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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난세로 불린다. 그리고 이 시기, 자신들의 생각을 제후국들의 군주에게 유세하여 천하의 통일을 도모하고자 했던 수많은 사상가들을 우리는 제자백가라 칭하고, 그들의 사상을 백가쟁명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상, 즉 선진4가로 유가, 법가, 도가 그리고 묵가를 꼽는다. 이처럼 선진4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음에도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학파가 바로 묵가이었고, 묵가사상의 기본 텍스트가 바로 [묵자]이다. 일반적으로 묵가라 함은 묵자의 사상을 좇는 사람들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은 공인과 장인 등이 중심이 되어 집단생활을 하며 정치결사체를 이루었고, 집단의 지도자를 ‘거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묵가의 창시자인 묵자의 본명은 묵적이며, 바로 초대 거자였다. 송나라 출신으로 알려진 묵적은 공자가 죽은 지 약 10년 후인 기원전 450년경에 태어나, 맹자가 태어나기 10년 전쯤인 기원전 390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춘추시대 말기에서 전국시대 초기로, 난세중의 난세였다. 이러한 때, 묵적이 소모적인 전쟁을 매듭짓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방안으로 찾아낸 것이 [묵자]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이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와 약소국 공격을 자제하고 열국이 공히 평화를 누리자는 비공은 현대어로 바꾸면 바로 사랑과 평화이고, 이는 공자가 주장한 인(仁)을 보다 적극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묵가사상은 기본적으로 공자사상과 맥이 같다고 한다. 다만 공자가 주(周)나라 문화인 시(詩), 서(書), 예(禮), 악(樂) 모두를 전폭 수용해 자신의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다면, 묵적은 그 일부인 시와 서만을 취해서 사상적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묵가사상의 특징을 크게 3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천하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주의로, 이는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가 유가와 갈라지는 지점이라고 한다. 유가는 친소에 따른 차별적인 사랑을 인(仁)의 출발로 보았고, 공자는 인을 이루기 위해 예(禮)를 중시했지만 묵적은 의(義)를 중요시 했다. 이런 묵가사상이 종교로 나아가지 않은 것은 그 실천방법을 세속적인 가치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묵적은 이런 겸애를 위한 방법으로 천하의 이익을 같이 나누는 교리(郊里)의 논리를 내세웠다고 한다. 둘째는 비전(非戰)주의인데, 묵적은 무조건적인 평화주의가 아닌 비공(非攻)을 추구했으며, 이는 방어측면에서 볼 때는 적극적이면서도 전투적이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묵가사상의 특징은 절용(節用)주의이다. 이는 실리주의 내지는 실용주의의 입장에 서있는 것으로, 소비를 장려하면서도 사치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유가의 예악과 장례절차를 강도 높게 비판했는지도 모른다. 묵가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할 즈음 사라졌다고 한다. 가족과 군신간의 윤리를 중시한 여타 제자백가와는 달리 보편적인 인류애와 합리적인 사회질서를 주장한 것이 절멸의 원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고대에 너무 일찍 근대를 지향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묵가의 기본 텍스트인 [묵자]는, 묵자(묵적)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사후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고 한다. 마치 [논어]가 공자사후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을 책으로 펴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묵자]는 총 71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53편이다. 그리고 사라진 18편중 8편은 편목이라도 남아 있지만, 나머지 10편은 편목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저자는 이들 71편을 5가지로 분류한다. 첫번째는 1편에서 7편까지로 묵가의 초기사상을 반영하고 있으나, 후대인의 개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본문의 문장도 빠진 것이 많아 순수한 묵가사상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한다. 