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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 막심 로베르/박영옥 인간사랑출판사/2024.10.10. sanbaram
격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진 시대에 차분하고 깊게 생각해야 되는 철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대인들에게는 경제적인 문제가 진로나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경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엷은 철학에 대한 관심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은 이렇게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철학을 좀 더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설형식을 택했다 할 수 있다. 책의 머리말에서 “우리가 이성 혹은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서, 우리들 각자가 인간 실존의 가치와 풍미를 만드는 것을 재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렸으며, 가족, 사랑, 우정의 변천을 쫓으면서 관점들을 다양화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칭송하면서 장님이 되는 대신에, 철학의 섬광을 통해서 우리가 세계-그의 세계, 우리의 세게-를 더 잘 이해하고, 이해라는 말의 의미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스피노자를 항상 책의 중심에 놓지는 않았다.(p.20)”고 말하고 있다. 저자 막심 로베르는 철학자, 작가, 번역가이다. 파리고등사범대학에서 철학, 루브르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라옹 고등사범대에서 2007년까지 철학 강의를 했다. 현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가톨릭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스피노자, 존재하기 위한 방법론. <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 <에티카> 등의 번역서가 있다.
<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은 소설형식을 취했지만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면이 돋보인다. 유대인인 스피노자가 태어나기 전에 포르투갈에 살았던 그의 조상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이사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네덜란드에 정착하며 부딪히는 여러 문제, 특히 종교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스피노자와 그 주변의 사람들이 겪었을 법한 에피소드로 이야길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밝혔듯이 “스피노자는 사실 자신의 이념 때문에 유대공동체에서 추방된 적이 없으며, 렌즈를 연마하던 장인이었던 적도 없다. 또한 그는 사회에서 버림받아 고독 속에서 살았던 적도 없다. (p.551)”고 한다. 인간 사이의 교류는 이념들을 낳는다. 중요한 것은 사유 그 자체를 만드는 개인 그 자체가 아니라,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와 올렌버그와 치른하우스, 치른하우스와 라이프니츠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저자에게 하나의 대답의 가능성을 제공했다고 한다.
<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은 “스피노자의 주변 사람들만을 따라서 재구성된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간의 한 사람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 간의, 누군가의 사유와 다른 누군가의 사유 간의 경계들을 긋는 것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서 재구성 되었다.(p.553)”고 저자는 밝힌다. 따라서 이 책은 스피노자라는 한 철학자에 대한 전기가 아니다. 책 제목인 <스 피노자와 그의 친구들>이 말하듯이, 스피노자를 만든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즉, 그의 최초 스승들, 친구들, 마지막 제자들, 그와 편지를 주고 받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념은 고독한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교류, 상호작용에서 태어난다는 믿음 하에서, 저자인 막실 로베르는 벤트 드 스피노자가 살았던 세계, 오늘날 사라진 한 세계의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모든 문학적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이 책은 철학적 이기에는 너무 문학적이고, 문학적이라기에는 너무 철학적이고 역사적(p.554)”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암스테르담은 우선 종교적 박해를 피해 스피노자의 조상들이 도착한 곳이며, 종교적 자유와 관용이 태어나기 위한 경제적 조건으로서 상업의 발전과 자본주의가 태동한 곳이기도 하며, 스피노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암스테르담은 17세기 유럽의 종교적 위기와 전쟁, 근대 국가의 탄생과 좌절, 지식의 모든 영역에서의 혁명이 일어나던 중심지로 그 한 가운데서 근대 이성의 태어나던 장소다. 그리고, 1677년은 스피노자가 죽은 해이며 동시에 살아남은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에 의해 B.D.S 라는 이름 아닌 이름으로 그의 유고집이 발간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삶, 그를 만든 모든 사람들의 삶,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폭력에 대항해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싸운 남자들, 여자들, 역사에 잊힌 그러나 눈부신 그 사람들의 모험은 자유의 발명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고 역자는 부언한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전기들에서 형성된 신화들을 벗겨낸다. 스피노자는 전체 유대 공동체 내에서 그의 이념 때문에 파문당한 적이 없으며, 스피노자는 렌즈를 깎으면서 생계를 이은 정직한 장인이 아니었으며, 그는 무신론의 왕자도 아니었다.(p.555)” 더욱이 그의 적들과 후학들이 원한 이미지처럼 스피노자는 영웅도, 성인도, 전적으로 자신의 정념을 통제한 현자도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할 것은 정념의 역동성 안에서 한 인생을 살아낸 인간 스피노자의 모습이라고 역자가 강조한다.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고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철학책은 역시 어렵다는 편견을 깨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철학을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소설적 구성을 통해 시도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할 것이다.
