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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인생을 한권의 시집에 옮겨놓은듯 하다. 인생보다는
사랑하고 그로인해 겪게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시 중에서 어느정도는 공감되는것도 있지만 약간은 이해가 되지않는것도있다.
작가혼자하는 말을 시로 옮겨놓은것 같은것도 있기때문에
독자입장에서는 이런내용을 왜 올렸을까..?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데..?
이런생각을 할수도 있을것 같다. 그리고 어떤시집이나 그렇듯
사랑을 소재로 해서 그런지 약간의 식상함도 있었다..
그시가 그시인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말이다.
시집이라서 그런지 한번에 다 읽어보질 않고 심심할때
가끔씩 들쳐보는 식인데 시 몇편빼고는 그냥 별로인것같다. [인상깊은구절] 둘에서 하날 빼면 하나일 텐데 너를 뺀 나는 하나일 수 없고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이어야 하는데 너를 더한 나는 둘이 될 순 없잖아. 언제나 하나여야 하는데 너를 보낸 후 내 자리를 찾지 못해 내 존재를 의식 못해 시리게 느껴지던 한 마디 되새기면 그대로 하나일 수 없어 시간을 돌려달라 기도하고 있어. 둘에서 하날 배면 하나일 순 있어도 너를 뺀 나는 하나일 수 없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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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절절한 그리움의 시들입니다. 사랑을 다룬 시는 대부분 상투적인 표현들이 많은데, 원태연님의시집은 진실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표현들로 제 맘을 여러번 찡하게 한 글들이네요. 남자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죠. 물론 여자들도 그렇죠. 하지만 다른점은 다음 사람이 생기면 여자는 똑같이 마음을 주는데 남자는 똑같이 주지 못하고 '킬러' 라는 명분을 주게 되는것 같아요. 그런 내용들이 또 다른 시집 '사용설명서' 라는 시집에 주를 이룹니다. 지금 사귀고 있는 제 남자친구를 생각하면서 읽으니까 더 가슴에 와닿더라구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 하지만 영원하고 싶은 사랑이 사라졌을때의 그 막연함..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모든게 가슴이 아련해지고 절절해졌습니다. 세상에 진실한 사랑은 딱 한번 찾아온다고 했잖아요. 정말 그 말이 맞죠. 누군갈 절실히 사랑했던 마음으로 또다시 누굴 사랑하겠어요. 모 광고에서처럼 "사랑은 움직이는거야"에서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관념이 많이 퇴색되고, 지나치게 유동적인 관념이 되어버린것에 대해 유감이 많네요. 하지만 원태연님의 시에서는 정말 오직 한사람만을 생각하는 "사랑"의 참의미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요즘 세상에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시들... 전 오늘도 또 한번 펼쳤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오직 하나의 이름만을 생각하게 하여 주십시오 햇님만을 사모하여 꽃피는 해바라기처럼 달님만을 사모하여 꽃피는 달맞이꽃처럼 피어 있게 하여 주십시오. 새벽 종소리에 긴긴 여운 빈 가슴 속에 넘치도록 채워주십시오. 하나만 넘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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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사랑 그리고 이별 그리고 이별 전후의 심리적인 묘사 어느 시 처럼 함축적이고 , 읽고 또 읽어도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거나 나중에서야 그렇군 이걸 의미한거였어 이런 느낌의 어려운 시가 아니다 .. 학교다닐때 국어 시간에 밑줄 쫙 긋고 , 이건 이런 의미고 이건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고 이런 시가 아니다.
