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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문학상’에 실린 작품들은 어느덧 중견 작가가 된 그들이 살아온 힘과 저력을 느끼게 해준다. 좀 더 깊이있게 삶을 다가가는 느낌과 그들이 겪어왔던 경험 속에서 좀 더 진실된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 늘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한 진실한 표현”이라는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 듯 각자의 일상적인 경험들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아파하고 힘들어하지만, 그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무엇을 놓지 말아야 하는지 들려주고 있어 더 절절하게 함께 호흡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부재(사망) 후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종소가 누군가에게 품은 적개심과 복수심의 감정들이 평온해지는 과정을 그린 조경란 작가의 「그들」. 자신도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에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며 자신의 현재 상황의 원인이 되는 누군가에게 갖게 되는 극도의 미움과 원망, 복수의 마음. 그런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매번 용서하고 화해를 받아주겠다 말로 되뇌지만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그런 순간들을 나 또한 겪었었기에 그 마음의 파장에 공감해 본다. 남자가 영주를, 영주가 남자를 보았다. (…) 그 눈에 당혹감과 불안과 그리고 이성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과 무모한 감정이 섞여 있다는 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집중했다. (…) 잠시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모르는 광채 하나가 그 문으로 들어왔다 나간 거라고, (…)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작품 中)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 하찮게만 보였던 일상의 일들을 묵묵히 수행해 간다는 것은 실제로는 내가 ‘지금’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됨을 느낀다. 복수심에 가득찼던 종소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듯, 매일 반복되는 루틴한 생활과 관계들이 바로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그 힘이리라.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싶다고, 그런 감정은 어쩌면 모두에게 중요한 감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원망하는 마음도 사라지게 되는 경이의 순간을, 잠시지만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 어떨까 (…) 미움이 아니라 안타까움, 안타까움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해져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경란 작가의 말 中) 속절없이 무너지고 힘들어 놓아버리고 싶을 때, 그럼에도 가까운 이의 마음을 돌보는 ‘매일’의 일상을 포기하지 않을 때 또 다른 힘과 희망이 생긴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말과 단선적인 관계로만 구성돼 있지 않은 삶 속에서 다양함 속에서도 우리가 끝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들」은 그 어리석고 하찮은 인생들이 자기 삶에 쏟아지는 부당한 고통과 무의미한 우연들을 얼마나 간절하게 받아들이고 또 그것에 절박하게 대처하려 하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바람에 우리가 그 인생들을 더 이상 어리석고 하찮은 것으로는 볼 수 없게, 오히려 탄복하게 만든다. (…) 그 많은 ‘그들’ 각자는 서로 만날 수 있고 그 우연한 만남 속에 “미쳐 알아차릴 틈도 없이” “아무도 모르는 작은 광채 하나가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으며 「그들」은 ‘그들’을 대신해서 ‘그들’처럼 ‘그들’과 함께 바로 그 광채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작품 리뷰 中) 스페인 내전이라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 현재의 행위까지 이어지는 동안 밝혀지는 역사적 풍파들을 함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신용목 작가의 「양치기들의 협동조합」. 한순간도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거의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갔다. 숨막히는 전개도 전개지만 과거의 고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듯한 간접적으로 느끼게 됐다. 과거의 상처를 지금 떠올리는 것의 의미, 어디까지 기억해야 하는 가 계속 물어보는 것, 참혹한 현실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것 등은 과연 무엇인지의 생각들이 이어지게 한다. 아무리 기도해도 나타나지 않는 신을 자기 몸속의 고통으로 발견하는 것이 순례가 아닐까 …… 그런 생각이 들자 고통스러움과 무관하게 순례가 좋아졌다. (…) 슬픔은 불쑥불쑥 일상을 깨운다. 그리고 …… 다시 죽어서 접시에, 일상이라는 무덤에 담긴다. (…) 하나도 인정할 수 없는 자는 무언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면 자신의 신념 전체가 지진을 겪는 반면, 하나만 인정하는 자는 그 견고한 유일함 때문에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을 내주지 않는 것일까. (…) 어떤 열망이 찾아오면 현실은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열망이 차갑게 식고 나면 현실은 다시 가장 긴요한 문제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작품 中)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어떤 것을 깨우치게 될까. 