다. 인간이 지구를 떠날 수 있다는 과학적 신념은 인류의 생태학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지구 소외를 초래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외부 확장이다. 인공지능으로 인간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면 중심적 사고에서 탈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정치는 공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과거 정치적 행위가 이뤄졌던 광장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대체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커질수록 뉴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가짜 뉴스는 디지털 시대 공론장의 변동과 변질이 어떻게 어떤 정도로 이뤄질지 상상하기 어렵게 한다. 공론장의 이중성은 공론장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동력이다. 공론장에 참여하는 개인들을 매개하는 미디어가 사적 개인으로, 공적 주체로도 만들 수도 있다. 대중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표면적으로만 공론장이다. 소셜 미디어의 혁명적 성격은 모든 잠재적 소비자를 독립적이고 동등한 생산자로 만든다. 인공지능을 갖춘 소셜 미디어는 행위의 가능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인공지능이 유발하는 공론장의 긴장 관계를 해결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 인공지능의 사고, 공감, 자유의지,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올 사회 변화를 다룬다.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은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다. 챗GPT는 대화형 맥락에서 인간과 유사한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성하도록 설계된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이다. 기계가 인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로운 인지 혁명의 전조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간이 기계와 대화를 나누는 시대다. 기계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질수록, 대화 상대가 기계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 혁신과 혁명의 핵심이다. 인공지능은 직관이 없다. 사고방식의 혁명은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질문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거부할 수도 없고,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기술도 더욱더 중요해진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인간의 판단력과 의사소통 기술을 사용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예리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중심이다. 인공지능은 소피스트 처럼 지혜를 주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적 질문의 핵심은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고다. 인공지능은 인간만이 가진 본성에 질문을 던진다. 생각을 스스로 검토해야 하며, 생각은 결국 의심이다. 새로운 철학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인간으로 살 수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지식은 언제든지 개인을 통제할 권력으로 작용한다. 인공지능은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식할 수 있고, 미래의 행동을 에측하며, 제어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패턴을 발견하고, 모델로 분석하며, 예측하면서, 유사성이 서로 중복되고 교차하는 복잡한 연결망을 통해 패턴을 인식하고 세계를 이해한다. 인공지능을 의심하지 않으면 의심하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못한 영역은 몸과 감정이다. 감정과 공감은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공감마저 정복한다면, 인간의 공감과 기계의 공감에 대해 물어야 한다. 공감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간의 감성 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모방한다. 감정 인공지능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감정과 공감을 사용해야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것은 의식을 인간성 자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답과 결론에 이르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이 마음이었다면, 마음이 작동하는 근본 방식이 의식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의식이라는 환영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무엇을 바꿔놓을지 파악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역설적으로 몸과 분리된 기계, 신체와 분리된 정신을 절대화한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만드는 세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어떤 세계를 만드는가다.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트랜스휴머니즘 시대다. 노동의 인간적 조건은 삶 자체다.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고 잉여가치가 부를 만든다. 인간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노동 없는 사회는 더 끔찍한 디스토피아며, 인공지능은 노동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외부 확장이다. 인공지능으로 인간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면 중심적 사고에서 탈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정치는 공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광장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대체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커질수록 뉴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 대중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표면적으로만 공론장이다. 소셜 미디어의 혁명적 성격은 모든 잠재적 소비자를 독립적이고 동등한 생산자로 만든다. 인공지능이 유발하는 공론장의 긴장 관계를 해결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의 지식은 유한하지만, 인공지능은 무한에 가까운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게 된 전대미문의 사태에서, 인간 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에 비해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소피스트 와 같다.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지혜는 없다. 인간만의 지혜로 인공지능 시대를 헤쳐나가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진지한 질문을 해야 하며,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성찰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해야 한다.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고의 질문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면서, 주체적으로 인공지능을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인공지능 시대의 본질과 위험 요소를 살펴보며, 인간의 정체성을 지키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면서,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휴머니스트 와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AI시대의소크라테스 #서평 #이진우 #휴머니스트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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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기술대학인 포스텍 명예교수이셔서, AI와 철학 두 소재를 융합한 특별한 이 책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수년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4:1로 이겼던 세기의 바둑대결이나, 피아노 연주 경연대회, 그림 그리기 대회 등에서 로봇이 1등을 차지했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듣게 됩니다. 