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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의 『조선을 떠나며』를 읽고 참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책은 2012년에 나왔지만 나는 2016년에 읽었다, https://blog.naver.com/kwansooko/220894880410). 해방을 생각하면서도 식민지 땅에 살던 일본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해왔던 것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떻게 일본으로 돌아갔고, 일본은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보게 된 일이었다.
떠난 사람들이 있으면 돌아온 사람들이 있을 터, 10여 년 만에 낸 『다시 조선으로』는 『조선을 떠나며』을 냈으면 응당 나와야 하는 책이다. 돌아온 사람들? 떠난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인식의 자장 안에 들어와 있었으련만 생각해보면 이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해방되던 무렵 한반도로 돌아온 사람들의 숫자는 약 2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 한반도의 인구가 1600만 명 가량이었으니 정말 많은 숫자다. 모두 사연을 가지고 떠났거나 강제로 잡혀갔던 이들이니만큼 그들이 돌아오고 고향에 대한 안온함을 느꼈으면 좋았으련만 사정은 그러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도 험했고, 돌아오고 나서의 삶도 팍팍하다 못해 참담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점점 차가워졌다. 너무 많았고, 한반도(이 책에서는 대부분 남한을 다루고 있다)의 사정도 너무나도 열악했으며, 미군정의 능력도 부족했거나 한반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역사를 약간의 높이를 가지고 조망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것이겠지만, 때로는 지상으로 내려와 ‘역사의 빌런’에 대해 분개하기도 한다. 단지 부족했기 때문에 이른바 전재민이라 불린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야 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잘못된 정책에다, 이미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제에 빌붙어 살던 이들의 탐욕으로 그리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음에도 제대로 살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선으로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적지 않은 분량을 해방 이후 사회상의 일단을 보여주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이른바 적산(고급 요정을 포함해서)의 처리를 두고 벌어졌던 욕망과 죄악에 대해서, 해방 이후 남한에서 출세한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예를 들어 최후의 경성부윤이자 첫 서울시장 김형민) 쓰고 있다. 그래서 저자가 책 제목에서부터 하고자 했던 주제와는 조금은 빗겨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물론 넓게 보아 이 역시 제국의 붕괴와 관련한 이주사의 한 면이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에필로그>에 적은 이야기들이 무척 관심이 많다. ‘돌아온 자들’이라고 했으니 남한으로 돌아온 이들과 북한으로 돌아온 이들의 차이, 첫 귀국선이 되었어야 할, 그러나 출항하자마자 폭파되어 버린 우키시마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사할린 동포의 뒤늦은 귀국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커다란 이야기이고, 그것들을 담다 보면 너무 부피가 커져서 이렇게 에필로그에만 간략히 소회만 담은 것 같다. 조만간 이 이야기들을 활자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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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왔습니다. 전작인 "조선을 떠나며"가 조선에 살다가 해방과 동시에 떠나는 일본인 이야기였다면 이 책 "다시 조선으로" 은 반대로 조선으로 돌아온 귀환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제국의 이등국민으로 조선인들은 전쟁을 확대하는 일본의 의도로 인해서 수십만명이 전쟁에 동원되었으며 수백만명이 고국을 떠나서 전세계로 흩어졌습니다. 갑작스러운 광복은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일대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그야말로 처참했으며 제대로 된 정부도 없었던 우리 사정으로 인해서 고난과 비극의 한장이 되었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한국 전쟁으로 인해서 이 비극은 가려졌으나 결코 무시할수 없는 댓가를 지금도 남기고 있습니다.
