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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 공간들이 건네는 말들의 자취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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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동네 아이들은 섬진강으로 달려가 멱을 감고 재첩을 잡으며 더위를 식혔다. 물살을 가르는 모래 이랑 사이로 노란 재첩을 소쿠리에 주워 담아 물통에 부었던 기억은 재첩국을 먹을 때마다 씨가 말라버린 섬진강 재첩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많던 재첩이 자취를 감추고 멱을 감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아련한 향수를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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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동네 아이들은 섬진강으로 달려가 멱을 감고 재첩을 잡으며 더위를 식혔다. 물살을 가르는 모래 이랑 사이로 노란 재첩을 소쿠리에 주워 담아 물통에 부었던 기억은 재첩국을 먹을 때마다 씨가 말라버린 섬진강 재첩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많던 재첩이 자취를 감추고 멱을 감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아련한 향수를 품에 안고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편의성과 효율성을 들어 개발 정책으로 치닫는 시대에 추억 속 공간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예스러운 정취를 풍기고 있던 공간도 변형되어 생경함을 주고 사라진 공간에서는 사위어가는 촛불의 유한함을 떠올리게 된다.

 

   강마른 체구에 깊은 눈으로 응시하는 눈빛이 처연하게 다가오는 저자를 떠올리며 윤대녕 작가의 내밀한 삶의 조각은 유쾌한 것만은 아닌 듯하였다. 생업으로 바쁜 부모와는 떨어져 완고했던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고독한 상황을 감내하게 한 문학은 정신적 방황을 달래며 문학인으로 살아갈 힘을 실어줬다. 유교적 가르침을 들어 좇아야 할 규범을 강조할수록 자신을 옥죄는 질서를 파기하려는 움직임은 백일장 참여로 문학 동아리 회원들과 교유하며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로 삼았다. 일탈의 욕구가 커질수록 정신적 방황은 깊어졌고 어느 새 작가는 또 다른 공간을 찾아 이동하며 잠재되어 있던 방랑벽을 다독거렸다. 손 내밀면 끌어당겨 줄 대상은 피안의 공간으로 자취를 감추고 닿을 수 없는 시간들만 진공 속에 남아 추억으로 공명하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작가를 꿈꾸었던 저자의 집필은 소설가로서의 위상을 굳히며 낯선 공간을 찾아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관찰하며 독립된 존재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집필하는 자유를 누렸다. 행장을 꾸리고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 길 위에 서기를 반복했던 저자는 우리나라의 후미진 공간에서부터 번화한 국제도시로까지 집필 공간을 확장하여 유목민을 연상케 하였다. 그가 머물렀던 조부의 집은 이웃이 없었고 어쩌다 친척들이 찾아와도 곧 떠나버리고 말아 을씨년스럽기만 했던 고독의 공간으로 그곳을 떠나는 순간 버림을 받는다는 점을 알고 떠나야 하는 집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집은 저자에게 서글픈 꿈을 심어주었고 지난한 시간 속에 발아하여 상상의 산물인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로 열매를 거두게 했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 이동할 때 거쳐 가는 공간을 좋아하는 작가는 휴게소와 역, 공항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하였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소통하며 창작의 질료(質料)로 삼기도 했다. 사라져 버릴 이야기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상상력을 가미하여 구성진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생각은 사라질 수도 있는 기억들을 끌어안아 나갔다.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예감을 상쇄하기 위해 제주도에 머무를 때 아들과 함께 낚시하는 작가의 뒷모습은 고독을 치유하며 살아가는 방편처럼 다가왔다. 술집을 드나들며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평안을 얻었던 공간으로 인생의 허무를 달랬던 시절의 추억은 가슴 저편으로 자리를 내어주었다.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마음을 내어주며 지냈던 음악 감상실은 힘들었던 시절을 동행한 추억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저자는 고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음악으로 위로받으며 즐기는 인생을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거리를 걷다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연주곡에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했던 아동기의 친구가 떠오르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여 현재의 나이 듦을 보상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한 것인지도 모른다. 휴대폰이 대중화됨으로써 찾아보기 힘든 공중전화 부스를 보면 한 줄로 늘어서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던 청춘 시절이 떠오른다. 소설 당선 소식을 듣고도 기쁜 소식을 알릴 대상이 선뜻 나서지 않아 외로웠던 스물아홉의 저자가 용기 내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언하였을 때 시큰둥한 어머니의 반응은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성을 낳았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반전을 거듭한 인생을 살아왔던 이에게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희망의 출구는 가슴 속에 남아 창작의 불을 지피는 꿈결로 피어오른다.

