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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타칭 명문고등학교라고 칭하는 이유의 가장 첫 번째는 어느 나라나 명문대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입학하느냐가 아닐까? 사람들의 심리가 참 묘한 게, 왜 그렇게 첫 번째, 혹은 제일 좋은 것, 또는 어깨 뽕이 중요한 것일까 하는 거다. 최고로 좋은 곳에 입학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탄탄대로는 아닐 텐데,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 학교가 가진 인맥. 그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이니까. 명문대에 많이 입학시키는 것. 그것은 다음연도 입학생을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느냐의 실적이 되니. 몇 년 전 ‘숙명여고’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겠지.
오쿠사와는 자신의 모교인 사이카 고등학교에 부임한 젊은 교사다. 다정한 성격과 준수한 외모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고3 담임을 맡게 된 오쿠사와는 학생들에게 진심을 다해, 학교를 추천하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학교 학생과의 부적절한 행위가 담긴 영상이 유포되고 한순간 음란 교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오쿠사와는 괴로웠을까? 지진 예방 훈련이 있던 날 오쿠사와는 학교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오쿠사와의 자살 사건. 하지만 오쿠사와가 담임이었던 반 칠판에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의문의 글귀로 인해 학교, 학생들 모두 혼란에 빠진다. 사건의 진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누가 선생님을 죽인 것일까? 오쿠사와는 진짜 부도덕한 교사였을까?
우리나라의 수시 전형이라는 것. 공정하면 참 좋을 텐데, 잘 모르겠다. 그 과정이 정말 공정한지는. 자신의 운명(?)을 단 하루. 시험날 정해지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말하지만, 지나고 보니 시험이 어쩜 가장 공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실력대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물론 그날 컨디션에 따라 시험을 잘 볼 수도 못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나의 컨디션일 뿐. 뒤에서 은근슬쩍, 내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이가 내 순서로 끼어들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은 아니다. 부의 사다리가 무너져 공부 잘하는 ‘머리’로 성공하는 게 쉽지 않다. 부모의 재력으로 성적도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이라니. 대학이라는 간판에 민감한 나라다. 수능 보는 날에는 비행기도 뜨지 않는 나라라고 하니, 우리나라는 참. 좋은(?) 학교에 간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고속도로는 아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그 인생이 성공한 인생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성공의 포인트가 ‘돈’으로 귀결되는 건, 자본주의의 폐단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나에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선생이라는 타이틀로 군대도 아닌데 억압하려던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을 보면. 더구나 우리 때는 아무렇지 않게 체벌을 했으니 그게 선생인지는. 선생 같지 않은 인간이 선생이 된 경우도 많았고, 그래서 기억하지 싶지 않은 선생도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엔 분명. 선생이 천직인 사람도 있겠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세상은 아닌 듯. 명문대를 얼마나 더 보낼 수 있느냐. 실적이 실력이 되는 세상이라니 씁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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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서술트릭(스포이려나 싶어서 색을 변경해둠)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알지 못해서 후반부에서 응? 하면 조금은 놀랐더랬다. 내가 예상한 바가 없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죽 한 곳을 향해서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단 한사람의 죽음을 계속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쪽으로 생각이 집중되고 다른 쪽으로 눈돌릴 틈이 없기도 했다. 작가는 독자의 이런 틈을 노린 것이라고 본다. 이쪽으로 가세요 하고 친절히 화살표를 그어 놓았으니 당연히 그것을 따를 수 밖에. 밑에 그어진 조그마한 다른 방향의 사인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농구장 속의 고릴라 시험과 똑같은 것이려나.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현상 말이다. 다섯 명의 시점에서 각기 전개되는 이야기는 단 하나다. 학교 생활을 하던 학생들이다. 그리고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저마다 느끼는 점은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선생님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교실 칠판에 쓰인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그 문장을 보았을 때 말이다. 문장의 필체를 알아봤다면 금방 알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분명 본문 속에서 그의 필체를 알아차린 누군가가 존재했는데 그런 부분은 간과한 것일까. 오쿠사와 선생님은 젊었다. 이십대의 선생님은 교생 선생님이라 해도 좋을 만큼 젊지 않은가. 아마도 그 학교가 첫 부임지인지도 모르겠다. 그 학교는 자기 자신의 모교이기도 했다. 젊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고등학생이니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아서 학생들은 형이나 선배같이 의논할 상애가 생겼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여학생들은 모모세처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내보였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 동영상이 아니 동영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영상이 돌았을 때 학생들은 더욱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랄까. 같은 현장에 있었어도 보는 시점이 다르고 더구나 영상은 편집을 할 수가 있는만큼 이렇게 저렇게 가져다 잘라서 붙여버리면 전혀 현장의 상황과는 다른 그런 편집본이 탄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피해를 당한 연예인들도 있지 않았던가. 편집의 희생양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내내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선생님을 믿지 않았지만 나만큼은 그를 믿어주겠다고 그의 편에 서 주겠다고 그를 응원했다. 반전이 있을 줄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는데 그냥 생각없이 빼들었다. 결론적으로는 읽기를 잘했다. 작가 소개에 이 작가의 다른 책인 [죽인 남편이 돌아왔습니다]도 있네. 이런 식으로 문장으로 된 제목을 선호하는 작가인 것 같다. 