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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MAUS)>를 보고 읽고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지만, 그 끔찍하고 비참한 역사를 온전히 마주하기란 나이가 들어도 여간 어렵지 않다.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끝까지 보지 못하기 일쑤고, 그나마 마흔이 지나 책으로 읽어낸 것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이자 로고테라피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의 자서전 『빅터 프랭클』과 『죽음의 수용소에서』, 커트 보니것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SF소설 『제5도살장』 정도다. 그러다가 또 다른 매체인 만화책, 정확히는 그래픽노블로서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만 접했던 <쥐(MAUS)>를 북클러버들과 8월의 선정작으로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저자 아트 슈피겔만이 홀로코스트를 직접 겪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을 인터뷰하여 그의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으로 형식과 내용면에서 여러 흥미로운 점들이 눈에 띈다. 먼저 영상, 텍스트로는 자칫 지나치거나 부족할 수 있는 서사를 만화가 가진 특징으로 잘 표현한 점이다. 유대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미국인은 개 등과 같이 등장인물들을 나라마다 다른 동물의 얼굴로 그려낸다. 고양이에 의해 강제로 생지옥을 겪게 되는 생쥐, 그 모습에 각기 다른 공감과 반감을 느끼는 돼지와 개를 보면서, 동물의 얼굴이 아니라 사람의 그것이었다면 그림체가 더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오히려 어린이를 비롯하여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전체적인 이야기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쥐가 고양이나 돼지 가면을 쓴 모습에서 쥐가 다른 동물인 척하는 이유를 저마다 짐작하게 만든다거나, 나아가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한 무리로 엮어낸 것처럼 읽혀져 특정 사건을 넘어 유사하고 다양한 상황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또한 긴박한 장면은 그림과 대사를 빽빽하게 배치하여 조여오는 나치의 탄압처럼 숨이 막힐 정도로 채우거나, 은신처로 만든 비밀 벙커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다음으로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뤄진 ‘극적 갈등’이다. 하나는 블라덱과 나치 치하의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블라덱과 저자의 현재이다. 즉 전자가 서로 다른 국가와 민족간의 충돌이라면, 후자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다른 세대 사이의 대립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함께 놀던 친구들이 자신을 남겨두고 달아났다며 속상해하는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애들을 방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 놓으면……그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10쪽) <쥐>의 포문을 여는 이 한마디는 책을 관통할 만큼 의미심장하다. 이 말을 포함하여 살아오면서 수차례 삶과 죽음을 오갔던 아버지의 언행이 극한 고통의 후유증인지 개인의 성격 탓인지 분간할 수 없을뿐더러, 그 같은 경험이 전혀 없는 아들이 아버지라는 인간을 오롯이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아버지의 위인적 기질만 드러내는 게 아니라 본인이 나치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당했음에도 흑인에게 차별적 언행을 보이는 이중성까지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소시민이자 개인으로서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 본성의 다양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과연 역사는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으로) 반복되는 것인가, 혹은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진일보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방향성도 없이) 그저 흐르는 것에 지나지 않은가에 대하여 북클러버들마다의 생각 - 문명(기술)은 발전(진보)하지만 역사는 답보하거나 퇴보하는 듯하다, 반대로 과거보다 현재가 그래도 나아지고 있지 않느냐, 이도 저도 모르겠으나 여하튼 진일보하길 바란다 - 을 나눴던 시간도 기억에 남는다. 인류의 구성원이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거대한 역사의 법칙을 헤아리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 내 삶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생활, 곧 어제의 후회스러운 일들을 되돌아보고 오늘의 할 일들을 하나씩 바로 세워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듯하다.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피하기보다는 똑바로 마주함으로써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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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삶과 죽음이 소중함을 깨달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법이다. 일반적인 전쟁도 그럴진대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태인이었다면, 그 삶은 어땠을까. 더군다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왔다면. 밤마다 악몽을 꿔 소리 지르며 자식의 잠을 깨웠다는 것. 다른 부모도 똑같이 그런 줄 알았다는 것을 집을 떠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서 그가 가진 트라우마를 엿보게 된다. 직접 나치를 겪지 않은 저자도 그 부모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왜 쥐인가. 유태인을 고양이 앞의 쥐로, 독일의 나치는 고양이로 그렸다. 폴란드인은 돼지로 그려 인간의 세상이 동물의 세계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관한 역사를 알아왔지만, 이 만화는 더 직접적인 것들을 나타낸다. 저자의 아버지가 겪은 홀로코스트의 증언을 육성으로 듣는 거 같았다.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지 않은 아트 슈피겔만은 유태인 학살에 관한 것을 그리기로 하고 아버지가 겪은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와 처음 만났던 시절로부터 행복했던 시간과 유태인 학살을 시작한 시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듣고자 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새어머니 말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나치의 학살 이후로 뭐든 고물을 주워 집안을 채우며 한 푼의 돈도 아끼는 것. 