n*****9 2014.08.11. 신고 공감 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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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잉여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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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낮에 도시의 작은 공원을 거닌 적이 있는지.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 등 상투적인 말들이 부지불식간에 생각나는 한낮 오후에 말이다.  나는 간혹 도시의 잉여 공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시들어가는 삶의 모습을 목도하곤 한다.  이 건조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마치 생명을 잃은 나뭇가지처럼 금방이라도 와삭 부서질 듯한 노인의 시선을 마주 대하고 있노라면 '어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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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낮에 도시의 작은 공원을 거닌 적이 있는지.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 등 상투적인 말들이 부지불식간에 생각나는 한낮 오후에 말이다.  나는 간혹 도시의 잉여 공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시들어가는 삶의 모습을 목도하곤 한다.  이 건조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마치 생명을 잃은 나뭇가지처럼 금방이라도 와삭 부서질 듯한 노인의 시선을 마주 대하고 있노라면 '어서 빨리 가을이 와야 할 텐데'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빌딩에 가로막혀 손바닥만한 허공일지언정 누구에게도 제 영역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말매미의 악다구니 울음이 공원에서 종일 떠나지 않고, 등 굽은 노인들이 옹기종기 공원 벤치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었다.  이따금 큰소리가 오가고 대판 싸움이라도 벌어지려나 보면 말매미의 소음 때문인지 갈수록 청력이 떨어지는 까닭인지 메마른 시간만 한나절 흔들릴 뿐 이렇다 할 싸움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지근거리의 기척에도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는 그들만의 독백이 한여름 도시 공원을 떠돈다.  도시의 잉여 공간과 같은 공원 한켠에서.

 

윤대녕의 신작 에세이집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떠벌리면서도 나는 정작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  분명 다른 책들도 읽어보았을 텐데 윤대녕 하면 줄곧 <대설주의보>만 떠오른다.  선물 상자의 뚜껑을 열고 바닥까지 샅샅이 살폈으면서도 혹시 몰라 상자를 높이 들고 밑면까지 확인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나는 천천히, 한 발 한 발 아주 천천히 그의 공간 속을 걷는다.

 

"제 아무리 바다라 할지라도 프레임 속에 가두어놓으면 곧 공간으로 변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순간 시간의 지속은 멈춰지고 현재는 삽시간에 과거로 환원되며 풍경은 추억으로 변한다.  모든 사진이 실은 죽음의 기록인 것도 다 이 때문이다."    (p.66)

 

공간은 장소와는 달리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한시성을 전제로 한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유년기의 공간을 중년의 작가는 이제 아프게 기억한다.  폐허의 기억들.  닿을 수 없는 시간들.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에서 작가는 고향집, 노래방, 바다, 술집, 영화관, 우체국 등 작가의 삶과 연계된 사적인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작가의 지난했던 삶과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집필을 위해 옮겨다니던 수많은 공간들과 만나게 된다.

 

"흑백으로 각인된 골목의 풍경들은 내 육체 속에 숲의 잔해처럼 남아 있다.  비록 어두웠던 기억일지라도 내게는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의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저 낯선 그림자들이 서성대는 익숙한 공간으로 말이다."    (p.106)

 

공간은 태생적인 한계를 품고 있다.  내가 자주 다니던 술집, 첫사랑의 연인과 함께 들렀던 영화관 등은 개개인의 추억과는 상관없이 소멸하거나 변화를 거듭한다.  그것은 오직 기억해야 할 만인의 역사가 아니라 은밀함 속에서 사라져가는 개인의 역사일 뿐이다.  삶은 때로 푸근한 인상의 안주인처럼 안주를 허락하다가도 느닷없는 퇴거를 표독스럽게 명령하기도 한다.  예외란 있을 수 없다.  잊혀진 공간에 넋두리처럼 나의 기억을 한나절 풀어놓으면 맑은 눈물처럼 정화될지, 그런 날 꿈속에서 내일은 탄산수처럼 투명한 공기방울로 나를 맞아줄지, 모르겠다.

 

"지나고 나면 삶은 한갓 꿈으로 변한다고 했던가.  돌아보니 정말이지 모든 게 하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내가 머물렀던 곳들을 가끔 찾아가보았다.  짐작했듯 대부분의 공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곳에는 마음의 텅 빈 장소(場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p.254 '작가의 말' 중에서)

 

오후에는 별안간 소나기가 내렸다.  도시의 잉여 공간과 같은 공원 한켠에는 있어야 할 메마른 시선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독백들이 잔영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공간에서 나는 내일 있을지도 모를 죽음을 더듬고 있다.  여기에 머물렀던 등 굽은 노인들을 생각하며.

이달의 사락 s*****l 2014.07.31.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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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 장소가 공간이 될 때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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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 장소가 공간이 될 때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람들이 가득 운집해 있는 광장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듯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새삼스러운 감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더불어 아직도 내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장소를 공간화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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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 장소가 공간이 될 때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람들이 가득 운집해 있는 광장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듯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새삼스러운 감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더불어 아직도 내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장소를 공간화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적인 욕망이자 개방 지향적인 구조가 아닌가 싶다. -252

 

 사람들에게 삶의 온갖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비의를 전달해주는 존재, 우체부 같은 작가 윤대녕이 쉰 살의 문턱을 넘어서며 써낸 글들은 여러번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분명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데도 언뜻 언뜻 내 모습인 양, 내 마음을 거기에 얹어 읽어가게 된다.

스스로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발굴해내고 거기 쌓인 더께들을 털어내자 장소에 불과했던 곳들은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면서 선뜻 꺼내기 힘들었을 과거의 일들을 어렵게 불러낸 보람이 있었던 게지...나같은 일반 독자의 마음에 한 점 파문이 일게 만들 정도인 것을 보면.

