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실망감은 의외로 컸다. 그림책의 그림이 너무 밋밋했으며, 색채도 칙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읽기를 게을리 하다가 제대로 책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점점 그 느낌이 달라졌다. 고백하건데 나는 그동안 그림책을 보는데 있어서 얼핏보고 귀엽게 느껴지는 그림이나, 눈을 끄는 색채글 제공하는 그림에 더 마음이 끌렸었다. 그러나, 그림책의 그림은 '귀엽다'라든가 '색이 밝고 예쁘다'등의 조건이 사실상 중요하지 않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이 얼마만큼 풍부하게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가'라고 한다.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표현하는 힘을 가장 강하게 가진 요소는 색이 아닌 모양이고, 색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받쳐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다. 내가 실망을 느꼈던 이 책의 그림은 점차 이런 이론을 검증이나 하듯 나에게 그림책 보는 재미를 붙여 주었다. 이 책의 그림에는 표면적으로 눈을 끄는 귀여움이나 화려함은 없지만 문장과 삽화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서 직접적인 교훈의 제시없이 끝을 맺어 부담이 적었다. 책의 표지에도 '가족 사랑의 이야기'라고 작게 명시되어 있는만큼,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가족간의 화합과 사랑이다. 재미있는 것은, 책을 펼치면 제목장이 먼저 나오기도 전에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형들은 정말 귀찮아! 나 혼자서도 뭐든지 잘 할 수 있는데...'라는 의미 심장한 문구와 막내들쥐의 귀분주한 모습이 귀엽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 한마리의 들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기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 들쥐의 입장이 되어 책 읽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초롱이는 자신이 형들보다 더 엄마한테 칭찬을 받고 싶은 들쥐이다.그렇다고 초롱이 어머니가 자녀를 편애하는 것은 아니다. 책 내용 중에는 형들보다 나무 열매를 적게 따 왔을 때도, 풀을 뜯어 왔을 때도, 꽃를 따 왔을 때도 어머니의 특별한 꾸중이나 편애의 태도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형들 만큼이나 열심히 열매를 따고, 풀을 뜯고, 꽃을 따는 것이 대견해서 칭찬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초롱이의 생각처럼 열매나 과일의 수확량이 어머니에게 정말 문제가 되었다면 분명히 그에 대한 상황이 전개 되었을 것이나, 그렇지는 않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어머니의 행동이나 말과는 전혀 상관 없이, 또 그처럼 귀찮아 하는 형들의 특별한 행동없이 초롱이 자신의 심리상태로만 이야기가 계속 전개 되었다는 점이다. 나무 열매를 따러 갔다가 형들이 열매를 많이 따서 기분이 좋았다거나, 어머니가 어떤 말을 했다거나 하는 것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다. 다만, 저 혼자서 나무열매를 많이 따지 못해 시무룩해졌고, 풀을 많이 뜯지 못해 토라졌고, 꽃를 많이 따지 못해 화까지 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요즘은 결손가족이 주위에 흔하다. 큰 문제가 있어서 결손가족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그렇고, 이혼과 그에따른 가족간의 재결합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그렇다. 이런 가정의 자녀들에게 나는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작가 선생님은 표면적으로는 들쥐 형제에 대한 우애만을 말하고 있는 듯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아주 포괄적인 가족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초롱이네도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지는 않다. 들쥐 아빠의 존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다. 눈치채지 않게 아빠의 부재를 기본 틀로 설정해 놓은 다음에 세 형제의 우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아빠가 없네?, '그러나, 엄마는 항상 웃으시네?', '두 형들이 동생에게 아빠의 몫을 대신하고 있네?', '그러나 불행해 보이지는 않네?'라고 생각하게끔 생각을 유도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황과 현실에 따라서 책이나 사물을 보는 관점은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어떤 처지이건 간에 이 책을 읽고 '가족'에 대해서 한 가지라도 생각할 '꺼리'를 갖게 될 것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가치있는 꺼리를,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할 요소로 내내 가슴에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