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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 <소설 쓰고 앉아 있네> 를 다 읽고 냉장고에 넣었다. 이미 잘 세척되고 손질되고 소분된 책이라서 그대로 저장했다. 작가의 가설인 ‘냉장고 이론’에 나오는 ‘내면의 냉장고’에.
“영감은 있다. 그렇지만 글을 쓸 때 그걸 찾아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이냐고요? 글을 ‘쓸 때’라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글을 ‘쓰기 이전에’ 영감을 찾아놓아야 합니다. 책상에 앉기 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어디에? 바로 우리 내면의 냉장고에요.
이제부터 소개하려는 것은 제 가설입니다. 아직 이름이 없으니 ‘냉장고 이론’이라고 해보겠습니다. 텔레비전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레시피를 잘 따라가다가도 간혹 의아한 순간이 생가기 마련이죠. 셰프가 냉장고를 열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재료를 꺼내며 이런 말을 할 때 그렇습니다. “여러분, 다들 냉장고에 이런 거 하나씩은 있으시죠?” ‘5분 만에 뚝딱 완성하는 초간단 요리’ 같은 제목도 기만적입니다. 왜요? 셰프의 냉장고 속에는 필요한 모든 재료들이 구비되어 있거든요. 잘 세척되고, 손질되고, 소분된 채로요. 셰프 말대로 요리를 하려다가는 5분이 아니라 50분도 모자랄때가 있습니다. 일단 마트부터 다녀와야 하잖아요. 화면 바깥, 현실에서의 우리 냉장고는 텅 비어 있으니까요. 글쓰기도 이와 똑같습니다.”
“영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때론 한강을 건너는 버스 안에서, 누우려고 막 불을 끈 직후에, 지하철의 환승 통로에서, 욕실에서 샤워를 하거나 거리에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그럴 때마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흘려보내고, 프로는 붙잡습니다. 그리고 잘 씻어서 소분한 뒤 우리 내면에 있는 냉장고에 저장해 두는 것이지요. 그것이 유일한 차이입니다.
제 생각에, 영감을 붙잡아두기 위해 메모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어떤 툴이나 앱을 사용하는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노트, 다이어리, 휴대폰, 녹음기, 노트북, 냅킨, 아니면 손바닥……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적어놓고, 나중에알아보고, 이후 정리하고 분류하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문지혁 작가는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고잉 홈> 등을 출간한 15년차 소설가이며, 대학에서 글쓰기와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다정하고 친절한, 그러면서도 정확하고 성실한 선생님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앞에 쓴 문장을 보면 사실과 견해를 섞어 썼다고 꾸중하실 게 분명해 보이니까.
책은 책상을 두고 3부로, 그러니까 ‘책상 앞에서’, ‘책상에서’, ‘책상 밖으로’로 이루어져 있다. ‘냉장고 이론’은 1부에 나오고, 본격적인 창작 수업은 2부에서 펼쳐진다. 재미있지만 정확한 비유와 설명이, 어렵고 복잡한 이론을 새롭게 이해하고깨닫게 해준다.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선생님이다.
책에는 일종의 영업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도 꽤 나온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하면, 글쓰기 좋은 날이 언제인지 알려준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마치 한꺼번에 아이스아메리카노 속 얼음 세 개쯤 입안에 문 것처럼 얼얼했다. 선생님은 말한다. 단 하루도 글쓰기 좋은 날은 없다. 세상은 우리가 글 쓰게 가만두지 않는다. 글쓰기의 장애물과 방해 세력은 끝없이나타난다. 그것이 기본값이다. 그러니 불평하는 입을 다물고 그냥 써라.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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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 있네>작품 소개 - 제목 : 소설 쓰고 앉아 있네 - 작가 : 문지혁 - 출판 연도 : 2024년 9월 - 출판사 : 해냄출판사 - 장르 : 독서/글쓰기 - 쪽수 : 324쪽 <작가 소개> "그것은 '쓴다'는 말이 동사이기 때문이다. "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읽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계속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스24 펀딩 참여작년 12월에 그의 소설을 읽었다.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그가 쓴 모든 소설을 읽어 보진 못했지만 그 이후로 문지혁 작가의 글이 뜨면 읽어 보곤 했다. 그러다 9월에 예스24 북펀딩이 올라 왔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 출간 후 도착하자마자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서야 올린다. 이런 작법서는 한 번으로 끝내면 안되고 몇 번을 읽어야 나에게 도움이 된다. 읽었던 작법서를 요즘에 다시 읽는 이유 중 하나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문지혁 작가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소설 작법서다. 이 책은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조언과 팁을 제공한다. 문지혁 작가는 낮에는 글쓰기 강사로, 밤에는 파트타임 소설가로 활동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그의 글은 따뜻하면서도 진솔한 매력이 있다. 아마 이 부분 때문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작법서들은 기술적인 부분만을 다루지만, 이 책은 단순히 작법 뿐만 아니라 소설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의 습작시절의 경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문지혁 작가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그에 대한 극복 방법을 제시하며 글쓰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 준다. 소설 쓰는 작업이 혼자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함과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에서 기억해 두어야 할 사항 5가지를 꼽자면 꾸준한 연습, 자신의 목소리 찾기, 비판 수용하기, 감정 이입, 퇴고의 중요성을 들수 있다. 소설은 연습이 제일 중요하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다른 작가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구축해 쓰는 것도 중요하다. 또 합평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피드백을 겸허히 받아 들이고 이를 통해 성장해 나가야 한다. 소설을 내가 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초고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러 번 퇴고를 통해 완벽한 작품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 책은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드린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분들이나, 소설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문지혁 작가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드린다. 그가 소설에서 보여 주지 못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보시길 바란다. 아직 그의 소설을 읽지 못하신 분들이 있다면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도 같이 읽어 보시길 권한다.