첨단기술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로봇이 수학과 과학은 물론, 바둑도 SAT시험도 예술도 인간보다 더 잘 한다면 도대체 인간이 AI와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인간이 AI보다 더 잘 하는 것, 더 우월한 점은 무엇인가? 인간만이 가지고 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이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에서 불멸을 꿈꾸며 신의 경지에 이르는 호모 데우스로 진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소설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아이 로봇"에서만 해도 로봇은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는데, 챗 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대화를 합니다. 인간에 필적하는 지능을 갖춘 기계가 새로운 행위자로 등장하면서,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에 점점 더 깊숙이 스며들어 앞으로 인간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나 세상을 경험하는 장식, 그리고 사회를 이루는 방식 등이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인공지능 혁명이 우리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어떻게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할 수 있을지, 인간의 정체성과 실존 문제가 큰 도전으로 우리 인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로봇 수술, 질병의 정복, 전염병의 예방, 기후 변화 해결 등에 도움을 주지만,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발전하고 있어서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기술적 혁신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를 밝혀 줄 소크라테스가 필요합니다. 이 책이 그러한 근본적인 궁금증들을 소크라테스처럼 문제를 제기하고 또 성찰하고 있어요.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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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책은 휴머니스트의 신간<AI시대의 소크라테스>예요. ![]() 이제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깊이 녹아 들어 있어요. 과학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의식 수준은 그만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실례로 최근에 뉴스를 보니까 딥페이크와 관련된 기사들을 보니까 너무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그들은 십대더라고요. 사실 한참 순수해야 할 그들이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을 넣어 불법 촬영물을 만들고 판매했더라고요. 그들은 큰 범죄를 저질렀지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요. 인공지능은 기술적인 발전의 문제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지에 대해서 설명해 줄 소크라테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 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져야 했어요.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어요. 비록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해요. ![]() 이 책은 인간과 인공지능에 대해서 5장으로 설명해 주세요. 먼저 대화가 가능한 챗gpt를 예로 들어 인공지능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이 후 저자는 인공지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이전까지 로봇을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세요. 끝으로 저자는 사고하고 공감하며 의식할 수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을 설명해 주세요. ![]() ![]() #AI시대의소크라테스 #이진우 #휴머니스트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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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를 널리 알린 건 알파고로 2016년 세계 최고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을 4 대 1로 승리했을 때이다. 알파고는 이전의 인공지능과는 달리 기계 학습과 심층 학습을 결합한 것으로 광범위한 데이터 세트와 강화 학습을 거쳐 스스로 바둑을 두는 능력이 정교해진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우리의 삶과 사회에 혁명적 영향력을 가지고 다가온 것은 바로 챗GPT의 출현이다. 기계가 드디어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된 것으로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은 기존 검색엔진과는 다른 차원의 수준으로 '검색의 종말'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음을 저자는 피력한다. - 이처럼 기계에도 세상을 설명하는 대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능력을 부여하려는 시도에서 기계 학습이 시작되었다. P 27 - 우리가 인공지능과 인간적인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기계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질수록 우리는 대화 상대가 기계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을까? 이것이 바로 챗GPT가 초래한 혁신과 혁명의 핵심이다. P 30 인공지능은 지식의 문제가 아닌 지혜의 문제로 기계가 아무리 인간을 닮아가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려면 저자는 칸트가 남겨 놓은 초월적 영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으로 살려면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들로 신, 영혼, 자유에 대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데카르트는 "까치와 앵무새는 우리처럼 말할 수 있으나 우리처럼, 즉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들이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내면서 말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이는 인간과 기계를 구별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책 제목은 모르겠지만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잠수함이 향해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말이 유효한지는 모르겠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생산하는 데이터를 추적하여 비로소 데이터 속에 숨겨진 새로운 정보를 찾아낸다. 자기 인식의 수단이 된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은 쉽게 자기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 내면에는 수량화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저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을 통해 철학의 궁극적 목표로서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 수량화된 자기 인식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에 관한 지혜를 결코 제공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 시대가 유발한 철학적 위기다. p77 - 21세기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테이터교 교도다. p 81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난 점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결코 인간은 아니다. 