두번째는 8편에서 39편까지 총 32편으로, 현존하는 것은 25편이지만 묵가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곳에 묵가사상의 핵심인 겸애(兼愛), 비공(非攻), 절용(節用)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고, 더불어 하늘의 뜻을 강조하는 천지(天志), 귀신의 존재를 밝히는 명귀(明鬼), 그리고 숙명론을 비판하는 비명(非命)등이 포함되어 있다. 세번째는 40편부터 45편까지 총6개편으로, 이중 40편에서 43편까지는 기하학과 광학, 역학, 물리학에 대한 내용으로 [묵경(墨經)]이라 불리며, 44편과 45편은 묵가의 논리학 체계를 설명한 것으로 [묵변(墨辯)]으로 통칭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동양사상에서 취급되지 않는 논리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 자못 흥미롭기까지 하다. 네번째는 46편부터 50편까지 총 5편으로 묵자의 언행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1편부터 71편까지는 10편이 사라지고 11편만 남아있으며 [묵자병법]으로 불린다고 한다. 여기에는 여타병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방어하는 전략전술이 담겨 있다. 성문을 수비하는 방법, 토성을 쌓고 공격해오는 적의 예봉을 피하는 방법과 더불어 적이 성벽을 넘어 공격해올 때, 적이 화공을 해올 때, 그리고 적이 땅굴을 파고 공격해올 때의 방어책들이 그것이다. 또한 묵자는 이 같은 방어를 위해 군령을 전달하기 위한 신호체계와 엄정한 군기유지를 위한 명령체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는 묵자가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은 용인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전국시대 초기에 나타나 전국시대 말기에 사라진 묵가, 사실 난세에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주장은 별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여타 사상가들이 자신의 사상을 유세했던 것도 결국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함이었다면, 묵가의 사상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주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 다닐 때, 제자백가의 하나로 단지 이름만 알고 있었던 묵가에 대해, 그리고 묵자의 삶과 사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저자의 해설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유가와 법가 그리고 도가까지 넘나드는 방대한 제자백가의 사상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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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읽었던 논어와 같이, 묵자 역시도 묵적 사후 제자들이 편찬한 책이다. 묵적을 존칭하여 묵자라고 부른다는데 묵자, 아무리해도 밥묵자로 들린다. 요즘은 이런 서민적인 언어 사용이 좋다. 밥묵자, 친숙하고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다. 묵가의 기본 텍스트 역시나 그렇다. 친숙하고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무제의 '독존유술' (유학을 유일한 관학으로 삼음) 선포로 묵가의 전통은 끊어졌다. 78편 가운데 현재 53편만이 남아있지만, 그마저도 완전하지 못하다.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두루 사랑하라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나 다름없다. 또한 불교의 자비와 같다. 묵가의 겸애는 종교와 같은 '사랑'을 뜻하지만 묵자의 ‘겸애’가 종교와 다른 것은 겸애의 실천방법을 세속적인 가치에서 찾은 데 있다. 묵가의 기본 사상이 되는 '겸애’와 ‘비공’은 나와 남을 엄히 구별한 뒤 가까운 사람을 더욱 가까이 하는 유가의 親親(친친)사상을 부인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 천하의 이익을 두루 서로 나눈다는 뜻의 敎理(교리)이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 남의 부모도 사랑하여 자신과 남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 천하무인 사상이다.
또한 묵가는 주로 공인과 장인 내지 무사들로 이루어져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며 집단생활을 영위하였다. 이들은 열국의 군주와 백성들을 대상으로 묵가사상을 열심히 설파하면서 강대국의 침략위기에 놓인 약소국을 위해 방어 전술을 전하고 각종 수비용 무기와 설비를 직접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다, 책과 문헌을 정리하는 설서 수공업 기능과 군사 기술을 익혀 몸으로 일하는 종사, 사상의 전파를 위한 논증과 언변을 갈고닦는 3가지 업무의 전문가를 집중 양성한 배경이다. 역사상 매우 보기 드문 정치결사체에 해당한다. 묵가는 공격성을 띤 전쟁을 극력 반대하였고 방어를 목적으로 한 전쟁만 용인하였고 실용주의에 입각해 자신들의 직업윤리를 가다듬었다. 묵가가 유가에 이어 사상 두 번째 제자백가로 등장한 배경이다. 그, 러, 나
“묵자는 고대에 너무 일찍 근대를 지향했다. 묵가는 그로 인해 절멸했다. 동시에 그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되는 특이한 학단이다.”
