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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참 많다. 전쟁이 아닌 평화는 인간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를 가만히 놓고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단어다. 평화를 위해 방어적 무력을 준비하는 것이 과연 평화일까? 라는 고민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디처럼 비폭력 저항의 정신이 진정한 평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간디와 같은 비폭력 저항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 책 ‘게릴라가드닝(원제: On guerrilla gardening)’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보면서 비폭력 정신의 한계에 대해 어느 정도 고민하게 됐다. 저자 리처드 레이놀즈는 길거리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는 것을 게릴라에 비유하며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준 전쟁과 같다는 생각이다. 공공재산이든 사유재산이든 아니면 소유가 없는 토지에 꽃과 나무를 심는 것은 아마도 가장 심하게 말하면 ‘점령’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쓰레기로 덥혀있는 공공화단이나 버려진 사유지에 꽃과 나무를 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활동 자체는 훌륭한 것이다. 버려진 땅에 꽃과 나무를 심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시간과 노력, 비용까지 모두 스스로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 왜 게릴라 처럼 활동해야 하는가? 그것은 소유와 관리라는 법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꽃과 나무를 심는 이 책의 활동가들은 절대로 자신이 활동한 땅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식물을 심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한된 토지에 대한 분쟁은 당연한 것이다. 공무원들은 계획이나 관리가 되지 않는 이런 행동에 대해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그래서 평화를 위한 이들의 활동은 결국 충돌이 발생하고 게릴라 처럼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책에서는 게릴라 가드닝의 역사에서부터 활동방법까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마치 게릴라가드닝 입문서 같다. 심지어 최근 합법화된 활동까지 소개하고 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활동을 소개하듯이.
저자는 게릴라가드닝에 대해 “게릴라 가드닝은 살아 있는 생물을 닮았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기체 운동이다. 해로운 식물이 그렇듯 게릴라 가드닝은 어느 사회의 환경이 게릴라 가드닝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지면 급격하게 발생하곤 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게릴라가드닝을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더욱 좋다. 그들이 게릴라 처럼 곳곳에 정원이나 꽃밭을 만드는 이유는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고 “내가 먹을 것은 내가 기르는 것”이며, “공동체를 위한 꽃밭! 아름다운 환경에 건강은 보너스, 땅값이 오르니 후원자가 생기다, 식물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기”라고 소개한다. (2장 내용)
다시 평화라는 단어로 가보자. 세상에 꽃과 나무를 심는 것 처럼 평화로운 활동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이런 활동도 게릴라처럼 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과연 평화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런 단어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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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은 “남의 땅을 불법으로 꽃밭으로 가꾸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원예가 가능해 보이는 장소가 있으면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땅을 판다. 이미 만들어진 꽃밭을 손보기도 하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장소를 꽃밭으로 바꾸어 놓는다. 작은 공터를 도시의 오아시스로 바꾸고 길가를 화려한 꽃밭으로 꾸미며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고 여겨지는 땅에서 곡식을 수확한다. 이런 식으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꽃밭을 만드는 것이 바로 게릴라 가드닝이다. 게릴라는 ‘작은 전쟁’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다. 대규모 정규군이 아니라 비정규 전사들이 산발적으로 벌이는 전쟁을 가리킨다. 게릴라들은 자신들의 싸움이 단순히 자기 나라에서 적군을 몰아내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싸움은 사회를 바꾸는 일을 의미한다. 그들은 모두 개인적인 동기가 있다. 정규군은 사령관의 명령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되지만 게릴라들은 사령관이면서 동시에 사병이다. 