작품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불빛에 대해 감탄하는 순간 입술 앞에서 꺼지고 마는 촛불처럼, 그래서 진실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늘 거짓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무모와 무지가 꼭 무의미하진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내가 나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삶과 사랑과 죽음에 대해 기어이 말해도 좋다고, 그 무참을 허락하는 것 역시 문학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신용목 작가의 말 中) 작품을 읽어가며 예전에 읽었던 허찬욱 신부님의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에 나오는 “한 번 일어난 일은 결코 없던 일이 되지 않음을 증언하는 것, 어떤 폭력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고 경고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기억의 엄중함이 있습니다. 기억은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도구입니다. 상처는 기억하는 일은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폭력에 결연히 맞서는 일이 될 테니까요.” 구절이 계속 떠올랐다. 상처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 그 속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잊지 않는 것, 그렇게 해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아닐까. 이 거대하고 고독한 구를 돌리는 힘은 슬픔을 알아보는 슬픔들이라네. 슬퍼할 어깨를 내어주는 또다른 슬픔들. 이상한 슬픔들의 협동조합. (…) 책을 불태우지 않는 마음 사람을 불태우지 않는 마음 읽고 쓰고 걷는 마음들 그 자명한 마음 마음이 합심해 지구를 돌리지. (…) 너의 슬픔을 알아보는 이상한 슬픔들 덕분이지. (작품 리뷰 中)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기억하며 그 날 이후 안산의 삶과 풍경을 살펴보며 아픈 상처를 기억하면서도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조해진 작가의 「내일의 송이에게」. 이제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작가와 이 작품은 말한다. 그 아픔도 우리의 삶이었기에, 그 아픔을 통해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그러니 끝끝내 기억하고 떠올리면서 지금 닥친 눈 앞의 삶들을 살아가자고, 절대로 잊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다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있다가 사라지면 원래 없었던 상태보다 훨씬 더 괴로우니까. 기억을 나누어 가진 누군가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 삶에 백기를 들고 싶어질 테니까. (…) 한참을 달리니 문득 눈이 부셨고 순식간에 터널은 끝나 있었다. 그곳에 인간의 땅과 신전, 죽음의 표상이 있는 또다른 동네가 있다는 것을, 부서지거나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형태로, 그렇게 …… (작품 中) 그저 그 시간에 머물러 있지만 말라고, 그 누군가도 나의 그런 머무름의 기억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묵묵히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계속 나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자고 한다. “송이가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내일로 나아가길, 삶 앞에 나타나게 될 수많은 터널을 무사히 지나가길, 지금도 남몰래 자주 소망하곤 한다.” (조해진 작가의 말 中)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 손을 선뜻 내어주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진정으로 공감하며 ‘괜찮냐고’ 물어볼 수 있는 그런 따뜻함과 여유와 배려를 갖고 싶어졌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좀 더 의미있고 새로운 희망이 생길 것이라 믿어본다. 살아 있는 사람, 살아 남은 사람, 참사 십 년에 조해진은 생존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괜찮으냐고, 이런 간절한 질문들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삶에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있다. (작품 리뷰 中) 엄마의 부재를 겪는 어린 딸을 위해 아주 새로운 곳에 정착했지만, 그 빈자리를 더욱 커져만 가고 결국에는 합일된 마음이 되기 어려워 보이는 가운데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들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반수연 작각의 「조각들」. 그저 한없이 어린애로만 보이고, 늘 내가 챙겨줘야만 할 것 같은, 뭘해도 불안불안한 아이들 생각이 가장 많이 든다. 나 또한 내 부모에게는 그런 존재이기에, 까먹고 있었지만 건강하고 올바른 인격체로 아이들은 나름대로 스스로의 성장 질서를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 그 믿음을 주지 못했음에 미안하고, 이제부터라도 든든히 믿어주기만 해주고 싶은데 잘 될지는 모를 일이다. 그곳은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언젠가 살아보고 싶었던 세상인 듯도 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고, 멀어지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 다만 알지 못하는 것들을 위해 공간을 한 뼘쯤 벌려두고 싶었다. 언젠가 어느 날 그것들을 조금 알게 될 때 너무 무안하지 않을 만큼의 공간은 필요했다. (작품 中) 어찌보면 나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의 부적응자일지도 모를 것이고, 사회의 흐름에 조금 뒤쳐지고 남들의 기준에 조금 벗어나는 것 또한 그렇게 큰 것이 아님을 이 시점에 조금이나마 깨달아 본다. 