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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독한 기억과의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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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 우울과 설렘 속에서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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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 우울과 설렘 속에서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10~11쪽)

 

 어느 시절 서울은 내 삶의 일부였다. 길지 않는 날들이었다.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기 위해 도착한 서울은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병원이라는 거대한 공포도 서울에서만 이뤄지는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 앞에 무감해졌다. 병원과 터미널 주변이라는 제한된 공간이었지만 우리는 짧은 만남의 긴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어떤 장소는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어떤 장소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광호의 말처럼 내게 서울이란 공간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용산이라는 공간으로 다가오겠지만 내게는 서울로 대치된다. 때문에 이광호가 부여하는 용산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어느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간이란 그런 것이다. 다만 이제까지 몰랐던 그곳의 역사와 아픔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니 나는 여행객이 된다. 선명하고 담담한 말투의 용산 안내자 이광호를 따라서 말이다.

 

어떤 장소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곳의 시간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 너의 장소를 벗어난다 해도 너의 부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88~89쪽)

 

 방송을 통해 만난 용산과 글의 골목을 따라 마주하는 용산은 묘한 슬픔이 감돈다. 현재 용산역의 화려함이나 고급스러운 동부이촌동으로 가려진 용산엔 여전히 눈물로 얼룩진 삶이 있다는 걸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현재의 용산을 쌓은 수많은 상처의 조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 속 전자상가 사람들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이태원, 남산, 한남동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진다.

 

 

 

 이광호의 애련하고도 청아한 문장으로 태어난 용산은 아름다운 슬픔이 풍경으로 피어난 공간이다. 용산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용산은 어떤 삶의 부재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첫 발을 내딛는 당신이라면 이광호가 이끄는 동선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해도 좋겠다. 책에서 만난 어느 장소, 어느 공간 앞에 머물러 잠시 멈춰도 좋으리라.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무심하면서도 웅숭깊은 용산의 목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현듯 떠오르는 특별했던 공간과 해후하게 될지도 모른다. 설령 이제는 평범한 장소로 전락했더라도 말이다. 분명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과 오롯이 마주한 나처럼.

 

‘어떤 지독한 기억은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망각의 순간이 도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참혹한 얼굴도 마침내 지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최후의 순간에도 망각은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너를 잊게 된다는 것’은 ‘네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152~153쪽)

r*********s 2014.08.14.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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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이라는 거대한 이름의 시詩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용산'이라는 거대한 이름의 시詩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내용보기
어떤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한때 살았던 충청북도 영동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곳은 난계 박연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중학교 다닐 때 난계국악박물관으로 소풍을 자주 갔다. 그리 크진 않지만 학교에서 가깝단 이유로 걸어다녔다. 매해 박연을 기리는 축제를 한다. 난계국악축제. 감이 유명한 곳으로 감아가씨를 선발하기도 했지만 <포도밭 그 사나이>란 드라마를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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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한때 살았던 충청북도 영동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곳은 난계 박연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중학교 다닐 때 난계국악박물관으로 소풍을 자주 갔다. 그리 크진 않지만 학교에서 가깝단 이유로 걸어다녔다. 매해 박연을 기리는 축제를 한다. 난계국악축제. 감이 유명한 곳으로 감아가씨를 선발하기도 했지만 <포도밭 그 사나이>란 드라마를 황간에서 촬영한 후로, 포도 축제로 바뀌었다. 영동은, 현대사적으로 볼 때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하다.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일었던 사건은, 아직도 그 흔적이 있다. 황간면으로 봉사활동을 갈 때 그 다리를 보았다. 총알이 박힌 자국이 남아 있다고 황간면에 살던 친구가 일러준 적이 있다. 이현수 작가님의 <나흘>에서도 노근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떤 도시건 그 역사는 길고도 어떤 상흔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용산은 호남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노트북이 고장나 AS를 받겠다고 용산을 간 적이 있다. 용산전자상가가 유명하다고도 하고 AS 센터가 용산전자상가에 있다고도 하여, 구경도 할겸 방문했다. 용산역이 종착역이라 기차를 타고 그곳까지 간 후, 내렸는데 생각보다 큰 역의 모습에 놀랐다. 아니, 왜 의외의 모습이었다고 놀란 건지 모르겠다. 용산이 주는 이미지는 그렇게 부정적이었나 싶기도 하고. 서울역보단 작을 것이라 생각했던 탓일까. 극장도 있고 백화점도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하지만 번쩍번쩍한 용산역의 모습과 달리 전자상가로 향했을 때의 모습은 그다지 아름답단 느낌은 없었다. 전자상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물과 건물을 잇는 통로는 참신했다. 햇빛이 강렬해 그늘로 다닐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전자상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자제품을 파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바로 거리 맞은편의 건물은 낡고 허름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용산이란 곳은. 어떤 건물은 화려하고 번쩍하지만 어떤 건물은 다 쓰러져갈 것만 같이 위태하다. 그런 이질감이 용산에 존재했다. 어찌저찌 AS센터까지 갔을 때도, 건물 근처에 롯데시네마의 건물이 있었다. 롯데시네마 바로 맞은편에는 글자의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만 몰락의 시간이 존재했다. 그런 이질감은 용산을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는 용산은 이게 전부다. 의외의 모습을 가지면서 어쩐지 모르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가진, 그런 공간. 그렇기에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가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이 용산을 다룬다는 것을 알았을 때 호기심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용산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마어마한 역사를 지녔고 다채롭고, 때론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구석이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용산에 대해 이제 제대로 좀 알게 된 기분이었다. 어떤 곳은 낭만적이지만 어떤 곳은 낭만을 잃어갔다. 그런 정반대적인 성향을 지닌 곳이 용산이라고 생각했다. 한남동과 이태원의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용산.
모든 시간이 휘몰아치는 곳.
풍경이 지나가는 곳.
빛이 반짝이다 사라지는 곳.
그리움이 쌓여가는 곳.
낯선 시선이 느껴지는 곳.
역사와 역사가 만나는 곳.
서로 다른 세상이 맞물려 흘러가는 곳.
너와 나의 발걸음이 마주치다 스쳐가는 곳.
네가 사라지는 곳.
내가 사라지는 곳.