게릴라 전술이 효과적인 것은 바로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야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렇다고 하여 조직화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관료주의와 명령체계를 벗어나 있다면 게릴라 가드너들도 조직화를 할 수 있다. 게릴라 가드너의 무기창고에는 폭탄과 탄약 대신 식물이 있다. 이 무기의 프로그램 언어는 DNA이며 조건만 맞으면 바로 폭발해서 생명을 만들어낸다. 돌과 쓰레기로 뒤덮인 어느 산 하나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면 씨앗을 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런 땅은 식물을 키울 양분이 모자랄 뿐 아니라 그런 곳에 떨어진 씨앗은 햇볕에 노출되어 말라죽거니 쥐와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씨앗 폭탄은 게릴라 가든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집에서 만든 씨앗 폭탄에는 흙과 물이 들어 있어서 씨앗이 싹을 내는 과정을 돕는다. 그리고 수류탄처럼 만들어져서 다른 방법으로는 뿌리기 어려운 장소까지 닿도록 던질 수 있다. 울타리로 막혔거나 파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위험한 장소가 그런 곳이다. 이것은 승자만 있는 ‘윈-윈’ 전쟁, 버려진 공공용지를 골라서 꽃밭으로 만드는 싸움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이가, 아마도 향기까지, 승자임이 드러날 것이다. 식물이 성장해서 아름다운 절정에 이르는 모습은 확실히 승리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이 그 꽃을 거두어가겠지만, 그 절정의 시간이 승리였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원에서 자란 식물에서 얻는 씨앗도 승리다. 씨앗은 한바탕 성공적인 공격이 끝났음을 알리는 표시지만, 동시에 다음에 얻게 될 더 큰 승리를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행인이 지나가며 던지는 미소, 지나가는 자동차에서 울려오는 응원의 경적, 감사의 말은 날마다 얻는 승리다. 게릴라 가드닝을 지지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 또한 승리다. 그들이 퍼뜨리게 될 게릴라 가드닝 이야기는 더 큰 승리다. (267-272면 발췌) 승리를 거두는 반대쪽에는 패배자들이 없을 수 없다. 따라서 완전한 윈-윈 상황이란 있을 수 없다. 버려진 장소에 사람이 개입하면 야생동물들은 쫓겨난다. 야생동물만 집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부랑자, 마약 거래하는 사람, 가두 선도원처럼 퇴락한 장소가 오히려 편안한 사람들이 그렇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단편적으로 바꾸면 야생동물들은 천천히 새로운 서식지를 찾을 수 있어서 별다른 갈등을 겪지 않는다. 섬세하게 작업을 진행하면 반사회성이 덜한 야생동물 공간을 마련해서 머물도록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몇몇 야생동물의 집을 빼앗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곳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 고쳐야 할 것 - 하가 → 허가(56면) - 장소를 가리 않고 → 장소를 가리지 않고(95면) - 돈나무류(Pittosporum tenuifolium)은 → 돈나무류(Pittosporum tenuifolium)는(160면) - ‘포틀랜드 재블린’나 → ‘포틀랜드 재블린’이나(168면) - 정복을 입을 경찰관 → 정복을 입은 경찰관(217면) - 할 갑니다. → 할 겁니다.(223면) - 방문하는 사람들을 → 방문하는 사람들은(25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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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말이다. 게릴라 가드닝 게릴라의 사전적 의미는 '정규군에 속하지 않은 채 변칙적인 전투를 하는사람 또는 그 단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게릴라 가드닝이란 말 그대로 식물(혹은 꽃)을 무기로 싸우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이 싸우는 공간은 공공장소다.
한 심리 다큐프로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동네 주민들이 쓰레기를 무단투기로 골목길이 지저분해지자 구청에서는 경고문구 부착과 CCTV를 설치했다. 그럼에도 쓰레기 불법 투기가 줄어들지 않자 누군가 그 곳에 꽃밭을 가꿀것을 제안한다. 과금 경고에도 변화가 없는 사람들이 꽃을 심는다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까?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곳에는 작은 꽃밭이 가꾸어졌다. 결과는 놀라왔다. 밤새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사람들이 머믓머믓거리더니 쓰레기를 다시 가지고 돌아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꺠진 유리창 법칙과도 연관지어 설명하기도 하지만, 굳히 심리학적 지식을 빌리지 않어도 분명한 것은 꽃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게릴라 가드닝은 바로 이런 점을 자극해 사람들과 우리가 사는 공간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시작은 지저분해진 골목길이나 도심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도로, 도로변, 로터리 중앙분리대...버려진 땅, 폐허가 된 건물, 철로변...그 모든 장소에서 게릴라 가드닝이 가능하다.
