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이 자서전인줄 모르고 구입했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색스의 글이 무척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왔고 그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 책을 집어 들었는데 열어보니 자서전이란다(이 책 이전에 색스의 책을 두 권 읽은 바 있기는 하다). 자서전임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 이 책을 만나는데 더 시간이 걸렸을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자서전이란 게 부풀려져 있고 아름답게 치장되어있으며 없는 얘기도 집어넣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용도로 씌어졌다―그것도 작가를 고용해서―고 생각해서 기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물건이다. 색스는 영국 출신의 신경과 전문의로서 미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활동했다. 자신의 활동 기간 동안 만났던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엮어 여러 권의 책으로 펴냈으며 대부분 잘 팔려서 인기를 얻은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의 중간 중간 언급되지만 이런 책들은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기도 했지만 환자들의 상황과 사연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연구에 종사하는 의료진들에게 의미 있는 임상 결과를 제공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등 정신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바도 크다고 한다.
색스는 모부 모두 의사였고 네 형제 중 막내였다. 색스 외에도 두 형이 의사가 되었다고 하니 환경 측면에서나 유전 측면에서나 좋은 자질을 제공받았던 셈이다. 가정 형편은 유복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책에서는 색스가 어렸을 때나 성인이 되었을 때나 경제 사정이 곤란해서 힘들었다는 유의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모부는 상당한 애정으로 자식들을 돌본 것으로 여겨진다. 형제 중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형 마이클에 대한 가족 모두의 관심과 돌봄 과정을 볼 때 깊은 애정의 바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색스의 어린 시절,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던 모습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75세에 안식을 주는 사랑을 찾아 평안해진 상태를 남기며 마무리된다. 명문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의사이니 평탄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색스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그가 살아온 과정이 완전한 아웃사이더로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심하게 다치는 일도 생기고 헬스를 하다 최고 무게를 들어 올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인식하고 그를 확인하는 상황은 불분명한 앞날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모두의 모습과도 같다. 불쑥 길을 떠나 미국에 살게 되는 과정은 젊어서 행할 수 있는 태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전혀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의 삶을 보는 게 아니라서인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젖어든다는 느낌이 든다. 꾸며내지 않고 진솔하게 털어놓는, 그렇다고 무슨 참회록은 아닌, 나 이렇게 살았어 하고 조근조근 풀어놓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데 이게 뭐라고 빠져든다. 색스 스스로 이야기꾼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자질을 잘 발휘해서 신경과 전문의로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점 정도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의사로서 독특한 경지에 다다른 점은 아주 남다르다고 하겠다. 그는 글을 통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치료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도록 했다(나는 모든 정신장애가 치료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시각에 찬성하지는 않으며 색스도 그런 시각을 보이지 않는다). 색스가 쓴 유명한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타나는 몇 가지 내용을 보면 의사라는 자신의 기능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애정을 발휘하는 인간 본연이라는 측면에서도 환자들에게 보이는 그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신경과학 얘기는 쉽지 않지만 색스의 친절한 글쓰기로 인해 어느 정도는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평생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했던 색스는 인생의 막바지에 인연을 찾는다. 이 책의 맨 처음은 '빌리에게 바칩니다.'로 시작한다. 책의 마지막에 그 빌리가 누군인지 드러난다. 자신이 앓았던 암에 대해 언급할 때조차도 색스는 병의 고통스러움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실제 의도가 어떠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자신 말고도 그런 병을 앓는 다른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글쓰기는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덜 고통스러웠기를 바란다(색스는 2015년에 사망했다). |
|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입니다. 아마도 올리버 색스의 책을 찾는 분들이라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도 다 보셨을 것 같습니다.
내과 의사인 부모님아래에서 정신과 의자가 된 올리버 색스는 무엇보다도 글쓰기와 환자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었나봅니다. 특히나 본인 자신도 약물 중독이나 정체성의 문제를 겪으며 방황했던 적이 있었지만 자신의 본질 - 글쓰기와 환자를 돌보기 - 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었던가 봅니다. 올리버 색스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게 관심이 지대했고, 그들이 어떻게 장애와 같이 살아가는지, 어떻게 장애를 극복하는지, 그들은 어떤 태어남과 죽음을 겪는지,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바라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육체, 내가 물려 받은 정신. 이 안에서 가능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
|
아주 두꺼운 책이였는데,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나 그의 책 이야기가 많아서, 그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슬쩍 지루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책은 역시 끝까지 읽어봐야한다. 나는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이 책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다. 인생을 거의 다 살아버린 사람이 쓴 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요즘 들어서 늙음. 죽음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아져, 잘 늙기 위해 혹은 잘 살다 죽기 위해 좋은 레퍼런스가 없을까 해서 봤더니...그냥 마냥 즐거운 사람이였다. 그가 게이라는 것 빼고는 의사에다 글을 쓰고...나름 따뜻한 마음 그리고 신념 같은 것이 있어서 기나긴 날들을 잘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내면까지는 모르겠지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은 초반에 살짝 나오고 거의 없다. 그런데, 그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즐거움이라고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빌리라는 연인을 만나서 밥도 잘 챙겨 먹고 행복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봤을 때는 어지간한 셀럽 못지 않은 삶인데...즐거움이 없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체성 때문이였을까? 그리고 그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기 전까지 그리고 만나고 나서도 줄창 글쓰기를 해온 것 역시 마음의 헛헛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어지간하면 포스팅을 하나씩 하고 자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은...그냥 쓰면서 해소되는 뭔가가 있어서였다. 나만 그런줄 알았더니, 이미 오래전에 태어나 살다 죽은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었구나 하니 조금 더 동질감이 느껴졌다. 엉뚱한 결론일수도 있겠으나,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삶을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다. 466페이지 - "글쓰기는 잘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
|
올리버 색스의 에세이들은 모두 좋지만, 그의 자서전이 더 재미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뉴요커에서 만나는, 신비로운 정신병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상하고 재미있게 풀어주던 그의 인생이 그의 글 속 환자들만큼이나 파란만장하고 흥미롭다는 사실. 여행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사랑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언제나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던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세상은 조금 살만한 곳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손에 꼽는 자서전으로 등극. |
|
올리버 색스 책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1-2장을 본 게 전부였다. 1980년대에 쓴 책이라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진솔하고 유머러스한 어투에 끌려 그의 다른 저서를 찾아보다가 사후에 발간된 자서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 책을 동시에 읽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는 "온 더 무브", 낮에는 "아.모.남".. 내가 왜 이렇게 이 작가의 어투에 끌리는가 생각해 봤더니.. 누구보다 이성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 인간적인 글을 쓰는 것이.. 그 반전이 재미졌다. 마치 전교 1등이 예체능 종목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것처럼.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나는 마지막 일기를 언제 썼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일기를 쓴다면..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몇 퍼센트를 쓸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좋아했던 사람.. 내가 좋아했던 사소한 것들에 대해 얼마나 기억하고 문장으로 옮길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
|
“나는 이야기꾼이다. 좋든 나쁘든, 그렇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은 언어 능력, 자의식, 자전기억autobiographical memory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생에 걸쳐 내가 써온 글을 다 합하면 수백만 단어 분량에 이르지만, 글쓰기는 해도 해도 새롭기만 하며 변함없이 재미나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그 마음처럼.” (p.4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