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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멸망 직전의 조선을 구했는가[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누가 멸망 직전의 조선을 구했는가[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내용보기
지금으로부터 거의 오백 년 전, 왜가 자신의 영역과 분수에 만족하지 않고 바다를 건어 이 강산을 침노해 왔을 때, 우리의 실력과 군비(軍備)는 지극히 유감스럽게도 도저히 그들을 상대할 수준이 못 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단합을 못 하고, 위정자는 무능과 부패, 향락에 맛들여 국가 기강의 문란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백성은 생업에 힘 써 봐야 남는 게 없을 정도로 가혹한 수
"누가 멸망 직전의 조선을 구했는가[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내용보기

지금으로부터 거의 오백 년 전, 왜가 자신의 영역과 분수에 만족하지 않고 바다를 건어 이 강산을 침노해 왔을 때, 우리의 실력과 군비(軍備)는 지극히 유감스럽게도 도저히 그들을 상대할 수준이 못 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단합을 못 하고, 위정자는 무능과 부패, 향락에 맛들여 국가 기강의 문란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백성은 생업에 힘 써 봐야 남는 게 없을 정도로 가혹한 수탈에 시달렸으니, 이는 상당 수의 국민이 전사와 생산자를 겸하는 준 병농일치의 왜국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게다가 왜는, 교활하고 능란한 수완으로 갓 열도를 통일한 풍신수길이라는 통치자의 손에 정비되어, 신생국 특유의 욱일승천 기세로 도통 두려움을 모르는 기세이기까지 했죠.

안팎으로 공히 감당 못할 압력이 들어오니, 통분하여 피를 토할 지경이지만 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멸망의 운명을 면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우리 조상들의 사정이라고 하지만, 무능하고 어리석었으며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그리 바르지 못했던 체제였기에, 그저 외부인의 객관적 시야라면 사망 선고에 주저함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명재상 류성룡이 남긴 거의 모든 기록과, 한중일 3국의 연구 결과를 꼼꼼하게도 검토하신 저자 송 복 (전 연세대 교수) 선생의 제법 방대한 양의 저술이며, 이런 참담한 느낌과 결론은 독자로서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 밀도 높고 진지한 저술이 원의 그대로 품고 있는 내용에 가깝습니다. 류성룡 뿐 아니라 이후 시대 내내 조선에서는 "재조지은"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 자체가 다른 경우에도 흔히 쓰는 표현이 아닙니다. 망해서 형체가 없어질 뻔한 걸 다시[再] 만들어주었다[造]는, 아주 극단적인 색채를 담은 어구죠.

임진왜란이 국망의 위기였다는 건 누구나 동의합니다. 그러나 평화롭게 잘 살던 나라에 갑자기 오랑캐들이 쳐들어왔고, 해전에서 병력의 절대 열세를 딛고 용기와 천재적 전술로 무장했던 충무공께서 나라를 구한 줄로만 정리할 뿐입니다. 우리의 역사인데도 정작 이 정도로 무지했었구나 하는 아찔한 느낌을, 이 알찬 책을 읽고 다지게 된 점에 지금 감사하고 있을 만큼, 책은 명재상 류성룡의 우국 충절과 현명한 통찰로 가득했으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정리하여 어리석은 독자를 매 페이지에서 준열히 꾸짖고 깨우치는 저자의 열정과 해박한 지식에도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임란은 1592년에 발발했습니다. 동래진에 상륙한 왜는, 말 그대로 파죽지세로 조선 반도를 휩쓸었습니다. 지키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빠른 진군 속도였고, 산세가 험하다는 조선 지형에 대한 상식이 과연 맞는지 의문스러울 만큼 거칠 것이 없는 침략군의 위세였습니다. 죽어나는 건 백성들입니다. 애써 지은 농사를 모두 망치고 가진 건 약탈당했으며, 부녀자는 능욕당하고 애꿎은 장정들은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문제는, 나라를 지켜 줘야 할 나라님은 아무 생각과 방비가 없이 제 일신을 보전할 궁리만 했고, 긴 칼과 날랜 동작에 신무기 조총까지 갖춘 왜군을, 정면 상대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허약한 무력이 문제였습니다.

우리 힘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평소에 극진한 예로 사대(事大)해 오던 명국에 도움을 청할 밖에요. 그런데 외교라는 게 본디 내정보다도 까다로운 사무이지만, 도와 주겠답시고 온 명국 군대와 그 우두머리들이 하는 짓이란 침략군보다 더 지독하고 가혹합니다.

저자는 조선 영의정 류성룡의 시점을 빌려, 현대인의 객관적 시야로 재구성한 국제 정세를 냉정히 분석 서술하고 있습니다. 명은 왜 조선을 방치하지 않고, 파탄지경의 자체 재정에 극심한 무리를 줘 가며 원군을 보냈을까?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조선을 잃으면, 막강한 무력을 지닌 왜와 바로 국경을 접하게 됩니다. 압록강을 건너면 요동이고, 요동이 위태로우면 그 다음은 바로 북경이 넘보입니다. 왜 우환을 지근거리에 키우겠습니까? 어차피 침략 의도를 숨기지 않는 잠재적 적이라면, 남의 마당에서 싸우는 편이 낫습니다.

왜 명군은 벽제관 전투 이후, 전혀 전의를 보이지 않고 숙영에 머물렀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맞서 싸워 보니,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명 측의 문서를 인용하여, 왜를 명 조정이 "부러워했던" 이유를 조목조목 대기까지 합니다. 물산이 풍요롭고, 애써 짓지 않아도 천혜로 누릴 수 있는 요새가 있으며, 군사력이 실로 막강하다, 이 정도입니다. 항목의 수가 문제가 아니라, 세 가지 아티클이 모두 승전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만큼 중요한 것들이네요. 풍요로운 물산은 전쟁 수행의 요체인 보급과 직결됩니다. 열도 면적의 40여 배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는 명 제국이, 좁은 왜의 풍요를 부러워한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첫째, (이 책에도 잘 나와 있듯) 부정부패가 극심했던 명 조정은, 그 넘쳐 나는 생산물의 세수를 국고에 갈무리하지 못 하고, 탐관오리나 토호의 수중에 가로챔을 당했습니다. 이러니 국방상 긴요한 필요가 있는 이런 상황에 닥쳐서도, 군대를 자유로이 놀릴 경비를 마련하기가 오히려 어려웠던 거죠. 세상에, 그 광대한 대륙의 좁디좁은 섬나라의 경제를 부러워한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다음으로, 유능한 경영인이었던 풍신수길의 지도 하에 척척 손발이 맞아 돌아갔던 당대 왜국의 행정 능력도 간과해서 안 될 일입니다. 이 책에도 잠시 이름이 언급되는 이시다 미츠나리 같은, 능력 위주의 등용 풍토에서 한참 성가를 높이던 유능한 관료의 활약도 대단했죠.