용산이란 이름의 시詩는 언제나 그곳에 존재했다. 어느 누군가가 적었기 때문에 시가 되었던 게 아니다. 용산은 처음부터 많은 시간과 그리움과 사람들의 발걸음이 스쳐지나갔다. 일제 감정기 때 일본군인이, 미군 부대가 있었을 때엔 미군이, 이태원의 외국인 골목에서 오고 간 수많은 이국적인 풍경들. 누군가 그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볼 때 용산은 시로 태어나 시로 남았다.

이태원의 역사가 처음부터 이국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태원의 역사가 아직도 상흔처럼 남아있다. 비구니에게 잔인한 상처를 남겼던 곳이 외국인들이 오고 가는 장소가 되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용산의 여러 장소는 근현대사의 상처가 산재해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이니 그 빠른 발걸음 속에서 용산의 깊은 상처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용산이란 도시를 알기에 충분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단순히 '도시'라는 테마를 뛰어넘어 오랜 시간의 흔적을 찾아가는 문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가슴에 어떤 감정을 남길 수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오래도록 용산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용산에 들를 적에 책의 구절을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파문을 일으키는 물은 시선에 오래 머문다. 용산이란 도시의 낯선 감각은 현재 존재하는 시간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 파문은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꽤 멀리 퍼졌다. 도시 아래 깊숙이 깔린 과거의 시간은 한번쯤은 뒤돌아보게 한다. 그게 역사의 현장이 될 때, 당신은 그 도시에 붙박힌 듯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은 용산에 머무르게 된다.
t*****g 2014.08.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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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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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구보씨처럼 할일 없이 어슬렁 어슬렁 걷는 이도 있을 테고,누군가는 운동 할 목적으로 걷기도 할 것이다.그렇다면 '산문적인 거리'를 어떨까? 그냥 걷기에도 정신 없는데 머리 아프다며 혹자는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다.그런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그림을 볼 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를 읽으면서 깨달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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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구보씨처럼 할일 없이 어슬렁 어슬렁 걷는 이도 있을 테고,누군가는 운동 할 목적으로 걷기도 할 것이다.그렇다면 '산문적인 거리'를 어떨까? 그냥 걷기에도 정신 없는데 머리 아프다며 혹자는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다.그런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그림을 볼 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를 읽으면서 깨달는다.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제목으로 떠나보게 될 곳은 '용산'이다. 나에게 용산의 첫인상은 부드럽지가 않았다.그런데 언제부턴가 용산을 지나치게 될 일이 많아졌다.국립중앙박물관을 가게 된 것도,이태원을 가게 될 때도 용산의 언저리 이곳 저곳을 지나게 된다.해서 크게 3부로 구성된 용산이란 퍼즐 속에서 제일 먼저 '나누어진 인공낙원'편을 찾아들었다. 마음 같아선 책을 들고 뚜벅이로 걸으며 사진도 찍고,소개된 곳에서 음식도 먹어 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시원해지게 될 가을까지 기다려야 겠다. 서울 처음 올라왔을 때 삼각지의 화랑거리(그때는 화랑거리라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를 보면서 왠지 가짜의 느낌과 가난의 느낌이 앞섰는데,그 역사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어렵지 않은 설명은 그곳을 다시 찾아 나서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이번 장에서 가장 나를 흥분시킨 것은 역시 '이태원'과 '녹사평역'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의 이야기가 제일 눈에 크게 들어오는 탓일테지만.

왠지 낯설고 이방인들의 동네일 것 만 같아 좀처럼 가 보지 못했던 이태원이란 동네,그곳을 언제부턴가 자유롭게 가고 있다.물론 여기 저기를 둘러 보는 것은 여전히 못하고 있지만 갈때마다 다른 곳을 더 찾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다. 경리단길을 가려면 이태원 역보다 녹사평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녹사평 역에 대한 모든 것이였는데,책에 소개 된 '녹사평 역'은 하나의 거대한 작품(?)처럼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지하철이 아닌 걸어서 (전쟁기념관 앞부터 녹사평역까지) 가 볼 계획을 세워야 겠다.