책을 읽을 수록 이들의 활동이 점점 궁금해진다. 게릴러 가드너들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으며,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하는 분류와 곡식을 심으려는 두 분류로 나뉜다고 한다. 이들의 활동 기간이 매우 오래되었음이 놀라운데, 수십년에 걸쳐 활동하기도 하고 단기간에 활동하기도 하지만 무엇을 어디에 심던 게릴라 가드너에게 금지된 장소란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게릴라 가드닝의 활동을 전적으로 옹호하지만 퍼포먼스 성격이 강한 게릴라 가드닝은 반대한다. 예를 들어 도로 한복판에 드릴로 구멍을 내 나무를 심는다는 행위..같은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행동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결국 다음날 그 나무는 뿌리채 뽑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식물도 살아있는 생명체이니만큼 목적이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주의깊게 다루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식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게릴라 가느닝은 단순 조경의 목적이 우선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식물이나 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릴라 가드닝에 사용되는 식물들은 조건도 까다롭다. 우선 색과 향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멀리서도 잘보이고 향이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그늘과 바람도 견디며, 알카리성 땅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해바라기나, 데이지, 라일락, 라벤더, 안개꽃, 금잔화 같은 식물들이 많이 심겨진다.
저자는 게릴라 가드닝으로 변화된 암스테르담, 벤쿠버, 뉴옥과 같은 도시들을 소개한다. 이 도시들 역시 시작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공공용지에 식물을 심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공공기관을 변화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공공기관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남의 땅에 꽃을 심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의 작은 변화는 결국 공공기관을 움직여, 현재 벤쿠버는 법률을 수정해 도시 전역에 걸쳐 250곳의 그린 스트리트 가든을 가꾸고 있다. 습기가 많은 도시 암스테르담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게릴라 가드닝에 의해 지금은 초록이 풍부한 매혹적인 도시가 되었다. 주민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시청은 포장석을 걷어내주고. 그곳에 꽃밭을 만들 수 있다.
책에는 게릴라 가드닝의 결과물인 수많은 정원들이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는 데, 가장 눈길을 끈 사진들은 크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정원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 한 구석에 심어진 꽃 한송이, 가로수길 아래에 심어진 작은 꽃들이다. 작지만 주변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작은 울림이 전해준다.
우리가 사는 서울도 나무나 꽃보다는 회색 빛 아스팔트가 더 많이 보이는 도시다. '참 삭막하다.'라고 불평만 할 뿐 스스로 꽃을 심어볼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이 도시를 변화시키는 것은 공공기관이나 정부 뿐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되어도 된다는 것!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알게된다.