저자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점을 통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요소들에 하나씩 다가간다. 이러한 철학적 내용이 흥미로웠다. -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정보의 지식으로도 대답할 수 없는 소크라테스적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p 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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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시대의 소크라테스 』 질문의 중요성 ![]() 이진우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첨단과학 인공지능의 시대 '철학'이란 어떤 의미일까?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조용한 혁명이라 불리는 AI 혁명의 시대다. 며칠 전 뉴스에서 본 딥페이크 관련 기사 너무 걱정스럽다. 연예인 뿌만 아니라 지인( 친구, 여교사 등)의 얼굴을 넣어서 음란물에 이용하는 사례들. 게다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청소년이라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장난이었다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학 기술은 발달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에 따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성찰이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쓰인 책이다. 최근의 이런 철학이나 인문학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도 같다. 인공지능이 인류가 쌓아온 지식 정보를 뛰어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기 이전에 인간이 먼저 온 기술을 잘 적용하고 내 가치를 존중하며 가치로운 삶을 살 만한 철학이 있는가, 철학을 갖추었는지 그것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이러한 패러다임이 급진적으로 흔들린 이유에 대해서 공진화, 기술의 소통 방식 그 자체가 흔들린 것 때문이라고 우려한다. 기존 기술들은 아무리 빨리 발달한다고 해도 우리 인간의 소통 방식 그 본질을 흔들어놓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챗 GPT 이후에는 인간만의 영역이 소통과 교감의 방식조차 의문이 들게끔 하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그에 따른 철학적 전환도 급하게 요구된다는 목소리다. 동의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인류에게 기술이란? '무엇을' '어떻게'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열어준 세계, 질문이 돈이 되는 세상. 이제 계산을 하고 답을 쓰는 일을 넘어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에 대한 목소리가 요구된다. 극단적인 예로 영화 《그녀》가 보여주는 의미는, 인간이 사람에게서 가 아닌 기계를 통해 얻는 교감과 위안에 대한 성찰, 이미 2013년 나온 영화라니 놀랍다. 그 외에도 많은 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책은 묻는다.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국 질문의 힘이다. 그렇다면 다시 본질로 돌아가서 왜 우리 인간에게 인공지능이 필요한가? 왜라는 질문과 진심으로 마주하고 직면해야 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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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챗GPT 상용 버전의 공개는 인류 흐름의 거대한 물길을 돌려 놓았고 사회경제적 변화라는 광풍을 몰고 왔다. 이에따라 우리는 인간과 비슷하거나 넘어서는 일반인공지능 또는 초지능의 출현도 머지 않았다는 기대감과, 그에 따라 인간은 필연적으로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기계는 느낄 수 있는가? 기계는 의식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책을 저술하였다. 향후 인공 지능 미숙련 자는 육체노동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졌어도 자유는 실현하지 못한 채 보편적 기본 소득에 의지해 소비만 하는 잉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디스토피아가 펼쳐지면 양극화는 첨예화 될 것이고 현재 우리가 가진 박탈감 그 이상의 심리적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통제된 여론 속에서 인간은 선택과 수용이 아니면 오염된' 정보에 종속 될 수 밖에 없다. 조지 오웰이 이미 오래전 '극단적 무관심 radical indifference'을 주제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통해 경고했던 것 처럼 말이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가짜 뉴스에 대해서 경고한다. 인공 지능은 이미 데이터 편향과 알고리즘 편향을 통해 공론장을 왜곡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별할 수 없게 된 것이 대표적인 증거다.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타인과 무엇을 하는 움직임을 '행위'라고 하며 이 행위는 진정한 인간적이 무엇임을 드러내고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고 정치는 늘 사람 안에서 가능하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활성화 될수록 가짜 뉴스는 넘쳐나고 종래에는 가짜 뉴스등에 의해 진짜 뉴스의 신뢰도와 관심 마저도 떨어질 것이고 이는 공론장을 문란케하여 자정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선전 선동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인공지능을 통제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원하는 결과물을 즉각 제공하는 인공지능을 ‘21세기의 소피스트’라고 부르는데 생성형 AI와 소크라테스식 질문 모두 질문을 포함하지만 목적, 기본 메커니즘 및 결과, 상호작용의 성격은 크게 다르다. 생성형 AI는 정보 검색과 텍스트 생성을 위한 도구인 반면, 소크라테스식 질문은 비판적 사고와 철학적 탐구를 자극하는 인간 중심의 방법이다.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은 인간의 존재 가치, 사고의 정의 등을 생각하는데 있어 필요한 방식이고 지금 시대에 소크라테스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이유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다. 저자의 말 중 오래도록 남는 문장이 있어 옮겨 본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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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이제 일상 속 곳곳에 녹아있다. '챗gpt'에 대한 기술개발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나는 앞으로의 인공지능 시대가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에 이 책 《AI시대의 소크라테스》가 궁금했다. 구글의 CEO는 인공지능의 효과는 인간이 발명한 불이나 전기보다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인쇄술의 발달이 인간의 사고와 소통 방식을 바꿨듯 생성형 인공지능은 지금의 인간 소통방식과 사고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기에 기대감 보다 우려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불안한 시대에 인공지능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5장에 걸쳐 인간과 인공지능에 대해 설명한다. 