 

 

작가이기에 이런 웅숭깊은 글이 나온 것인지, 쉰을 마주보며 썼기 때문에 깊이가 남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쉰이 되어도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뒤의 말은 쓰나마나 한 것이겠고, 작가이기에 라는 말은 그의 글이 주는 특별한 감동을 다소 낮잡아 쓰는 말인 것 같아 송구하다.

 

그가 불러모은 공간들은 다양하다.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다가 하나씩 꺼내 썼는지 마냥 신기할 정도이지만 작가는 그 일을 해냈고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즐거움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이 한데 지져지고 볶아지는 공간인 부엌을 불러왔고,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아득하고 영원한 공간으로서의 어머니를 "늙은 그녀"라 낯설게 부르며 기억하고 있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시절로 함축되는 공간인 영화관에서의 추억도 아련하게 떠올리고 있었고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으로 도서관을 이름지었다.

 

과거와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진첩을 뒤적이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사진 속 인물과 장소를 여봐란 듯이 들이대며 점점 내 앞으로 떠오른다.

사진 속 장면들은 대개 행복한 기억들을 담고 있으면서 나중에까지 꼭 잊지말아 줄 것을 조용히 강요한다.

아니, 그럼.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은 기억들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내 스스로 떠올리기 싫어 일부러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기억의 어딘가에 우겨넣은 다음 꼭 걸어잠그고서 온몸으로 막고 서 있었던 그 기억은...다시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 아팠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서 뭐하게?

에이, 찾지 마.

그냥 잊어.

 

공간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이 방법은 작가가 시도한 것인데, 함께 읽어나가면서 내 과거를 갈무리했던 방식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영화관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봤다고 했던가? 거기서 애틋한 사랑의 기억도 함께 건져올렸다던가?

 

 

어쩌다가 이렇게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건드려진 부위는 툭 째고 꽉 짜서 소독하고 반창고를 발라두어야 한다.  그럼 가끔 호호~ 하고 불어 주면서 새살 나기를 기다리는 희망이라는 것을 붙잡고 살아가게 된다.

 

"그 "영화관과 "그 "만화방과 옛날 내가 살던 "그 "집과 우리 동네 "그" 도서관.

지금은 사라지거나 변형되었을 그 공간들로부터 아련한 꿈과도 같았던 시절들을 복원하는 과정은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삐그덕. 그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살짝 열린 문을 들어갈지 닫고 돌아설지는 다시 나의 몫이다.

무수한 고심 끝에 힘겹게 열고 보니 입맛이 쓰다.

다디단 사탕 하나 물고 ...힘을 내야지.

 

 






 

YES마니아 : 골드 s*******e 2016.04.2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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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한갓 장소가 공간이 될 때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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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람들이 가득 운집해 있는 광장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듯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새삼스러운 감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더불어 아직도 내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장소를 공간화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적인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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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람들이 가득 운집해 있는 광장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듯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새삼스러운 감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더불어 아직도 내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장소를 공간화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적인 욕망이자 개방 지향적인 구조가 아닌가 싶다. -252

 

 사람들에게 삶의 온갖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비의를 전달해주는 존재, 우체부 같은 작가 윤대녕이 쉰 살의 문턱을 넘어서며 써낸 글들은 여러번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분명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데도 언뜻 언뜻 내 모습인 양, 내 마음을 거기에 얹어 읽어가게 된다.

스스로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발굴해내고 거기 쌓인 더께들을 털어내자 장소에 불과했던 곳들은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면서 선뜻 꺼내기 힘들었을 과거의 일들을 어렵게 불러낸 보람이 있었던 게지...나같은 일반 독자의 마음에 한 점 파문이 일게 만들 정도인 것을 보면.

 

 

작가이기에 이런 웅숭깊은 글이 나온 것인지, 쉰을 마주보며 썼기 때문에 깊이가 남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쉰이 되어도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뒤의 말은 쓰나마나 한 것이겠고, 작가이기에 라는 말은 그의 글이 주는 특별한 감동을 다소 낮잡아 쓰는 말인 것 같아 송구하다.

 

그가 불러모은 공간들은 다양하다.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다가 하나씩 꺼내 썼는지 마냥 신기할 정도이지만 작가는 그 일을 해냈고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즐거움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이 한데 지져지고 볶아지는 공간인 부엌을 불러왔고,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아득하고 영원한 공간으로서의 어머니를 "늙은 그녀"라 낯설게 부르며 기억하고 있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시절로 함축되는 공간인 영화관에서의 추억도 아련하게 떠올리고 있었고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으로 도서관을 이름지었다.

 

과거와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진첩을 뒤적이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사진 속 인물과 장소를 여봐란 듯이 들이대며 점점 내 앞으로 떠오른다.

사진 속 장면들은 대개 행복한 기억들을 담고 있으면서 나중에까지 꼭 잊지말아 줄 것을 조용히 강요한다.