이책의 제목이 낯익어서 읽은 적이 있구나 생각했지만 검색에 안 걸리는 걸 보니 그냥 제목만 알고 있는가 보다. 그 이야기도 꽤 흥미로울 것 같은데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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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는 전교생이 목격자나 다름없는 상황 속에서 학교에 새로 부임했던 오쿠사와라는 한 남자 교사가 학교 옥상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오쿠사와는 자신이 졸업한 학교로 선생님이 되어 왔고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있었지만 교내에서 학생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것이 20초짜리 동영상으로 유포되면 결국 투신으로 이어지는데 이에 처음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행위로 생각되지만 교실에 누군지 알 수 없는 문구가 쓰여진 이후 사건은 타살설이 제기되는데...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과연 누구일까. 마치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것 같은 이 의문의 문구를 쓴 사람은...? 결국 오쿠사와가 죽기 전 그를 만났던 네 명의 학생들이 고백 아닌 고백이 이어지면서 사건은 의외로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겉으로 좋은 선생님인 척 하지만 사실은 원래 그런 사람이였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행동이나 말 때문에 선생님이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선생님을 좋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또 마지막 누군가는 그 영상이 진짜일까, 정말 괜찮은 선생님이였다고 말하는데... 차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러나 결국 공정과 정의를 믿었던 자신의 신념조차 흔들리게 하는 그 실체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버티던 오쿠사와에게는 하나의 트리거로 작용하고 그는 결국 생을 마감한다. 어느 한 명의 잘못에서 비롯되지 않은,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계속되어 온 그 비리는 결국 스스로에게 올가미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신성한 교육의 현장에서 자행된 부조리와 비리, 엄연히 범죄 그 자체인 상황들이 암묵적으로 행해져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자기 결정 속에는 스스로도 견딜 수 없었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현실이 있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속죄이든 자괴감인지 알 수 없는 그 선택 속에 조금이나마 부도덕과 부조리, 불법을 멈추고자 하는 용기도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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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인 사이카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인 오쿠사와는 준수한 외모와 젊은 교사 특유의 친근감 덕분에 학생들에게서 호감과 지지를 받아왔지만, 여학생과의 부적절한 행위가 담긴 음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 이후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교내 창고에서 근신하던 오쿠사와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직후 전교생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옥상에서 투신자살합니다. 하지만 그가 담임을 맡았던 반의 칠판에 누군가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라는 글을 남긴 탓에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학교 전체가 큰 충격에 빠집니다. ![]() 2021년에 읽은 사쿠라이 미나의 ‘죽인 남편이 돌아왔습니다’에 그리 좋은 평점을 주지 못해서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학교 미스터리의 유혹에 넘어가 집어든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 사쿠라이 미나는 저와는 잘 안 맞는 작가였고, 미스터리 역시 지나치게 단선적인데다 나이브하게 풀려서 애초 그리 높지 않았던 기대감조차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인기교사 오쿠사와의 충격적인 자살 장면을 그린 프롤로그 이후 그와 자주 접촉했던 네 명의 학생이 한 챕터씩 화자를 맡아 최근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오쿠사와를 못 마땅히 여겼으며 출처불명의 음란 동영상을 다운받아 인터넷에 유포한 문제아 도베, 대학교 추천입학과 관련하여 오쿠사와가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고 여기며 원망해온 모범생 구로다, 오쿠사와를 ‘남자’로 사랑했지만 늘 거절당했던 모모세,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입시 관련 특혜를 받은 탓에 오쿠사와에게 그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봤던 부잣집 아들 고미나토가 그들입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이어 오쿠사와가 화자인 마지막 챕터에선 그의 고교시절부터 옥상에서 투신한 순간까지의 삶이 그려지면서 미스터리의 진상이 공개됩니다. 칠판에 적힌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의문의 문구 때문에 미스터리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오쿠사와의 죽음은 과연 자살일까, 타살일까? 타살이라면 의문의 문구를 남긴 학생이 범인일까? 자살이라 하더라도 과연 오쿠사와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끔 만든 ‘간접적인 살인범’은 네 명의 화자 가운데 누구일까? 네 명 중 적어도 세 명은 오쿠사와의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 또는 책임이 있어 보입니다. 음란 동영상 자체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지만, 화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동영상 외에 분명 다른 원인이 숨어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애초 동영상을 찍은 게 누구인지, 그걸 유포하여 어떤 이득을 얻으려 한 것인지가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 증폭시킵니다. ![]() 전작인 ‘죽인 남편이 돌아왔습니다’에 야박한 평점을 줬던 이유는 ‘독자와의 게임을 불공정하게 만든 작가의 반칙’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진실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맥스를 위해 입을 다물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의 경우 반칙까진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발단이 된 오쿠사와의 자살 자체가 설득력도 없고 공감을 얻기도 어려웠으며, 반전은 진작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단순한데다 그것이 과연 그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할 만큼 파괴적이었는가, 라는 의문만 남겨서 역시 야박한 평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느낌은 ‘약간의 억지가 섞인 계몽극’이었는데, 다른 독자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읽었을지 나름 궁금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