무엇보다, 세기 단위로 재어야 할 전국시대의 와중에 단련되고 단련된 무사와 일반 병(兵)의 전투력이, 동아시아 최고의 수준을 자랑했기에, 조선 아니라 그 어느 대국의 군대, 우리가 천병(天兵)이라 불렀던 명국군도 그 대적을 버거워했습니다. 북경에서 강화의 지침이 내려오자, 명군 진영이 환호로 가득했다는 게 바로 이를 증명합니다.

왜는 처음부터 우리 국토를 유린하기 위해 전쟁을 열었고, 명은 자체 방위를 위해 군대를 보냈을 뿐이니, 이제 서로의 속셈과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두 맹수는 어떤 선택을 취하겠습니까? 바로 강화이며, 그 다음 단계는 조선의 분할입니다. 명은 요동과 중원의 안위만 도모하면 그만이지, 속국(가슴 아프지만 현실이었죠)의 복수니 보호니  하는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제 코가 석 자인데 누굴 돕겠습니까? 왜와 적당히 타협을 보아, 기존의 자기 세력권을 상하게만 하지 않으면 소기의 목적 달성입니다. 저자의 생각일 뿐인지는 모르지만, 책의 서술에 의하면 "명의 고위 인사들도 이미 황혼을 맞은 제국은 괜한 무리를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과연 이로부터 불과 반 세기도 안 되어 주씨의 황실이 무너질 운명임을 그들도 어렴풋하게나마 감 잡고 있었을까요?

이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보십시오.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입니다. 나라가 다시 만들어졌다(물론 체질이 조금도 개선되지 못했습니다만)는 역사는 우리가 배워서 압니다. 그런데, 왜 주어(혹은 주제어)가 류성룡일까요? 바로 여기서부터 저자의 집필 의도가 본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우리와는 파워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명, 왜 두 세력이, 자측의 현상 유지를 위해 탸협을 결정했다면, 이미 그 운명은 결정이 난 것입니다. 저자 송 전 교수의 말씀처럼, 영토 분할이 되거나, 모르긴 해도 한쪽의 세력권으로 완전히 넘어가서, 우리는 지금 "제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정체성과 삶을 지니고 영위하는 신세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그렇게 흫러가지 않고, 망했어야 자연스러웠을 나라는 용케 제 모습을 (초라하게나마) 유지한 채, 이후 일제가 탈아입구를 외치며 다시 현해탄을 건너올 무렵까지 버텨 왔습니다. 이게 어찌된 곡절이었을까요?

저자는, 서애 류성룡의 빛나는 지성, 성실함, 관료로서 갖춘 행동력, 상황 판단 능력, 그리고 "여기가 고비다" 싶으면 상황을 살피지 않고 몸으로라도 막고 보는 용기(그는 노년에 접어든 데다 그리 강건한 신체 조건도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로지 종묘 사직을 돌보고 백성을 살피는 간곡한 마음을 지적합니다. 심유경이가 기패(旗牌)를 들고 왜군의 진영으로 향할 때, 서애는 그에 예를 표하기를 거부합니다. 이런 불경은 속국의 군주, 번왕이라고 해도 죽음으로 치죄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명 제독 이여송은 대노하지만, 이미 수 차례의 접촉을 통해 그의 기품과 인격, 기량을 잘 알았기에 함부로 대하질 못합니다. 서애는 이미 명 조정과, "하급 관리에 지나지 않는" 이 제독의 속내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강화는 우리 조선의 이해에만 어긋나는 게 아닙니다. 이는 천조에의 위협입니다. 경기 이남의 백성들이 결국 왜에 의탁하게 되면, 이는 과연 장차 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당장 갈 곳을 잃어버린 조선의 군사 장졸들이, 나중에 왜와 손잡고 중원을 노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수백 년 간 명을 잘 삼겨 온 조선의 원수는, 곧 대국의 우환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찌 그들에게 발호의 온상을 제공하려 하십니까?"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노재상의 도도한 변설(이 표현은 책 원문과는 다르게 제가 재구성한 것입니다)에 이여송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화는 곧 교활한 왜의 수작에 놀아나는 첫걸음이란 지적은 명 조정에도 흘러들어가고, 이에 전선은 고착되어 소위 사자(使者)라는 이들이 자신의 정부와 임금을 속이며 소득없는 지루한 협상을 빌미로 수 년의 세월이 지나갑니다. 마치 한국전 당시 리지웨이와 펑떠화이의 대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대목에 걸쳐, "왜, 이 시점에서 왜군은 진군하지 않았던가. 왜, 명-왜 양측은 그 시점에서 과감한 강화를 단행하여 실리를 조기에 거두고 물러나지 않았던가."의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마련한 자체 대답은, "그저 수수께끼이며, 하늘의 도움이라는 말밖에 할 것이 없다."입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어디 우연과 공짜가 개입하겠습니까? 책의 제목이 말해줍니다. 임금도 신하고 백성도 정신을 놓고 있던 시점에, 오로지 하늘에서 내려 준 현명한 노재상의 슬기가 밤을 대낮처럼 환히 밝혀, 우군 아닌 점령군, 피도 눈물도 없는 적군까지 감복하게 하여 무단한 행동을 주저하게 하였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저의 결론은 이것이고요.

v*****7 2014.06.2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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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역사
"아는 만큼 보이는 역사" 내용보기
영화 「명량」을 보지 않았다. 안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아마 못 본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수준 낮은 국수주의·애국주의에 대한 염증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히. 순전히 딸아이 때문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그만 생명체는 하루 종일(24시간 내내는 아니다. 물론) 우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냈다.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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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을 보지 않았다. 안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아마 못 본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수준 낮은 국수주의·애국주의에 대한 염증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히. 순전히 딸아이 때문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그만 생명체는 하루 종일(24시간 내내는 아니다. 물론) 우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냈다.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화 「파이란」을 본 후 최민식씨의 팬이 되었다. 이후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모조리 봤다. 「올드보이」같은 영화는 열 번은 넘게 본 것 같다. 그런데 「명량」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아기가 울고, 아내가 혼자 고생을 해도 최민식씨에 대한 팬심을 버리지 않고 「명량」을 보려고도 생각 했지만! 나는 가정을 생각했다.