아니, 그럼.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은 기억들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내 스스로 떠올리기 싫어 일부러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기억의 어딘가에 우겨넣은 다음 꼭 걸어잠그고서 온몸으로 막고 서 있었던 그 기억은...다시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 아팠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서 뭐하게?

에이, 찾지 마.

그냥 잊어.

 

공간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이 방법은 작가가 시도한 것인데, 함께 읽어나가면서 내 과거를 갈무리했던 방식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영화관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봤다고 했던가? 거기서 애틋한 사랑의 기억도 함께 건져올렸다던가?

나 또한 혼자 영화보기를 즐겼던 그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부산 남포동의 국도극장에서 조조영화를 한 편 보고 학교 가서 수업을 들었거나 학교 수업 마치고 보수동 책방골목의 지하 만화방에 틀어박혀 순정만화에 폭 빠져 눈이 벌개지고 머리가 멍해질 즈음에야 머리를 들었던 일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교 시절 참고서를 싼 값에 마련하겠다는 생각에 보수동 책방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무작정 전과목 참고서며 문제집을 사갔는데, 집에 가서 보니 너무나 시커먼 연필 흔적이 많이 있어서 교환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이 그 집 같고, 이 아저씨가 그 아저씨 같아서 그만 골목 한복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 겨우 기억을 더듬어 새 참고서로 바꾸었던 ...아주 옛날의,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 나는 이야기.

 

작가는 도서관에 대한 첫인상을 엄숙하고 권태롭고 음울한 사서의 표정 때문에 납골당같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 첫인상은 비슷했으나 이유는 달랐다.

음식점을 하며 하루종일 붙어 있던 부모님은 싸우는 일이 잦았는데,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 그날도 역시 분위기가  쎄~ 한 것이 폭풍의 눈 속으로 걸어들어간 느낌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엄마가 아빠에게 들리지 않게 소곤거리며 "도서관에 가 있어"라고 했다.

우당탕 퉁탕. 그릇 던져지는 소리와 엄마의 "악" 소리가 가방을 멘 채 몇 발짝 걸어나간 내 등뒤로 들려왔다.

눈을 질끈 감고 도서관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엄마의 비명을 등뒤에 매달고 생전 처음 문을 들어서게 된 도서관은 너무도 고요했다.

차라리 소리치고 그릇들이 날아다니는 그 난장판에서 엄마를 꼬옥 안아주고 있을 걸.

두려우면서도 가책이 되는 그 마음을 부여잡고 내내 고요하고 약간은 어둑한 책의 그늘에 숨어 진짜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기다리던 날의 기억은...차마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는데.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헤집어지자 더욱 아프고 쓰렸다.

과거의 삶을 꾹꾹 눌러 밟아놓고 아직 제대로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해 없었던 척, 숨죽여 살아왔던 내 비겁한 행동이 바늘 끝으로 툭 건드렸을 뿐인데 와르륵 쏟아져나오는 종기고름처럼 흘러나와 어느새 바닥에 흥건하다.

언젠가는 한 번쯤.

유약하게 삐익 삑 울고 있던 그 약하고 불쌍한 소녀를 찾아내서 토닥여 주어야지.

했는데, 그 때가 바로 지금인가.

 

이제 둑은 무너뜨려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작가가 건드린 무언가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몇 년 째 찾아가지 않고 있는 내 아빠. 지금 나의 그 무심함은 아마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무서운 길을 혼자 허위허위 걸어가던 허깨비같던 어린 아이의 가슴에 남아 있었던 상처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다가 이렇게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건드려진 부위는 툭 째고 꽉 짜서 소독하고 반창고를 발라두어야 한다.  그럼 가끔 호호~ 하고 불어 주면서 새살 나기를 기다리는 희망이라는 것을 붙잡고 살아가게 된다.

 

그 영화관과 그 만화방과 옛날 살던 그 집과 도서관.

지금은 사라지거나 변형되었을 그 공간들로부터 아련한 꿈과도 같았던 시절들을 복원하는 과정은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삐그덕. 그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살짝 열린 문을 들어갈지 닫고 돌아설지는 다시 나의 몫이다.

무수한 고심 끝에 힘겹게 열고 보니 입맛이 쓰다.