생각을 할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한 이해가 가능한 시이다 사랑하고 있던지 아니면 사랑했던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한 시이다
가끔은 시의 형식을 깬것도 있지만 시인데 시 같지 않고 한편의 에세이 집을 읽은 기분이 드는 묘한 매력의 ... 원태연님의 시
어릴때 그의 글에 꽤 감탄 했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니 그냥 공감 될뿐이네 하지만.. 역시 참 좋다 느낌이 과거를 떠올리며 가끔 아프게 하지만 .. |
| 발간된 지 7~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 책이 읽히고 팔린다는 것이 너무도 반갑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 시가 아닌 1회용 낙서로 폄하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몇 년을 두고 사람들의 마음을 간지럽힌다면 낙서라고 쳐도 대단한 낙서지요. 스무 살을 앞두거나, 치르거나, 되돌아보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난해한 말로 이마에 주름을 만들지도 않고, 어이 없는 표현으로 창의성을 뻐기지도 않는 이 시들은 방대한 협연보다 피아노 소품이 빛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이후에 나온 그 어떤 시집보다도 이 시를 윗길에 둡니다. 노련하지 않은 참신함, 다듬지 않은 순수함이 원태연 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보니까요. |
| 예전에 제게 시를 좋아하냐고 물었다면 저는`no`라고 대답했을 거예여.몇년전에 서점에 들럿다가 호기심에 몇장을 읽어 봤는데~이런것도 시라고 하는구나~전 시는 미사여구를 잔뜩 붙이거나 어려운 단어를 섞어가며 쓴 거라고 생각했거든여.그래서 별로 그쪽으로 관심이 없었고여.내용이 잼있어서 구입해서 읽고 느낀 첫 감상은 '그냥 내가 낙서하는것과 별차이 없쟎아..'였습니다.누구나가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들..쉽고 재밌게 풀어가는 문장들..하지만 결코 따라할수없는 독특한 원태연씨 만의 색깔때문에 더욱 좋았던거 같습니다. 아마 원태연씨의 책을 읽고 다른 시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된것 같아여.초등학생한테 처음부터 중학교 수학이나 대학 강의를 들으라고 한다면 아마 질려서 관심도 가지기 싫은것처럼 차근차근 재미를 넓혀 나갈수 있게 시의 재미를 제게 처음 가르쳐준 작품입니다.어떤 글들은 슬며시 미소가 나오게 하는 것들도 있고 연인에 대한 내용의 글들은 가슴져미게 만들게도 하져.감수성이 예민하신분들은 손수건 준비하시고여 ^^ 가요 '밤의 길목에서'란 노래를 아실지 모르겠네여..작사를 원태연씨가 한건데 그 노래 처럼,또는 더나은 글들이 많이 수록된 책입니다.이 책이 마음에 드신분들은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그걸 뺀만큼~~~~'란 책도 읽어보세여.원태연씨의 사진도 실려있구여 넌 가끔 처럼 재밌으니까.. 넌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니 생각을 해~~~~~~썰렁하져..^^ 앤 한테 이렇게 말했다간 뺨이 석대.그러니까 앤 한테 멜 보낼땐 꼭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혹은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라고 하면 감격을~~~~^^ |
| 내가 어렸을 때, 한창 사랑에 관한 시집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여중생들이 시집 한권 쯤 지니고 다니던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던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 시절에 만난 책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 때 만났던 많은 무수한 작가들 중에 그나마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이다. 몇몇 시들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의 그 때의 슬픔과 감동으로 희미하게 내게 남겨져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과 이별한 사람들에겐 이 작가의 시집이 큰 위로와 공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때때로 조금은 유치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그 정도야 당연 나머지 내용들로 보완할 수 있다. 조금 어리다면, 그리고 조금은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에 빠져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무난할 듯. |
| 가끔 원태연의 시집을 사서 읽곤한다. 왜냐하면 그의 시집은 너무나 감동 그 자체이고, 내 마음 한편에 있는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준다. 그만큼 그의 시가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위에 이 책의 출판일이 2000년인 것을 보았을 때 아마도 이 책은 재판인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 책의 시들은 대체로 아기자기 하다. 간결함이 많이 느껴지는 편이며, 거의 대부분의 시들이 사랑과 그것의 깨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나는 고2때 이 시집을 사게 된 계기가 바로 여자친구와의 헤어짐 때문이었다. 당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어떤 누나와 사귀었었는데, 내가 고3직전 수능준비라는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만남을 끊었다. 