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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베 정권이 점점 제멋대로 굴고 있는 것 같다. 자기나라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정치를 하는 것이 일견 자기 마음일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은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아무리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냉정하게 처신하는 것이 국제정세의 현실이라고 해도, 이웃국가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해가 될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아베정권과 요즘의 일본은 그 이치를 저버리는 것 같다.
이 책 보수의 공모자들은 지금 일본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헤치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의 현재 권력자 집단과 그 권력자 집단을 후원하는 세력, 그리고 일본의 언론들의 공모를 파헤치는 책이다. 일본은 20년이 넘는 긴 경제침체기를 겪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이다. 말하자면 선진국이다. 중국처럼 엄청난 인구 때문에 세계 2위가 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언론은 선진 언론이 아니다.
'국경없는 기자단' 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의 자유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57위이다. 그런데 선진국이라고 하는 일본의 언론자유순위는 우리보다 못한 59위 이다. 요즘이야 '한류'열풍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이 많이 높아졌지만, 세계 10위 언저리의 경제력을 자랑한다는 우리나라의 1인당 GDP 수준은 아직도 일본에 비해서는 한심할 정도로 뒤쳐져 있다. 그런데 언론 자유에 있어서는 서방언론 중심의(일본은 탈아입구를 외치는 서방의 한 부분이다) 국경없는 기자단의 순위에서도 우리보다 뒤쳐지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종편'의 보도는 성역이 없다. 저렇게까지 발표를 해도 되나 싶은 이야기들까지 까발려서 이야기를 한다. 언론자유를 지나서 너무 과도한 선정적인 발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말은 권력자들에 대해서도 서슴이 없다. 오히려 대통령보기를 일부 재벌보기보다 더 우습게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 우리나라의 언론자유는 서방의 시각에서 매긴 기준보다 훨씬 더 앞서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언론과 정부의 유착은 물론, 일본 정권과 미국의 네오콘과의 유착까지를 주장한다. 오바마 대통령 자신은 일본이 너무 우편향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미국의 싱크탱크이자 숨은 권력자 집단인 네오콘은 부시정권 이래로 꾸준히 일본의 우편향을 지원해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 그 원인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군사력 수준을 감축할수 밖에 없는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 증대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과 일본보수 집단의 오랜 숙원, 그리고 일본언론의 야합이 지금 우리들 눈에 보이는 일본의 모습을 만든 원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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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성토하라"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보수의 공모자들을 해체할 해법이 젊은이에게 있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젊은이의 지성이 예전만 못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는 싶다. 한마디로 젊은이가 선동에 더욱 손쉬운 상대가 되버린 오늘날, 성토해야할 사람들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떤 의도를 품고 언론과 사태를 요리하느냐에 따라 나라가 왔다갔다한다. 음모론을 던져놓고 불신과 불통의 정치가 원인이라고 하며, 국가를 위한 해법보다는 정치적 야욕과 선동으로 젊은이의 혈기를 갖고 논다. 이 책은 일본 우경세력에 관한 신랄한 비판 서적이다. 관점을 달리해도 솔직히 현재 일본 우경화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본 전체가 바보가 된 것 같다는 느낌도 솔직한 심정이다. 세계 경제 대국이자 선진국인 일본이기에 이와 같은 정치 행보가 더더욱 역겹고 메스껍다. 아프리카에서나 볼 법한 움직임이 아닌가. 잃어버린 20년을 30년으로 늘리고 싶어서 시대 착오적 정치 계산을 이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환경에 매몰되면 한치 앞도 분간하지 못한다. 플라톤의 동굴처럼 말이다. 2011년 후쿠오카 원전 사태를 기점으로 나아지길 바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혐한론까지 들먹이고, 역사 왜곡을 가속화하고, 독도는 아직도 제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집단자위권도 건드리고 말았다. 선진국이 되어서는 안될 국가는 없지만, 오늘날의 일본의 행태를 보면, 저자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일본 현지에서 우경화를 우려한 한 시민이 분신자살한 사건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누가 봐도 현재 상황이 역사의 어긋난 반복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마르크스는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역사는 한 번이 아닌, 두 번 반복된다. 첫번째는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 " 일본은 문학, 기초과학, 역사 등 전영역에서 한국보다 앞서가고 있다. 최근 들어 삼성을 필두로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는 양상을 보이는 산업도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은 일본보다 뒤처지는 분야가 앞선 분야보다 월등히 많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월한 분야에 언론과 정치는 빠진 모양이다. 