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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모든 것을 한번씩 뒤집어 보는 습관을 가진, 어쩌면 사물에 대한 호기심 뿐만이 아니라 의심이 많을 수도 있는 내가 신비주의나 명상에 관한 책을 읽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작년에 인간관계에서 얻은 생채기를 오랫동안 내어놓지도 완전히 감추지도 못한 채 치유를 위한 노력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꿈과 고통에 시달려 오고 있다는 걸 안 그는 몇 권의 책을 구해 주었다.
책들을 한참 읽고 있을 때만해도 꼭 서평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재미삼아 검색창에 이 책의 제목을 쳐넣어 보았더니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책이 아직도 절판되지 않고 10년 전의 그 값으로 팔리고 있었다. 우와, 신기하기도 하지, 책을 페이지 수로 값을 매길 수 있겠느냐만은 소설 책 두께의 두툼한 책이 시집 한 권 값도 되지 않은 4천원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아무리 잘 안 팔리는 책이라고 해도 그 때 찍어놓은 책을 아직도 팔고 있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닐까? 10년 전에는 이런 종류의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내가 이런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큼이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신기했다.
신비주의책을 읽어서인가? 이 책과 한가지의 우연이 더 있었다. 최근에 발매된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1999년 12월 31일 공연실황을 담은 CD를 듣고 있는데 셜리 맥클레인이 게스트로 나와서 몇 마디의 축하를 한다. 셜리 맥클레인?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다음 생(next life)을 언급하는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대답을 듣고는 아하, 이 책의 저자이구나 했다. 신기했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수 있었던 이름이 이렇게 한 번의 의미를 가지고 지나가는 게 말이다. 나는 또 이렇게 내게 발생한 두 번의 우연을 기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명상의 기본 원리와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 하나,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명상으로 쌓인 내공(?)으로 인해서 일으킬 수 있는 이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두 저자의 체험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별다른 무리없이 작가의 경험을 관조하거나 동참할 수 있다.
기적에 관한 내용들이야 그런 게 있는가보다 하게 되고 있다해도 내가 반드시 그런 이적들을 일으킬 수 있게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명상의 기본 자세라고 보이는 자신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거친 후에 깨닫게되는 완전한 긍정에는 동의를 하게 된다. 완전히 비우고 난 후에 보게 되는 자아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지 못할 뿐이지 지금처럼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 사람처럼 압착되어 있는 위축된 상태가 아니라 훨씬 더 편안한 것일 거라고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생기는 평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놓아둔다면, 내 밖의 모든 것도 자연스럽고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 내 자아의 본모습이 선이나 혹은 악,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로 놓아두기 위해 거치는 명상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업고, 지고, 이고, 달고, 살아가는 삶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비우는데 효율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명상을 규칙적으로 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읽는 순간 만큼은 아침을 담배 연기가 아닌 명상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인상깊은구절] 거듭 말하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이미지는 그것이 아무리 가엷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매달리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익숙해 있어서 안전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현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을 질책해도 좋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자유롭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하여 완전한 책임이 수반되기 때문에 진지한 일보를 내딛는 것이다. 명상은 현실도피 또는 도락이 아니다. 그것은 내적으로 책임을 지는 행동이다. 그것은 수행과 근면과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내를 요구한다. 자기에 대한 인내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