 

"이태원이라는 이름의 역사는 놀랄 만큼 참혹하다.이태원梨泰院이라는 이름은 조선 효종때 이곳에 큰 배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리게 된 것이지만 원래는 조선 시대 공무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여관이 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임진왜란 때는 이곳에서 왜군에 의한 치욕이 있었다고 한다.이곳의 또다른 이름이 이태원異胎圓이라는 믿기 힘든 이름이었다는 것은 이 참혹한 역사를 암시한다.왜군들이 이 지역에 있었던 절 운종사에서 비구들에게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근대 초기에는 일본인 전용 거주 지역이 조성되어 이타인異他人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으니 이방의 문화라는 특색은 일찌감치 시작되었다.(...)이태원의 이방적인 성격은 미군 부대가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습관적으로 무심하게 여기를 이태원이라고 부를 때 그 이름 안의 참혹산 시간들을  다 불러낼 수 있을까? 차마 불러내지 못하는 시간의 이름들."/92~93

 

이태원에 대한 역사를 읽는 동안'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가 고맙게 느껴졌다.내게 이태원이란 곳은 볼거리가 많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 있으,미술관이 있고,공연장이 있는 곳 정도였기 때문이다.여유를 즐기며 노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그곳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깨닫는다.결코 '지나치게 산문적인'(?) 것이 아니였다. 최근 맛집을 위한,혹은 가볼만한 거리에 대한 책들이 굉장히 많이 쏟아져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그 책 역시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가이드가 될 테지만,가볍게 걸으며 서울 구석구석을 혹은 전국 어디가 되였든 구석구석 역사를 따라 걸어 볼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딱딱하지 않게 역사 공부를 한 기분이랄까.

부디 걸어본다의 시리즈가 세계로도 좋지만 내 나라 구석구석의 장소를 통해 나올수 있길 바라본다.

w*******i 2014.07.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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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읽으니 더 좋은, 사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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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다. 산도 싫고 여행도 싫고 도시도 싫고 벌레도 싫은, 싫은 것이 오지게도 많은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중 하나, 바로 산책이다. 느릿느릿 달팽이 기어가는 속도로 걷다보면 성질 급한 나에게도 여유란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책, 용산의 거리를 걸은 산책기라 생각했다. 에세이니까, 부담없이 편하게 이 밤 보내는데 좋겠지, 하고 말이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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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다. 산도 싫고 여행도 싫고 도시도 싫고 벌레도 싫은, 싫은 것이 오지게도 많은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중 하나, 바로 산책이다. 느릿느릿 달팽이 기어가는 속도로 걷다보면 성질 급한 나에게도 여유란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책, 용산의 거리를 걸은 산책기라 생각했다. 에세이니까, 부담없이 편하게 이 밤 보내는데 좋겠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도 헷갈린다. 용산의 거리를 다녀온 건지, 저자의 머릿속을 다녀온 건지.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라는 제목은 정말 제대로 딱 들어맞는다. 그렇게 산문적인 곳이었던가. 내가 아는 용산의 키워드는 용산역, 국립중앙박물관, 홍등가, 전자상가. 이게 전부이다. 이태원까지 이르는 용산의 거리 속에 저자의 생각, 용산의 역사, 현재들이 모두 '현존'해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책이 아니었다. 세운전자상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곳을 찾는 가장 절박한 사람 중의 하나는 개인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복구하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짧지 않은 시간 어렵게 작업한 데이터나 소중한 기억들을 대신하는 파일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완벽한 무력감에 대하여.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또 알게 될지도 모른다. 기억의 하드디스크는 언젠가는 반드시 망가질 것이며, 누군가가 그것을 복원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몰락한 전자상가를 보며 참, 세월이 무상하구나 생각한 적은 있다. 컴퓨터 조립으로 호황을 누리던 때도 있었는데, 카메라 사려면 당연히 용산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옛말이구나, 싶어서 삶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느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컴퓨터 수리가 기억의 하드디스크까지 연결될 줄이야. 저자의 깊은 사색은 용산 곳곳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감탄을 자아낸다. 산책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지적이다. 길을 걷는 사색가, 정도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것까지 생각한다는 느낌은 단어에 대한 해석에서도 그러했다. 새 용산역 주변의 아이파크몰과 홍콩의 하버시티, 부산의 센텀시티를 연결지어 사색한 점이다. '시티'는 외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그의 표현에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저 답답하고 숨막힌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시티가 가진 속성- 모든 가능한 것이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바깥으로 가는 길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이었다. 저자는 단어가 갖는 본질을 꿰뚫어 용산의 곳곳을 파헤쳐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용산의 여행객이 되어 저자의 가이드를 받으며 이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것도 지나치게 산문적으로.


"여행객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장소의 스토리를 말해주기 전에는 그 장소의 의미를 알 수 없으며, 그 장소의 의미는 여행객의 시선 앞에 한없이 가벼워지거나 무화된다."



저자는 용산의 스토리를 말해주며, 용산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다. 용산이라는 곳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용산의 스토리를 알게 되고 그 의미를 느끼고 나니, 용산은 더이상 그저 그런, 춘천행 중앙선을 타는 환승역이 아니었다. 이질적이면서 키치적이고, 식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깝고도 먼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용산에 대한 감정이 생겨났다.


나에게는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 저자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기에는 용산에 대한 내 지식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럼에도 밤에 읽기에 참 좋았다. 산책은 밤에 하는게 아니지만, 사색은 밤이 제격이니까 말이다.





