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많은 이들이 '21세기에 그런 일이'라며 긴가민가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시아의 옆 나라인 미얀마에서는 3년 9개월 전에 계엄령뿐 아니라 군사쿠데타까지 일어났다. <포가튼 미얀마>는 그 쿠데타의 기억과 기록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고 주인공의 이름은 영문 첫 글자로 표기했지만, 모든 것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미얀마에서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2021년 2월 1일의 그 시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얀마의 전두환과 같은 쿠데타 수괴 훌라잉과 군부는 2월 9일 첫 발포를 시작으로 민주주의의 요구를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을 검거, 투옥, 고문, 사형 집행에 처했다. 이런 폭압 속에서 시민혁명은 더 이상 비폭력적인 거리 집회나 행진, 시민불복종 등의 방식으로 전개될 수가 없어졌다.
미얀마의 민주 시민과 정치 세력들은 4월 16일 임시정부 '민족통합정부(NUG)' 구성을 선언했고, 5월 5일 '시민방위군(PDF)'을 창설했다. 시민방위군은 소수민족 저항 세력과도 힘을 합쳤고, 9월 7일부터 '총력적인 저항 전쟁'을 선포했다. 이제 미얀마의 반군부 시민혁명은 군사적 항쟁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됐다.
이 속에서 쿠데타 군부는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들과 소수민족들을 학살했다. 정당성이 없는 군부는 오로지 피의 학살, 특히 전투기의 폭격을 통해서 권력을 지키려고 했다. <포가튼 미얀마>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 그 끔찍한 범죄들을 고발한다. 이 장면들은 지금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벌이는 대량학살과 너무나 비슷하다.
"N은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벌어진 뒤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상과 사진을 매일 보아야 했다. 총탄에 맞아 머리에 뚫린 주먹만 한 구멍에서 피와 뇌수가 쏟아지는 모습, 팔다리가 잘리고 살갗이 갈기갈기 찢어진 모습, 불에 타 숯처럼 그을린 시신에서 허연 백골이 드러난 모습, 칼에 찔리고, 차에 치이고, 지뢰를 밟아 망가진 인체를 내내 보았다. 괴로웠지만 두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것 또한 N이 할 수 있는 투쟁이었다."
주변의 강대국들과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부의 야만적 범죄 행위를 방치했다. 그 행태는 이스라엘의 경우와 비슷한데, 다만 여기서는 위치가 좀 바뀌어 있다. 미얀마의 경우는 중국과 러시아가 군부의 편에서 학살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군부를 반대한다면서 포스코 등의 기업이 군부와 협력해 돈벌이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다. 그나마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민주주의보다는 대중국 봉쇄와 견제를 위해서다. 결국 미얀마 민중은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포가튼 미얀마>는 이 속에서도 미얀마 민주주의의 희망을 지켜 온 진정한 힘은 목숨을 걸고 투쟁해 온 이름 없는 미얀마 시민들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쿠데타 소식을 듣자마자 분노해서 손에 피물집이 생기면서도 냄비를 두드렸고, 매일같이 거리로 나가 민주주의를 외쳤고, 총파업과 시민불복종 행동에 나섰고, 곳곳에서 도시 게릴라 투쟁을 벌였고, 가족과 고향을 떠나서 저항군에 입대해서 총을 들었다.
<포가튼 미얀마>의 저자인 최진배 활동가는 2017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미얀마에서 일하다가 미얀마 여성과 결혼했고, 이후 한국에 와 있다가 쿠데타 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은 그 후 미얀마 민중의 저항을 돕기 위한 연대 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은 이런 두 사람의 경험과 실천에서 나온 생생하고 절실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미얀마 연대 활동을 하면서 최진배 활동가와 알게 됐는데, 지난 3년 동안 그는 지치지 않고 미얀마 민중의 목소리를 한국사회에 알려 왔다. 이번에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그가 운영하는 <미얀마 투데이> 페이스북 페이지(https://tinyurl.com/2avp2dtu)에 가 보고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다시 부끄럽게 돌아보게 됐다.
미얀마 땅이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들의 피로 물들어 온 지 4년이 다 돼가는 지금,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라는 생각으로 손을 놓고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다시 미얀마를 기억하고 소식을 찾아보고 그것을 알려 나가고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찾아야 한다. <포가튼 미얀마>를 사서 읽는 것은 그것을 위한 좋은 출발일 수 있다.
요즘 우리도 윤석열 정권에 맞서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 촛불을 들 자유조차 빼앗긴 미얀마 민중의 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 <포가튼 미얀마>에 실린, 시위하다 끌려가 고문받고 사망한 켓띠 시인의 시에는 그 마음과 용기가 담겨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
그들은 우리를 죽여 땅에 묻으려 한다
허나 그들은 모른다 우리 모두가 새날의 씨앗임을... 그들은 우리의 머리를 쏜다
허나 그들은 모른다 혁명은 우리의 심장 속에 있다는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