공자가 주(周)나라 문화인 시(詩), 서(書), 예(禮), 악(樂) 모두를 전폭 수용해 자신의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다면, 묵적은 그 일부인 시와 서만을 취해서 사상적 근거로 삼았다. 귀족의 유흥수단으로 전락한 예악을 옹호하고 있는 유가를 비판하자 순자, 맹자, 장자, 한비자, 장자와 같은 제자백가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된다. 그도 그럴것이 묵자의 사상은 다른 사상들에 비해 지나치게 실용적이었으며 시대를 앞선 사상이면서 '실학'에 가까웠다. 대신 서민의 편에서 죽을 때까지 우왕의 가장 큰 덕목이었던 겸애와 비공을 쫓았다.
묵자는 하늘의 뜻을 천지와 천의로 표현해 놓고 하늘을 지극히 공평무사하고 인간처럼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마치 유일신 대하듯 하였다. 마치 우리 민족의 기본 사상과도 같은 권선징악의 뿌리로 보여지기도 한다. 겸애가 그렇듯이 비공 역시도 정당성을 담보하는 판단의 기준을 하늘의 뜻인 천지 내지 천의에서 찾고 있다. 묵자의 하늘은 모든 인간을 인종 및 빈부귀천 등에 관계없이 사랑한다는 점에서 동학의 사상과도 같고 겸애에서 도출된 비공은 묵자의 평화주의 이념을 뜻한다. 인간의 특징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호모 라보란스’가 있다. 노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제자백가 가운데 이를 통찰한 인물이 바로 묵자였다. 그는 노동을 인간이 지닌 특이한 품성으로 간주했다. 인간의 노동은 재화의 생산을 위한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에 있다. 노동과 휴식이 그렇듯이 생산과 소비도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균형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사상가들로부터 배척받았던 묵자는 정약용이 연상 되어지기도 한다. 실학과 동학사상, 천주교 사상까지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적합한 개인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보는 헤겔의 영웅론과도 같이 비록 춘추전국시대의 요구에는 맞지 않았으나, 현대에 묵자 사상이 새롭게 주목받는 것 또한 시대의 요구나 다름없다.고전연구가인 저자 신동준의 말처럼 G2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고전은 현재의 거울이라 하듯이 묵자를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반추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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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사기를 읽다, 남의 나라 2천 년 전의 역사책을 읽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사책을 스스로 편협하게 읽는 사실이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책을 알게 되고, 연관 서적으로 읽는 호기심이 옮겨 붙는다. 그러다 옛날 제가 백가의 생각들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그 후 사서삼경을 읽어 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 과정을 통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읽게 된다. 그렇게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한 번씩을 읽게 되었다. 시경은 잘 와 닿지 않고, 주역은 잘 모르겠다. 그 말이 정확한 설명이다. 변화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전후가 맞지 않는 말이다. 시간을 흘러 공자를 지나고 제자백가의 손자병법을 읽다 노장사상이 노자, 한비자, 장자와 함께 흐른다 설명을 보았다. 그래서 다시 이 책들도 보게 되고, 그 이후에는 유교 입장에서 잡서 아닌 것이 없지만 귀곡자도 보고 묵자까지 읽어 보게 됬다. 눈에 들어왔다고 모두 마음에 들어온 것은 아니며, 마음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가 백가의 춘추전국시대는 집단적인 전쟁과 생존을 통해서 사람들이 머리를 잘 써야 하고, 입을 잘 놀려야 살며, 먹고살기 위한 기상천외한 사고가 요구된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 현상을 바라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유세를 하며 세를 불렸다. 선진 4가인 유가, 법가, 도가, 묵가를 보면 서로 공통점이 있고 다름이 있다. 겸애와 비공의 묵가, 도와 덕이 자연의 순리와 같이 운행되길 바라는 노자, 그 자연의 변함없는 원리가 법이란 규칙으로 적용되기를 바라는 법가, 극기복례라는 교육을 통한 인간 문명 발전을 기대하는 공자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름을 주장하지만 인간의 번영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인간과 인간의 행동을 살펴보는 공통점이 있다. 