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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면 사기열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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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나 사기열전을 처음 읽어보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사기는 열전부터 읽으면 쉽다. 열전을 안 읽어본 독자들이라도, 다른 인문고전서를 통해서 백이와 숙제, 자객 형가, 한비자와 이사 등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두 130권 52만 6,500자에 이르는 사기 완본을 원문으로 읽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최익순의 사기열전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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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나 사기열전을 처음 읽어보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사기는 열전부터 읽으면 쉽다. 열전을 안 읽어본 독자들이라도, 다른 인문고전서를 통해서 백이와 숙제, 자객 형가, 한비자와 이사 등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두 130권 52만 6,500자에 이르는 사기 완본을 원문으로 읽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최익순의 사기열전으로 그 기초를 충분히 다질 수 있겠다. 일단 이 책을 읽게 되면 다른 국내 번역본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번역도 깔끔하고 각주는 충실하다. 

본문을 보면 단락을 구분하여 번역문은 앞에, 원전은 그 뒤에 실었다. 각주는 열전 각 편을 중심으로 달았기 때문에 똑같은 내용의 각주가 다른 편에서도 반복된다. 각주의 단어에는 우리말 독음과 더불어 중국 간체자 발음표기를 해놓았다. 인명, 국명, 관직, 지명에 대한 주석이 특히 돋보인다. 국명의 각주는 이런 식이다.

●국명 각주의 예

<秦>: 주(周)나라 제후국 진(秦)나라. 양공(襄公: 재위 BC 778-BC 766년) 영개(贏開)가 BC 771년 견융(犬戎)이 침입하여 주(周)나라 유왕(幽王)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군사를 이끌고 주(周)나라를 구원한 뒤, 주(周)나라 평왕(平王)이 낙읍(雒邑)으로 천도할 때 군사를 이끌고 호송하는 임무를 완수하여 그 공으로 처음으로 제후(諸侯)로 봉해지고 기산(岐山) 서쪽 땅을 봉토로 하사받아 주(周)나라 제후국 진(秦)나라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감숙성(甘肅省) 천수시(天水市) 부근의 작은 땅을 봉지로 가진 주(周)나라에 예속된 부용국(附庸國)이었으며 주(周)나라 대부의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진(秦)나라는 춘추시대 및 전국시대를 거쳐 BC 221년 진(秦)나라 시황(始皇) 영정(贏政)이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206년 진왕(秦) 영자영(贏子嬰)이 항우(項羽)에게 살해되면서 진(秦)나라는 멸망하였다.

 

<晉>:주(周)나라 제후국 진(晉)나라.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 주공(周公) 희단(姬丹)이 섭정을 하면서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들이자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동생인 희우(姬虞)를 당(唐: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임분시林汾市 익성현翼城縣 지역) 땅에 봉하여 원래 나라 이름이 당(唐)이었다. 그 후 희우(姬虞)의 아들 대에 나라 이름을 진(晉)으로 개칭하였다. 진(晉)나라는 서주(西周) 시기를 지나 춘추 시대를 거치면서 진(晉)나라 소공(昭公: 재위 BC 531년-BC 526년) 이후, 범씨(范氏), 중항씨(中行氏), 지씨(智氏), 한씨(韓氏), 조씨(趙氏), 위씨(魏氏)의 육경(六卿)의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공실(公室)은 힘을 잃게 되었다. 이들 육경(六卿)간의 세력 다툼에서 범씨(范氏), 중항씨(中行氏)가 먼저 멸망하였고 진(晉)나라 애공(哀公) 4년 즉 BC 453년 (韓氏), 조씨(趙氏), 위씨(魏氏)가 협력하여 지씨(智氏)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진(晉)나라 열공(烈公) 19년 즉 BC 403년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이 한씨(韓氏), 조씨(趙氏), 위씨(魏氏)를 정식으로 제후로 봉하면서 한(韓)나라, 조(趙)나라, 위(魏)나라가 생겨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후  진(晉)나라 정공(靜公) 2년 즉  BC 376년 한(韓)나라, 조(趙)나라, 위(魏)나라가 이름뿐인 정공(靜公)을 폐위시키면서 진(晉)나라는 멸망하였다.

 

 

■회음후열전 제삼십이

한나라 고조 유방을 보좌한 유명한 삼걸이 있다. 유후 장량(?-BC 186년), 회음후 한신(?-BC 196년), 찬후 소하(?-BC 193년)다. 한신은 특히 군사와 병법에 능했다. 대장군으로 발탁된 한신이 유방 앞에서 서초패왕 항우(BC 232년-BC 202년)를 평한 대목은 한신의 지인지감을 보여준다. 출세하기 전의 과하지욕(袴下之辱)과 출세한 후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성어 두 개를 우리에게 건네준 인물답게 공도 크고 과도 크다.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項羽가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꾸짖으면, 일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엎드리지만, 현명한 장수를 믿어 주고 그에게 일을 맡기는 데 인색합니다. 이는 필부匹夫의 용기일 뿐입니다.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項羽는 사람들을 만날 때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말씨는 자상하고, 몸이 아픈 사람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자기 음식을 나누어 주지만, 막상 공을 세워 응당 땅을 떼어 봉하고 작위爵位를 수여해야 할 때가 닥치면, 관인官印이 다 닳아 못쓰게 될 때까지 차마 내주지 못합니다. 이를 두고 아녀자의 인자함이라 하는 것입니다."(중권 111, 112쪽)

<項王>喑噁叱吒,千人皆廢,然不能任屬賢將,此特匹夫之勇耳. <項王>見人恭敬慈愛,言語嘔嘔,人有疾病,涕泣分食飲,至使人有功當封爵者,印刓敝,忍不能予,此所謂婦人之仁也.

z***a 2014.08.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