아우슈비츠를 겪은 아버지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전쟁에서 친구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유태인을 숨겨주어야 할 때는 자기의 목숨까지도 위험한 법. 약간의 돈을 받고 유태인을 숨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엔 그들이 꼭 돈을 받아야 하나 의문도 들었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길가에 내몰려 나치에게 발각될지도 모른다. 전쟁 상황에 안전한 곳은 없다. 그나마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에게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쟁 중에도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돈으로 바꿔 그걸로 먹을 것을 사고 숨을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돈이나 자기가 가진 기술로 책임자의 환심을 사 가족과 연락할 수 있었고, 힘든 일에서 빠질 수 있었으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블라덱은 사업 수완이 좋은 만큼 살아가는 수완도 좋았다.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을 그동안 잊었던 거 같다. 만화가 가진 장점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거다. 흑백의 그림, 뭉툭한 글씨체, 동물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홀로코스트는 어쩐지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듯했다. 우리가 겪지 않았으나 가슴 아픈 그 시절로 우리를 데려갔다. 쥐와 고양이, 돼지 등 동물들이 나오는 그림은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인 듯도 했다. 그랬기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은 유럽을 초토화시켰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이념이나 자국의 이익 때문에 전쟁 중이다.
전쟁이 가진 참혹함을 나타내는 것 중 하나가 홀로코스트가 아닐까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동물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종종 있었다. 인종이 다르다고 같은 인간을 학살하는 경우는 역사 속에서 존재해왔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간의 존엄성 부재는 늘 존재해왔다.
홀로코스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이 책으로 읽어도 역사 공부가 될 듯하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법이다. 어떤 매체로든 역사는 늘 공부해야 하고 또 읽어야 한다. 만화는 접근성이 좋다. 그런 만큼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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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고 숙연해졌네요 ㅠㅠ,, 만화지만 많은 생각을 들게 한 작품입니다. 독일 나치에 관련된 도서로 정말 추천합니다. 많은 생각들이 오갔던 책이네요 ... 쥐와 고양이로 관계성을 표현한 부분도 인상 깊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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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의 『쥐The Complete Maus(권희섭, 권희종 옮김/아름드리미디어)』는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장편 만화로 부제는 “한 생존자의 이야기”다. 작가의 부모님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책은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전적 이야기와 부모님의 생존담을 전한다. 작가는 유태인을 쥐로, 다른 등장인물들도 동물로 묘사한다. 잡지에 연재되던 『쥐 1』이 1986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데 8년이 걸렸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991년에 『쥐 2』가 출간된다. 합본판은 발간 20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나오게 된다. 슈피겔만은 창작 예술가이자 만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영상 예술 학교에서 “만화사”를 강의한다.(p.314) 또한 그는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예술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끌어올린 ‘그래픽 노블’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쥐』는 1992년 만화책으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 부록(p.246)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쥐』는 만화를 하나의 정점에 달하게 했고, 새 지평을 열도록 문을 열어주었다는 극찬을 받아 마땅한 자타가 공인하는 걸작이다.”
아들 아티는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과 어머니 아냐의 삶, 그들이 겪었던 전쟁에 대해 쓰고 싶어한다. 부자 관계는 소원한 편이었지만 그는 아버지 얘기를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쥐는 아버지의 회상 속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결혼 후 행복했던 시간은 잠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징병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어머니, 어렸던 형과 헤어져 입대하게 된다. 전쟁 포로가 된 블라덱이 내뱉는 “난 죽지 않을 거야. 여기 있지도 않겠어! 난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구!”(p.60)라는 말은 그를 지탱하는 주요 동기다. 블라덱의 고객이자 재단사였던 일체키씨에게 우연히 도움을 받고 목숨을 구하지만 도움을 준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다행히 그들의 아들은 살지만 블라덱의 큰아들, 아타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형 리슈는 살아남지 못한다. 죽음은 자기 그림자처럼 가까웠고 예측가능성이란 없는 시간이다. “독일놈들에게 유태인 소수를 넘겨주면 나머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태인 경찰, 독일인이 아닌 유태인 경찰에게 아냐의 조부모님은 이끌려 희생당한다. 또한 작가는 단 두 지면을 할애해 스타디움 선별작업 당시 딸을 위해 담을 넘고 죽음의 편에 기꺼이 섰던 블란덱의 아버지를 그린다. 오래전부터 되풀이 들어왔던 이야기의 실재를 보여준다.