꽃이 필 수 있는 모든 공간에 씨를 뿌리는 것. 작지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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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갑다 해도 봄빛이 짙어지고 대지에는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추위를 피해 땅 속에 있던 생명들이 봄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내미는 모습은 해마다 새롭고 신기하다. 자연은 일상에 짖눌린 우리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순화하는 힘이 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대변되는 현대의 문명은 우리를 자연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삭막한 문명도시 속에 꽃과 꽃씨를 총알 삼아 작전을 펼치며 아무로 모르게 시민들 곁에 자연이 돌아오게 하는 게릴라들이 있다. 게릴라 가드너들이다. 게릴라라는 가장 전투적인 단어와 정원가꾸기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만난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단어를 책표지에서 읽는 순간 나는 반해버렸다. 게릴라가 무엇인가! 적진으로 파견되어 상황에 따라 자신이 완전하게 판단하며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전투원이다. 게릴라 가드너들도 그렇다. 자신이 작전을 펼칠 가까운 땅만 발견하면 작전의 시기와 내용, 대처방법까지도 모두 단독으로 기획하여 작전게시에 들어간다. 꽃을 심는 일이 뭐 대수라고 게릴라라고 칭할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가꾸는 땅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그들이 꽃을 심는 행위가 불법이 되는 땅들이기 때문이다. 도심의 쓰레기로 쌓여가는 주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빈 택지, 관할 구역의 경계에 있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방치된 공공용지, 아무도 가꾸지 않는 아파트 앞의 정원들, 이런 땅들에 불법적으로 게릴라 가드너들은 접근한다. 그리고 시기를 잘 선택해 공격을 게시한다. 즉 꽃이나 꽃씨를 심는다. 씨를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자연의 조화가 잘 맞아야 하는지라 그들의 공격은 늘 성공하지만은 못한다. 때로는 새삼 소유권을 주장하는 땅주인들을 만나 허무하게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성공적으로는 게릴라 가드너들의 공을 인정받아 불법적 가드닝을 합법적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게릴라 가드닝은 세상을 향한 봉사이며, 현대인들에게 잊혀져가는 대지의 큰 역할을 되살린다. 아주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을 먹여주었던 것은 바로 대지가 아닌가! 그러나 땅에 대한 욕심이나 자신의 노동에 대한 보상심리 따위는 버려야 하는 도를 닦는 것과도 같은 전투이다. 자신의 꽃밭을 망가뜨리는 인간과 자연재해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노동을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 속의 옹졸한 자신과도 전투를 치러야 한다. 오직 꽃을 볼 수 있다는 행복을 모두에게 나누어 줄 것! 그 마음이 꽃을 즐긴 이들에게 꽃씨가 되어 더 먼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다음 세대에도 그 씨가 꽃을 피어나게 되기를 바라는 정신이다. :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씨앗을 심는다. 우리가 떠나더라도 우리가 배운 것은 사라지지 않도록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을 정신적인 퇴비 더미에 쌓아두어 새로운 꽃밭을 살찌우는 비료가 되게 한다. 게릴라 가든을 만들면서 얻은 경험과 성취는 많은 사람을 위한 영감이 될 수 있다.(p.300)
책을 읽고나서 꽃씨를 뿌렸다. 비가 내릴 때마다 꽃씨들이 빗물을 마시고 싹을 틔울 계절이 왔음을 알았겠거니 생각해본다. 꽃씨를 뿌린 빈 땅을 오가며 다른 이들에게는 빈 땅일 그 곳을 행복하게 바라보며 언젠가 올라올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에 매일 설레인다. 싹이 올라오면 다음 작전을 게시하리라.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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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을 좋아한다. 사실 여자라면 누구나 꽃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꽃다발을 받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친구가 있어도 절대 꽃다발을 사 오지 말라고 한다. 차라리 화분을 사 오라고 한다. 그 이유는 꽃이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들어 버린 꽃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그것을 버리자니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은 더 그런것이 시들어 가는 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먹어 시들어 가고 있는 내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을 보는 것이 좋다.