임진왜란을 생각하면 이순신이 전부다. 그가 거둔 눈부신 해전의 승리들. 무능하고 유약한 조선 최악의 임금 선조, 이순신에 대한 질투와 시기에 눈이 멀어버린 원균 등이 전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이고 바다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육지와 선조 곁에는 류성룡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류성룡은 그 유명한 저작 「징비록」보다 배우 류시원의 시조라는 것으로 더 유명해 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여왕의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배우 류시원이었다. 남자들에게는 손톱만큼의 인기도 없었던 류시원이었기에 뉴스나 언론에서 띄우는 것만큼 회자되지는 않았다. 그냥 류시원이 가문도 좋구만. 좋겠네. 정도?

 

 

“임진왜란 7년 동안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과 문이가 549건이나 된다니, 그것부터 기록적이다. 이것만 해도 4-5일에 한 건씩 임금에게 보고했다는 것이 된다.” (p.16)

 

조선왕조의 역사를 임진왜란 전·후로 나누는 역사가가 많다. 조선 역사 이래로 수많은 전쟁과 전란이 있었지만 임진왜란은 그만큼 치욕적이고 치명적이었다. 7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이순신이다. 망하기 직전인 조선을 지킨 용맹하고 충성스러우며 대단한 장군이었던 이순신. 그의 충무 정신과 희생정신은 조선 왕조가 가졌던 내재적 무능을 약화시키는 단점이 있다. 어쨌든 이순신의 대단한 해전의 승전보로 호남을 지키고 조선과 왕조를 지킬 수 있었다. 대단한 승전보를 여러 번 올렸음에도 명의 눈치를 보느라 영웅을 하옥하고 고문하고 참수하기 직전까지 간다.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고 몇 명의 영웅에 의해 간신히 지켜낸 왕조는 바로 뒤이은 정유재란을 불러 일으켰다.

류성룡은 치열하게 임진왜란을 살았던 인물이다. 왕인 선조를 제외하고 조선의 가장 큰 실력자였던 류성룡은 조선 땅에 들어온 명과 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라의 재상이 7년의 전쟁을 좌우 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류성룡에 대한 극찬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저자보다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거나 역사적 자료·사료를 찾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의구심만 가질 뿐이다. 의구심이 있다 하더라도 류성룡이 임진왜란 내내 임금에게 올린 상소와 명과 왜를 오가며 행한 외교적 노력은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전쟁 7년 동안 올린 상소문이 5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그 숫자 자체도 놀랍고 성실하지만 그 내용의 참혹함과 좌절을 이 책을 통해 읽게 되면서 류성룡이라는 한 인간이 겪었을 고통이 조금이나마 전해져 나까지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오늘의 나라 형세는 마치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방치해둔 만간대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크게는 대들보에서 작게는 서까래에 이르기까지 썩지 않는 것이 없어, 근근이 날만 넘기며 지탱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동쪽을 수리하면 서쪽이 따라 기울고, 남쪽을 뜯어 고치면 북쪽이 휘어 넘어져서 어떤 장인도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p.30)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이 한마디가 바로 군량전쟁의 요약이며,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요약이다.” (p.113)

 

오늘의 나라 형세에서 ‘오늘’을 임진왜란 때가 아니라 ‘2015년 오늘’로 바꿔 읽어도 무리가 없는 문장이다.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아무튼 그런 시절이었다. 걸출한 인물 몇을 빼고는 임금이 믿고 일을 맡길 있는 신하가 없었다. 그래서 류성룡이 몇 개의 관직을 겸하기도 했다. 썩지 않은 것이 없어 근근이 날만 지탱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나라의 형국이었다. 국가시스템 전체가 비정상으로 근근이 하루를 버티고 있는 상황. 낯설지 않다. 군대도 제대로 훈련하지 못하고 모을 수 있는 숫자 자체도 소수였다. 군대를 유지할 군량도 확보할 수 없었다.

왜의 침략으로 명에 구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특히 임금이 팽개친 전시상황을 책임져야 할 류성룡에게 있어 군량의 확보는 생존의 문제였다. 전시였고 백성의 민심은 이미 임금과 조정에서 떠난 지 오래였다. 군량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때였다. 하지만 당장 왜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명을 불러 들어야 했다. 그런 명군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최대한 군량을 긁어모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류성룡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상소를 올리고 싶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왜와 명에겐 ‘조선분할전쟁’이었다. 조선 영토를 반으로 갈라 명에 할지하려 했고, 명은 조선의 영토라도 사수해 왜로부터 명을 지키는 울타리로 삼으려 했다.” (p.257)

“류성룡은 왜에 대해서는 조·명 연합군을 만들어 싸움을 돋우고 공격해서 명·왜 간의 강화 기반을 깼고, 명에 대해서는 분할이든 역치든 그 어느 것도 시도하거나 감행할 수 없도록 최대한 외교전을 펼쳤다.” (p.258)

 

명의 원조로 생각보다 쉽게 조선 반도를 차지하지 못한 왜, 대륙의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도 숨이 차고 쌓일 대로 쌓인 재정난을 타개하기에도 힘이 부족했던 명. 명과 왜는 조선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왜와 명에게 ‘조선분할’은 매력적인 해결책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지루한 전쟁을 지속하면서 계속 서로 피해를 입는 것보다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원했다. 물론, 그것에 ‘조선’은 없었다. 얼마나 당시 명과 왜가 조선과 조선의 임금, 조정을 우습게 봤는지 단정할 수 있는 증거다. 저자의 중요 논리가 그것이다. 400년이 지난 지금의 형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 각자의 이해와 논리가 부딪히는 곳이 여전히 한반도다. 최소한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의 외교적 노력과 능력만으로 명과 왜의 ‘조선분할’야욕을 막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류성룡 1인의 전적인 능력 때문이라는 논리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책의 내용 만으로만 보면 임진왜란을 막은 이는 류성룡과 이순신이다.

지금도 류성룡과 같은 능력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류성룡 같은? 인물? 불가능하다.