책 속의 책 “지옥 혹성의 죄수-하나의 일화”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어떻게 서서히 삶을 망가뜨렸는지, 고통의 대물림을 압축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는 장면 회상으로 1부가 끝날 때 아티는 아버지가 어머니 아냐의 노트를 태워버렸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너무 많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브란덱의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 했던 무수한 선택의 연장선에 있다. “나는 항상 아꼈지···만약을 위해 말이다!”(p.69)에서도 생존 본능이 그의 성격으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전쟁 이후 현재를 갉아먹는 불화의 단초가 된다. 2부에서는 『쥐1』이 성공해 조명 받던 당시 작가의 심정도 드러난다. “제가 바라는 건···사면입니다. 아니···아니에요···제가 원하는 건···제 어머니라구요.”(p.206), “인생은 늘 산 사람편이죠. 그래서 무슨 이유인지 희생자들은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최선의 인간은 아니었듯이 죽은 사람들도 최선은 아니었죠. 무작위였으니까요!”(p.209)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명징하다. 브란덱과 아냐의 행적은 전쟁 종식과 이후 재회로 계속된다.
흑백의 빽빽한 그림, 진하고 거친 질감이 “한 생존자의 이야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더 심연으로 끌어내릴것 같았다. 가슴 아프고 잔혹한 장면은 속수무책으로 독자를 괴롭히지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아타는 책 속에서 현실이 만화로 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며 누락과 왜곡을 고민한다. 아타의 아내는 “그냥 솔직하게만 그려요.”(p.180)라고 답하는데 『쥐』는 이를 충실히 따른다. 책은 감정이 개입될 여지 없이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의인화와 상징은 독자를 좀더 가까이 초청하고 어느새 숨을 죽이며 실제 일어났던 전장, 숨죽여야 했던 날카로운 공간에 함께 세운다. 『쥐』는 후반에 실린 작품해설까지도 또 하나의 작품 역할을 한다. “소호에 있는 천정이 높은 아트 슈피겔만의 저택 다락에는 한쪽 벽 전체가 전쟁 전의 폴란드와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책자로 가득 쌓여 있다”(p.314)는 설명으로 짐작할수 있듯 여러 곳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림 칸의 배열과 시점의 변화를 반영한 원근법 적용 등 다양한 시도는 알고 읽으면 더 감탄을 부른다.
형식적으로 최초의 그래픽노블로 획을 그었다면 내용적으로, 주제에 있어 반드시 쓰여져야 할 이야기다. 일정한 시기에 갇힐 수 없으며 계속 반복해서 다루어져야 할 아픔이다. 이 책의 빼어난 점은 과거와 현재,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전쟁과 전쟁 이후, 상처와 치유가능성 등 대응하는 두 개 축이 이루는 균형에 있다. 아버지 블라덱의 과거 회상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페이지를 정독하게 하는 일과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세대 갈등, 부자간 감정의 마찰과 애틋함은 또다른 결로 생생하게 닿는다. 놀랍게도 유머까지 만나게된다. 읽고 나면 먹먹함에 질문을 던지게 되는 지점, 안타까운 면면들이 여전히 남는다. 정답이 없을지언정 충분히 묻고 숙고하고 경청할 때마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은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이기심이 촉발한 참혹한 전쟁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쥐』는 결코 과거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읽어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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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설치류의 대표격. 중학생때 학교 도서실에서 이 책을 처음 봤는데, 표지든 내용이든 강렬한 인상이었다. 사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동물로 표현된다. 줄거리도 작가의 아버지가 2차 대전때 겪은 홀로코스트 피해자이다. 유대인은 쥐, 독일인은 호랑이 스타일의 줄무늬, 폴란드인 은 돼지, 미국인은 개(보통 백인이니 흰개, 흑인은 검은개) 다른국가 사람들도 나오지만 간략히 이 정도.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개 방식은 작가가 아버지 자택에 찾아 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감상하다 보면 유대인들 이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어떤 공포에 시다렸는지 알수 있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가 생각난다. 또 전쟁이 끝나고 해방 직후의 이야기도 있는데, 트라우마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도 생생히 들려준다. 대표적 예가 주인공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 (본명 브와디스와프) 전쟁이 사람을 망쳐놓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처럼 그래픽노블의 고전격 ‘쥐’는 2차 세계 대전때 겪은 고통과 생활방식을 다루고, 블라덱의 개인적인 일화에서 새로운 차별을 하는 모순적인 행동도 다루었다. 보다보면 왜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전쟁 은 얼마나 참혹하고 인간이 가장 밑바닥까지 꺼질 수 있는지 알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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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들이 만화로 그려낸 작품이다. 