학자들은 다름을 부각하고 찾아낸다면 나는 다름이 조화가 되는 생각을 따라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삶이고, 그 삶을 하나의 얄팍한(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고려하면) 사고로 평생의 변화를 대응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이 도가, 법가, 유가, 묵가로 딱 나뉘지 않는다. 지금 서양의 철학과 새로운 사조까지 더하면 다 덜어내고 새것만을 담을 수도 없다. 인간이 그렇다. 각의 사람에게 마음의 비중이 서로 다를 뿐이다. 묵자는 세상 사람을 차별 없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겸애의 정신이 있다. 저자가 좌파 유교라고 칭하는 표현이 재미있다. 수신(修身)의 관점에서 맹자와 묵자가 상통하고 인의(仁義)로 보면 유사점이 있다. 묵자가 속유(俗儒)를 비판하는 것은 그 비판의 배경에 유가에 대한 의식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비판적이다. 인(仁)이라 정의되는 유가에서 의(義)를 더해서 인의라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묵자는 이렇게 세상을 두루 넓게 사랑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세상의 현상을 관찰하고 이해하여 사전과 같은 경설을 남긴 것은 아닐까? 이런 정확한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려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서구 문명과 비교하면 한참 빠르다. 기원전 470년에 태어났으니 엄청 빠른 접근이 아닐까? 이 결과물을 통해서 자신의 사고와 앎을 깨우쳐 궁극적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을 보면 좌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통설에 왼손잡이들이 똑똑하다고 말한다. 그런 말도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좌파들은 잘 못한다. 너무 이성적이라 그렇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 가끔 감정이 혼돈된 존재다. 묵자의 유가에 대한 비판을 나는 이런 관점에서도 보고 있다. 그 뛰어남의 효익을 이해하고, 친사(親士)와 같이 지식인, 지혜로운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고 말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가 지금과 같은 데이터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 꽤 괜찮은 과학자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기원전 500년 전에도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가 말하던 정보화 사회, 지식기반 사회라는 인간 문명의 구조적 핵심을 간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적이 드물다. 이렇게 세상과 사람을 두루 사랑하기 위한 실력을 쌓아서, 당시의 시대환경의 과제인 비공(非攻)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공성의 방법과 공성을 파쇄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데 많은 내용이 할애됐다. 이는 다른 학문과 같이 자신의 관념적 생각과 정의를 남기는 것보다 당장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을 선택한 것이다. 절용(節用), 절장(節葬)과 절제와 검소함을 강조하는 것 또한 장구한 세월을 살아갈 삶에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생각된다. 다만 인간의 마음이 나뉘지 않듯, 공자는 음악을 통해서 의미를 찾고, 묵자는 음악을 통해서 어지러워지는 것을 경계한다. 지금의 세상도 음악을 통해서 힐링과 깊은 예술의 필요를 느끼고 음악을 통해서 사회가 어지러워진다고 하는 말을 지금도 하고 있다. 나는 이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판단이 바뀌게 되어 있다. 공자는 지금 시대로 와도 비슷할 개연성이 있지만 묵자는 현재의 시대를 살아간다면 보다 발전적인 모습이었을 듯하다. 그런 시대에 태어난 것이 행운이자 또 불운이다. 내 상상으로 그가 현재에 온다면 Why 시리즈와 같은 책은 훨씬 잘 만들었을 듯하다. 다른 상상은 마주하면 꽤 매력적이지만 상당히 머리 아픈 스타일이라고 생각된다. 스타일이 왜 이리 잘 떠오르는지... #묵자 #겸애 #비공 #좌파유교 #맹자 #인문고전 #동양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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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려니 꽤 묵직한 묵자 [묵자]
사실, [묵자]는 제자백가서 가운데 가장 난해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얼핏 얻어들은 지식으로, 겸애와 "묵수" 정도의 단어가 뇌리에 남아 있을 뿐인데, 과연 내가 [묵자]를 읽어낼 수 있을까? 책을 열어보기도 전에 사실, 좀 떨었다.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1000페이지를 넘어서는 압박감에 정신혼미!!
