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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이민아 궁리출판/2025.6.25. sanabram
<채링크로스 84번지>는 ‘마크스 & Co. 중고서적’이 있었던 영국 런던의 주소지다. 지금은 표지석만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중고서적의 흔적을 찾아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마크스 중고서적 직원과의 편지는, 헬렌 한프가 미국의 뉴욕에서 토요문학평론지에 실린 절판 서적을 전문으로 다룬다는 광고를 보고 구하려는 책의 목록을 적어 1949년에 보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채링크로스 84번지>는 헬렌이 1969년까지 20년간 마크스 중고서적 직원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낸 서간집이다. 단순히 책을 주문하고 대금을 지불하는 것을 넘어 2차대전이 끝나 배급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서점의 직원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보내면서 우정을 쌓게 되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헬렌 한프는 평생 뉴욕에서 글을 썼지만,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다. <채링크로스 84번지>라는 서간집이 발간되어 인기를 얻어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면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많은 어린이 책을 썼으며, <Q의 유산>의 저자로서 1992년에 <뉴욕에서 온 편지 : BBC 여성의 시간>을 펴내기도 했다.
“토요문학평론지에 실린 귀하의 광고를 보니 절판 서적을 전문으로 다룬다고 하셨더군요. 저는 ‘희귀 고서점’이라는 말만 봐도 기가 질리곤 하는데, ‘희귀’하면 곧 값이 비쌀 것이라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희귀 고서적에 취미가 있는 가난한 작가입니다.(p.9)” 이렇게 시작한 중고서적 주문편지에는 목록 중 깨끗하면서 한 권당 5달러가 넘지 않는 중고책 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구매 주문으로 여기고 발송해달라고 했다. 첫 거래가 만족스럽게 되자 점차 여러 서적을 주문하게 되고, “아름다운 책, 고맙습니다. 책장 전체가 금테두리로 된 책은 가져보지 못했어요. 이 책이 제 생일에 도착했다는 사실, 믿어지세요?(p.50)”라는 등의 편지를 보내게 된다. 마크스 직원이 때로는 새로 들어온 중고서적을 알리기 위해 “막 한 개인의 서재를 통째로 사들였는데, 거기에 아주 깔끔한 윌턴의 낚시의 명수가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다음 주에는 발송 할 수 있을 걸로 봅니다.(p.80)”와 같은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현재 시대와는 다른 아날로그 시대의 전형적인 정보 교환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적인 정서가 마음에 와 닿는다.
“친애하는 헬렌, 건달걀 소포 고마워요. 금요일에 받았어요. 그리고 아주 기뻤어요. 왜냐하면 얼마 전에 달걀이 배급에서 제외된다고 들었거든요.(p.81)” 이 편지를 통해 전쟁이 끝난 후 영국에서는 부족한 생필품을 배급제로 생활고를 극복하였고, 상대적으로 풍부한 물자를 가진 미국의 헬렌은 안타까운 마음에 필요한 생필품을 보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편지 곳곳에서 어렴풋하게 생활의 푸념이 나타나기도 한다. 헬렌 한프는 희곡 작가로 시작하여 방송 대본, 잡지 기사, 백과사전 항목, 어린이 역사책 등 닥치는 대로 글을 쓰면서 생활을 영위 하지만 결코 여유롭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영국에 있는 중고서적 직원들을 도우려 노력하고, 직원들은 고마움에 답하기 위해 헬렌의 주문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편지 여기저기에 묻어나 있다. 이런 상황이 맞물려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편지를 통해 우정을 나눌 수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 두 나라를 연결해주는 끈이 되었으리라. 요즘같이 편지를 쓰지 않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들의 정이 그리워진다.
1969년 4월 캐서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혹 채링크로소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p.145)”라는 말을 헬렌 한프가 남긴다. 그런데 오늘도 독자들이 중고서적 자리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니 헬렌은 저세상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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