만화라고 가볍게 읽기에는 내용이 무거우니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야할까 [쥐]는 저자 아트 슈피겔만과 아버지 블라덱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주인공들은 모두 쥐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치는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의 얼굴로 그려진다. 억압구조의 상징으로 쥐와 고양이는 아주 훌륭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동물 캐릭터 라는 것 이외에도 이 책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들과는 차별화가 느껴진다. 아버지 블라덱의 생존 이야기 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도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극한 상황을 맞을때마다 운좋게(저자의 표현이다) 살아남은 블라덱은 돈은 물론이고 휴지 한 장 마저 아끼는 사람이다. 구입한 식품을 반이나 먹고도 막무가내로 우겨서 환불 하기도 한다. 이런 아버지를 만날때마다 충돌하는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 모색을 위해 정신과 의사를 찾아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이 현실컷(?)은 아버지의 과거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나치에 의해 쫓기는 듯한 긴장감을 완화시키는데 한 몫 한다. 나치로부터 쫓기며 이어지는 벙커생활과, 목숨구걸은 반드시 돈이 지불되어야 하는 신념은 배신으로 이어지며, 슈피겔만 부부는 결국 수용소에 가게된다. 존엄성이 말살된 수용소에서는 또 어떻게 살아남아야 했을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부모는 밤마다 악몽을 꾸고 소리지르며 아들의 잠을 깨운다. 다른 집 부모들도 모두 그런 줄 알았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가슴아프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스무살 되던 해 자살을 선택한다. 수용소에서의 기억은 남아있는 삶에, 그리고 한 가정에 짙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대학살에서 엄청난 확률로 살아남았는데 자살이라니.... 생각되겠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 중 자살을 택한 사람은 의외로 많다. 홀로코스트가 그저 과거의 역사 일뿐일까?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는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는 마음, 그런 혐오와 편견은 전쟁과 학살을 낳는다. 이런 일들은 2022년인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생존자가 겪은 참상들과 이어지는 자살. 또는 생존자이기때문에 더욱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의지. 그들의 자녀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사실적으로 전달되는 책이다. 다시금 역사와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쥐는 1992년 만화책으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쥐 #한생존자의이야기 #아트슈피겔만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 #역사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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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 아트 슈피겔만/권희섭, 권희종/아름다리미디어/2014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수난사에 대해서라면 나름 영화, 다큐멘터리, 소설 등을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였습니다. 케테 콜비치의 판화를 연상시킬 만큼 어딘가 거칠고 강력한 그림에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대사들 하나하나가 놓칠 것이 없을 만큼 밀도가 있었죠. 전체적인 내용은 크게 두 줄기로 하나는 아들인 아티가 아버지 블라덱과 어머니 아냐가 나치 정권 하에서 폴란드에서 (이후에는 독일로 끌려가기까지 해서) 겪은 끔직한 나날들에 내한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삶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 엄청난 구두쇠가 된데다가 편집증으로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아버지와 세대 차이 수준이 아니라 세대 격리를 절감하는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재의 일들이죠. 이 아버지의 생존기는 그야말로 어떻게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것 같았던 허약한 어머니가 남편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희망을 품고 살아낸 생존기 역시 대단합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외삼촌의 갑작스런 교통 사고사로 인해 우울해 하시다 자살하셨다고. 두 부자의 괴리 뿐 아니라 어머니의 자살 이후 아버지가 재혼한 말라와의 이야기 역시 대단히 실감나는 대사와 그림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듭니다. 끔찍한 시대를 담아내면서도 동물인 쥐, 고양이, 돼지 등으로 바꾸어 표현하여 볼 때 약간 덜 괴로울 수 있었으며, 멋진 대사들로 한편의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이름 그대로 art. 어쩌면 만화가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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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 작가의 < 풀 > 이 한국 그래픽 노블 사상 최초로 ' 하비상 최우수 국제 도서 ' 부문을 수상했다. '하비상 ' 은 미국의 만화가이자 편집자인 하비 커츠먼의 이름에서 따온 상으로 ' 만화계의 오스카상 ' 으로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저 있다. 