d****s 2014.07.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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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_용산_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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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산 산다.  삼각지 교차로 철길 옆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작년 용산에 이사와서의 첫 느낌은 묘한 혼돈이었다. 삼각지 역에서 삼각지 고가를 넘기 전, 마치 폐허와같은 장소를 만난 것도 그렇고, 고가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너무나도 멀끔하고 높은 건물 사이에 자리한 낮고 오래된 주택지. 대로는 멀끔하지만 약간만 돌아서면 그 멀끔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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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산 산다.  삼각지 교차로 철길 옆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작년 용산에 이사와서의 첫 느낌은 묘한 혼돈이었다. 삼각지 역에서 삼각지 고가를 넘기 전, 마치 폐허와같은 장소를 만난 것도 그렇고, 고가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너무나도 멀끔하고 높은 건물 사이에 자리한 낮고 오래된 주택지. 대로는 멀끔하지만 약간만 돌아서면 그 멀끔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장과 상가 그리고 주택지가 있고, 전자 상가까지 가는 길의 구석구석은 너무 달라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철길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진 장소는 더욱 묘한 느낌을 준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 부르기 싫은 전쟁기념관-왜 전쟁을 기념하는데!-과 국방부가 있고, 그 뒤에 딱 붙어있는 미군기지는 국립중앙박물관 뒷편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이태원과 한남동, 동부이촌동이 사이좋게 이어진다. 연결지어 이야기 할만하지만 그렇다고 딱 떨어져 맞다고 말하기도 모호한 동네. 그 동네가 용산이다. 그리고, 번듯한 용산역을 지나 용사의 집 쪽으로 걸어내려가다 보면 서울 같지 않은 장소와 사람이 지키지 않는 철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날, 맘 먹고 찾아간 효창공원 앞은 효창운동장이 떡하니 막고 있고, 기사 식당과 노인회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용산을 뭐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저자는 용산에 살며 용산의 이야기를 이 책에 지나치게 산문적으로 꼭꼭 씹어 글로 발라 놓았다. 직접 걸어보고 살펴본 것을 적어놓아 저자의 글을 읽는 동안 그 거리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이미 아는 길이지만 용산의 이야기를 읽고 다시한번 그 길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고 자주 돌아다니는 장소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난다는 것이 몹시 반갑다. 책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리단길과 해방촌을 연결하는 고가는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그 좁다란 계단은 무리하면 세명도 나란히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넓어졌고, 양쪽으로 엘리베이터도 설치 중이다. 이런 변화는 보행자의 입장에서는 반갑기도 하지만, 좁은 계단을 오르내릴때 양보를 해야하는 미덕이 그리워, 아쉽다.

 

책은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다. 이런 크기를 뭐라고 해야되나?  얇고 가벼워 용산 산책 하는 날 손에 들고 다녀도 무리가 없을 크기다. 책은 '지나치게 산문적'인지라 산문적인 문장을 잘 읽어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권할만하나, 딱 떨어지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좀 어려운 글 읽기가 될 수도 있다. 빌려 읽어 책 표지가 없으나, 책 표지 안쪽으로 지도가 있는 듯 하다. 책을 덮으며 어스럼 저녁에 작가 분께 동표 골뱅이에 가서 소주 한잔 하시자고 권하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 그리하여 빌려 읽고 읽는 내내 살까말까 고민하다 표지 지도도 궁금하고 이러저러하여 다 읽은 후에 장바구니에 담았다.

k******m 2014.08.25.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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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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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쓴 용산이라는 장소에 관한 산책의 흔적이다. 저자는 이 책이 '용산이라는 장소의 특정성에 글쓰는 산책자인 '나'는 익명의 실존이 돌아다는 흔적이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용산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용산이라는 모더니티의 참혹함과 혼종성에 이끌렸으며 나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지역이기 때문이다. ​ "용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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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쓴 용산이라는 장소에 관한 산책의 흔적이다. 저자는 이 책이 '용산이라는 장소의 특정성에 글쓰는 산책자인 '나'는 익명의 실존이 돌아다는 흔적이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용산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용산이라는 모더니티의 참혹함과 혼종성에 이끌렸으며 나날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지역이기 때문이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성하는 여러겹의 '식민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면,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의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영감을 주는 특별한 장소 같은 것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가보지 못한 장소와 지나친 장소, 차마 지나치지 못한 장소가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 우울과 설렘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그런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이 책에서 삼각지, 효창공원, 청파동, 용산전자상가, 용산역, 서부이촌동, 삼각지 화랑거리, 전쟁기념관, 녹사평역, 해방촌, 이태원, 후커 힐, 남산, 한남동,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남일당 터라는 용산의 장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용산역의 역사가 1906년 러일전쟁 직후의 경의선 출발역으로 역사를 세움으로서 본격화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개발 시대인 1974년에는 수도권 전철역이 만들어지고 1990년 서부 역사가 준공되었는데 이때 용산 역사는 70년대의 전형적인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2004년 민자 역사가 건설되고 이곳이 호남선,전라선,장항선의 고속철도의 출발역이 되면서 용산역은 새로운 위미를 갖게 되었으며, 새 역사는 거대한 복합 쇼핑몰이 둘러싼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화려한 아이파크몰을 뒤로 하고 더이상 떠날 수 없는 장소로 용산역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의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한국영화 <화차>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아 살던 여자는, 새로운 범죄를 위해 용산역에서 떠나려 하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 파국에 이르자 여자는 아이파크몰의 쇼핑몰을 가로질러 도망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철길 위로 몸을 던진다. 여자가 더이상 도망칠 수 없었던 마지막 자리를 용산역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절묘하다. 역이란 떠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젠 더이상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깨닫게 해주는 장소이다. 다른 생으로 옮겨 가는 것, 또 한번 이번 생의 시간을 바꾸는 것은, 때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저자가 이태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태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효종 때 이곳에 큰 배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리게 된 것이지만, 원래는 조선 시대 공무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여관이 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근대 초기에는 일본인 거주 전용 거주 지역이 조성되어 이타인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태원의 이방적인 성격은 미군 부대가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태원은 이 도시의 가장 다양한 인종의 전시장이다. 이런 장면들은 내국인들에게는 혼란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고, 내국인들의 평균적인 삶과 문화에 단절과 균열의 경험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 혼란과 균열의 경험은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것이었다.(...) 이곳에서 한국인은 주인도 아니며 어쩌면 내국인도 아니다. 거리로 나오면 외국인 특유의 몸냄새와 각종 향수 냄새와 이국적인 음식 냄새가 순식간에 뒤섞인다. 이곳이 모든 것을 뒤섞는 이방의 세계임을 직감한다. 국가의 안과 밖이 전도된 이 장소에서 한국인은 다만 여행객일 뿐이다. 한국인을 여행객으로 만드는 이 기이한 공간을 소비하려는 한국인들로 이곳은 언제나 넘쳐난다."