이 아수라장은 일본제국의 원죄와 미군정의 무능으로 커졌으며 막 해방된 조선의 기회주의자들로 인해서 크나큰 비극이 되었습니다. 이러고도 한국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일본이 남기고간 적산 자산에 대한 횡령과 강탈등에서는 우리나라 기득권들이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에 대한 증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일부 기득권들이 보이는 친일적인 경향에 대해서는 이해 할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런 기회.. 일제의 패망가 없었다면 절대로 그 자리에 오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일본을 환상향으로 여긴것은 자신의 지위를 망각한 행동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대한 가슴아픈 증언이기에 꼭 읽어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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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빛의 회복. 한국인이라면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설명이 쉽지 않은 시큰함을 느낄 것이다. 빼앗긴 주권을 도로 되찾았다. 그간 없었던 내 나라가 생겼다. 이제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다. 모두가 희망을 노래했다. 한동안은 정말 기뻤다. 그 감정이 오래도록 지속되진 못했다. 그러기엔 당장 견디어야 하는 혼란이 너무도 거셌다.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 허허벌판에 우리는 홀로 섰다. 완벽한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막막하고도 막연한 상태. 저자는 이 시기를 주목했다. ‘해방된 조국, 돌아온 자들과 무너진 공동체’라 붙은 부제가 나에게 먹먹함을 선사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으나, 책을 다 읽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모든 게 가능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정말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그것이 최선이었을 테지만 나로서는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가장 앞부분에 배치된 ‘해방 조선의 민낯’ 부분을 읽으며 나의 얼굴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인권 마인드를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요구할 순 없을 것이나, 사람들의 사고는 정말로 전근대적이었다. 사람들은 몸을 팔았다. 본인이 원치 않아도 그런 짓(!)을 행할 존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선발됐다. 고려된 건 사창가를 이용하느니 남성의 건강이었다. 공창이라 하여 이를 제도권 안에 두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비좁은 수용소, 턱없이 부족한 식량과 약품들이었으나 그마저도 사라지기 일쑤였다. 아이들조차도 훔치는 기술을 익혔다. 자신의 생사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으므로 선악에 대한 판단은 사치였다. 일제의 패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일본인들이 이 땅에 머물렀다. 일본어를 자유로이 사용했으며 조선인들 위에 군림하며 살아왔을 그들과 우리의 처지는 사뭇 달랐으나, 일찌감치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과 비교하자면 남은 이들은 약자였다. 계속 조선에 남아야 하는지, 당장 이 땅을 떠나야 하는지 그들은 좀체 마음을 잡지 못했고, 결국에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피해자라 주장할 법도 했다. 미군정은 책임을 회피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골라 통치의 전면에 나서는 일에는 힘을 쏟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정작 중요한 문제를 처리하는 일은 미루었다. 적산 재산의 처분 문제부터 시작하여 끊임없이 몰려드는 전재민들에게 주거 시설을 제공하는 일 등은 제대로 처리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어 삼엄한 추위가 밀려들었지만 사람들은 바람이 술술 스미는 판자 위에 몸을 뉘여야 했다. 거리에서 얼어 죽은 이들도 꽤 많았다. 대다수가 흔들리는 일상을 부여잡고 안간힘 쓰는 동안 승승장구한 이들도 있었다. 친일의 경험이 그 시절엔 노하우였으며, 미국의 인정을 받은 이상 저지르는 비위까지도 비호 받았다. 초대 서울시장 김형민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딱히 친일파도 아니요, 좌우 어디로도 크게 경도되지 않았던 그는 본래 사업가였다. 한창 석유 장사로 돈을 벌고 있던 그를 서울시장으로 내세운 건 미군정이었다. 일본식 지명의 개편 등 서울시장으로서 이룬 업적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모리, 간상배인의 결탁을 비롯하여 횡령, 편취, 부정매도, 증수회(뇌물수수) 등 복마전이라고 불리워지던 서울시청의 한가운데 ‘염라대왕’처럼 앉아 있던 인물 또한 그였다. 서울의 혼란은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전국 어디도 안정적이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은 다시 고향을 등졌다. “조국이 이럴 줄은 몰랐소”라는 말에 담긴 회한의 무게가 실로 엄청났다. 역사는 반복된다. 꼭 그렇다고 볼 순 없어도,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일부 문제는 이 시기에 해소되지 못한 것들로부터 비롯됐다. 조금은 길지만 느끼는 바가 있었기에 책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주지하듯이 고종과 메이지 천황은 1852년 쥐띠생 동갑내기였고, 19세기 중화 질서가 쇠락하는 국면에서 동아시아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제국과 일본제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다. 과연 1852년 이래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혹시 그때 끝냈어야 할 숙제를 계속 미뤄온 것이 두 나라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특히 안타까운 것은 해방 공간의 ‘모리배’, ‘정상배’, ‘친일파’ 등을 무슨 이유로 처단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2024년 국회 청문회에서 보듯이 이들은 항상 역사 속에 다시 등장한다. 혹시 1852년 이래 우리 역사의 주요 고비 때마다 당대에 끝내지 못한 ‘과제’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우리를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을 비롯해 외교통상부장관과 청와대 외교안보 실세가 사도광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존재를 스스로 부인하고 있는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왜 ‘나’의 머리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역사의 ‘빌런’은 항상 ‘고비’ 때 환생한다. 그들에겐 더 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집단의 청산, 그리고 사회적 통합이란 과제를 분단, 전쟁, 개발, 성장 등을 이유로 해방 이래 줄곧 미뤄온 대가를 우린 지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진작에 끝냈어야 할 소모적인 이념, 친일, 역사관 등의 논쟁, 극단의 혐오와 갈라치기도 결국 여기서 비롯되었다. 제 잇속만 챙기며 감히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파렴치한들의 폭주하는 광기와 망상을 과연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거듭 말하건대 모든 악은 당대에 끝내야만 한다. -p2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