먼저 대화가 가능한 챗gpt를 예로 들어 인공지능이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닌 혁명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인공지능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했던 나의 무지함을 일깨우고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해 '사고'하는 인공지능, '공감'하는 인공지능, '의식' 있는 인공지능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이혼으로 상처 입고 사회성이 결여된 한 남자가 인공지능 비서와 교감하고 사랑하게 되는 영화 <그녀(Her)>를 보았을때 충격적이면서도 머지않은 미래에 충분히 가능한 현실을 보는 듯 해서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인공지능이 로봇에 지성과 감성까지 부여하게 되면서 우리는 '시리'라는 인공지능 비서와 대화를 하고 기계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로봇이 인간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실험 결과를 보더라도 더이상 감성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시대이며 이것은 어떤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마지막 장은 사고 하고 공감하며 의식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을 이야기한다. 생각하고 공감하며 의식이 있는 로봇의 등장은 인간의 조건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배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소크라테스의 의심하는 회의적 탐구를 통해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이다. 빌게이츠의 선언처럼 AI시대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AI시대의 소크라테스》는 현시점에 꼭 필독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리뷰입니다.] |
책을 읽고나서 표지그림을 보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과 인간 소크라테스가 마주보며 응시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일견 로봇의 파란 두 눈이 당혹스러워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 소크라테스의 날카로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허둥대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은 순전히 책을 읽으면서 느껴졌던 생각탓일 것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이세돌 9단을 가볍게 이긴 알파고로부터 시작된 인공지능에 대한 경탄과 우려, 공포는 쳇GPT에 이르어 절정을 이루었고 인공지능은 점점 더 진화되어 가고 있다. 인간은 고도의 자각을 가지고 생각할 줄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다. 또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공감할 수도 있으며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러한 인간이 가진 특징들의 상당 부분을 닮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 비슷해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 인공지능과 견주어 그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면서 왜 하필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것일까?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 의문이 풀렸다. 그것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소크라테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쳇GPT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질문이다. 질문이 엉성하고 엉터리면 쳇GPT도 엉터리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편리함에 젖어 사고하고 계산하고 추론하는 인간의 능력이 퇴보한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에 군림하여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노예가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무지하다는 전제를 두고서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고를 통해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시대에 소크라테스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우리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인간과의 올바른 관계설정을 위해 저자는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가령 인공지능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그 가운데 생각할 줄 아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인공지능은 방대한 빅데이터를 기계학습을 통해 순식간에 논리정연하게 추론하고 결과를 도출해 낸다.
인간의 생각을 모방하는 것과 흡사한 이러한 기능은 자기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인식은 생각하고 느끼며 어떻게 행동하는가하는 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즉 겉으로 표출되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과 관련하여 인간은 하지만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게 있는데 그것은 자기 이해다. 자기이해는 어떤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가치관, 동기, 행동 이면의 이유등 더 깊은 측면을 파악하려는 시도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이해를 위해서는 성찰적인 접근을 통해 스스로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인공지능은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현대인은 자기이해를 추구하기 보다 끊임없이 자기인식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자기 인식만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새겨들을만 하다.
표지 그림에서 인공지능의 눈빛이 흔들리는 이유는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던진 자기이해에 대한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표지그림을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자기이해에 대한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만약 책을 읽지 않은 채 표지그림만 보았다면 인공지능 로봇이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는 눈빛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의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인공지능도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더불어 자유의지도? 이 주제도 매우 흥미로웠다. 뇌와 마찬가지로 이성, 의식, 자유의지도 모두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그런데 심리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의식이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뇌의 정상적인 기능은 비물질적인 무언가가 우리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의식이고 자유의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스토리를 만들고 문명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의식이나 자유의지가 실체가 없는 환상일 뿐이라고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통제하는 느낌을 주는 이러한 능력이 상실된다면, 인공지능이 우리 마음을 해킹해 우리의 삶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인공지능시대에서는 더욱 더 소크라테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안락함에 빠져들기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느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조금 심오한 내용도 있었지만 충분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지적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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