<묵공>꽤 오래 된 영화인데... 묵자의 얼굴을 어떻게 상상하며 이 두꺼운 책을 읽을까...고민하다가 영화를 찾아봤다. 잘생긴 유덕화의 얼굴이 나와서...반가웠다 ^^ 막상 공부해보려고 책을 펼치니 원문의 해석은 별도로 치고라도 묵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책의 무게뿐만이 아니라 사상의 무게 자체도 꽤 묵직해서이다. 가볍게 웃으면서 시작했다가 점점 험악해지는 얼굴 표정^^ 그렇기에 꽃미모를 간직한 유덕화의 얼굴로 묵자를 상상하면서 읽어나가기로 했다.
신동준 선생을 믿고 목차부터 차근차근 살펴본다.
이 책은 [제자집성 諸子集成]에 실려 있는 청대 손이양 주석의 [묵자간고 墨子閒詁](閒을 '한'이 아닌 '간'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를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묵자 53편의 내용을 손이양의 [묵자간고]와 일일이 비교하며 글자 하나하나를 정미하게 추적한 본격 주석서에 해당한다. 성격상 [묵자간고]의 완역본에 가깝다.-128
53편의 내용을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둘째 부류는 묵자사상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고, 셋째 부류는 흔히 <묵변> 내지는 <묵경>으로 불리는 것으로 '묵가 논리학'을 수록한 것이다. 다섯째 부류는 이른바 '묵자병법'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에 활발히 활동했던 묵적의 무리는 원래 무사집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통상적인 무사와는 달리 공격성을 띤 전쟁을 반대했고, 실용주의에 입각해 자신들의 직업윤리를 가다듬었다. 당시 세상을 덮고 있던 공자의 사상인 유가에 이어 두 번째 제자백가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패업을 추구하던 그 때, 공자사상이 내세운 가치인 '인'과 동떨어진 속유들이 횡행하고 난세의 심도가 깊어졌던 그 때. 묵가는 노동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산 하나라의 우왕을 높이 성인으로 추존하며 '겸애'와 '비공'으로 '사랑과 평화'를 외쳤다. 묵가를 시조로 한 묵가 학단은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즈음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가족윤리와 군신의 덕목을 중시한 여타 제자백가와 달리 보편적인 인류애와 합리적인 사회질서를 주창한 게 큰 이유였다고 한다. 극히 혼란스러운 시기에 태어난 사상, 극단적인 이상주의에 입각한 사상, 확고한 신념체게 속에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이상국을 지상국에 세우고자 한 점 등은 묵학, 맹학, 주자학, 마르크시즘이 다르지 않으나 21세기 현재 맹학, 주자학, 마르크시즘은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했다. 유독 묵학만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삶을 중시하며 이상을 지향하는 것이, 난세보다는 치세에 부합할 듯한 묵학은 21세기의 난세에 그리 큰 의미를 갖지 않을 듯 보이지만 신동준은 큰 그림을 그려보이며 묵학을 반긴다. 천하의 이익을 고루 나누며, 천하 만민을 두루 사랑하고, 국가 간 갈등이 빚어질 때도 오직 방어를 위한 전쟁만을 인정한다.명실상부 '사랑과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뛰어난 요소들을 두루 지닌 묵학이 앞으로 한반도 통일 이후의 세계정세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고리타분한 사상으로만 여기고 묵혀두었던 묵학을 다시금 꺼내들어 오늘날의 정세에 맞게 이용하려는 이런 노력이 있어 "고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묵자의 사상은 크게 겸애주의, 비전주의, 절용주의로 나타낼 수 있다. [논어]처럼 후대 제자들이 묵자 사후 묵자의 언행을 기록하여 펴낸 책 [묵가] 안에서 그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 이 텍스트를 공부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공자의 사상적 후계자를 자처한 맹자가 실은 공자사상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 묵자사상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했음을 말하는 부분. 그만큼 묵자를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부분이 되겠다.