우리 스스로도 한국의 정치는 더 발전해야 한다고 자인하지만, 일본은 어찌된 영문인지 저자와 같은 지성인이 되레 탄압을 받고 있을 정도로 선진국의 위상에서 동떨어져도 크게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수난을 당한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의 우경화가 매우 신경쓰인다. 한국에게 감히 덤빌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국력을 키워 일본이 우경화로 자충수를 두던 말던 우리 앞길만 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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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공모자들』을 읽고 우리나라와 인접하고 있는 일본을 생각할 때면 여러모로 감정이 깊다. 우선 역사적으로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대국가 시절에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았었고,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전쟁을 겪었으며, 근세에는 결국 일본의 식민 지배까지 오래 받으면서 중일전쟁과 제 2차 세계대전 중의 태평양전쟁까지 겪어야 했던 별로 좋지 못한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많이 힘들었던 우리나라도 박정희 정부시대의 경제개발계획을 수립, 실천하면서 일본과의 협정에 의하여 경제적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지만 작금의 여러 상황들이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의심하게 할 만큼의 일들이 보도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보란 듯이 참배를 하고,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로 옹호하는 등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아베 정권이 재집권한 이후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과 함께 이후 전개될 주요 정책에 대한 해박한 진단을 읽을 수가 있다. 외무성 출신의 외교안보 전문가였던 저자가 전개하고 있는 논리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 만큼 설득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현 정권과 정치가와 신문이나 티비 등의 대형 미디어 보도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정부가 행하는 정책에 대한 반감을 갖고서 서술하고 있다. 즉 현재 집권세력인 아베가 이끄는 집권당이 일본의 정책 방향을 잘못 잡고 있으며 여기에 바로 언론이 합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에 따라서 책에서는 일본 정치의 진실의 은폐 문제, 지역문제인 오키나와 독립론, 아베정권 배후의 미국 그림자, 미국과 중국의 가까움, 기타 등등의 내용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전개하고 있다. 평소에 가까이 대할 수 없었던 일본의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살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몇 차례 들어가서 역사적인 문화재와 생활모습을 느끼고 온 적이 있다. 그렇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솔직히 느끼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생하게 받아들여지고, 갑자기 일본에 대해 자세하게 안 듯 한 기분이 든다. 특히 오키나와 독립 문제에 관한 내용들은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좋은 기회가 되어 너무 좋았다. 우리와 함께 가야만 할 일본에 대한 현재의 상황들을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음을 고백해본다. 물론 정치적인 판단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얼마만큼 신뢰해야 할지는 주관적으로 다르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많은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권력과 언론마피아의 관계 속에 국민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어 우리들도 참조할 만한 이야기인 것 같다. 최근 일본을 세세하게 알 수 있어 너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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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뉴스에서 한 일본 남성이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반대하여 분신 자살을 기도한 소식을 접했다.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 자위권 행사 방침에 반대하는 1인 시위 후 치솟은 붉은 불길... 마음이 착찹했다. 최근 아베 총리의 주도로 일본은 극우 보수화되어가고 있고, 보수정권과 언론은 말 그대로 '한통속'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현실이 겹쳐져 보였다.
'보수 정권의 과오를 비판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의 저자 마고사키 우케루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서 일본과 한국은 얼마나 성숙한 나라인지'를 질문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전제는 언론의 자유이고, 이것은 일본과 한국은 언론의 자유, 보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해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어 '국경없는 기자단'이 발표한 세계 보도의 자유 랭킹에서 '보도의 자유' 국가 순위는 한국 57위, 일본 59위라고 한다(사실 기대도 안 했다.-_-;). '일본 언론의 보도는 "무엇이 사실인가"를 전할 의도가 없다. "무엇이 아베 총리가 좋아하는 것일까" 또는 무엇을 좋아하지 않을까"가 보도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일본 국민들이 그런 언론 보도를 신뢰하고 있다.'(12쪽) 사실을 전할 의무를 저버리고 정책의 감시자에서 '공모자'가 된 언론, 그리고 그런 언론 보도를 그냥 신뢰하는 국민들. 이것도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아니, 다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비슷하다.