 

 

“자강파에는 류성룡과 이순신, 그리고 의병들이 있었고, 의명파에는 선조를 필두로 한 대다수 신하들이 속해 있었다.” (p.13)

 

임진왜란 이후 명(크게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 심각해 졌다고 한다. 명이 실제로 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진 후에도 청나라를 무시하고 명의 잔존세력을 추종하는 정신 나간 조선의 대신들이 많았다. 힘을 길러 자주적으로 외세와 맞서자는 자강파의 논리는 의명파들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코미디였을 것이다. 명나라를 아버지로 모시고 살면 편하고 언제든지 우리를 도와줄 텐데, 구태여 왜 명을 떠나려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그 구차하고 태만한 의존성이 일본의 식민 침탈을 낳았다. 저자의 논리도 그렇다.

 

 

“불가합니다. 임금께서 우리 땅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떠나신다면, 그때부터 조선은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p.49)

“이 술로 경과 영결한다. 내일 나는 곧바로 사신 앞에 왕위를 내놓는다. 오직 그것만이 내가 할 일이다.”

“원컨대 성상께서는 결코 뜻을 요동하지 마십시오. 내일 사신 앞에서 절대로 양위한다는 말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신이 감히 죽기를 각오하고 청하옵니다.” (p.278)

 

류성룡이라는 걸출한 재상을 가지기에 선조는 너무 무능하고 멍청한 임금이었다. 의명파가 대다수인 신하들 탓인지, 타고난 무능과 유약함 탓인지 임진왜란 초기 왜의 강력한 공세에 피난을 가다 가다 국경에까지 이르렀다. 왜가 좀 더 치고 올라온다면 명나라로 망명할 것이라고 했다. 임금이 말이다. ‘서울은 안전하니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시라.’고 하고선 대전으로 부리나케 도망갔던 대통령이 생각난다. 오랜 기간 지속된 전쟁과 안정되지 않는 왕권이 지겨웠던지 선조는 자주 왕위를 내놓으려 했다. 명의 압박도 있었다.

의명파인 신하들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임금이 명나라로 도망가면 오케이! 나도 같이 가면 된다! 이었을 테고, 임금이 왕위를 내놓는다 해도 그들의 안위가 크게 흔들릴 염려는 없었다. 어차피 조선의 임금이 아니라 명의 황제를 받들던 그들이니까.

류성룡은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간언한다.

결국 류성룡도 긴 전쟁 후 다른 신하들에 의해 관직을 박탈당한다. 전쟁 중에는 나 죽었소. 하며 바짝 엎드려 살던 놈들이 전쟁이 끝나자 이제 내가 뭐 해먹을 거 없나. 하고 기어 나와 눈엣가시 류성룡부터 손 본 것이다.

 

 

“류성룡의 전 생애를 돌아보면 백성에 관한 한 ‘강제’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백성들에게 관이 갖는 위압이나 위세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을 발견할 수 없다.” (p.104)

 

이 책은 재미있다. 흔히 ‘임진왜란’ 이라고 하면 알고 있거나 봤거나 배웠던 것들이 떠오르기 마련인 데, 그런 것들과는 다른 측면에서 임진왜란과 조선을 볼 수 있었다. 앞서 몇 번 언급했지만 저자의 류성룡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사는 좀 지나치다 싶다. 임진왜란 당시 농업경제는 참담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도 벅찬 백성들이었을 것이다. 류성룡은 전쟁 중 재상으로 군량에 대한 모든 정책을 다뤘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이었지만 조선 전 국토를 탈탈 털어 군량을 채웠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백성에 대한 ‘강제’가 없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류성룡이 처음 명령을 내릴 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고려해서 양반들이나 중인들의 쌀만 거두어 오라.”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있든 없든 다 걷어오라.”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명령이 처음 내려진 높은 곳에서부터 당장 민가에 찾아가 쌀을 걷어와야 하는 하급 관리에 이르게 될 때,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뻔 한 것 아닌가? 그것도 전시 상황에 말이다.

 

이런 문장이 없었다면 인간 류성룡에 대한 재평가에 더 큰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l****h 2015.02.05.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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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시각으로 본 임진왜란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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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시각으로 본 임진왜란의 본질 “임진왜란” 평화롭기만 하던 조선의 역사에서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당한 사건으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조선의 국왕은 나라를 구할 방도를 강구하기보다는 명나라로 몽진을 가기에 바쁘고 왜군과 대적할 조선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에 처한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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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시각으로 본 임진왜란의 본질

“임진왜란” 평화롭기만 하던 조선의 역사에서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당한 사건으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조선의 국왕은 나라를 구할 방도를 강구하기보다는 명나라로 몽진을 가기에 바쁘고 왜군과 대적할 조선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에 처한다. 나라를 지킬 방도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조선은 위기를 넘겼을가? 우리는 막연히 알고 있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임진왜란”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이순신이다. 우리가 아는 이순신은 뛰어난 장수로 보잘 것 없는 조선 수군으로 왜군의 발을 묶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에 머무는 정도다. 그렇다면 정읍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을 발굴하여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여 커다란 역할을 하게 만든 사람이 류성룡이다. “임진왜란”에서 이 두 사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유독 류성룡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율곡 이이와 비교해도 이해정도는 훨씬 뒤떨어진다.

 

이 책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는 류성룡의 징비록을 바탕으로 임진왜란에 대해 심도 깊은 탐구를 진행한다. 그동안 간과했던 다양한 부분에서 임진왜란의 원인과 진행과정 그리고 명과 왜의 전쟁에 대한 입장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명과 왜의 전쟁에서 전장을 제공한 꼴이 되어버린 조선의 사정을 어떻게 살피는 가에 따라 전쟁의 성격과 향후 전망을 하는데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밝히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임진왜란”하면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과 맞물려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이와 십만양병설은 서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 차츰 힘을 얻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조목조목 따지며 이이와 십만양병설이 관계없음을 밝힌다.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방치해둔 만간대하(萬間大廈)로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그런 형국이었다.” 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당시를 진단하는 이이의 판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산은 전쟁에 대처할만한 여력도 능력도 없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류성룡은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재수 받아 어려운 임진왜란 동안 임무를 수행하다 탄핵을 받아 물러난 후 징비록을 지었다. 징비(懲毖)는 전에 있었던 잘못과 비리를 경계하여 삼간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조선이 풀어가야 할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본다.