김금숙 작가의 < 풀 > 우리에게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작가는 이 작품이 세계 모든 곳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길 바라고 이옥선 할머니와 피해자 할머님들이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세상에 알린 그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가볍게 즐기기 위해 보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만화가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이와 같은 작품을 더 읽어 보고 싶어서 고른 책이 바로 아트 슈피겔만의 < 쥐 > 라는 작품이다. < 쥐 > 는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한 폴란드 유대인의 이야기다. 1948년에 태어난 그의 아들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이 겪은 참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만화로 그려냈고, 만화책으로 유일하게 1992년 퓰리처 상을 수상했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내용이 내용이니 만큼 읽고 나니 마음이 먹먹했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인간의 그 잔인함에 치가 떨릴 정도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 인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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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처음 보았을까. 이 만화를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초등학생 때였을 것 같은데, 나치의 상징과 함께 쥐로 표현된 사람들의 모습이 꽤나 우울하게 다가 왔었던 느낌이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그림체도 아니고, 글도 무거웠기에 읽었던 기억은 없다. 그저 무서웠던 그림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데에는 기억의 역할도 있었겠지만,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큰 몫을 했을 것 같다.
전쟁을 경험한 국가에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교육 환경이 많이 변화되었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수업 시간에 토론을 했었던것 같다. 분단의 아픔을 겪던 국가들 중 이제 우리나라만 남았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뭐 이런 주제로 발표를 했었던것 같은데, 그때는 어딘지도 모르는 베를린 이라는 곳, 독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저 전쟁과 분단 상황에 대한 같은 경험을 간직했었다는 느낌밖에는 말이다.
대학교 때 처음 해외에 나갔었다. 그저 배낭여행을 간다는 들뜬 마음이었을 뿐,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 관심을 가지고 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독일의 여러 도시들에 머물렀다. 그저 박물관이나 성당을 보았을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에서 보았던 성당과 미술관, 박물관들일 뿐이었다. 베를린도 가보았고, 장벽이 있던 자리도 보았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때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안내 책자에서 보고 한번 가볼까 했던 곳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왜 그렇게 모든게 그냥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 것일까. 이 책도 그래서 선택을 했나 보다. 어릴 때의 기억과 함께 전쟁에 대한 무서움 말이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다. TV나 매체에서 보여지는 전쟁은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파괴하는 행동들 앞에서, 그런 일들이 지구의 한 켠에서 일어나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 하루를 지내는 모습 속에서 나를 생각해 본다. 어릴때도 지금도 나는 그저 그렇게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고 있구나, 무서웠다.
이 책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아버지의 실제 경험담을 아들이 그림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무섭도록 사실적인 이야기는 경험에서 오는 현실감일 것이다. 또한 아들과 아버지의 갈등. 세대가 다르고 경험이 다른 부모와 자식 간의 차이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것 같다. 전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짐이 다만 전쟁이라는 상황으로만 회피할 수 있는 것인지, 돌아보며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을 읽으면 항상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는데?' 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한다. 같은 질문을 책장을 덮으며 다시 해 보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관심을 늘려가기만 하면 되는가. 나라도 인류애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무서운 질문이다. 답은 언제 어떻게 구해질지 모르겠다. 그래서 읽어 나가고 있는 것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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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을 처음 접했던 것은 거진 15년도 전의 고등학생 시절 학교의 도서실에서 였습니다. 그 당시 상, 하권으로 나뉘어진 구버전을 읽었었는데, 그때 느꼈던 충격과 공포를 잊지 못하고 다시금 생각이 나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차별을 아주 잘 드러낸, 그러면서도 적나라한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