그리고 그후 그 누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솔직하게 사랑이라는 걸 아직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고 시속에 빠져있는 동안만은 내가 꼭 누군가와 사랑하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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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걸 뭐라고 정의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지에서는 원태연이라는 시인이 본래 엉둥하면서도 쉬운 쉬를 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머 이게 무슨 시야?', '이런 것도 시가 되는구나?'라는 반응을일으킬 만큼 우스운 일 재미난 에피소드가 많은 시이다. 흔한 것이 이별공식이나 사랑공식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써내는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원태연의 시에는 감칠맛나고 다가서기 쉬운 매력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원태연이라는 시인의 나이에는 그런 시가 어울리는구나 하는 반응으로 나에게도 이 시가 주는 감동은 이러하겠구나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마도 이시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그의 시가 이 시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기를 바라면서 오늘 그의 시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간단하고 명료함을 주는 시가 맘에 든다. 가까운 느낌이 드는 시가 좋다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고 그의 다른 시 또한 관심을 기울여 보기를 희망한다. [인상깊은구절] 하나만 넘치도록 오직 하나의 이름만을 생각하게 하여 주십시오. 햇님만을 사모하여 꽃피는 해바라기처럼 달님만을 사모하여 꽃피는 달맞이꽃처럼 피어 있게 하여 주십시오. 새벽 종소리에 긴긴 여운 빈 가슴 속에 넘치도록 채워주십시오. 하나만 넘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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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면 권태로울지 모르는 일상 속에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되어 살아가고 있다. 치열한 일상의 탈출구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찾는 이들이 많으며 그들이 갖게 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주목해야 할 감정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원태연은 일상을 환기시켜 주는, 마치 청량제처럼 상쾌한 필치로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사랑하는 시와 노래와 여자가 있다면 행복할 거라는 그의 말, 반복되는 일상에서 즉 "내일도 오늘처럼 따분할 것 같으면" 더더욱 사랑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사랑은 일상의 번잡함과 권태를 깨뜨려 준다. 사랑으로 서로간의 일상은 새로운 양상을 보이며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것들-자기 자신을 비롯한 자기 주위의 모든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원태연처럼 시로 표현할 수도 있게 된다. 사랑이란 경험은 이렇게 시를 포함한 문학, 문학을 포함한 예술을 인간에게 잉태시켜 그 결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시킨다.
이러한 사랑을 찾는 과정, 그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아리스토파네스라는 시인이 언급한 것 중 이성 간의 사랑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인간은 양성적이었는데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거대한 탑을 쌓았고 신들은 오만한 인간을 징벌하기 위해 양성적이었던 인간을 둘로 잘라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인간은 자신에게 알맞는 반쪽을 찾을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랑하는 상대를 "반쪽"이라 칭하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구약의 바벨 탑 신화에 비해 훨씬 로맨틱하긴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이 문제를 적용시키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우리는 한 몸이었던 이성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고 진정한 인간성의 구현이니까. 원태연의 시는 이러한 이성을 찾는 과정보다는 그 이성과의 이별에서 오는 상실감에 더 주목을 하게 만든다. 상실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할까. 흔히 이별이 주는 직접적인 느낌은 다음과 같다.
a. 자신의 반쪽을 잃었다는 데 대한 절망감
b. 헤어진 사람이 자기에게 맞는 상대가 아닐 거라는 자기 위안
원태연의 시는 a의 입장이 강하다. '너 하나 없어졌을 뿐'인데도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을 느낀다. 물론 a와 b 둘 다 이별이 가져오는 혼란을 동반할 것이나 이별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a는 b보다 수동적이며 원태연의 시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b는 새로운 상대를 찾아 나설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지만 a는 말 그대로 절망 그 자체이다.
어찌 되었든 둘이 만나서 잘만 되면야 금상첨화겠지만 말만 쉬울 뿐. 사랑의 양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대개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ㄱ. 상대를 자신에게 알맞지 않은 반쪽이라 여기고 체념을 한다.
ㄴ. 감정을 보류한다.
ㄷ. 그래도 열렬히 그 상대를 사랑한다.