밤에는 파트 타임 소설가 낮에는 풀 타임 글쓰기 강사 그가 전하는 소설 창작의 모든 것 소설 쓰고 앉아 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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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니. 무슨 책 제목을 이렇게 사용했는지 궁금해서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물론 문지혁 작가를 좋아하긴 한다. 소설이 아니라 본인 이야기 아닌가 싶었던 『초급 한국어』와 『중국 한국어』까지 섭렵하고 나니 왠지 작가를 아는 거 같지 않느냐 말이다. 제목은 소설가를 지칭하는 부정적인 표현이긴 하다. 이런 제목을 쓴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과거에 소설을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찰나이긴 했지만 있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어릴 적에. 이런 제목을 사용한 작가의 위트가 좋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작가의 소설창작 수업은 여러모로 의미 있다. 실제 강의하듯 한 글과 문지욱 만화가의 그림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처음엔 작법서와 만화 컷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으나 계속 읽다 보니 글과 그 글을 표현한 만화가 적절하게 사용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쓰는(혹은 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는 아니지만, 글쓰기에 관해서는 늘 부족하다고 여기기에 관련 책을 기웃거리긴 한다. 내 거로 만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만 말이다. ![]()
작가들은 언제 어디서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는 줄 알았다. 음악가가 악상을 떠올리듯 작가는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무작정 쓰기 시작한다고 말이다. 그건 독자의 착각일 뿐, 꾸준히 작업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작가는 아이 돌보는 밤에 소설을 썼다고 했다. 한국어 시리즈는 조리원 화장실에서 썼다고 하니 작품이 나오는 순간은 장소에 구애 받지 않은 것 같다. 작가가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던데 글을 쓰기 적합한 장소인 건 분명한 것 같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작가의 눈으로’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 책이 유명하거나, 걸작이거나, 권수가 많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독자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82페이지)라고 했다. 같은 사물이나 사람, 장소를 바라보아도 독자와 작가는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다고 느꼈다. 작가는 작가로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작가로서 ‘분석적이고 심층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느라 독서하는 재미는 없겠다. ![]()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너무 평범한 이야기는 소설로 이어지지 못한다. 단순한 이야기는 계속될 수 없다. 긴장감이 유발되어야 하고, 이를테면 독자는 ‘잘못된’ 이야기에 열광한다. ‘잘못된 이야기’는 싫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수많은 예를 들어볼 수도 있겠지만 참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될 일이다.
