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이경자 작가, 그리고 양양(襄陽)
"이경자 작가, 그리고 양양(襄陽)" 내용보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뜨거운 가을입니다. 세계는 넓고 위대한 작가도 많으므로 작품이 훌륭하다는 것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른 변수들이 있겠지요. 경제성장과 K문화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 좋은 번역자에 힘입어 국제적인 문학상을 이미 수상한 한강 작가의 저력 등등… 국력이 미미하여 우리의 문학이 세계인들의 관심 밖일 때 외세와 독
"이경자 작가, 그리고 양양(襄陽)" 내용보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뜨거운 가을입니다. 세계는 넓고 위대한 작가도 많으므로 작품이 훌륭하다는 것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른 변수들이 있겠지요. 경제성장과 K문화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 좋은 번역자에 힘입어 국제적인 문학상을 이미 수상한 한강 작가의 저력 등등… 국력이 미미하여 우리의 문학이 세계인들의 관심 밖일 때 외세와 독재를 비판하다 고초를 겪었던 원로문인들을 생각하면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입니다. ‘선배작가들의 노력이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라는 한강 작가의 소감에 위안 받았으나 독자들의 관심이 온통 노벨상 수상작품으로만 쏠리고 있다는 소식에 조금은 씁쓸해져서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애니 아르노와 공통점이 많은 이경자 작가를 문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골 서민 가정 출신’, ‘엘리트의 언어가 아닌 출신 계급의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 ‘반항과 전복의 페미니스트 작가’,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해방의 문학’, ‘지배계급의 교묘한 차별을 폭로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글쓰기’…. 프랑스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애니 아르노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이 양양 출신 여성작가 이경자와 많이 겹치기 때문입니다.

유한계급의 위선과 소외계층의 설움을 다룬 『할미소에서 생긴 일』,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고발한 여성주의 연작소설 『절반의 실패』, 남존여비의 원초적 비극을 양양의 지방언어를 살려 서정적으로 쓴 장편소설 『사랑과 상처』, 탈북여성을 직접 인터뷰하여 쓴 장편소설 『세번째 집』,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1953년의 양양을 쓴 장편소설 『순이』등이 바로 그러한 작품들입니다.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고 밝히며 자전적 글쓰기의 독보적 영역을 개척한 애니 아르노와 ‘자신의 체험을 녹여 쓰거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몸으로 겪거나, 실존인물들과 오래 동행하며 인터뷰하여 생생하고 리얼하게’ 쓰는 이경자의 ‘같음’과 ‘다름’을 곰곰 생각하면서, 최근에 읽은 애니 아르노와 예전에 읽은 이경자의 작품들을 비교하며 읽고 검색하고….

그러다가 최근에 출간된 에세이 『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를 만나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독자로서의 나는, 문학상 수상이력과 작가정신이 이경자만큼 일치되는 작가를 달리 알지 못합니다. 올해의 여성상, 한무숙문학상, 고정희상, 현대불교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제비꽃서민문학상, 민중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그리고 작가는 여러 문학상을 받았지만 ‘재경양양군민회에서 주는 <자랑스런 양양군민상> 1회 수상자인 걸 진짜 자랑스러워한다.’고, 고백합니다. 스스로 화전민의 후손임을 담담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누구인들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만,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고향을 가진 작가와 그러한 작가를 가진 고향은 함께 아름답습니다.

발로 뛰고 직접 체험하는 작가의 에세이에 걸맞게 황토색으로 디자인한 표지를 열어보니 본문의 종이 색깔이 온통 양양의 바다와 닮은 푸른색입니다. ‘하루도 같은 표정을 짓지 않고 하루도 같은 빛을 가지지 않으며 하루도 같은 향기를 뿜지 않는 곳, 양양’이라는 표현에 홀려 읽기 시작했으나 그냥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닙니다. 이곳에서 살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고향을 향한 작가의 애틋함과 그리움이 가득하고 양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이 느껴집니다. 작가는 ‘새나 짐승이나 벌레는 다닐 수 있어도 사람은 다닐 수 없는 경계, 삼팔선'으로 생긴 슬픈 사연들을 들려주는 한편 양양의 숨겨진 아름다움과 따뜻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고향이 다른 나에게도 작가의 양양 이야기가 내 고향 이야기처럼 친숙하게 스며들면서 설렘을 안겨주는 까닭은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인류 공통의 정서이기 때문이겠지요.

“햇살은 동서남북을 따로 가르지 않고 저의 온몸에 쏟아진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문득 양양(襄陽)이라는 지명의 뜻과 유래가 궁금해졌습니다. 襄은 ‘돕다, 오르다, 우러르다’를 뜻하고 陽은 ‘볕, 양지, 밝음’을 뜻하므로 양양(襄陽)은 밝음을 향하여 올라가거나 밝음을 우러르는 곳, 혹은 볕의 도움을 받는 곳이 아닐까요? 양양(襄陽)을 영역하면 Up Sunshine이나 Respect Sunshine쯤 될까요? 영화 ‘밀양’을 해외에 소개할 때 밀양(密陽)을 뜻하는 ‘고요한 볕’이나 ‘깊은 볕’을 Quiet Sunshine이나 Deep Sunshine으로 직역하지 않고 Secret Sunshine으로 의역했던 것처럼 좀 더 아름답고 신비감을 주는 의역은 없을까? 라는 궁리도 해봤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작가 방에 붙여 두었다는 양양군의 지도를 인터넷에 들어가 확대해보거나 구글어스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2쇄 찍을 때는 양양군 지도를 실어 달라고 출판사에 전화해볼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눈 팔면서 샛길로 잠깐 빠졌다가 길을 되찾아 가느라고 책 읽기가 더뎌졌지만 무한한 상상과 궁금증과 호기심, 동경과 그리움, 마음 겹침을 촉발하는 이런 책을 나는 정말 좋아합니다. 작가는 ‘혼자 가라’고 권했지만, 읽는 내내 작가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함께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양양에 갈 때는 혼자, 그러나 배낭엔 이 책을 꼭 넣어가야 하겠습니다. 배낭에 넣었다가 꺼내 읽기 딱 좋은 부피의 책이기도 합니다.

“공간과 시간은 비어 보이지만 마음을 열면 자연 속에 온통 ‘인연’들이 바람처럼 흐른다.”는 작가의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아주 오래 전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 썼던 자작시가 생각나 리뷰의 마무리를 대신합니다.


-숨은 길-


숲으로 난 작은 길을 걷는다.

타고 온 기계는 저 아래 버려두고

목적지도 잊고 쉬엄쉬엄 걷는다.

속도를 거부하여 버림받은

버림받아서 아름다운 옛 길

굽이굽이 이 길 따라 흘렀을

나지막한 노랫가락이며 넋두리, 한숨소리

호젓이 마음 기울이며 걷노라면

내딛는 발자국, 자국마다

옛 사람들의 눈물 스며들고

지나온 저 길들은 내 생애의

한 자락 숨은 길로 누워

먼 훗날의 발자국들 끌어안으리.

f*****1 2024.10.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