서로가 서로의 필요한 부분이 되어 주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아픔을 감싸주는 그런 마음들이 더 먼저일 것 같다. “어쩌면 나무는 호수가 메마른 것이 아니라 마침내 들판을 되찾았다고 생각할지 몰라. 들판이 비로소 회복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지. 겨우 밑동만 남은 죽은 나무였지만 내 눈에는 그 자체로 온전해 보였다. 그건 어쩌면 내가 이 이야기를 쓴 이유일지도 몰랐다.” (반수연 작가의 말 中) 내가 살아 온, 살아가는 세상이 100% 정답이라고 나 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삶 속에서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로서 의미로 각인된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고도 소중하다. 수평 맞추기라는 평등의 지향은 정적이고 소극적인 공존과 공생의 방식일 뿐이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 목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것은 바로 타자와의 일체감을 통한 사랑의 실감과 실천이다. (…) 생명을 상실한 과거의 부분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작업과 거기에 새로운 생명을 접목시켜 온전한 유기체로서의 현재를 만들어내는 적극적 과정이 그것이다. (작품 리뷰 中)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열한살의 동생 ‘정모’를 돌보는 누나 ‘연수’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의 잔인한 폭력과 냉혹한 차별을 보여주고 있는 안보윤 작가의 「그날의 정모」.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받는 정모지만 사실은 문제를 일으키는 건 할머니와 이웃주민들, 정모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수에게 고자질해주는 ‘괴물출현방’의 아이들 같은 타인들이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유를 들어 정모의 행동을 문제삼고 폭력과 연결시켜 배제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당연히 우리에겐 즐거운 날들이 있다. 우리는 틈틈이 웃는다. (…) 정모는 그냥 그곳에 있다. (…) 푹 자고 일어난 정모는 보통의 정모, 그날의 정모, 일상 속의 정모일 뿐이다. 정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누구도 무시하지 않고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작품 中) 그저 우리의 시선으로, 나의 판단으로 누군가와 생각과 행동을 재단하고 규정짓는 등 여전히 나 또한 그렇게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사람의 실제 마음과 생각에는 관심조차 없으면서 그저 나와 다른 누군가를, 무언가를 깎아 내리기에 바빴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본다. “그래도 되나. 입에서 돌고래 소리 같은 게 새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정말 그래도 되나.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어서 「그날의 정모」를 썼다.” (안보윤 작가의 말 中) ‘그날의 정모’, 일상을 그저 재미있게 살아가려고 하는 정모의 다소 부족한(이 표현 자체도 문제가 있겠지만) 내가 만났던 수많은 정모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고, 또 내가 관계를 맺어야 할 새로운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그 자체로서 존중해 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날의 정모로부터 분리되었던 연수가 다시 그날의 정모에게로 돌아오는 힘겨운 여정인지도 모른다. (…) 「그날의 정모」는 그 두렵고 길고 꼬불꼬불한 통로를 통과하기보다 “꽉꽉 밟아” 부수며 마침내 지옥을 향해 함께 손잡고 가는 남매의 행복한 악몽의 기록이다. (작품 리뷰 中) 절친한 이웃으로부터 아들이 바람피우는 얘기를 듣던 노인이 자기 아들의 바람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며 아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강태식 작가의 「그래도 이 밤은」. 일상이 허구와 섞이는 순간,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실제 발생하고 있는 현재인 것인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상상하고 있는 것인지,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정말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실제 관계인 것인지 그런 순간들이 한 번쯤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나의 과거가 희미해지고, 나의 기억에 확신이 점점 사라져갈 때 그 때 이런 순간들을 접하게 되지 않나 어렴풋이 예상해 본다. 하지만 행크는 남자가–가장 브라이언 같지 않은 남자가–브라이언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 브라이언. (…) 행크는 브라이언이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지 않기를, 가만히 앉아 어둠을 응시하며, 근처에 놓인 술잔을 가끔 한번씩 들었다 놓았다 하며 울고 있지 않기를 빌었다. (작품 中) 그저 내 아이들이 평안하기를, 세상 고민과 근심과는 거리를 둔 채 하루하루를 평화롭고 평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그리고 아무 걱정없이 편안한 잠을 자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리라. 세상 누구보다 미울 때도 있지만, 결코 손을 놓아버릴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내 아이들이리라. 