어릴적 우리 엄마는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좋아하셨다. 소국도 좋아하셨는데 소박하게 생긴 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특히나 소국은 그 모양이 아기자기 한것이 어뜻보면 이름없는 들꽃처럼 보이기도 해서 나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꽃도 성격을 닮아가는 것같다. 나도 사람들 틈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이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적에는 어느 길을 가던지 꽃이 참 많았었다. 어디서든 꽃이 있었다. 나무도 많았었고. 특히나 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었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꽃을 보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꽃보기가 힘들다. 꽃값도 비싸졌고, 흔히 길가에서 보던 꽃들이 이제는 돈주고 사야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큰 공터가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들이 상추며 배추며 이것저것을 심기으며 가꾸고 있었다. 나는 매일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작은 밭을 일구는 모습을 보며 지냈다. 우선 보기가 참 좋았다. 왠지 살아있는 땅인 느낌이 들었고 활기가 있어보였다. 주변에 상점만 가득한 곳이 아니라 초록 생물이 자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참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모여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왠지 어린시절 살던 동네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몇달전에 그 공터에 큰 현수막이 걸렸다. 대충 '이곳에 불법경작을 할 경우 얼마이상의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져있었다. 그리고 그 땅은 활기를 잃어 갔다. 소문을 들어보니 그 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갑자기 그 장소는 시간을 멈춰버린것 같았다. 이제 거기서 호미질을 하시는 분들이 더이상 보이자 않았다. 슬펐다. 그 모습이. 생각해 본 결과 이곳에 필요한 사람은 게릴라 가드너들이다. 이런 현수막의 협박을 살짝 무시해 줄수 있고 다시 이땅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전사들. 처음 이책을 통해서 이런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라고 알게되었고 어떻게 게릴라 전을 벌이고 있는지도 나와있다. 체게바라를 꿈꾸는 그들의 무기는 총이 아닌 꽃씨이다. 순수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다. 나도 게릴라 가드너들이 부여받는 번호를 받고 싶다. 당장 게릴라 전에 참전해야 겠다는 욕망이 솓아 오른다. 이 책 게릴라 가드너를 읽으면서 헤리포터 만큼 흥미진진했다. 꽃씨를 뿌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사람들. 현실이 아닌것 처럼 느껴졌지만 정말로 세계 곳곳에 꽃씨를 부리고 다니는 요정이 아닌 사람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보았던 길가에 꽃들도 그들의 행적인가?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꽃씨를 무기삼아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들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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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텃밭으로 일렁인다. 도시농업 붐이 일었기 때문이다. 비록 귀농까지는 아니지만 집 가까운 곳에서 자신이 먹을 채소 따위를 직접 재배하는 이들에게서는 자연과 하나된 자의 기쁨이 느껴진다. 곳곳이 텃밭이 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도 물론 있다. 얼마 전 뉴스에는 텃밭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땅을 분양했다가 무단 용도변경으로 고발조치를 당하자 홧김에 밭을 갈아엎어 물의를 일으킨 농장주에 대한 소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텃밭을 가꿈에 있어 재산권 등의 문제는 결코 좌시할 수 없기에 비록 시작할 당시에는 고려되지 않았을지라도 계속해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법을 지켜가며 온건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적극적으로 법에 반하는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오늘 읽은 <게릴라 가드닝>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러했다. ‘게릴라’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소규모로 무리지어 산발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이들을 일컫는 이 말에 가장 부합하는 이는 아마도 체 게바라가 아닐까 한다. ‘가드닝’은 일명 정원 가꾸기. 이 두 단어를 합해 만든 ‘게릴라 가드닝’은 남의 땅을 불법으로 꽃밭으로 가꾸는 것을 뜻하는 용어이다. 그들의 행위를 단순히 남의 땅을 무단점용하는 수준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총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라는 말이 대변하듯, 그들의 행동에는 적지 않은 정치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땅을 소유하기란 쉽지가 않다.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는 데에 익숙한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온 우리로서는 더더욱,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쥐고서야 비로소 땅 주인으로서의 행세를 할 수 있는 특권의 획득이 가능하다. 이는 외국도 마찬가지다. 제 땅에 자신이 원하는 작물이나 꽃 따위를 심고 가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땅을 소유한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의 수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다. 