묵자는 비록 인격신에 가까운 '천지'와 '천의'를 들먹였지만 여타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합리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른바 묵가논리학으로 불리는 <경 상, 하>, <경설 상, 하>, <대취>, <소취> 등의 6개 편에는 논리학을 위시해 광학과 물리학 등 과학기술에 관한 내용이 대거 수록되어 있다.
거울 속의 영상은 물체가 거울에 가까워져도 함께 하고, 멀어져도 함께한다. 거리의 비례에 따른다. 영상이 함께 한다는 것은 곧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게 없는 까닭에 영상도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경설 하, >97
묵학이 여타 제자백가의 학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논리학, 과학철학, 군사학, 도덕철학, 경제학, 정치철학, 종교철학 등 거의 모든 부분의 학문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새삼 왜 난해하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묵수" 와 겸애, 절용만으로 묵자를 정의하기엔 그의 사상이 너무도 넓고 원대하다. 2400여 년 전의 사상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끌어올려 오늘에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많은 이들이 고전을 공부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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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면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거나, 다수가 소수를 겁박하거나, 부자가 빈자를 업신여기거나, 귀인이 서민을 오만하게 대하거나, 약은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거나 하는 일이 없게 된다. 무릇 천하의 화난과 찬탈, 원망, 통한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오직 서로 사랑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어진 사람이 이를 칭송하는 이유다. -신동준 역, <묵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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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동안이나 금서였던 책, <묵자>는 왜 금서가 되어야 했을까요? 묵자는 수평적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수평적 세계관은 수직적 신분제를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봉권주의 시대에 묵자가 금서가 되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진리와 사랑은 언제나 수평적 세계관를 지향합니다. 우리가 2천년의 먼지를 털어내고 묵자를 새롭게 읽어야 할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이 책은 묵자의 국내 첫 완역본입니다.)
묵자의 사상은 '상애상리(相愛相利)'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익을 나누어라! 이 한 마디에, 세상에 평화와 행복을 불러오는 진리의 요체가 담겨져 있지 않은가 합니다. 모든 전쟁과 분쟁은 상애와 상리가 부족할 때 생겨납니다. 즉 평화의 길은 상애와 상리뿐인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한다면, 어찌 타인을 해칠 수 있으랴? 내 나라를 사랑하듯, 다른 나라를 사랑한다면 어찌 다른 나라를 해칠 수 있으랴?"
묵자의 상애상리의 사상엔 인류의 공존공생의 비전이 담겨서 있습니다. 그의 말은,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예수의 전언과도 조우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가르침이 일치하는 것은, 진리는 언제나 하나로 만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묵자는 금서가 아니라, 2천년이나 묵혀둔 빛나는 양서로 대접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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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준 선생이 번역한 『묵자』 는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이다. 이 책을 받았을 때는 반가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신동준 선생의 저서는 『조조의 병법경영』을 통해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 책은 삼국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조조의 병법과 국가 경영에 대한 선생의 견해를 담은 책인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삼국지를 여러 판본을 통해 수차례 읽었던 배경지식이 책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그 후 인간사랑의 서평단 이벤트 등을 통해 선생의 손을 거친『귀곡자』,『상군서』,『욱리자』등 제자백가의 병법을 다룬 책과 『채근담』,『명심보감』 등의 경전을 읽었다. 뿐만 아니라『조선왕 성적표』등도 읽었으니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은 인문학자 중에 선생이 가장 많았다. 책을 볼 때마다 선생의 넓고 깊은 지식에 감탄하면서도 중압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선생의 저서는 대부분 500쪽 이상이었는데, 독서의 많은 부분이 이동하면서 이루어지는 나로서는 무거운 책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이 책은 서너 달 전에 받은 책이다. 서평단 이벤트나 출판사의 선물로 받은 책은 대개 열흘 내로 읽는 것이 원칙인데 선생의 책은 그것이 힘들었다. 