 

저자는 류성룡을 조선조 500년을 대표할 정치리더로 보고 있다. "공론은 국가의 기강입니다. 대신으로서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공론을 받고도 돌아봄이 없이 평일처럼 태연히 앉아 국사를 본다면 조정이 어떻게 될 수 있겠습니까" 임진왜란 중 탄핵을 받고 류성룡이 올린 사직 상소문의 일부다. 공직을 맡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처신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말이다. 공론은 국가 기강이다. 어떤 국가든 국가가 제대로 되려면 기강이 서야하고 기강이 서려면 공론을 따라야 한다. 공론이 자신의 파직을 원하고 주장한다면 마땅히 따라야 한다. 그것이 공직자의 의무다. 설혹, 공론이 오도됐다고 생각되어도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 그 권리는 공직에서 물러났을 때 주어진다고 하면서 류성룡의 기본적 삶의 자세와 태도를 이야기 한다.

 

임진왜란에 대해 이렇게 실속있는 분석을 한 책을 만나지 못했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국내 사정을 정치적 시각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까지 면밀히 분석하여 당시 실상황과 임진왜란의 성격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 류성룡이라는 인물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더불어 이 책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라고 하지만 가정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봄으로써 현재를 올바로 살아갈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정치가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국민의 안위를 살피는 정치가는 사라졌다. 권력욕심에 눈이 뒤집힌 정치인들, 400년 전이나 오늘이나 어쩜 이리도 같을까? 이 책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m*****8 2014.06.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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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송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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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징비록을 보고 이 책을 바탕으로한 다른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최근 신문에 이 책을 추천한 기사를 발견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휴가특집으로 명사들이 릴레이식으로 휴가때 읽어보면 좋은 책을 추천하는 기사인 모양이다.CEO의 고민, 징비록서 답을 얻었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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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징비록을 보고 이 책을 바탕으로한 다른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최근 신문에 이 책을 추천한 기사를 발견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휴가특집으로 명사들이 릴레이식으로 휴가때 읽어보면 좋은 책을 추천하는 기사인 모양이다.

CEO의 고민, 징비록서 답을 얻었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11/2015071100713.html


그런데 이 책을 추천한다는 기사를 읽어보니 좀 이상했다.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일까. 징비록 저술의 취지 자체는 류성룡이 책 제목처럼 스스로를 징계함으로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 그 시대와 연관된 다른 정보들을 결합하여 얼마나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는지를, 선조가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위정자들이 얼마나 속좁은 사람들이었는지를 더욱 사실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징비록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힘을 하나로 합쳐도 모자랄 판에 어처구니 없는 행태들에 속이 터질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구원병으로 들어온 명나라군과 장수의 행적들이나 명나라만 바라보며 명나라로 넘어가려는걸 류성룡이 말리고, 선조는 한번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이기지도 못했던 명나라 장수를 용서해달라며 사신까지 보냈으면서도 이순신이나 권율장군의 승리는 인정은 커녕 명나라 군대를 따라다니면서 패잔병들의 수급이나 겨우 몇개 건진 것으로 폄하하질 않나 이순신의 경우 간계에 속아 죽기 직전까지 몰아간 사건을 보면서는(그냥 모함에 빠져 감금되었다가 백의종군 명령을 받은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국문 한차례 후 죽이려다가 노신 정탁의 적극적인 변호 때문에 겨우 목숨을 건졌던 것이었다.) 정말 정내미가 떨어졌다.


이순신에 비해 류성룡은 상대적으로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사람인것 같은데 최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조명받고 있어 나같은 사람도 더욱 잘 알게 되었으니 늦었지만 참 다행스러운 일로 보인다. 류성룡 개인의 시각에서 임진왜란의 전중후를 사건중심으로 정리한 징비록만을 읽는 것보다는 이 책처럼 징비록의 주요 내용을 여러 가지 사료를 바탕으로 이해의 깊이를 더 해줄 수 있는 보조자료를 한권 같이 읽어나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것 같다. 남의 나라에 원군으로 들어와 자기의 안위와 공만을 챙기기 위한 명나라 군사와 장군은 백번양보해 그렇다치고 임진왜란 내내 전국을 돌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류성룡을 탄핵했다는 이이첨, 윤홍, 유숙, 홍봉선, 최희남, 정인홍, 남이공 등은 정말 두고두고 한심한 신하들이라고 기억해두어야 할듯. 전장에서 공을 세운 이순신도 대단하지만 이제보니 그 뒤에서 수많은 역할을 대신했던 류성룡을 더 인정해야 한다고, 굳이 따지자면 그가 더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만든 책이었다.

b******o 2015.07.2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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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서평]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내용보기
나는 역사에 대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우리 조상님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그들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잘 알지못한다. 하지만 가끔 드라마나 소설책을 통해서, 그리고 이렇게 역사에 관한 도서들을 접하다보면 엮이고 엮어서 대충 ~ 줄기가 잡히고 그 가지들도 보일때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조선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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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에 대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우리 조상님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그들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잘 알지못한다.

하지만 가끔 드라마나 소설책을 통해서, 그리고 이렇게 역사에 관한 도서들을 접하다보면 엮이고 엮어서 대충 ~ 줄기가 잡히고 그 가지들도 보일때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조선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으며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아마도 상세히 담은 책은 다른곳에 가서 찾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기에 등장하는 류성룡, 이 인물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빈곤한 조선, 왜 빈곤했는가? 그것은 이 나라에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기가 막히게 딱 맞는 해답이다.

역시 역대 역사속에 등장하는 큰 인물들 주변에는 인재들이 넘쳤다. 성공이라는 두 글자와 평행을 이루려면 리더할수 있는 능력자와 그 우두머리를 도우며 지키고 보필하는 인재들이 필요한것이다.

조선에는 그런 인재들이 부족했었던 것일까? 아니면 부정부패로 썩어문들어져 사리사욕으로 탐관오리들로 들끓어서 빈곤해진 탓일까? 우리는 매 순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에 서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여 먼 훗날 내 후손들이 이 순간을 들여다볼때 떳떳하고 부끄럼이 없는 조상으로 기억되고 기록되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더욱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역사속에 인물들은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만남을 이루어진게 아니라는 것, 우리들의 눈에는 평범해보일지라도 그것마저도 역사속에서는 운명적 만남, 숙명으로 기록된다는것, 걸출한 정치인도 아니고 강직한 정치인도 아니었던 류성룡, 그는 이순신과 4살 차이나는 그들의 만남은 시대적으로 볼때 "위대한 만남"이 되었다.