(인간사랑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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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종교와 왕정의 권위가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철학자이다.“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남긴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대해 회의하면서, 세상은 필연적으로 그 존재를 유지하려고 하는 관성(코나투스)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 합리주의 철학자로서 평가되고 있다. 성경의 해석을 성직자들이 독점했던 중세적 사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고, 그리하여 ‘신’의 실체에 대해 진지하게 탐색하고자 했던 그를 일컬어 당대의 권력자들은 ‘무신론자’ 혹은 ‘이단’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에서 세상의 이치와 신의 존재를 합리주의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던 그의 사유가 철학사에서 지닌 의의가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생애를 소설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는 스피노자의 삶과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설적 글쓰기가 내(저자)가 바라던 아주 특별한 형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피노자가 유대인 공동체에서 생활하다가 벗어나는 과정, 막강한 권위를 지니고 있던 데카르트의 사유를 극복하기 위한 철학적 열정, 그리고 그를 돕고 혹은 비판했던 주변인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소설 형식으로 구성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스피노자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 기존의 이론과 다른 학설을 제기할 때 으레 뒤따르는 권력과 권위에 의한 반발이 얼마나 거셌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번역자는 이 책의 성격을 ‘스피노자라는 한 철학자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오늘날 사라진 한 세계의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모든 문학적 수단’을 동원하여 구성한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철학적이기에는 너무 문학적이고, 문학적이라기에는 너무 철학적이고 역사적’이라는 언급을 덧붙이고 있다. 나 역시 책을 읽고 난 후 번역자의 이러한 평가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상 스피노자의 대표적 저서인 <에티카>는 그 내용이 난해하여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티카>에는 ‘기하학적 질서로 증명된, 그리고 5부로 구성된’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이러한 표현에서부터 자연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철학의 주요 개념을 풀어내는 방법론을 취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스피노자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소개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생애는 물론 주요 사상과 그것이 탄생된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이라는 부제는 스피노자의 사유가 지닌 특징을 단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표현이라고 이해된다. 부제에서 제시된 ‘1677년은 스피노자가 죽은 해이며, 동시에 살아남은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에 의해 ...그의 유고집이 발간된 해’라고 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합리주의적 사유가 담긴 그의 저서가 발간되면서, ‘그의 삶, 그를 만든 모든 사람들의 삶,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폭력에 대항해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싸운 남자들과 여자들, 역사에서 잊힌 그러나 눈부신 그 사람들의 모험은 자유의 발명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는 사실을 주목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나로서는 이 책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스피노자의 생애와 사유 그리고 당대의 상황과 인물들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 (차니)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근대 과학문명이 유럽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핀 건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존중했던 문화 덕분이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이라고 나오는데 1677년은 벤투 스피노자가 40대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해이며 또한 그가 쓴 저작들이 출간된 연도이기도 하다고 이 책 뒷표지에 나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평전이지만, 그 형식이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작품이 "역사에 기반한 허구"라는 점을 스스로 부인합니다. 그간 스피노자의 생과 사상은 다분히 추상적으로만 알려졌으며, 유명한 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피노자는 중고등학생도 알 만큼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과연 한 인간으로서 실제 역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한 자신의 신조나 가르침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였거나 크게 곡해되었다는 게 작가의 관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전하는 자료만으로 더 정확한 진실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소설의 형식을 통한 탐구"입니다. 꽤나 재미있기도 한 이 "소설"을 통해 스피노자는 추상의 너울을 벗고 피와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독자를 만납니다. 프랑스어 원제 "le clan spinoza"는 직역하면 스피노자 무리라는 뜻인데, 영원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이들 모두가 "스피노자들"이란 뜻도 되며, 좁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모든 동조자들과 동료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비록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다채로운 대사를 읊고 행동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실존인물들이며 가공된 캐릭터는 드물게 나옵니다. 네덜란드는 상인들의 나라이며 특히나 암스테르담은 당시도 지금도 세계적으로 번성한 상업도시입니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상당수 사건의 배경은 거래소들인데 거래소라고 해도 참으로 다양한 품목을 거래합니다. p107을 보면 한 노인이, 아직은 세상 물정에 서투른 젊은이가 저자를 기웃거리는 걸 보고 현물 거래는 여기서, 또 선물(先物) 거래는 저쪽에서 이루진다고 가르쳐 줍니다. 17세기라도 이미 현대의 금융파생상품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선물(future)이 거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선물은 일종의 위험 헤지(risk hedge) 수단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나쁜 일이 터져도 이 선까지만 피해를 입겠다고 미리 선을 긋는 거래행위입니다. 밀, 설탕, 향신료의 가격 동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조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두려움은 얼마이고, 반대로 희망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신중함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현자들이 대중을 위해 고안한 파생상품이 바로 철학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하는 듯합니다. p242를 보면 데카르트는 논리, 기하, 대수라는 별개의 영역을 통합했다는 찬사를 받고 실제 스피노자도 자신의 시대에 데카르트 전문가로 꼽혀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논리실증주의의 위대한 좌절을 보면 알듯 이 세 영역의 완전한 통합이란 요원한 목표이며 다만 데카르트는 초급 해석기하의 발판을 놓았기에 상당수 도형 문제를 방정식으로 훨씬 명료하게 처리하는 천재적인 업적을 이뤘습니다. 예컨대 원은 천 수백 년 전 에우클레이데스의 언명대로 "특정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놓인 다른 점들의 집합"일 수 있지만, 데카르트의 좌표계에 기반한 방식이라면 (a,b)로부터 거리 r을 유지하는 (x,y)로 표현됩니다. 스피노자, 그리고 로데베르크 메이어르는 novum institium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이 세계관에서 기존 물리학이나 의학의 개념들은 일제 변혁을 맞습니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는 수백 년 후 변증법의 근대적 변용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p379를 보면 판 벨타위선은 <철학이 성경을 해석한다>를 쓴 불온한 저자로 지목되어 재판관들의 엄혹한 추궁을 받기 직전입니다. 불온서적의 명단에는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도 포함되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 필독서로도 꼽히는 이런 책들이, 그토록 자유로웠다던 암스테르담에서도 칼뱅주의 신정론자들의 엄혹한 심판대 위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냥 의견일치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p458 이하에서는 스테논 등이 이의를 제기하며 논쟁이 일기도 하지만 이 클랜 안에서 언제나 최상위의 제단에 고정된 덕목은 첫째도 자유, 둘째 셋째도 자유입니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은 지구 최후의 날까지 자유와 동의어이자 그 상위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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