다디단 사탕 하나 물고 ...힘을 내야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s*******e 2014.08.1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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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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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작가 윤대녕을 익숙하고 친밀하게 느끼는 이도 있겠지만, 내게 작가 윤대녕은 그가 누군지 한참 기억을 뒤적이는 수고로움을 할애한 뒤에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인물입니다. 이 글의 시작을 작가 윤대녕이 낯설다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하기로 마음을 정하면서, 어떻게 작가 윤대녕을 모를 수 있는지 질책 당할까봐 잠깐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낯선 작가의 책 한 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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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작가 윤대녕을 익숙하고 친밀하게 느끼는 이도 있겠지만, 내게 작가 윤대녕은 그가 누군지 한참 기억을 뒤적이는 수고로움을 할애한 뒤에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인물입니다. 이 글의 시작을 작가 윤대녕이 낯설다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하기로 마음을 정하면서, 어떻게 작가 윤대녕을 모를 수 있는지 질책 당할까봐 잠깐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낯선 작가의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단지 작가가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찾는 단순한 작업을 넘어서 작가의 또 다른 작품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아마도 그가 한국문학에 차지하는 비중이 느껴져서겠지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2014.06.12. 현대문학)』은 작가 윤대녕이 월간 「현대문학」에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2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p.253)입니다. 고향집, 노래방, 부엌, 영화관, 도서관, 우체국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소와 그 장소에 작가만이 간직하고 있던 개인적인 기억들을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풀어놓습니다. 23개로 나뉜 작가의 기억 조각들 중 대부분의 글은 작가를 알지 못하는 내게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글은 작가의 기억의 도움을 받아 잊고 있던 나의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가와 내가 같은 장소에서 다른 기억을 공유하게 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바다, 영화관, 도서관을 떠올리면 순간적으로 작가 윤대녕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작가 윤대녕의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과거 내게 소중했던 공간은 어디였는지, 그 공간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나는 항상 지금 바로 해야 할 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읽어야 할 책,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 등 다가올 미래의 계획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왔습니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있을 수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인간의 삶은 모든 시간과 공간이 연결되어 이루어지는데도 말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 개인의 역사서입니다.

 

 

이 책의 읽기가 마무리될 즈음, 나는 어쩌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아 지워져 버린 과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기억과 다시 마주하면 아직도 찾지 못한 ‘존재의 의미,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p.254)

 

b******s 2017.05.2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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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사라져도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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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은 소설과 다르게 작가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소설도 비슷할까. 소설에서는 작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만 잘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가끔 작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낄 뿐이다. 소설을 보면서는 거기 나오는 사람과 자신을 겹쳐서 볼 때도 있는데, 나는 이것도 자주 하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못 봐서(비슷한 건 아주 조금일 때가 많다). 갑자기 이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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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은 소설과 다르게 작가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소설도 비슷할까. 소설에서는 작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만 잘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가끔 작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낄 뿐이다. 소설을 보면서는 거기 나오는 사람과 자신을 겹쳐서 볼 때도 있는데, 나는 이것도 자주 하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못 봐서(비슷한 건 아주 조금일 때가 많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삶은 소설 재료로도 쓰지 못하겠구나 하는. 어쩐지 조금 슬프기도 하다. 예전에 어릴 때를 생각하고 뭔가 써 본 적 있는데 그저 그랬다. 그것을 좀더 재미있게 쓰면 좋을 텐데, 어려운 일이다.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어렵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산문에서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보면 자신은 어땠는지 생각하기도 한다. 소설 볼 때도 그러는 듯하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과 나를 겹쳐보는 것은 하기 어려워도 나는 어떤지 생각하는구나.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따라 책을 보는 게 다를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처음에는 모두 읽는 사람일 뿐일지도. 비평하는 사람은 다르게 읽을 것 같다는 거다.

이 책을 읽다보니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곳들이 떠올랐다. 나는 어디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마음에 드는 공간도 없다. 공간은 사람이 있을 때 그곳에 있지, 사람이 없으면 그곳도 사라진다고 한다. 사람은 바로 자신과 누군가겠지. 내가 사는 곳에서 다른 곳(위쪽)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려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다. 지난날 이야기다. 지금은 배 타고 역에 가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사는 곳에도 역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멀리까지 가지 않았다. 지금은 가는가보다. 옮긴 역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아직 한번도 안 가봤다. 배가 아닌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러 가도 되었다. 예전에는 그 배를 타는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지금은 배가 아예 없어졌을까. 몇해 전(이것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에 배를 탔을 때는 사람이 아주 적었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배를 타고 내리는 풍경 자체가 사라져버린 듯하다. 어디에 자주 다니지도 않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사는 곳이 섬이어서 배를 타야 했던 건 아니다. 그때는 배를 타고 다른 지방 역에 가는 게 나았다. 밑으로 가려면 다른 방법으로 가야 했다.


             

             
                     역이 있던 곳 빈 터다, 아니 오래전에 가 봐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비밀이랄 것은 없지만 사진을 보면 내가 어디에 사는지 알겠다
                            나무는 역에서 왼쪽이고 더 왼쪽으로 들어가면 시장이다