작가는 소설 쓰기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의 차이와 디테일, 소설을 쓰는 작업실에 관하여도 경험에 비추어 말한다. 1인칭으로 작성했을 때의 시야와 3인칭으로 글을 쓸 때의 시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퇴고’란 완성된 원고를 고치는 작업이라고 알고 있었다. 작가는 퇴고를 선택하는 거라고 했다. 그 중의 첫 번째, 냉각기 갖기, 두 번째, 시간에 대한 감각, 세 번째, 한 번에 하나씩만 고치기, 다음으로 삭제 추가 분량, 내력벽 무너뜨리기, 결말, 감각하며 다시 쓰기, 초고에서 시작하기를 기억하면 된다. ![]()
기억하세요. 제 기준에서 단편은 열 편, 장편은 두 편을 완결할 때까지 일단 뒤돌아보지 말고 써보시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참고로 데뷔 전까지 제가 완성한 단편은 오십 편, 장편은 세 편이었습니다.) (303페이지)
작가는 12년 동안 작가지망생으로 지냈다. 작가로 등단하기까지 수많은 습작을 해 투고한 경력이 있다. 소설창작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이 책을 소설을 쓰고 싶은 작가지망생이 읽으면 더 좋을 거 같다. 습작기를 거쳐 작가로서 희망을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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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책을 산 이유는!!! 여러사람과 함께 읽기 위해서였어요. 소설쓰고 앉아있네!! 제목만 봐도 표지만 봐도 너무 유쾌했습니다. 창작의 고통을 조금?은 알기에 문지혁 작가는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글쓰기 비법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조금이나마 해결된듯합니다!!! 앵장고속에도 영감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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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는 글쓰기 작법서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감상했어요.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채널예스에서 연재가 되었고 가장 많이 본 칼럼 1위에 랭크가 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호응은 얻은 내용이기 기대를 했어요. 이 책은 소설 창작이 메인이고 글을 쓰기 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소설을 다 쓴 뒤 퇴고하기까지 소설을 쓰는 전 과정을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소설가를 희망하는 독자들에게 아주 유용할 듯해요. 저 역시 자주 들춰볼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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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님께서 쓰신 "소설 쓰고 앉아 있네"에 대한 독후감입니다. 소설 쓰기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은 책이었습니다. 도움 될만한 조언들도 많고 실제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주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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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타이핑을 하거나 연필을 쥐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거든요. 소설가는 아주 가끔 소설을 쓰지만, 동시에 언제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걸으면서, 샤워를 하면서, 손톱을 깎으면서,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와 소설을 자신의 무의식 어딘가에서 계속 생각하는 중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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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소설 쓰고 앉아 있네>> 은 펀딩 섹션에서 선택을 하여 구입하게 되었다. 머지 않은 내일에 나 또한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할 것이라고 스스로와 약속을 하였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으니... 그런 즈음에 이 책은 또 한분의 스승이 될것이고, 좋은 자양분이 될 자격이 있다고 본다.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을 ... |
![]() 올해 초여름 문지혁 작가님의 작품들을 만났다. P의 도시,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고잉 홈,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다니는 도서관 2곳에 희망도서를 모두 신청했고, 두 번씩 읽게 되었다. 작가님의 경험 중에서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 있었기에 더 와 닿았던 부분들이 있었다. 작품에서 위안을 얻기도 했고 또 희망을 엿볼 용기도 내보았다. 이번에 신간 소식 반가웠고, 추석 명절을 보내고 펀딩 막차를 탔다. 실전 한국어 출간 소식도 기다리고 있다. 21세기 작가님은 골방에서 글만 쓰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 너튜브를 거의 보지 않지만 작가님의 채널은 검색해서 보기도 한다. 추천해주신 책들은 다 읽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 소설 쓰고 앉아 있네 이 작품은 제목부터 재밌었고, 점점 작가님의 유머코드에 스며들어 혼자 슬며시 웃게 될 때가 많아졌다. 웃을 일 없는 일상이지만, 작가님 책이 내게는 그랬다. 책 읽어 내려가다보면 마치, 음성지원이 되는 듯하고 조근 조근 강의 듣는 것 같으면서 일상 생활 속의 작가님의 모습과 작가와 교수님으로서의 모습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오토픽션, 이민자 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줌파 라히리 작가님 책에도 입문하면서 독서 지평도 넓히는 중이다. "예술이란 불과 수학의 결합이다. 오토픽션의 묘미는 허구와 진실을 섞어놓고 그 비율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데 있기 때문에~ 장르 구분은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는 말씀 우동 거리 가설 3부 작가님의 짧은 이력서까지~" 재미도 있었고 유익했던 독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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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급식실에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이 반찬을 제일 좋아해."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물었다. "너 어제는 다른 반찬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잖아?" 아마 이때부터였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떤 분야에 있어서든 '이건 정말 최고다.'라는 식의 표현을 최대한 지양하려고 노력한다. '제일', 그리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최고'와 같은 비교 형용사는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한다. 단 하나의 대상을 최고라고 확정짓는 순간, 다른 모든 것들은 최고 미만의 것이 되어버리니까. 내가 그 대상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경험해본 것도 아니기에 어쩌면 훗날 정말로 "제일"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경우에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작법서를 다 읽어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체로 이름난 작법서들을 제법 들춰보았다. 