책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용산이라는 장소를 산책하며 사유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서울의 중심지인 용산의 다양한 장소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나니 용산의 구석구석을 산책하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s*****0 2014.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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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공간에 쌓여진 시간의 지층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공간에 쌓여진 시간의 지층" 내용보기
표지를 벗겨 펼치면 지도가 나타난다.벗겨내지 않았다면 그 안에 지도가 숨겨져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지도를 보고 반가웠던 이유는 80%이상 내가 걸어다닌 곳이고상당히 많이 걸어다녔던 곳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대부분 몰랐을 얘기들. 책을 읽다보면 표지를 벗겨 지도를 발견한 것처럼눈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지층이 하나씩 벗겨지고   그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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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벗겨 펼치면 지도가 나타난다.
벗겨내지 않았다면 그 안에 지도가 숨겨져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지도를 보고 반가웠던 이유는
80%이상 내가 걸어다닌 곳이고
상당히 많이 걸어다녔던 곳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대부분 몰랐을 얘기들.


책을 읽다보면 표지를 벗겨 지도를 발견한 것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지층이 하나씩 벗겨지고

 

그 내용은

 

지나치게 산문적인 용산의 모습.
그리고 한국의 모습.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다.

 


 

단절과 망각의 형식. 이곳은 또한 망각의 도시다.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리와 거리를 오가는 무감한 발걸음들은 알지 못한다. 효창공원과 이태원과 남일당에 이르기까지 장소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은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그 기억들을 지우기 위한 모든 가능한 일들이 벌어진다. 거리의 무기력한 풍경과 빌딩들의 부주의한 스카이라인과 작고 초라한 가게들과 골목 안의 오래된 그림자는 눈을 감았다 뜨면 마법처럼 달라진다. 거대한 담이 사라지거나 누추한 집들이 매끈한 콘크리트로 뒤덮이거나, 지우고 싶은 장소들은 텅 빈 공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기억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이 현기증나는 속도들. 시간은 절대 머뭇거리지 않으며 장소는 침묵하고 망각은 사람의 일이다. 그들의 기억이거나, 너의 기억이거나, 나의 기억이거나, 혹은 우리의 기억이거나, 살아 있다는 것은 기억이 남아 있거나 혹은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것. 기억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미지의 가능성이다. p 15

 

 

어떤 장소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곳의 시간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 너의 장소를 벗어난다 해도 너의 부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p89​

 

 

이 책을 읽으며 최대한 걸어다니려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 산책은

하나의 취미이고 내 생활의 숨구멍 같은 시간들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산책단은

 

세월호와 잊혀져 가고 있는 아픈 역사들
가깝게는 용산과 강정에서 멀게는 일제와 조선시대까지 나를 이리저리 끌고다녔다.

 

이 땅은,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잊고 있다 해도 잊지 못하고 있는 시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사람들로 붐비는 일이 많지 않은 이 역은, 거대하고 공허한 가설무대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평양의 지하철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전철역에서 사람을 기다려본 적이 있다면, 그 기다림의 비현실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이곳은 진짜인가?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진짜인가? p80 

 

 

아무리 빛이 들어오게 지었다 해도 이곳이 지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얼굴이 아무리 동안이라도 나이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용산의 변화는 수정액을 쓰는 것과 닮아있다.
수정액이 처음 나왔을 때 비싸지만 그것으로 지우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이제 틀렸을 때 흉한 모습으로 남겨놓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수정액으로 여기저기 지운 흔적은 원래의 종이와 역시 다른 색으로 눈에 들어온다.

역시 틀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마르지 않았을 때 그 위에 덧쓰면 더 흉측해져 다시 수정액을 칠하고
그러다보면 짜증이나고 더 흉측해진다.


용산이라는 곳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지 않은 수정액 위에 자꾸 무언가를 쓰고 수정액은 점점 불룩해진다.
공책을 넘겨도 밑에 깔린 그 부분 위에 무언가를 쓰게 된다면 느낄 수 있다.

수정액을 덧발라도 다음 페이지를 넘겨도...

 

  

창 하나 없는 무표정한 담은, 담 너머의 세계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신비감을 주었다..................높고 위압적인 담장 옆의 나무들은 여름이면 무거운 초록색으로 하늘을 덮었지만, 그토록 우울한 플라타너스를 본 적은 없다. 초록이 너무 무거워지면 가로등 불빛들은 한순간 난폭해진다. p74


 

 

2월의 저녁 무폅 남일당 터, 빠른 걸으으로 퇴근길을 재촉하거나 얼어붙은 바람이 불어오는 뒷골목의 술집과 밥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어보면, 정말 잔인한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시간은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버렸지만 누군가의 시간은 2009년 1월에 갇혀있다. 거리의 버려진 개들이 눈을 껌벅거리는 저녁, 죽은 나뭇잎들이 들이닥치는 버스 정거장에는 2009년의 잿빛 구름이 멎는다.