내가 사는 곳에 있던 역은 다른 곳으로 옮겨서 예전에 있던 역은 없어졌다. 예전에 나는 역은 그대로고 철길을 놓는 건지 알았다. 철길은 다른 곳에서 이곳과 이어졌겠지. 예전 역은 작아서 비둘기호가 다니고 이게 사라지고 무궁화호가 되기도 했다(가끔 화물차도 다녔다). 이름만 바뀌었지 가는 곳은 같았다. 어떻게 이것을 아느냐 하면, 그 기차를 타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역 바로 옆은 재래시장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와 함께 시장에 다니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시장에 안 가게 되었다. 이제는 시장까지 가지 않아도 물건을 살 수 있다. 이것은 어디나 비슷하겠지. 예전에는 시장이 있는 곳이 내가 사는 곳 중심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곳이 딱히 없는 듯하다. 이게 좋은 건지 아쉬운 건지. 그래도 아직 그곳에는 사람이 산다. 많은 사람이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은 시장에 가겠지. 아침에 기차를 타면 장사하는 사람이 많았던 듯하다. 시장에서 물건을 떼어가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시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극장 두 곳이 가까이에 있었다. 내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자주 간 건 아니다. 학교에서 단체로 볼 때 갔다. 나 혼자 극장에 간 적 있다. 그때 왜 혼자 갔을까. 나는 혼자 가는 것을 싫어해서 극장에 다니지 못한 것 같다. 그런 곳에는 누군가와 같이 가야 할 것 같아서. 그것도 있겠지만 혼자서라도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던 거겠지. 친구와 같이 간 적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영화를 봤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접속>만 생각난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날도 있는데 한번도 못 가 봤다. 거의 어린이와 엄마가 올 것 같아서. 아이와 엄마가 보기에 좋은 것만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못 가서 아쉬운 건 아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영화를 해주었지만 지금은 그게 없어졌다. 그게 없어지기 한두해 전에 안 보게 되었지만 아쉬운 점이다.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면 인터넷으로라도 봤겠지. 그러지도 않으면서 아쉬워하다니. 나는 영화를 찾아서 보기보다 기회가 되면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가보다. 극장이 있던 곳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그곳까지 안 가 봐서.

시내에는 책방도 있었다. 예전에는 여러 곳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다. 책방은 집에서 멀어서 가끔 갔는데, 그곳에서 친구와 만나기도 했다. 도서관은 예전에 집에서 먼 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그 도서관 건물은 무엇으로 쓸까. 예전 도서관 뒷쪽 은행나무밑에 햄스터를 묻었는데. 볼 일이 없으면 가지 않는 곳이 많구나. 중학생 때는 자주 못 샀지만, 고등학생 때는 테이프를 좀 샀다. 레코드 가게에 몇번 갔더니 그곳에서 일하는 언니가 나를 알아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테이프 값을 깎아주었다. 그곳도 시간이 흘러서 사라졌다. 일하는 언니와 이야기를 별로 나누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쉽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한 기억은 거의 없구나. 친구와 함께 간 바다가 있기는 한데. 나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좀 신기하다. 윤대녕은 글을 쓰려고 떠난다고 한다. 나하고는 반대다. 나는 다른 곳에서는 책도 못 읽고 글도 잘 못 쓴다. 집에서 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이것은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 마지막에 글쓰는 이야기가 되다니. 나는 작가보다 짧은 동안 지난날을 생각했다. 이런 시간 괜찮은 듯하다. 떠올릴 기억이 얼마 없어서 조금 아쉽다. 이것은 앞으로도 비슷할 것 같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까.



희선




☆―

“가장 인상에 남은 장면은 아빠가 혼자 빗속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었어요. 근데 그 모습이 저는 왠지 쓸쓸해 보이던데, 이상하죠?”

이상할 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 있던 공간이, 우리가 그 자리를 떠남과 동시에 흔적 없이 사라질 거라는 어쩔 수 없는 예감 때문이란다, 얘야.  (74~75쪽)


“네, 우체부 같은 작가가 되어 돌아가고 싶습니다. 사람들한테 온갖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비의를 전달해주는 게 되어서 말이죠. 그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것뿐입니다.”  (219쪽)


이달의 사락 n***8 2015.05.08.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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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공간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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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문득 문득 지나온 날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들 속에 떠오르는 얼굴들.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 그 공간들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에는 큰 맘을 먹고 길을 나선다. 추억 속의 공간을 찾아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몇 번인가 찾아 갔는데, 그곳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친구의 집이 있던 골목길을 둘러 보기도 하고, 내 몸에 비해서 큰 책가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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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문득 문득 지나온 날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들 속에 떠오르는 얼굴들.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

그 공간들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에는 큰 맘을 먹고 길을 나선다. 추억 속의 공간을 찾아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몇 번인가 찾아 갔는데, 그곳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친구의 집이 있던 골목길을 둘러 보기도 하고, 내 몸에 비해서 큰 책가방을 메고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내리던 언덕길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또렷하게 생각나기도 했다.

작년에는 또다른 추억이 담긴 부산의 옛 동네를 찾아 갔었다. 내가 살았던 서울의 동네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반하여 잠깐 방학을 이용해서 가곤 했던 그 동네는 너무도 변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비슷한 곳을 찾았는데, 어딘지 옛 기억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동네 어귀에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 보니 내가 찾는 곳은 한 두 블럭은 옆으로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추억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내 청춘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찾아 갔다. 얼마만인가?  교문에서 강의실로 가는 길에도 대학생이 내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교정의 벤치에도, 원형 운동장에도, 학생회관에도, 도서관에도 그때의 내가 그 속에 오롯이 움직이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대학병원은 우리 엄마가 마지막 순간을 보내신 곳이기도 하니, 장례식 날 엄마를 떠나 보내던 그 날의 내가 그 곳에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머물렀던 공간들, 스쳐갔던 공간들, 윤대녕 작가는 이곳들을 '사라진 공간들'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사라진 공간'이 아닌  내 기억 속에 멈추어 버린 공간들로 남아 있다.