일본 언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 책 곳곳에 저자의 날카롭고 통찰력있는 시각, 외교관으로서 오래 쌓아온 실무 경험을 토대로 내린 진단과 처방이 빛을 발한다. 이런 외교/안보 전문가가 이렇게 공식적으로 거침없이 비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까. 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히면서, 아마 적지 않은 위험 부담과 여러 불이익들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저자는 최근 자민당 국회의원에게 기피 인물로 지목당하고,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아 NHK에 출연시키지 못하도록 정부가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모든 것을 무릅쓰면서 이 책을 쓴 이유, 저자는 우리가 평소 접하고 있는 뉴스에 대해 두 가지 '의심하는' 힘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먼저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대형 미디어의 보도를 의심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대형 언론매체들이 모두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에 초점을 맞추어 교묘하게 파놓은 함정을 저자는 감지한다. 대형 미디어들이 "달리 경기를 호전시킬 대안이 없다면,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문제는 '아베노믹스'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안들은 참의원선거에서 구석으로 밀려나 쟁점으로 부각되지도 못했다.'(16쪽) 이처럼 큰 선거를 앞두고 어째서 아베노믹스가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만 부각되고, 원전 문제는 시빗거리조차 되지 않는가. 저자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대형 언론매체들이 그것을 쟁점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한마디로 그들이 짜준 판에서만 놀아야 한다는 이야긴데, 이것도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정부라는 존재'를 의심하는 힘을 기르라는 것이다. 저자는 1960년대 처음 외교관으로 부임했던 소련에서의 경험을 들려준다. 언론과 보도의 자유가 없었던 소련에서 사람들은 정보가 발표하는 정보를 전혀 믿지 않았다. 당시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프라우다(진실)가 없다는 야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근무한 이란에서는 반체제파 신문들이 정부에 의해 차례차례 폐간당하며, 정부의 어용신문만 살아남는 상황도 지켜보았다고 한다. 정부에게 정보란 통치의 기구라고, 이것은 공산주의나 이슬람권 국가에서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고 하지만 정부는 정보를 끊임없이 통제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중-일 및 한-일 영토분쟁, 오키나와 독립에 대한 아베 정부의 주요 정책들에 대해 저자가 낱낱이 밝혀낸 일본 언론의 '공모'를 읽으면서, 자꾸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야기했던 '세계 보도의 자유 랭킹'을 나도 인터넷으로 검색해본다. 2006년 한국의 순위는 31위였는데 8년이 지난 지금 26위 추락했다. 그 추락의 시간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눈앞의 정보를 '의심하는 것'부터가 첫걸음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지금이야말로 숱한 일들에 '성난 젊은이들'이 되어 일어날 때라고 강조한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가치관이나 관심을 공유하는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사귀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나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생활을 하노라면 일단 마음은 편하다. 누군가와 다투고 상처받는 일 없이, 지금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당연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우리보다 앞서 삶을 살다 간 선인들이 만들어준 환경 덕택이다. 만약 우리가 사회나 정치에 무관심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편안한 환경은 모래알처럼 우리 손아귀에서 모두 빠져나가버릴 것이다.'(20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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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일본인이 쓴 글인데 왜 우리나라의 이야기와 똑같을까?
위험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정치와 그 위험한 정치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언론.
언론은 사실을 전하기보다는(사실은 사실이나 편집된 사실, 혹은 과장된 사실이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고 있으며, 불행하게도 많은 국민들은 그 언론에 여전히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일본의 총리인 아베는 이상하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를 보니 우리나라의 대통령들과 비슷한 이유였다. 즉,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 금융과 재정, 그리고 성장에 대한 기대가 거기에 담겨있는 것이었다. 성장을 추구하다 보니 일본에서는 원자력 사고가 났지만 여전히 원자력 수출에 힘을 쏟고 있으며, 금융완화와 예산 뿌리기로 성장을 유도한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 아베 정권은 7.1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단자위권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역대 내각의 헌법 해석을 수정했다. 이것은 결국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것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네오콘과 이권을 같이 하겠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일본의 아베 정권은 미국 내 재팬 핸들러 (군산복합체, 네오콘)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베 정권은 대미 종속 정권이며 여기에 언론은 비판적인 힘을 잃고 오히려 적극적인 지지와 여론 형성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마고사키 우케루는 그래서 국민들은 '속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진실을 똑바로 보라고 강조한다.
속은 자의 죄는 단지 속았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쉽게 속을 정도로 비판력을 잃고, 사고력을 잃고, 신념을 잃고, 수동적인 맹종에 자신의 모든 걸 맡겨버린 국민 전체의 문화적 무기력·무자각·무반성·무책임이야말로 악의 본체인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일본의 경우 60년대 젊은이들의 정치적 투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젊은이들을 보기 힘든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일본에 흘러넘치던 '성난 젊은이들'은 지금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나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원전 문제든, 국방군 창설이든, 헌법 개정이든 앞으로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될 대상은 우리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인생이 정부 때문에 엉망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대체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정작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분노하고 일어나야 할 젊은이들은 눈을 감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나라와 조금은 비슷하다. 특히 투표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일에 젊은이들은 참여도가 너무 낮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저자는 '의심하라'고 조언한다.
미래 예측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야 나타나는 현상이다. 눈앞의 정보를 '의심하는 것'부터가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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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침묵하면 돌들이 입을 열어 소리칠 것이다." 이 말의 출전은 본디 기독교의 경전이라고 합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故 리영희 선생의 인용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합동통신, 조선일보에서 기자로서 젊은 시절 커리어를 다진 분이었으며, 그가 한양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 강좌를 담당하며 교편을 잡은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서입니다. 선생은 거의 전 생애를 바쳐 "제 할 말을 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이 사회의 공기요 소금 같은 존재라는 진리를, 글과 행동을 통해 한국인에게 확신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인지, 한국의 언론은 과거 군사정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를 찾은 편입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