 

잘 지내느냐고 차마 묻지도 못할 것이다. '그날'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저 캄캄한 시간에 대해 한순간도 등을 돌리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왜 망루에 오르고 타워클레인에 올라가는가?...............망루에 오르는 것은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망루 위에서 맞이하는 시간이란 언제 아래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바람이 몰려오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결국은 혼자만의 망루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더 갈 데가 없는 시간이다. p144-145

 

얼마 전 '용감한 기자들'이란 TV프로그램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화가 나서 그들을 해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때로는 무심한 나의 행복한 웃음이 잔인함이 된다.

물론 우리들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망루에 오른 사람들을 잊을 때,

우리의 행복한 시간들도 망루로 밀려 올라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힘든 일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 잊지 못한다는 것이

반드시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v********p 2014.08.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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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좀 더 특별하게 걷는 방법 : 이광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용산을 좀 더 특별하게 걷는 방법 : 이광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내용보기
1.   용산에 대한 첫 기억은 이렇다. 서울에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본인조차 시골 쥐 신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시골 쥐 한 명이 이사 간 친구도 볼겸 서울 구경도 할겸 덜컥 서울로 올라왔더랬다. 시골 쥐였던 탓도 있겠고, 열여섯 살에게 서울이란 도시가 도통 감도 안 잡힌 탓도 있어서,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이태원이었다. 이태원을 구경 시켜 주자. 서울 하
"용산을 좀 더 특별하게 걷는 방법 : 이광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내용보기

 

1.

  용산에 대한 첫 기억은 이렇다. 서울에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본인조차 시골 쥐 신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시골 쥐 한 명이 이사 간 친구도 볼겸 서울 구경도 할겸 덜컥 서울로 올라왔더랬다. 시골 쥐였던 탓도 있겠고, 열여섯 살에게 서울이란 도시가 도통 감도 안 잡힌 탓도 있어서,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이태원이었다. 이태원을 구경 시켜 주자. 서울 하면 이태원 아니겠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아직 익숙치 않은 지하철을 타고 머나먼 이태원역까지 왔다. 아무 출구로나 무작정 올라갔더니 추적추적 내리는 비때문에 유난히 더 휘황해 보이는 간판 불빛들과 피부가 까맣고 기골이 장대한 한 무리의 미군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명의 시골 쥐들은 기가 팍 죽어, 기껏 한다는 것이 맥도널드로 몸을 피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었다. 열여섯 살, 시골 소녀들에게 이태원은 그런 기억으로 남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휘황한 간판 불빛과 기골이 장대한 미군들, 그리고 맥도널드 아이스크림. 그날 어쩐지 무서웠지. 그래, 비까지 내리고 말이야.

 

  이태원, 별 것도 없더구만 뭘. 두 사람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게이 배우가 운영하는 끝내 주게 맛있는 태국 요릿집이며 브런치 메뉴가 풍성한 카페 같은 데를 들락거리며 이태원을 예찬하게 된 것은 먼 훗날의 일.​ 이태원에 새겨진 시간들과 그 시간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였다. 조선시대 비구니들의 참혹한 역사부터 60년대의 유흥가 시절, 70년대의 쇼핑가 시절을 거쳐 80년대부터 관광 명소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까지, 이태원에는 무수한 사연들과 이야기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여행객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장소의 스토리를 말해주기 전에는 그 장소의 의미를 알 수 없으며, 그 장소의 의미는 여행객의 시선 앞에 한없이 가벼워지거나 무화된다. 이태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행객이 된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이 거리는 여행객의 거리다. (98-99)  

 

 

  2.

  용산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얼마 전, 문학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강연 장소가 마침 해방촌에 있었다. 녹사평 역에서 내려 마을 버스 2번으로 갈아 타고 해방촌오거리에서 내리는 코스. 매주 금요일이면 그렇게 해서 발터 벤야민 강연을 들으러 간다.

  우선은 녹사평 역 2번 출구.

 

 

 
 
산책로의 끝, 녹사평역은 '발명 테마역'이라는 생경한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역의 길고 가파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보면 이 공간이 거대한 전시장이나 세트처럼 보인다. (...)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사람들로 붐비는 일이 많지 않은 이 역은, 거대하고 공허한 가설무대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평양의 지하철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전철역에서 사람을 기다려본 적이 있다면, 그 기다림의 비현실성을 알게 될 것이다. (79-80)
 
  2번 출구로 나와 쭉 걷다 보면 이런 길목이 나온다. 신호등을 건너 2번 마을버스를 타야 해방촌오거리에 갈 수 있다. 신호등을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꺾으면 옹기 가게가 나타난다.
 
 
 

초입의 50여 년 된 옹기 가게는 이곳이 해방촌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것을 오랜 시간 알려주었다. 해방촌의 입구를 전통적인 항아리 가게가 지키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것은 이 지역 특유의 역설적인 유머라고 할 수 있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가 얘기를 나누며 앉아 있는 미용실과 미국식 햄버거 가게, 즐비한 부동산 중개소는 이곳의 현재를 말해준다. (83)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이런 표지판이 걸려 있다. 해방촌-예술과 일상이 하나되는 마을.
 