그중에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도 있고, 데이먼 나이트의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이디스 워튼의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이승우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라거나 『소설창작론』 교과서도 들춰보기도 했다. 이런 개론에서부터 제임스 우드가 자유간접화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친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같은 책도 읽었다. 웹소설 작가 한산이가 작가의 『웹소설의 신』을 비롯한 웹소설 작법서와 근래에는 김호연 작가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읽었다. 고백하자면, 소설 쓰기는 공부와는 달라서 교과서를 반복해서 읽는다고 결코 잘 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배웠다. 작가 역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작법서를 펴드는 건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글쓰기가 행복하다는 작가는 자주 보았지만, 쉽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대체로 많은 작법서에서 작가들은 글쓰기가 너무 어렵고, 자주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큰 위안을 얻고 나는 다시 초고를 쓰러 간다. 이렇게 내가 읽었던 작법서를 구태여 꺼내놓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원칙을 깨고, 아주 조심스럽지만, 한 가지 단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지혁 작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여태껏 "내가 읽었던 작법서" 중에서 최고의 작법서였다. 나 자신의 원칙마저 저버리고 이런 무시무시한 문장을 적었으니 나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게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이상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문단 내에서도 자리를 잡은 문지혁 작가지만, 그가 등단 때부터 내부인으로서 평가받은 것은 아니다. 장르문학 작가로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아왔으며, 꽤 오랜 기간을 방황한 내용이 『소설 쓰고 앉아 있네』에 적혀있다. 이러한 작가 개인의 경험과 더불어, 그가 그간 해왔던 글쓰기 수업의 요체를 담은 책이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에 등단한 지 제법 오래되고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습작생들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다. 때로는 선행 연구를 한다는 명목으로 지원하는 공모전의 이전 수상작이나, 신인문학상의 수상작들을 살펴보며 시간을 축낼 때가 있다. 이런 작가 지망생들에게 문지혁 작가는 뼈아픈 충고를 날린다.
또한 백지로 된 한 편의 논문이 존재할 만큼, 작가들에게는 불치병이나 다름 없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에 대해서도 간결한 처방을 내린다.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라고.
내일 당장 다 지워버릴 지 모르지만, 일단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쓰는 것이 맞다. 못난 글을 써도 작가이지만, 못난 글조차 쓰지 못하면 작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포성 소리가 울리고,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전선에서도 작가들은 글을 썼다. 어쩌면 써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쓰지 않고선 작가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요즘에는 그들에 비하면 얼마나 편한 시절인가. 그저 손에 든 휴대폰에 타이핑을 하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기본적인 마인드에 대해서 다잡아준 후,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실제적인 내용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특히나 시점에 대한 설명, 엔딩에 대한 설명이 그랬다. 우선 시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자동차와 운전자의 비유를 가져온다.
우선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화자는 운전자다. 그리고 독자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동승자다. 운전자는 스스로 운전을 해나가면서 하는 모든 생각, 감정을 쏟아낸다. 차 안에 있는 독자는 들을 수 있지만, 바깥 세상은 들을 수 없다.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도 화자는 운전자고, 독자는 동승자인 건 동일하지만, 지금 이 두 사람은 차 밖에 있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중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화자(관찰자)의 생각은 들을 수 있다. 3인칭 객관적 시점에서는 독자는 누구의 차도 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내려다보는 카메라처럼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 3인칭 제한적 시점에서는 1인칭 시점처럼 차 안에 들어가서 살펴보고, 운전자가 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제한적"이라는 수사처럼 도로(소설 안의) 위의 차량 단 한 대에만 적용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3인칭 전지적 시점은 모든 차 안으로 마음대로 들어가 운전자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시점이다. 요약하자면, 시점이란 결국 "A(작가)/N(화자)/P(주인공)/R(독자)"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에서는 엔딩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아이러니, 독자가 작품을 읽고 "깊이"를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는 외면적 목표와 내면적 목표 사이의 격차에 있다. 주인공에게 "외면적 목표"(100억 모으기 등)와 "내면적 목표(첫사랑 찾기)"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둘 모두를 달성하면, 동화적 엔딩이 된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식의 결말은 뒤에 벌어질, 그리고 그 끝에 이르기까지 내재된 많은 문제들을 모두 쉬쉬하게 만든다. 그 다음으로 외면적 목표는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내면적 목표를 달성한 경우에 "해피엔딩"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가 이에 해당할 것 같다. 대온실 수리보고서 작성(외면적 목표)에서는 빠져야 했지만, 과거의 상처 회복(내면적 목표)은 달성했으니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외면적 목표는 달성했으되, 내면적 목표는 실패한 경우는 새드엔딩에 해당한다. 100억을 모아 부자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루어지지 못하면 공허함만 남는다. 어쩌면 현진건 작가의 「운수 좋은 날」이 이에 해당할 것 같다. 그날 하루 수입은 좋았지만, 결국 그 수입을 나누어 쓸 아내가 죽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외면적 목표 달성, 내면적 목표 달성 모두에 실패한 '우울한 엔딩'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분류 방법은 작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직관적이고 쉽게 와닿았다. 또한 자서전에 대한 정의 역시 이 책에서 처음 접해서 흥미로웠다. 자서전은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이름의 동일성, 참조 기능, 독자의 규약. 그리고 작가와 화자, 주인공이 모두 일치하는 작품의 경우에 자서전이 된다.