내가 사는 이유, 내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주고 싶은 이유, 그건 바로 내 자식들이기 때문이고 모든 부모는 그런 마음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연약하고 불완전하며 허술한 아이가 나를 예전보다 좀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 (…) 행크가 브라이언을 위해 기도하듯, 모든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듯, 나 역시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아들이 나에게 준 것들을 떠올리면서,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강태식 작가의 말 中)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늘 우리의 자랑이었고,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었던 아이들에게 헌신해 온 (나를 포함한) 모든 부모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크나 큰 격려도 함께 나누고 싶다. 과거와 경험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통제와 편집을 통해 재구성된 것이 기억/이야기이다. 현재의 필요가 과거의 경험을 고유한 이야기로 만든다. (…) 작가는 불가능한 망각 대신,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바람을 다양한 맥락에 재위치시킴으로써 상처를 싸안고 넘어가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지 모른다. 망각에 대한 망각. (작품 리뷰 中)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키며 여행을 떠난 집주인 대신 ‘사모님’으로 행세하는 ‘서경’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승은 작가의 「조각들」. 작은 실수로 집주인이 소중히 생각했던 테이블 모서리를 깨고, 서재에 있는 테이블로 교체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웃집에 놀러온 젊은 남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서로 얽히게 되는 관계와 에피소드들을 보여 주며 스릴러처럼 뭔가 긴장을 계속 고조시키며 뭔가가 크게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계속 자아내고 있다. 완벽함이란 단어도 떠올랐다. 서경이 생각하는 완벽함이란 결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결함을 메꾸어나가려는 태도였다. 실패나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노력과 의지였다. (작품 中) 작은 거짓말로 시작된 행위가 상대방에게 설명해야 할 때 ‘솔직한 것만이 정말 최선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주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무언가를 믿거나 기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되짚어 본다. “무언가를 믿거나 기대하는 것, 또 마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여름의 나를 돌아보며 지금은 용기에 대해 생각한다. 조금 더 튼튼해지고 싶고 또 용감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승은 작가의 말 中) 자신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는 조각들, 내가 못 이룬 꿈의 조각들, 그 사람과 나와의 사이에서 떨어져 나간 관계의 조각들, 그 조각들을 오늘도 잘 맞춰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맞춰야 잘 맞추는 것인지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그렇게 나만의 이야기와 나만의 목소리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 가면서 말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매 순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없으나 문득 지난 순간의 자기를 스스로 설명해야만 하는 때 요청되는 진실은 이렇게 허위와 당위를 동시에 품은 자기 서사를 기어코 내놓게 만든다. (작품 리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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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몰랐던 작가들의 반짝이는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총 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고 작품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재미면에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양치기들의 협동조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나머지 6개의 소설은 술술 읽혔다. 조경란의 <그들>은 우울증에 걸린 노모와 단둘이 사는, 교수가 되지 못한 채 오십이 넘은 아들의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과 카페 주인인 영주의 삶이 겹치며, 사는 동안 겪게 되는 부당함에 어떻게든 대처하며 견디는 인생들을 본다. 조해진의 <내일의 송이에게>는 세월호 참사를 겪었던 생존자들의 아픔을, 반수연의 <조각들>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안보윤의 <그날의 정모>는 정신적으로 아픈 아이를 둔 부모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 이웃들은 어느 정도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재미있었다. 강태식의 <그래도 이 밤은>은 어릴 때 집안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짧은 사고를 입은 자식으로 인해 부모의 생활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이승은의 <조각들>은 크나큰 위기를 맞이한 경우 재기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한 고군분투가 보인다. 내년에는 또 어떤 재미있는 작품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