물론, 그 공간들 속에서 잊혀졌던 꿈들은 되살아난다.

이 책은 작가인 윤대녕이 월간 <현대문학>에 2011년 10월 부터 2013년 9월까지 연재했던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작가는 아마도 나이 50 이 넘어가는 즈음에 자신이 살아 왔던 삶을 되돌아 보면서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공간들에 대한 단상들을 이렇게 글로 썼을 것이다.

누구나 사라진 공간들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고향집이리라. 내 기억 속의 고향집이란 즐겁고 행복했던 곳이지만 작가에게는 유년기에 겪었던 부모와의 잠깐의 이별로 인하여 상처와 고통이 되살아나는 공간이다. 오랫동안 찾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는 것일까. 스치듯 그곳에 가보게 되는 곳이 고향집이다.

그리고 이어서 '늙은 그녀'라고 지칭하는 어머니가 살아왔던 수많은 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셋방살이 끝에 장만한 허름했던 어머니의 집,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어머니는 손때가 묻은 그 집을  떠나게 되지만, 잊지 못하고 그 집을 찾아가 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실린 어머니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 우리가 그 집을 목수한테 팔았잖니, 근데 한 달 사이에 번듯한 별장처럼 고쳐놨더구나. 마당에 따로 들였던 방도 치워버리고, 거기에 넓은 화단까지 만들어놨더란 말이다. " (p. 29)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서 조차 사라질 수 없는 그런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생각하면 되살아나는 꿈이 있다.

어떤 여행작가는 마음이 우울하면 공항을 찾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연과 필연이 마주치는 공간은 휴게소, 공항, 기차역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공간에서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공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하카페, 노래방, 바다, 골목길, 사원들. 역전다방, 경기장, 음악당, 여관들, 부엌, 목욕탕, 영화관, 자동차, 도서관, 우체국, 공중전화부스, 병원, 광장 등....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났던 많은 공간들까지.

아마도 작가와 비슷한 연배인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은 있는지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고전음악감상실, 선술집에 대한 기억들이 어느새 또렷하게 살아난다. 명동의 필하모닉은 나에게도 되살아나는 꿈들이 있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 모든 존재는 시공간의 그물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겹치는 지점에서 매 순간 삶이 발생하고 또한 연속된다. 이렇듯 시간의 지속에 의해 우리는 삶의 나이를 먹어간다. 한편 공간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과거에 내가 (우리가 )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p.p. 253~254)

그렇다. 우리가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이 세월에 따라 퇴색하고 잊혀질  뿐이지, 우리가 살아왔던 그 공간에 가게 되면 오롯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간들 속에서 오래전에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내내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살았던 그 공간들을 찾는 작업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날, 사라진 공간들을 찾아서 나들이를 해야겠다.

 

이달의 사락 n******5 2014.08.12.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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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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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무살때 인가 처음 은어 낚시 통신을 통해 윤대녕의 책을 접한후엔 발간되는 거의 대부분의 책을 손에 넣은것 같다.  대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그러면서도 여운도 있고 이것저것 나와는 취향이 맞는다고 해야 하나 암튼 이시대의 작가들중에 가장 애정하는 작가인듯 하다 하여 이작가가 향유 하는것들에 대한 호기심도 제법 많았나보다 .  칼과 입술, 모든극적인 순간들을 읽으며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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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무살때 인가 처음 은어 낚시 통신을 통해 윤대녕의 책을 접한후엔 발간되는 거의 대부분의 책을 손에 넣은것 같다.

 

대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그러면서도 여운도 있고 이것저것 나와는 취향이 맞는다고 해야 하나

암튼 이시대의 작가들중에 가장 애정하는 작가인듯 하다

하여 이작가가 향유 하는것들에 대한 호기심도 제법 많았나보다 .

 

칼과 입술, 모든극적인 순간들을 읽으며 셋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것도 나름의 재미인듯하다.

 