 
 
  3.
  강연을 들으러 해방촌을 찾았던 첫날.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너댓 명의 흑인 청년들이 버스에 올랐다. 그 중 한 명이 카드를 찍을 때 결정적으로 흘러나온 안내음, "액이 부족합니다."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청년은 그대로 빈 자리 쪽으로 가려고 했고, 50대 남성 특유의 꼬장꼬장함과 인색함이 인상에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던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으름장을 놓았다. "돈 안 내면 나도 안 가!" 몇 번이나 그 말이 반복되었다. 돈 안 내면 나도 안 가, 라고. 버스는 그대로 멈춰 섰다. 근처에 서 있던 한국인 남학생이 영어로 당신 카드에 잔액이 없다, 한국 돈으로 얼마를 내야 한다, 하고 청년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것 같았다. 잔돈이 있으면 대신 내주려고 허둥지둥 지갑을 꺼내 뒤적이고 있는데 뒷쪽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두 사람이 버스기사의 목청에 지지 않을 만큼 큰 소리를 내질렀다. "돈 없으면 내리라고 해!" "돈 없으면 내리라고 하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 정도로 적의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버스비를 대신 내줄 겨를도 없이 청년이 돈을 지불했고, 그제야 버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버스 요금은 850원. 버스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린 시간은 5분 남짓. 그것이 해방촌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었다. 그때의 그 서늘한 마음을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 유서 깊은 달동네는 단기 체류하는 젊은 외국인들과 제3세계로부터 온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들이 함께 거주해왔다. 한남동의 '장기 체류자들'과 비교한다면, 해방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단기 체류자들'은 이 동네가 오래 머물 수 없는 시간의 이름이었음을 말해준다. (82)  
 
 
 
 
  4.
  험악했던 첫인상과 달리, 아니, 어쩌면 그 험악한 첫인상까지 포함해서, 해방촌은 자유로워 보였다. 서울의 여느 지역과는 조금 다른, 낯선 공기가 그곳에 있었다. 자기 존재를 주장하는 특색이 또렷한 가게들과 이색적인 시도들이 눈에 띄는 곳. 가령 작은 공부 모임 같은 것, 또는 공동체를 향한 시도 같은 것. 고기 가게 이층에서, 미용실 옆집에서, 그런 움직임들이 꾸준히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예술과 일상이 하나되는 마을, 이라는 표지판이 이 시점에서 슬그머니 납득 된다. 이상주의자들과 온갖 종류의 예술가들, 낭만주의자들이 비싼 집세나 가게세를 피해 위로, 더 위로 올라와 조그만 공간을 확보하고 그 속에서 일상을 예술처럼 영위하기 위해, 예술을 일상처럼 영위하기 위해 뭔가를 도모해 보기 좋은 기묘한 분위기의 마을. 때로는 850원 때문에 버스가 멈춰 서기도 하고,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마음이 서늘해지겠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해방촌'이라는 느낌. 이 복작복작함.
 
 
 
  5.
  강연 장소 근처에서는, 남산타워, 그러니까 N서울타워가 아주 잘 보인다. 이렇게 가까이서 N서울타워가 보이다니 신기한 일이라고 혼자서 감탄했다.
 
 
해방촌의 바로 뒤쪽, 머리 위에 N서울타워가 있다. 가파른 계단으로 된 다세대주택들 사이로 N서울타워는 이 언덕의 주인처럼 서 있다. (86)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의 해방촌 거리. 이렇게 나의 산책은 끝난다. 다시 해방촌오거리로 걸어가서 2번 버스를 타고 녹사평 역에서 내리면 원점. 이로써, 그저 강연을 들으러 다녔던 해방촌은 '그냥 해방촌'에서 '그 해방촌'이 되었다. 녹사평 역의 휘황찬란함이 필연적으로 부각시키는 공허함, 해방촌 마을 입구의 50년 된 옹기집, 난민들과 젊은 외국인들과 제3세계로부터 온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해방촌에 새겨진 무수한 이야기들, 그 헤아릴 수 없는 기억의 파편들. 해방촌을, 용산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기억들이다.

이곳의 길은 150년 전부터 순결할 수 없었다. 순결할 수 없음이 다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길은 공중으로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역사적 과오처럼 땅에 누워 있다. 길을 구성하는 것은 신념이 아니라 뼈아픈 사실들이다. 한때의 적산가옥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의 남루한 골목길과 미군 부대의 높은 담들은 기억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 어쩌면 나는 이 순결할 수 없는 거리의 식민성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우울과 비애의 이유를 이 도시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곳은 차라리 매혹적인 곳이 되었다. 이 거리의 늙은 비애와 나의 비애는 같은 것이었을까? 어떤 비애는 지나치게 음악적이어서 리듬을 타고 왔다. (151)

 

 

  6.

  이제는 책을 덮고 걸을 시간.

y*****0 2014.07.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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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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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다.'  10page 이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왜 산문적인 거리라고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책을 읽은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공간이 갖는 역사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경기도나 인천에 살 때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외국에 여행을 다니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말에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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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다.'
 10page

 

이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왜 산문적인 거리라고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책을 읽은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공간이 갖는 역사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경기도나 인천에 살 때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외국에 여행을 다니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말에 주로 간 곳은 미술관이나 이태원 거리였다. 행사가 진행되는 곳이 있으면 여건이 되는 경우 아이들을 데리고 달려갔다.

 

그곳에서 여러 나라의 풍물이나 문화가 담긴 것들을 구경했다. 인형이나 장신구, 요란한 색깔의 옷들을 마음껏 눈요기하고 골목에 들어가 음식을 먹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곳에 가면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왠지 모르게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가 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거리를 거닐거나 물건을 파는 외국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 같다.

 

사실, 이태원은 그렇게 흥겹고 유쾌한 곳은 아니다. 이태원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결코 자유로운 곳도 아니다. 놀랄만큼 참혹했던 곳이다. 이태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효종 때 이곳에 큰 배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원래는 조선 시대 공무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여관이 있던 지역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이곳에서 왜군에 의한 치욕이 있었다고 한다. 왜군들이 운종사의 비구니들에게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정말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분노가 생기는 ,가슴 아픈 일이다. 또 대 초기에 일본인 전용 거주 지역이 조성되어 이타인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니 이 거리의 이방문화는 매우 일찍 시작된 것 같다.