| 근래에 발표되는 문학상 작품집을 보면 어쩐지 여기서 보던 작가의 이름을 저기서도 보게 되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작품이 서로 다른 문학상 작품집에 실려있기도 하다. 이건 그 작품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방증이니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독자로서는 더 다채로운 작가들을 접하고 싶다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는데, 이 작품집은 자주 접해보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어서 특히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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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그들」 “... 여자는 추워서 그러는 듯 한 손을 목뒤로 넘겨 등에 늘어진 긴 머리를 모아 잡더니 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웅크린 여자는 우는 사람처럼 보였다. 조금 떨어진 데서 보면 사람들은 외롭거나 슬퍼 보였다... 사장이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종소는 그래서 가슴이 조금 뛰었다.” (p.20) 살아가는 일은 드물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은 살아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조용 머물러 있다. 거기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작가는 삶이 조용조용 머물러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종소와 영주, 그들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 작가다. 신용목 「양치기들의 협동조합」 “... 레닌은 경험 많은 사람이 으레 가질 법한 편견이나 고집이 없었다. 오히려 ‘알게 된 것’을 말하기보다는 여전히 ‘느끼는 것’을 말할 줄 알았다. 가령, 시간이 흐르면 자갈이 모래가 되고 모래가 흙이 되고 흙이 아주 작아져 공기처럼 부서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게 어둠의 질감이라고 했다... 시인 같다고 하자, 그는 가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손을 들어 파리를 쫓듯 자신에게 날아든 칭찬을 지웠다.” (p.74) 찾아보니 작가의 시집을 네 권 읽었다. 한 권의 산문집도 읽었다. 그러니까 시인의 소설이고, 읽으면서 그렇구나 여기게 되는 부분들이 종조 나온다. 소설의 배경에 순례길이 있는데, 아내와 내가 더 늙으면 가기로 한 그 길이다. 조해진 「내일의 송이에게」 어제의 송이와 오늘의 송이가 안타깝다. 내일의 송이에게 지금 희망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착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된다. 어쩌면 장훈이 그 길을 함께 될 수도 있을 것인데, 장훈 또한 어제와 오늘이 송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응원하고 싶다. 세상의 많은 송이들과 장훈들을 응원해야 한다. 반수연 「조각들」 이민자의 녹녹하지 않은 삶이 있다. 그 삶의 원동력이었던 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방향으로 훌쩍 자랐다. 딸은 일찌감치 독립하였고 어쩌면 나보다 더 독립하였는 지도 모른다. 뿌리 깊은 삶이 아니라 뿌리를 옮겨 그 뿌리가 옅어진 삶의 단면이 담겨져 있다. 안보윤 「그날의 정모」 제목을 보고는 어떤 모임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 ‘정모’는 사람의 이름이고, 그는 나의 동생이며 정신적으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정모의 부모 그리고 정모의 누나인 내가 겪는 힘겨움이 소설에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족의 힘만으로 나아가기에는 역부족인, 우리의 문제로 받아 안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재가 있다. 강태식 「그래도 이 밤은」 “브라이언은 여전히 여자의 얼굴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잠깐 떼었다가 다시 가져다댄 것인지도 몰랐지만 행크가 볼 때는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행크는 카페 밖에 서서 아들의 모습을 한동안 더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일부가 그곳에 남아 계속 아들을 지켜보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p.246) 독특한 설정이다. 아버지가 아들이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한다. 얼마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회자가 되었던 내용인데,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될 줄을 몰랐다. 설정도 독특하지만 등장인물과 그 배경을 한국이 아니라 외국으로 삼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미국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승은 「조각들」 소시민의 몰락은 크기에 상관없이 슬프다. 서경이 겪는 모든 일은 어쩌면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이었다. 조각품의 떨어진 조각처럼 그의 삶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셈인데, 그 작은 떨어져나감으로 이해 조각품은 아예 형편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인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세공하여 소설로 만들었다. 그건 그렇고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같은 제목(‘조각들’이라는)의 소설이 실려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조경란, 신용목, 조해진, 반수연, 안보윤, 강태식, 이승은 /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338쪽 /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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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그들」 “... 