특히 이 책의 경우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들고 다니기에는 무거운 분량이기도 하니 감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책을 펼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이 책은 여러 번 읽었지만 완독을 하지는 못했다. 서너 달 동안 책을 잡은 것이 대여섯 번이고 그때마다 100여 쪽 이상은 나갔다. 다음에 다시 책을 잡으면 다시 처음부터 읽었으니 앞부분은 대여섯 번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 이하는 드문드문 읽었거나 건성으로 넘어갔으니 완독을 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나의 역량으로는 벅찬 내용이기 때문이다. 분량의 압박과 함께 책의 내용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공자나 맹자는 여러 번 들었고, 노자와 장자도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으나 묵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었다. 학창시절에도 그 이름의 특이함 때문에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춘추 전국 시대의 각종 일화가 담긴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에는 그런 삽화도 많지 않다. 어떤 일화를 소개하더라도 주로 묵자의 사상을 보완하기 위해서니 스토리의 연결도 거의 없다. 그러니 읽었다고 해도 무엇을 읽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그나마 열국지의 배경지식이 도움이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판본을 통해 열국지를 세 번 정도 통독한 바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묵자는 춘추시대의 공자와 전국시대의 맹자 사이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니 묵자가 이 책에서 예로 든 일화들이 대부분 춘추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전혀 낯설지는 않았다. 열국지에 대한 상식이라도 없었다면 이 책은 책장을 넘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셋째, 신동준 선생의 주석이 빛나는 책이다. 신동준 선생의 번역서의 특징은 서문이나 발문에서 그 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덧붙어 있다는 것이다. 그 설명이 웬만한 단행본 분량이다. 이 책에서도 ‘들어가는 말’과 ‘제1부 묵자는 누구인가?’와‘제2부 묵자는 무엇인가?’라는 표제로 설명한 글이 129쪽이다. 뿐만 아니라 권말에 있는 역자 후기도 10쪽이다. 140쪽은 거의 논문 수준이 아니겠는가? 이것만 읽어도 묵자에 대한 대략적인 상식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본문도 권1~권14의 71장이 원문과 풀이 및 상세한 주석으로 짜여져 있다. 하나하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서 어려운 이유는 이 책은 1000쪽이 넘는 책이다. 소설과 같은 스토리 위주가 아니라 묵자의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다. 부분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된다고 해도 그 방대한 양을 어찌 소화할 수 있겠는가? 10여쪽만 넘어가면 앞의 내용이 까맣게 잊혀지곤 했다. 넷째, 최소한 열 번 이상 읽어야 할 책이다. 옛 사람은 많은 책을 읽은 것이 같은 책을 수백 번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책을 백 번을 읽으면 뜻이 저절로 떠오른다.)이라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묵자는 전국시대에 공자와 쌍벽을 이루던 대사상가였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열 번도 오히려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여러 번 읽으면서도 읽을 때마다 처음 본 책인 듯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다섯째, 개인적으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묵자에 대한 재인식이다. 학창 시절에 제자백가를 배우면서 묵자를 듣기는 했지만, 제자백가 중에 군소유파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전국시대 말기에는 유가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큰 줄기였고, 그의 평화 사상은 현대에도 재조명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잘 모르겠다. 재미있는 책도 아니고, 분량이 가벼운 것도 아니다. 감히 함부로 권하기도 부담스럽다. 그래도 권해야 한다면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이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 둘째 최소한 열국지는 읽은 사람……. 이 조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이다. 나의 솔직한 마음은 신동준 선생의 저서를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 저자에게 관심이 있다면, 이 책보다는 『조조의 병법경영』을 권하고 싶다. 그 책은 삼국지에 대한 상식만 있다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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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는 최초의 반전평화주의자로 불리고 있다. 단순히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차원을 넘어 아예 전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비전을 주장한 점에서 사랑과 평화를 향한 그의 삶은 존경받을 만 하다. 만인을 두루 사랑하는 겸애와 다툼을 그치고 서로 상생을 꾀하는 비공의 숭고한 정신이 이를 뒷받침한다. 겸애와 비공은 나와 남을 엄격히 구별한 뒤 가까운 사람을 더욱 가까이하는 유가의 친친 사상을 부인한데서 출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