 

또 이 책을 읽으며 남산에 대한 추억이 생각났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방학이 되면 할머니와 함께 경기도 성남에 사는 작은 아빠 집에 기차를 타고 갔다. 작은 엄마는 나와 할머니를 데리고 식물원, 동물원, 남산 등을 데리고 다녔다. 남산의 높은 곳에 올라가 망원경처럼 생긴 것으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렇다. 남산은 나에게 서울이었고 나를 배려한 작은 엄마를 떠오르게 한다.

 

o*********3 2019.06.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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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가 되어 용산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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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가 되어 용산을 돌아보다.    김탁환 작가의 소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제목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꾸 잃어만간다. 점점 더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몇 십년 전, 몇 백년 전의 발자취를 더듬는 노력없이 우리는 깨고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며 도시를 깃는 것 같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내다 볼 수 없음을 한탄하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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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가 되어 용산을 돌아보다.
 
 김탁환 작가의 소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제목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꾸 잃어만간다. 점점 더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몇 십년 전, 몇 백년 전의 발자취를 더듬는 노력없이 우리는 깨고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며 도시를 깃는 것 같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내다 볼 수 없음을 한탄하기도 하는데 어느 한 산책자가 서울의 많은 지역 중 한 곳을 돌아보며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들춰보고 그곳을 돌아보며 기록한 책이 바로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다. 서울의 많은 지역 중 그가 택한 곳은 바로 '용산'이다.
 
종로에 갈 때면 어김없이 지나치는 곳이 바로 '용산'이다. 용산은 나에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나 종착지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간이역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거나 버스를 타고 차창밖에 보이는 풍경을 스쳐지나가는 정도의공간이었다. 현재는 아무런 대척점이 없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 아빠손에 이끌려 간 곳이 '용산 전자상가'였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워크맨'을 손에 넣었던 기억이 난다. 용산 전자상가에 가기 위해 아빠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간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어 혼잡한 곳이었고, 거리에는 유흥가, 식당가들이 많아 아빠 손을 꼬옥 붙잡아야 했다. 많은 언니들이? 의자에 앉거나 거리에 서서 호객 행위를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남는다.
 
그 후 시간은 다시 거슬러 고등학교 때로 흘러간다.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수 많은 영화를 봤지만 용산 CGV가 생기면서 아지트가 용산으로 바뀌어 일주일에 몇 번씩 친구들과 함께 조조영화를 보러가며 용산에 발을 디뎠던 것 같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이제는 갈 이유가 없어 그냥 지나는 곳이 되었다. 어쩌면 다시 갈 일이 생기겠지만 용산에 대한 특색이 두드러지게 느껴지지 않았던 나에게 이광호 문학 비평가의 글은 '용산'이 보인 색깔 중에 가장 작은 색채만 느꼈을 뿐 과거의 시간에 있어 이 곳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와 같았다.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 p.10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먼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려는 당위와 노력에 비해 가까운 과거인 근대의 기억들은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민족 이야기'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 이런 자발적인 망각을 낳게 햇을 것이나, 서울 중심부의 거대한 땅에 아직도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은 그 망각의 이유가 동시대적인 요인을 갖고 있을 짐작하게 한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산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p.11
 
참혹한 기억이 생생해서 아침햇살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황홀했던 시간의 세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이 문득 두려워질 것이다. 기억은 나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너의 미래로 흘러간다. - p.15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뭉툭뭉툭 튀어나오는 '지나치게' 산문적인 모습에 흠칫했고, 선명하고 반짝이는 광택이 돋는 풍경이 아닌 세피아 느낌의 사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시 읽고, 또 읽고나니 저자의 글귀가 눈에 들어오고,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그가 말했듯이 친절한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소설도, 수필도 아닌 한 명의 산책자가 용산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느낌이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도시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도시가 지나왔던 시간을 돌이켜 보건대 시간이 흘러도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시간 속에서 용산은 낯설지 않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공간은 내 기억 속의 이전이었고 그 시간 속에 도시 계획은 이루어져 지금까지 구획이 나뉘어 저마다의 색깔을 갖는다. 효창공원, 청파동, 후커힐, 남일당 터에 대한 이야기는 내 기억 속에는 없었던 일이었지만 그가 언급한 이 곳의 유래와 시간의 망각은 생채기가 날만큼 가슴이 아팠다. 도시마다 저변적으로 발전에 발전을 이룩하고 있지만 그가 콕 찝은 '용산'의 모습은 너무나 쉽게 망각을 하는 우리의 현주소가 그대로 그려진 지도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릇 용산 뿐만 아닐 것이다. 저자의 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회한과 용산의 뒷골목 풍경은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깨운다. 누군가 잊혀지는 것은 영원히 시간 속에 수장되어 암연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돌아봐준다면 그 시간의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 게 아닐까. 저자의 발걸음처럼 세밀하고 통찰력있는 그의 글은 용산이라는 공간의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발걸음을 통해 좋은 공기, 좋은 풍경을 마주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처럼 글을 통해 산책하는 기쁨 또한 즐거운 일이다. 이번엔 눈걸음으로 그의 발걸음을 쫓았지만 다음엔 꼭 진짜 산책을 통해 '용산'을 둘러보고 싶다.
l****9 2014.08.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