온유하고 부드러움은 횡포한 명군 장수들을 꺾었다.

부드러움이 굳은 것을 제압하는 유능제강의 리더였다.

그는 최고의 권좌에 있으면서도 권력을 이념화하지도 가치화하지도 않았다. 대신 실용화하였다.

정치 리더로서는 권력의 의지가 아주 약했다. 자꾸 물러나려고만 했던 그의 모습이 결함으로 기록되고 있다.

책속의 내용을 읽다보면 당시 조선의 참혹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제대로 준비된 병마마저 없었고 병기마저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군량마저도 부족한 조선의 암흑함....  읽어갈 수록 왜 이리 암담한지, 답답함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자그마한 땅 덩어리 위에서는 매일같이 전쟁이 일어나고 터지고 죽고 어렵고 힘들게 이 땅이 지켜졌다는 것에 탄복할 노릇이다.

그 악조건속에서도 오늘의 이 땅이 지켜졌다니 놀라움 그 자체가 역사에 기록될만큼 후세에 길이 전할만큼 단순히 말 한두마디로 정리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침략군에 맞설 힘이 없엇던 나라, 자신의 땅을 전쟁마당으로 내줄 수 밖에 없었던 나라, 왜와 명의 싸움에 제 나라 백성이 죽고 제나라 가축과 곡식이 강탈당하는데도 도망가기 바쁜 왕과 신하들,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한 장수와 무기조차 없는 병졸들,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조차도 안되는 당시의 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율곡의 상소문이 지금도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려면 벽이 무너지니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이 상소문을 읽다보면 당시의 조선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동시대인에게는 징계의 채찍, 후손에게는 경계의 교훈으로 오늘날 우리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해주고자 하는지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조상들의 선혈로써 지켜진 이 땅, 우리는 그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이 땅을 지켜야 할 것이다.

q**********6 2014.06.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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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류성룡, 그가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을 것이다.
"[서평] 류성룡, 그가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을 것이다." 내용보기
류성룡, 그가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명량>이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최민식, 류승룡 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해서 네트즌들 사이에서 관심이 매우 뜨거운 것 같은데, 오는 7월말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명량>, 많이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여러 대첩 가운데서도 단연코 위대한 승리로 꼽히는 전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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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그가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명량>이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최민식, 류승룡 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해서 네트즌들 사이에서 관심이 매우 뜨거운 것 같은데, 오는 7월말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명량>, 많이 들어본 단어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여러 대첩 가운데서도 단연코 위대한 승리로 꼽히는 전투가 벌어졌던 곳인데, 이곳 명량에서 있었던 해전은 이순신이 기존에 왜군들과 치루었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성격의 전쟁이었다.

명량해전은 이론상으로는 절대로 싸워서는 안되는 상대가 되지 않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의 이순신의 아군이 왜적을 상대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그런 전쟁이었다.

 

12척의 조선수군 vs 330척의 왜군들

 

1597년 임진왜란 6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삭탈관직 되었다가 다시 백의종군 후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된 이순신,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과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330척에 달하는 왜적의 전선들이 이순신의 숨통을 점점 조여오자, 이순신은 치밀한 전략을 세워 적들을 명량으로 끌어들여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마침내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게 되는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의 중심에 선 이순신.

그가 역사의 무대로 등장해서 이와 같은 업적과 공을 세우게 된 데에는 모두 이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서애 유성룡이다.

서애 유성룡, 굉장히 반듯하고 고결한 선비로 기억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발발 당시 그의 현명한 판단력과 뛰어난 결단력, 탁월한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이순신 장군도 없었을 것이고, 조선의 안위와 운명은 어찌 되었을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귀선(거북선)을 건조하여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고, 나아가 풍전등화의 조선이 멸망하지 않고 7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성룡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 수습과 나라 재건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몸을 아끼지 않았고 또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임진왜란의 참상을 기록으로까지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하는데, 그 기록의 산물이 바로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된 <징비록>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 뛰어난 리더쉽과 자강 정신을 보여준 유성룡을 다시 기억하면서 그와 같은 리더가 다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여진 책이다.

 

물은 흘러야 한다. 흐르지 않고 위 아래가 막혀 고여 있게 되면 썩기 때문이다. 이는 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쳐들어 올 때 조선은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선조 임금은 창과 칼, 조총으로 무장 한 왜군들을 한갓 시를 지어 대응하려 하였으니, 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무능하며 안위한 태도인가?

 