제주도 나도 좋아하는데.. 가고 싶구나

h***3 2017.05.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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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지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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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집이 비슷하게 생겼었다. 약간의 붉은 끼를 띤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은 하나같이 야트막했다. 심심하면 개미가 출몰해 자는 나의 온몸을 간지럽혔고, 그보다 더 자주 매캐한 연탄 냄새를 맡으며 시린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야만 했다. 이제는 서울보다도 어쩌면 더 번화가가 됐을 그곳이지만, 내 기억 속 그곳은 여전히 개발을 기다리는 퇴폐적인 분위기로 남아 있다. 나이 서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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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집이 비슷하게 생겼었다. 약간의 붉은 끼를 띤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은 하나같이 야트막했다. 심심하면 개미가 출몰해 자는 나의 온몸을 간지럽혔고, 그보다 더 자주 매캐한 연탄 냄새를 맡으며 시린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야만 했다. 이제는 서울보다도 어쩌면 더 번화가가 됐을 그곳이지만, 내 기억 속 그곳은 여전히 개발을 기다리는 퇴폐적인 분위기로 남아 있다. 나이 서른이 넘으니 남아 있는 것보다 사라진 것이 더 많아졌다.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즈음 지나 내 나이가 오십 대에 이르렀을 땐 천지개벽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남아 있는 게 없을 것만 같다. 그 때 즈음이면 모든 걸 그리움이라 말할 수 있는 여유가 내게도 생기려나. 윤대녕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지난날 나를 스쳐지나간 모든 걸 떠올리느라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였고, 그것도 지난날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 태생의 나에겐 고향이라 부를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고는 한다. 어른이 돼 고향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예전과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고향은 아마도 작가가 기억하는 형태의 무언가가 흡사하지 싶다. 그의 고향은 작가라는 꿈을 부정 당하는 공간이었다. 집안의 기둥이라 할 만한 인물이었던 조부에게 모두가 순응했는데 오로지 백부만이 다른 삶을 택했다. 나이가 들어도 철들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었던 듯 백부의 방황은 끊이지 않았다. 소리 없이 집을 나가서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갑자기 나타나고, 과수원에 불까지 지르는 등의 기행을 일삼는 백부를 닮았다고 기꺼이 인정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백부가 저자의 등단이 자신 덕분이라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남겼을 때 저자는 과연 어떠한 느낌이 들었을지. 사실 여부를 떠나 부인하고픈 마음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리 단순히 잘라낼 수 없는 법이다. 저자는 백부와 자신이 어느 정도는 일치한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거리를 두었던 지난날에 한 발씩 다가서기 시작한다.

참으로 낡아서 아무도 찾으려 들지 않았던 폐허와도 같았던 공간. 그곳에서 가장 따스한 기운을 느껴야만 했던 저자는 진정 행복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보다 그의 어머니로부터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편리함의 대명사 아파트를 끝끝내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당신의 시선은 지난날에 콕 박혀 있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옛집을 끊임없이 입에 담는 그녀의 모습이 곧 자신이었다는 고백과 함께 저자는 본격적으로 과거로의 여행에 나선다.

기억과 현실은 결코 합치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낭만을 노래했던 장소가 결코 기억만을 더듬어서는 찾을 수 없는 어딘가였음을 발견하는 자는 당연히 쓰라림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기억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추억은 삶에서 더욱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안내를 도맡아줄 것을 부탁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의 집념을 엿보았다. 그 곳에서 함께 인생을 논하던 이들이 급기야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도 담담히 기술한 대목에서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묻기도 했다. 살아있는 자보다 떠난 자가 더 많아지는 시점이 오면 내 인생이 과연 어떻게 느껴질지. 그 때 즈음이면 현재나 미래보다는 과거를 노래하는 일이 조금 더 마음 편해지고, 아예 과거에 안주하면서 그에 관한 글만 쓰게 되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도 조금은 들었다.

기본적으로 나이든 자에게 허락된 것이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글은 묵직했다. 그럼에도 평소 말이 그리 많지 않고 관계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 곳곳에서 드러난 덕분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한 번도 뵌 적 없는 이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유대감마저 느꼈다. 과거를 머금어 현재와 미래를 수놓으면서도 여전히 낯선 삶을 기대한다는 그. 그는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이달의 사락 q*****2 2014.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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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공간들 [산문-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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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좋은 점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겪었을 것이나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을 대신 기억해 주는 덕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런 기분이었다. 달콤한 기억, 작가에게는 서글프고 쓸쓸하고 마음 아팠던 곳이라고 해도, 설령 내 기억에서조차 그런 빛깔이었다고 해도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래도 괜찮은, 남아 있어서 더욱 좋은 달콤한 기억들. 그래서 나는
"윤대녕의 공간들 [산문-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내용보기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좋은 점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겪었을 것이나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을 대신 기억해 주는 덕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런 기분이었다. 달콤한 기억, 작가에게는 서글프고 쓸쓸하고 마음 아팠던 곳이라고 해도, 설령 내 기억에서조차 그런 빛깔이었다고 해도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래도 괜찮은, 남아 있어서 더욱 좋은 달콤한 기억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꽤 행복했다. 작가처럼 내 젊은 날이 진작에 설렁 지나갔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조차 흐뭇했다.   

 

내가 이 작가를, 이 작가의 글을 어찌하여 이토록이나 좋아했던가.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나오는 대로 읽어버리고, 다 읽은 책을 한곳에 모아 놓고 책등을 쓰다듬으면서 왜 그리도 마음 뿌듯했던가. 작가는 모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홀로 충분히 느꼈던 동질감 혹은 동경 때문이었을까. 내가 가지고 싶었던 방랑이나 꿈꾸었던 상실감을 대신 보여 주는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누렸던 감정의 사치스러움. 그렇게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부터 이 책에 이르기까지 나 또한 그와 함께 나이들어 왔으리라.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 꽤 많이 알게 해 준 책이다. 그의 글의 사랑스러운 환상 세계는 그의 이러한 결핍에서 비롯되었던 것일까. 약간 가여웠고 그로 인해 그의 작품 세계가 풍부해질 수 있었다는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독자로서는 아무래도 읽을 수 있는 글의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그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도록.

YES마니아 : 로얄 j***6 2014.07.20.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