원태연의 시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과정은 ㄱ과 ㄴ의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우리의 문학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민족의 회한과 체념의 정서와 거의 똑같다. 포기를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는 못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면' 힘없이 돌아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ㄷ을 적극적이라고 한다면 ㄱ, ㄴ은 수동적인 것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으로 본다면 원태연의 시는 사랑에 대한 수동성에 기인한다는 결론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의 시가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는 수동적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기 컵이 두 개 있다. 두 컵 모두 안에는 물이 조금 있는데 물이 가득한 상태로 만들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1. 물을 부어 채운다.
2. 컵 안의 물로 가득 찰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컵으로 용기를 바꾼다.
물을 사랑이라는 감정, 컵을 사랑에 대한 기대로 치환해 보자.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을 자신의 감정을 부어 채우거나, 아니면 사랑에 대한 기대를 줄이면서 자신의 감정을 맞추거나. 원래 이는 욕망에 대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의 견해를 적용한 것이다. 욕망을 이루느냐 욕망을 줄이느냐 하는 것이 이 두 학파의 견해 차이인데 사랑이라는 것도 욕망이라는 범주 아래 둬 본 것이다. 1과 2를 비교해 본다면 1이 능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태연의 시도 마치 빈 컵에 물을 부어 가득 채우듯 사랑에 대한 기대를 외로움, 그리움, 기다림 등의 감정으로 채우고 있다. 일주일 내내 바쁘다고 만나 주지도 못한다고 해도 다음 주 월요일에 피자가 먹고 싶어질 거라는 말에 행복을 느낀다. 외로움, 그리움 기다림이 수동적인 감정이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상으로부터 수동적인 것이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 누군가에 대한 기다림을 지키기는 능동적인 사랑과 믿음 없이 불가능하다.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라 하면 리버럴 휴머니즘(liberal humanism)이 아닌가 한다. 낭만주의와 자유주의의 영향 아래 개인의 가치를 가장 중요시하는 우리의 사상은 개인화를 촉진시켜 왔다. 자아가 가장 중요해지고 사랑은 환상이 심해져 간다. 결국 사랑은 점점 황량해져 가는데 사람들은 사랑이 깨졌을 때조차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커다란 희망을 사랑에 걸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온갖 개인적인 배신이 난무하는 불쾌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버팀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음 번엔 모든 것이 나아질 거야" 라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 측면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헤어진 두 사람 모두의 기운을 북돋워주고 각자를 더욱 개인화시킨다. 진부하고 때론 희극적 때론 비극적이며 온갖 복잡하고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 이 현실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독일인의 사랑』에서처럼 사랑은 운명인가? 아니면 『사랑의 기술』에서처럼 사랑은 믿음인가?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보자. [인상깊은구절] 이러고 산다 화장실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밥숟가락 들면서 설거지할 때까지 아니다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을 때까지 없던 일까지 만들어 상상하며 미친놈 소리 들어가면서도 희죽희죽 웃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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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시집들의 제목을 보며 참 유치하다하며 잡은 책이 바로 원태연님의 시집이다. 유치함이 내 손을 낚아챈것이다. 책을 펼쳐 조금씩 읽어 내려가며 참 좋다라는 생각으로 끝날쯤에 한 페이지가 나를 대신하고 있었다. 사랑으로 인해서 힘들때가 아닌 나자신의 번뇌와 고뇌로 힘들어할적에의 그 느낌을 어루만져주고 다독이듯이 그렇게 지난 옛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구입하여 집으로 바로와 읽기 시작했다. 사랑에 관한 글들도 많겠지만 굳이 사랑이 아닌 어떤 힘든상황에서도 아님 지난 추억으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위안의 편지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글귀의 서정감또한 뛰어난것 같다. 동감할 수 있고 느낌이나 감정들을 자연 솔직하게 구사함이 문안하고 읽고 느껴지는 그런 글귀들그 사람과 바로 옆에서 이야기 하듯한 말들 모두가 자연 그래로이다. 감성이 살아있는 분이라면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비가 촉촉히 가슴을 적시는 날이면 이곳에 내가 있습니다. 보고 싶다기보다는 혼자인것에 익숙해지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