일본의 침략으로 비롯된 두 번의 난(亂),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역사에서 지울 수도, 씻을 수도 없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이 전쟁은 순전히 조정 내 군신들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전쟁이었다. 충분한 준비와, 대비만 갖추어졌더라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다. 부산에 상륙한 왜적이 한 달이 채 못 되어 한양까지 진격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7년 전쟁으로 조선의 전 국토와 강산(江山)은 온통 핏빛과 백성들의 시체들로 넘쳐났으며, 조정 또한 유명무실했다. 임금은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나기에 급급했으며, 분노한 백성들은 하늘처럼 여기던 임금이 사는 궁궐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그 와중에 한 외로운 신하는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온갖 위험과 굳은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서애 유성룡이다.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였다. 임금의 안위와 피난, 명나라의 원병 요청, 평양과 서울 수복, 명장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과 임용, 군사력을 강화하는 일 등등 전쟁의 와중에 큰 공을 세워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밀려나 그 뒤에는 오직 글쓰기에만 몰두 하게 된다. 서애는 벼슬에서 물러난 다음,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임무를 맡으면서 자신의 두 눈으로 본 전란의 참상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데, <징비록>은 바로 전쟁 당시 참담한 상황에 대한 기록의 산물이다. 이 책은 바로 임진왜란과 그 전쟁의 참상 그리고 유성룡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쉽게 풀어쓴 책이다. 지금 현재 유성룡과 같은 인물이 우리 대한민국에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d*****h 2014.06.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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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이라는 분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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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이라는 이름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없었다. 책의 제목을 보노라면, 역사속 한 사람임에 분명한데, 나라를 거론할 정도라고 보면 큰 인물임에 분명할진데, 왜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스쳐지나간 이름인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임진왜란 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있었는가 하면 육지에서는 류성룡이라는 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이순신장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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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이라는 이름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없었다. 책의 제목을 보노라면, 역사속 한 사람임에 분명한데, 나라를 거론할 정도라고 보면 큰 인물임에 분명할진데, 왜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스쳐지나간 이름인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임진왜란 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있었는가 하면 육지에서는 류성룡이라는 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이순신장군에 비해 왜 이 사람은 잘 알지 못했던 것일까? 학교 다닐때 한국사 시간에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던 인물인걸까.. 이제는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그가 누구였던 간에, 이 책은 그의 리더십과 자강정신에 대해 대단한 극찬을 한 책이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 류성룡과 같은 리더십이 있는 인물이 없음을 비판하는 책이라고 말하면 될 것 같다. 그는 임진왜란 기간동안 약5년간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그 기간 그의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이 549개였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되는 문장은 이순신이 한산대첩을 거두자 류성룡이 무릎을 치며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그의 활동들은 두드러졌음에도 왜 나는 류성룡이라는 분에 대해 알지 몰랐던 것일까? 묻혀져 있던 인물이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을때 인재의 수가 적기도 하였지만, 신하들은 오직 현실을 비판만 했을 뿐 방법론을 제시하는 인재가 한명도 없었다. 오직 류성룡뿐. 그 유명한 율곡이이도 비판뿐이었다. 임금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고, 그래서 현실은 이렇게 이정도로 심각합니다. 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나라의 힘은 인재였으나, 선조때 인재들은 너무나 부족했었다. 류성룡이 짊어진 일은 너무도 무거운 것들이었으나, 그는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 나라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런 인물을 우리는 어째서 이리 생소하게 여겼던 것일까? 그에 관한 책이 좀 더 많이 발간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이 책의 한가지 더 놀라웠던 점은 저자 송복 작가의 연세가 70을 넘긴 나이시라는 것이었다. 류성룡이라는 한 인물에 대해 많은 것들을 찾아보시고 하셨을 건데, 그 연세에 이루어내신 이 책 한권이 참으로 빛나보였다.

 

 

율곡이 말한 대로 조선이란 나라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의 가장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상소문 <만언봉사>에서 지적한 대로, 조선은 날로 심하게 썩어 하루가 다르게 붕괴되어가는 한 채의 큰 집이었다.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어느 대목도 손을 댈 수 없는 집이라고 했다. 그러나 율곡도 하루가 다르게 썩어 내려앉는 그 집을 고치는 방법을 내놓지 못했다. 조선조 여느 학자들처럼 비판은 그지없이 날카로운데, 방법론이 없었다. 실체를 아는데 응용을 몰랐던 셈이다. 그의 대표적 건의 중의 하나가 군사 수를 줄이라는 것이었다. (p.12)

 

정말 무망한 조정이고, 무망한 신하들이었다. 거기에 백성들은 모두 희망을 잃고 산다. 정부는 있는데 기능이 없고, 벼슬아치는 있는데 역할이 없다. 아니, 기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 안 되는 역기능만 있었다. 역할 또한 없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 모두를 죽이는 오도된 역할만 있었다. 그러니 백성은 모두 지치고 굶주려서 힘이 다할 수밖에 없다. 그 백성이 제 나라를 제 나라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p.146)

 

기패와 관련해서, 류성룡은 목숨을 걸다시피하며 강화를 막으려 했던 자신과 조선의 신하들이 명의 강화 추진 과정에서 당한 수모를 <진사록>에 상세히 썼다. 그 기록을 읽으면 조선이 왜에 당하는 수모와 명에 당하는 수모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의문이 생긴다. 명도 왜도 조선으로서는 똑같은 타국이며 강대국이고, 조선은 두 강대국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다. 그 샌드위치가 어째서 유독 명에 대해서만은 수모를 수모로 생각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까. 왜에 대해서는 강한 정체성을 느끼면서, 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토록 유독 정체성을 거부했을까. (p.246)

t****6 2014.06.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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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떄가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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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선 어김없이 위인이 등장했었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한다는 말처럼 위기의 순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영웅들, 임진왜란에서의 이순신 장군도 영웅임에 틀림이 없다. 인원이나 장비에 있어서 터무니없이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임진왜란에서 승리를 따낸 이순신 장군의 러더십은 4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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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선 어김없이 위인이 등장했었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한다는 말처럼 위기의 순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영웅들, 임진왜란에서의 이순신 장군도 영웅임에 틀림이 없다. 인원이나 장비에 있어서 터무니없이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임진왜란에서 승리를 따낸 이순신 장군의 러더십은 4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었지만 그의 옆을 지키면서 이순신을 만들었던 류성룡의 업적과 그에 대한 평가는 미약하기만 하다. 그러나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무기로 조선 최소의 재상의 자리에 올랐던 류성룡의 리더십이 이순신과 더불어 지금의 시대에 다시 떠오르고 있다.

숙종 34년(1708)에 전국으로 확대 실시한 대동법은 임란 때 류성룡이 작미법作米法이란 이름으로 이미 시행됐던 제도이고, 고종 9년(1871)에 대원군이 실시한 호포법戶布法도 임란 때 속오군束伍軍을 만들어 양반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게 한 게 먼저다. 이렇듯 전체를 내다보는 눈에 있어서 비상한 머리를 지닌 류성룡이 양반 사대부들의 음모에 휘말려 그들의 희생양이 돼버린 것도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그보다 양반들과 음모해 충신을 내친 선조의 그릇이 아쉽기만 한 것이다. 

