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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되어도 후회 없을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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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상을 조각낸 뒤, 보석 파편들을 정교하게 이어 붙이듯 세공해낸다. 그리하여 모인 조각들은 결국 하나의 빛나는 집합체가 되어 삶의 가치를 묵직하게 드러낸다. 독자의 삶을 담은 듯 무색무취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더 깊고 날카로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마치 필립 로스가 모든 남자들의 운명을 책의 페이지 안에 몰래 숨겨둔 듯하다. 삶의 무의미함,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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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로스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상을 조각낸 뒤, 보석 파편들을 정교하게 이어 붙이듯 세공해낸다. 그리하여 모인 조각들은 결국 하나의 빛나는 집합체가 되어 삶의 가치를 묵직하게 드러낸다. 독자의 삶을 담은 듯 무색무취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더 깊고 날카로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마치 필립 로스가 모든 남자들의 운명을 책의 페이지 안에 몰래 숨겨둔 듯하다. 삶의 무의미함, 그리고 죽음의 무게에 우리는 서서히 짓눌린다.

미리 말하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다소 과장되었을지 모른다. 작중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주인공의 삶은 내 아버지의 삶을 닮았고, 그의 내면은 마치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와 나의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고, 이 이야기가 내 삶을 예견한 것만 같아 강한 충격을 받았다. 

필립 로스의 탁월함은 인간 본성의 가장 은밀한 층위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의 통찰은 내면의 심연을 넘어서, 우리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본능의 그림자까지 꿰뚫는다. 그는 하찮고 본능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정교하게 추적하며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평범한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는 무풍의 방 안에서도 공기의 움직임을 읽는 사람처럼, 정적 속의 미세한 동요를 포착해낸다. <에브리맨>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가 문장이 된 상태를 경험했다. 어쩌면 그것은 주인공의 성격이 내면 깊은 곳의 나와 지나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내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뛰어나다고 느끼는 이유는, 필립 로스가 인간의 감정을 정제하지 않은 채 날것 그대로 통찰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감추지 않고, 실수를 인정하며 깊이 후회하는 주인공의 사색은 누구나 지나온 인생의 어딘가를 건드린다. 필립 로스는 그런 삶을 비난하지 않는다. 한없이 부족한 인생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는 중립적인 관찰자의 위치에서 인간의 본성을 응시하며, 독자를 깊은 사유로 이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독자는 그 어떤 허구보다 무거운 현실성의 무게에 짓눌린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마치 실재 인물의 일기장을 몰래 들춰본 듯한 진실함을 전한다. 독자 자신의 일기장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느낌마저 준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묻힌 곳에서 뼈가 되어,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될 우리의 허무한 인생에 대한 경고일지 모른다.

우리가 죽은 자리에는 뼈만 남는다. 그 뼈를 찾아오고 애도해줄 사람은 결국 남은 자들이다. 주인공처럼, 죽음이 다가온 시점에서 늦은 후회와 함께 자신의 뼈를 찾아올 누군가를 갈구하기보다, 아직 늦기 전에 주변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

뼈가 되어도 후회 없을 삶을, 오늘부터 시작해보라는 따뜻한 권유처럼, 나는 이 책을 덮는다.
k*******4 2025.04.14. 신고 공감 7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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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하는 방법 - [에브리맨]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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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하는 방법<에브리맨>을 읽고  나의 죽음은 경험할 수 없다. 대신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죽음을 피하고 싶어서 한평생 달려보지만 페이스메이커처럼 계속 따라 다니던 죽음과 함께 무덤이라는 결승선으로 들어온 '보통 사람'에 관한 소설, 곧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에브리맨(EVERYMAN)>을 만나본다. 요즘은 웰다잉의 일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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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하는 방법
<에브리맨>을 읽고


  나의 죽음은 경험할 수 없다. 대신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죽음을 피하고 싶어서 한평생 달려보지만 페이스메이커처럼 계속 따라 다니던 죽음과 함께 무덤이라는 결승선으로 들어온 '보통 사람'에 관한 소설, 곧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에브리맨(EVERYMAN)>을 만나본다. 요즘은 웰다잉의 일환으로 생전 장례식을 열기도 하나, 아직은 나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나의 장례식 역시 직접 치뤄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테다. 책을 열면 '그'는 무덤 안에 죽어 누워 있고 산 자들은 무덤 밖에서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형네 가족을 비롯한, 특히 그의 아내'들'과 자식들은 그를 추모하면서도 각기 다르게 그를 기억한다.
  그는 '연쇄 가족 해체자'이다. 두 번의 이혼으로 세(혹은 새) 아내는 물론 자녀들에게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애정을 온전히 누렸으나, 정작 아버지가 돼서는 내리사랑을 하지 않아 자식들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 세 번의 결혼, 세 명의 아내, 세 명의 자식, 그러고 보니 그는 숫자 '3'과 인연이 깊은 듯하다. 혹시 그만의 죽음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로, 완결한 혹은 완전한 수로 알려진 3을 추구하는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였을까. 그렇다 치더라도 야구에 빗대어 보자면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삼진아웃을 당한 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3 다음 숫자인 '4(死)'가 필연적인 죽음을 맞게 되는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다이아몬드란 건 그 아름다움과 품위와 가치를 넘어서서 무엇보다도 불멸이거든. 불멸의 흙 한 조각, 죽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간이 그걸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다니!(80쪽)"

  그의 아버지는 '모든 보통 사람'이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보석을 주고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에브리맨'이라는 보석상을 열고 오랜 세월 동안 운영한다. 그곳에서 어릴 적부터 일손을 보탠 그여서일까, 오십이 넘어 '발견'한 여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면서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한 발언도 한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도 멈출 줄 모르는 여성 편력과 달리, 대체로 원기왕성한 삶을 구가하던 그를 종종 멈춰 세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죽음'이다. 불멸을 꿈꾸는 이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있음'으로써 필멸을 일깨워주는 존재, 그 존재감을 왕왕 느껴온 것이다. 그에게 보석상이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줬다면, 병원은 삶의 활기가 식어가다 어느 순간 한기로 바뀌어 죽음을 불러들이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아홉 살에 탈장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을 때 옆 자리의 소년은 죽고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감지한 뒤로, 30대에 충수염과 복막염, 50대에 심장병, 60대에 신장병으로 각각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된다. 간헐적 수술에서 다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가 '보석(寶石)'처럼 빛나는 삶을 살다가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게 될 때를 기다려 (생전에 현대 의료 기술의 최전선이며, 사후에 장례식장까지 제공하는) 병원에서 그 죄를 뉘우치면 '보석(保釋)'으로 풀어주는 게 죽음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이러한 그의 개인적인 체험뿐 아니라, 어린 시절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전했다가 죽어 퉁퉁 분 채로 해안가에서 발견된 주검을 직접 보거나 최근에 9·11 테러로 인한 수천 명의 희생자를 목도함으로써 역사적, 집단적 죽음에서 다시금 그대와 우리의 죽음을 재발견하게 된다. 비록 소설 속 노인들이 '전투'라고, 그는 '대학살'이라고까지 말하는 '노년'에 대하여 사실적이면서도 위트있게 묘사한 장면들을 지켜보는 게 마냥 편한 건 아니다. 그와 같이 끝내 죽음을 피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직시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랑, 사람, 건강, 부, 명예 등 살아가면서 얻고 또 잃게 되는 것들처럼 죽음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가 딸에게 한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책을 덮으려 한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106쪽)"


이달의 사락 k*****o 2025.03.07. 신고 공감 6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