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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제1차 세계 대전과 관련이 있다. 헤세는 전쟁 초반부터 모든 전쟁의 만행을 혐오하고 과도한 민족주의를 반대했다. 1917년 프랑스의 베르됭과 솜강 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1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무참하게 목숨을 잃은 후 그는 데미안을 집필했다. 데미안의 발간 시점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의 혹독한 상흔을 안고 돌아와 삶의 새로운 방향과 의미를 찾는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역자는 적었다. 헤세가 전쟁에 반대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데미안은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힐 여지가 있다. 데미안의 8장 종말의 시작은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 속에서 전쟁에 대한 말들을 인용해 본다. 세계 멸망도 지진도 혁명도 아니야. 전쟁이 터질 거라고. 넌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강타하는지 보게 될 거야! 거기에 사람들은 환희로 응답할 거야. 다들 벌써부터 이제나저제나 전쟁이 터지기만을 고대하고 있어. 그만큼 삶이 무미건조해진 거지. 산 사람들을 향해 발사 명령을 내리는 게 내게 근본적으로 무슨 재미가 있겠어.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문제라고. 이제 우리 모두 커다란 수레바퀴에 휩쓸리게 될 거야. 너도 마찬가지야. 넌 틀림없이 징집될 거야 이제 전쟁이 발발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자주 이야기했던 일이 이제 시작될 것이다. (중략) 이제 갑자기 세상의 흐름이 우리의 심장 한복판을 관통하고, 모험과 거센 운명이 우리를 부르고,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온다니. 평화를 호소하는 글을 기고하던 헤세가 실제로는 전쟁 참여를 위해 베를린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은 것처럼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전쟁에 뛰어든다. 전쟁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미묘하다. 외면적이고 정치적인 전쟁의 목적에 대한 질문이 표면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생성되고 있었다. 새로운 인간성 같은 것이. (중략) 근원적인 감정들, 극히 사나운 감정들조차 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잔혹한 행위는 내면의 발산, 내적으로 분열된 영혼의 발산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영혼은 미친 듯이 날뛰며 죽이고 파괴하고 죽어서 새로 태어나기를 원했다. 거대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웠으며, 그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새-알-세계로 이어지는 그 유명한 말이 여기서 다시 언급된다.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단계로 한 걸음 나아간다는 건데 그 계기가 꼭 전쟁이고 잔혹한 행위여야 하는가? 다른, 평화적인 방법의 우회로는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