송복 선생이 지은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는 류성룡을 재평가한 책이다. 설득과 통합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던 류성룡, 그의 업적과 리더십을 통해 그를 재평가한 책이 바로《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부터 군량확보를 위해 진두지휘했던 그의 위기 대처능력,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을 분할하려고 했던 명과 왜에 앞서 목숨을 걸고 조선을 지킨 류성룡의 리더십이 이 책에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만남은 류성룡과 이순신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이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의 우리가 한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그대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한민족의 우리가 아닌 중국화된 우리 혹은 일본화된 우리로 존재하지 않을가? 더 구체적으로는 ‘한글, 한국말 쓰는 우리‘가 아니라 ‘한자, 중국말을 쓰는 우리’, 혹은 ‘일본글, 일본말 쓰는 우리’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임진왜란은 바로 그런 전쟁이었다. 우리를 또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어놓을 수 있는 전쟁이었다.(본문 356~357쪽 中)


대한민국은 지금 국무총리 인선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정부에 류성룡 같은 인물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조선시대에 류성룡이 보여준 전란 극복의 비전과 탁월한 국정수행 능력, 임진왜란 와중에 발생한 여러 위기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한 위기돌파 능력과 외교에 있어서 임진왜란 때 명과 왜 사이에서 능수능란했던 부분, 한산도대첩과 행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이순신, 권율 등을 천거한 그의 인재발탁 능력이 지금에 와서 새삼 부럽기만 하다.




n*******o 2014.06.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징비(懲毖)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결코 자비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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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중국 사이에 놓인 우리나라는 과거 외세의 침략을 경험했고, 그중에서도 몇몇의 큰 전쟁이 있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나라는 힘이 없고, 백성을 부모인 임금은 신하들과 도망 가기에 바쁘고, 외세는 우리나라를 자신의 발 아래 두려고 했던 일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인 것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의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류성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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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중국 사이에 놓인 우리나라는 과거 외세의 침략을 경험했고, 그중에서도 몇몇의 큰 전쟁이 있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나라는 힘이 없고, 백성을 부모인 임금은 신하들과 도망 가기에 바쁘고, 외세는 우리나라를 자신의 발 아래 두려고 했던 일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인 것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의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류성룡의 리더십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는데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제 잇속을 챙기려는 인물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이 책속에서는 전시수상(영의정)과 군 최고사령관 격인 도체찰사로 활약했던 류성룡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마땅한 의무를 지녔던 이들이 그런 국민을 나몰라라 했던 역사적 이야기는 쉽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전장에서 목숨을 받쳐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음에도 무려 7년에 걸쳐서 진행되었던 전란에 대해서 기록해 조정에 있는 이를 비롯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후손들에겐 이 전쟁을 통해서 얻게 된 뼈아픈 교훈을 알리고자 『징비록』을 쓰기도 했다니 그는 뼛속까지 나라를 생각했던 인물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이 책의 저자는 류성룡의 『징비록』을 비롯해 『진사록』,『서애전서』에 나오는 상소문과 공문 등 총 549건의 자료를 분석해서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사정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자료 조사만으로도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상당한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류성룡의 리더십에서 빠질 수 없는 이순신과의 만남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데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그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리더의 빼놓을 수 없는 자질로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임진왜란에서 류성룡이라는 인물보다는 오히려 이순신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사실인데 이 책속에는 이순신이라는 육군의 경력을 가졌던 이순신을 좌수사로 발탁해서 그를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낸 인물도 류성룡이라고 하니 상당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처한 상황, 왕과 신하가 보여준 모습, 그로 인해 장수와 병사, 백성이 처한 처참한 현실을 읽게 되는 것 이상으로 그 상황에서 보여준 류성룡의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며, 한 나라의 리더가 지녀야 할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s 2014.06.1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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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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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이 말은 '국가재조지운'(國家再趙之運)즉, '나라를 다시 만들 운이 돌아왔나이다'에서 차용된 제목이라 한다.  이순신이 한산대첩을 거두자 류성룡이 무릎을 탁치며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의 한구절이다. 류성룡이 얼마나 흥분하고 감격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지 저자는 말하고 있다. 류성룡이라는 문인과 함께 거론되는건 이순신. 이순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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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이 말은 '국가재조지운'(國家再趙之運)

즉, '나라를 다시 만들 운이 돌아왔나이다'에서 차용된 제목이라 한다.

 

 

이순신이 한산대첩을 거두자 류성룡이 무릎을 탁치며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의 한구절이다. 류성룡이 얼마나 흥분하고 감격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지 저자는 말하고 있다. 류성룡이라는 문인과 함께 거론되는건 이순신. 이순신이 없었다면 류성룡의 업적도 빛을 바랬을것이고, 류성룡이 없었다면 이순신이라는 영웅도 탄생하기 힘들었을것이다. 어떻게 희대의 영웅들이 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지. 4살 위인 류성룡은 이순신을 만나 그의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인보다도 더 전술에 해박했던 문인 류성룡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공감하며 읽어내려간 책.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조선시대 역사의 한켠을 장식하는 류성룡의 일대기와 당시 정세를 알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이었다. 

 

류성룡은 퇴계이황의 제자로 공부하여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정무를 보게된다. 여러가지 실용적인 제안으로 나라에 큰 도움을 준것은 물론, 임지왜란이라는 국난이 닥쳤을때는 이순신을 적극 추천하였던 인물이다. 어릴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던 이순신이기에 가장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고,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교관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나서 명나라에서 류성룡의 학식을 모르는 자가 없을정도였다한다. 하지만 너무 뛰어난 인재들은 고생을 하는게 정석인듯. 동인과 서인들의 당파싸움속에서도 중재를 하기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그는 결국 그 일을 빌미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류성룡의 나라에 대한 충심은 그가 올린 수많은 상소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임지왜란 당시 7년간의 전쟁을 겪으며 작성한 '징비록'은 그가 얼마나 문무에 뛰어났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단순히 문인들이 흔히 하는 이론으로만 전쟁을 이해하려 하지않고 실제 전쟁에 필요한 인원과 군량미, 전술 등 많은것을 연구하고 또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단순히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라는 개념이 아닌 임진왜란을 통해 앞으로 조선이 다시 침탈당하지 않기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비하는 그의 상소와 그의 평소 언행을 보면 어째서 이런 인재를 당파싸움따위에 밀려 내쳐야 했는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모습이 한심하게 다가오기만 했다.

 

그 어떠한 업적보다도 류성룡의 큰 업적은 이순신을 만난것. 그리고 나라의 큰일을 해낼 수 있게 적극 추천하고 도움을 준것이라 생각된다. 그때 이순신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미 우리는 일본의 속국이 되어 일본말을 쓰며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이순신을 기리는 만큼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쌍생아 류승룡을 기억하며 글을 마친다.

 

 

역사소설이 아닌 실제 역사적 사실을 근거해서 써내려간 류성룡의 일대기. 그리고 익히 잘 알려진 성웅 이순신이 함께 등장하여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건 조금더 소설처럼 다듬어 가독성을 높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옛방식의 편집이라서 조선시대 역사에 관심이 없는사람에겐 글만 많은 어려운 책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것 같다. 그래도 조선시대 최고의 영웅들의 일대기를 함께 만나니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