여자는 추워서 그러는 듯 한 손을 목뒤로 넘겨 등에 늘어진 긴 머리를 모아 잡더니 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웅크린 여자는 우는 사람처럼 보였다. 조금 떨어진 데서 보면 사람들은 외롭거나 슬퍼 보였다... 사장이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종소는 그래서 가슴이 조금 뛰었다.” (p.20) 살아가는 일은 드물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은 살아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조용 머물러 있다. 거기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작가는 삶이 조용조용 머물러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종소와 영주, 그들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이 작가다. 신용목 「양치기들의 협동조합」 “... 레닌은 경험 많은 사람이 으레 가질 법한 편견이나 고집이 없었다. 오히려 ‘알게 된 것’을 말하기보다는 여전히 ‘느끼는 것’을 말할 줄 알았다. 가령, 시간이 흐르면 자갈이 모래가 되고 모래가 흙이 되고 흙이 아주 작아져 공기처럼 부서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게 어둠의 질감이라고 했다... 시인 같다고 하자, 그는 가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손을 들어 파리를 쫓듯 자신에게 날아든 칭찬을 지웠다.” (p.74) 찾아보니 작가의 시집을 네 권 읽었다. 한 권의 산문집도 읽었다. 그러니까 시인의 소설이고, 읽으면서 그렇구나 여기게 되는 부분들이 종조 나온다. 소설의 배경에 순례길이 있는데, 아내와 내가 더 늙으면 가기로 한 그 길이다. 조해진 「내일의 송이에게」 어제의 송이와 오늘의 송이가 안타깝다. 내일의 송이에게 지금 희망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착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된다. 어쩌면 장훈이 그 길을 함께 될 수도 있을 것인데, 장훈 또한 어제와 오늘이 송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응원하고 싶다. 세상의 많은 송이들과 장훈들을 응원해야 한다. 반수연 「조각들」 이민자의 녹녹하지 않은 삶이 있다. 그 삶의 원동력이었던 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방향으로 훌쩍 자랐다. 딸은 일찌감치 독립하였고 어쩌면 나보다 더 독립하였는 지도 모른다. 뿌리 깊은 삶이 아니라 뿌리를 옮겨 그 뿌리가 옅어진 삶의 단면이 담겨져 있다. 안보윤 「그날의 정모」 제목을 보고는 어떤 모임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 ‘정모’는 사람의 이름이고, 그는 나의 동생이며 정신적으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정모의 부모 그리고 정모의 누나인 내가 겪는 힘겨움이 소설에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족의 힘만으로 나아가기에는 역부족인, 우리의 문제로 받아 안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재가 있다. 강태식 「그래도 이 밤은」 “브라이언은 여전히 여자의 얼굴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잠깐 떼었다가 다시 가져다댄 것인지도 몰랐지만 행크가 볼 때는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행크는 카페 밖에 서서 아들의 모습을 한동안 더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일부가 그곳에 남아 계속 아들을 지켜보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p.246) 독특한 설정이다. 아버지가 아들이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한다. 얼마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회자가 되었던 내용인데,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될 줄을 몰랐다. 설정도 독특하지만 등장인물과 그 배경을 한국이 아니라 외국으로 삼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미국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승은 「조각들」 소시민의 몰락은 크기에 상관없이 슬프다. 서경이 겪는 모든 일은 어쩌면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이었다. 조각품의 떨어진 조각처럼 그의 삶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셈인데, 그 작은 떨어져나감으로 이해 조각품은 아예 형편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인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세공하여 소설로 만들었다. 그건 그렇고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같은 제목(‘조각들’이라는)의 소설이 실려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조경란, 신용목, 조해진, 반수연, 안보윤, 강태식, 이승은 /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338쪽 /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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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낯선 작가가 많아서 새로울 거라 생각은 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발견하는 재미가 적은 편이라 걱정도 했는데 역시 걱정은 사서 하는 게 아니다. 10년 넘게 글을 써온 사람들의 글은 재미의 유무를 떠나서 술술 읽힌다. 초반에는 억지로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밤마다 울고 있다. 정작 그들은 기를 쓰고 울지 않는데 나는 쉽게 울어버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순간들을 포착해 내는데 그게 너무 가혹한 진실이어서 버겁지만 때로는 또 꿈같아서 무너지는 것들을 붙잡을 힘이 생기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