또한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플롯에 대해서도 다룬다. 플롯은 주인공을 향한 음모라고 정의하면서,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돈 텔, 벗 쇼 (Don't tell, but show)"라는 유명한 창작 격언을 가져와 장면을 만들 것을 강조한다. 장면은 또다시 서술, 묘사,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담겨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직접 실천에 옮겨 적어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이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과 비슷한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소설의 평범함과 비범함에 대한 이야기. 근래의 길란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며, 길란 작가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행동을 하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매력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문지혁 작가 역시 소설은 '평범하지만 위장된 비범함'이어야 한다는 언급을 한다.
또한 특정 주제나 장르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서 이미 전에 나온 기라성 같은 작품을 읽다보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좋은 책이 많은데, 굳이 내가?" 라는 생각 말이다. 문지혁 작가 역시 그런 고민을 적어두었고, 그런 책들 사이에서도 "차이를 수반하는 반복"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한 발짝 더 나아간 이야기를 만들자고 격려한다.
또한 합평에 대한 견해 역시 비슷하다. 나는 합평을 해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른 예술 장르와 다르게 문학은 특히나 창작자가 창작물에 대한 동일시가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영화, 음악, 미술 분야의 창작자와 창작물 사이의 거리보다도 문학 작가와 작품 사이의 거리는 더 가까워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거의 동일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합평에서 글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곧 창작자 본인에 대한 비판적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이 격앙되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다. 그러나 합평에서 중요한 것은 합평을 통해 타인의 시각을 빌려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메타인지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목적은 어쨌든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것이지, 남을 깎아내리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문지혁 작가는 책 내내 "차이를 수반해 반복"하여 "퇴고"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모든 초고는 다 쓰레기다." 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언급한다. 이는 내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늘 잊어버리곤 하는 말인데, 나는 퇴고를 잘 하지 못한다. 그건 내 글이 완벽해! 라는 생각과는 전혀 반대로 내 글이 너무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들춰보기도 힘들 정도로. 그래서 퇴고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새로운 글을 써버리는 쪽을 선택하는데, 이는 퇴고라는 중대한 문제 앞에서 도망치는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퇴고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반성한다......) 또한 퇴고에 있어서 작가는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kill your darlings)"는 윌리엄 포크너의 말을 인용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때로는 그 소설을 시작하게 만든 부분이라 할지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담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원고, 초고, 퇴고의 한자에 대해서 알 수 있었는데,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한자여서 놀랐다. 원고와 초고는 모두 '볏집 고'를 쓰고, 퇴고는 '밀 퇴'와 '두드릴 고'를 쓰는 고사성어라고 한다.
또한 문지혁 작가는 필립 로스의 말을 인용해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라고도 말한다. 이것도 나에게는 꽤나 뼈아프게 다가오는데, 나는 종종 무엇인가가 그럴 듯한 이야기거리가 떠오를 때까지 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아마추어이끼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일정한 시간을 배정해 억지로라도 써보야할 것 같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냉정한 조언을 아끼지 않던 작가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중요한 고백을 한다. 스스로를 작가로 만든 것은 글쓰는 재능보다도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고. 정말로 우리에게는 재능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를 써낸 작가도 습작기만 12년을 가졌다고 한다. '작가가 되는 것'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재능은 나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믿으며 포기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의미로 문지혁 작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친절하고 따뜻한 품성의 친구가 내 옆에 앉아 글쓰기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실제로 이 책의 도입부에서 작가는 그런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가끔 무슨 작법서를 봐야하느냐는 물음에 나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나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주워섬기곤 한다. (다른 무엇보다 그게 간지가 나니까. 그리고 너무 어렵기 때문에 다 읽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이제 누군가 내게 또 무슨 작법서를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문지혁 작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추천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