이해가 힘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이 버려진 땅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잘 살펴보면 그 땅들도 주인이 있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인이 게으른 것인지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해 방치한 것인지, 많은 땅들이 흉물로 전락한 상태이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그와 같은 땅들을 적극 활용한다. 그들은 쓰레기로 얼룩진 땅에서 오물을 제거한다. 때론 몰래, 때론 공개적으로 그 곳을 장식할 꽃들을 심는다. 꼭 땅만이 게릴라 가드너들의 대상지역은 아니다. 우후죽순 설치되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간판도 그들에겐 훌륭한 토양이다. 담쟁이넝쿨 등을 심어 마치 갓 탄생한 미술작품마냥 간판의 존재를 뒤바꿔버린다. 좀더 과격한 이들은 도로 한가운데 나무를 심기도 한다. 물론 그와 같은 행위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어서 짧게는 불과 몇 시간 안에 제지를 당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 꽃을 심는 행위보다 더 정치적인 행위가 없을 수도 있다. 게릴라 가드닝은 주먹질을 하고 고성을 지르는 기존의 시위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싸움이다. 그들이 바라는 건 거대한 승리가 아니다. 몇몇은 합법화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심은 꽃이 단 며칠, 몇 주간 유지되는 것에도 환호한다. 잠시이지만 그로 인하여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는 식이다. 혼자 하는 경우도 많지만 여럿이 한다면 그들은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공동체 문화의 형성도 시도한다. 대개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사회로부터 머지 않은 곳에 게릴라 가드닝을 시도하는 만큼, 이는 아이러니하지만 자신의 주인됨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갖고 있다. 사이트 GuerrillaGardening.org를 방문하면 2004년 10월부터 런던 인근에서 저자가 벌인 ‘불법 경작(illicit cultivation)’의 실체와 만날 수 있다. 웹페이지에 이름을 올린 사람만도 7만명 이상. 불법이라 하지만 이 즈음 되면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게릴라 가드닝은 여전히 누군가를 상대로 투쟁하면서 성장을 도모하고 있지만 말이다. 전국 각지에서 멈추지 않는 게릴라 가드닝 열풍이 한국에 정착지 말란 법은 없다. 2012년 한국의 독자들에게 저자가 남긴 글에는 ‘서니 리(Sunny Lee)'라는 반가운 한국인의 존재가 등장하고도 있다. 어쩌면 반자본, 반독재라는 획일적인 전선 긋기에 질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색다른 투쟁의 방식인 게릴라 가드닝이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갖추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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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 여러분은 혹시 ‘게릴라 가드닝’이라고 들어 본적이 있는가? 우리나라에선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는 이 운동은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의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이러한 운동은 점점 더 확대되고 참여하고 있다. 왜 이러한 번거로운 일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이 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최근 뉴욕과 로마에서 벌어지는 ‘반월가 시위’에서도 게릴라 가드닝이 시위 수단으로 등장할 정도이니 그 위력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게릴라 가드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까? 우리는 작은 공토를 도시의 오아시스로 바꾸고 길가를 화려한 꽃밭으로 꾸미며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고 여겨지는 땅에서 곡식을 수확한다. 이런 식으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꽃밭을 만드는 것이 바로 게릴라 가드닝이다. 20p
소리 없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게릴라 가드닝을 일종의 전쟁과도 같다. 아름다운 꽃을 심는다고 해서 그 과정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말라. 스페인 말로 ‘작은 전쟁’으로 불리는 게릴라의 명칭과 알맞게 사회를 바꾸기 위한 전쟁을 하루하루 치른다. 이들은 제한된 공간을 넘어 꽃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달려간 자리가 불법인 땅이더라도 그들은 곧 바로 그들의 목표를 이룬다. 또 제한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시간, 때로는 자본이 들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그런 짓을 왜하지?’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누구를 위해서 그들은 움직이는 것일까?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내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이었다. 게릴라 가드닝은 다양한 의미와 효과를 지닌다.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크게 2종류로 나뉜다.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 하는 사람인 치어가드텐(수익정원)과 곡식을 심으려고 하는 사람인 누츠가르텐(수익정원)으로 나눠진다. 그리고 가드닝 참여자들은 공동체에 다양한 효과를 이뤄낸다.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척박하고 메마른 도시를 미간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효과를 가져 오고, 사람들을 이를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얻게 된다. 이는 마을과 도시의 활력을 가져오게 된다. 도시를 개성 있게 만드는 소소한 디테일은 경제와 조경이 세계화를 표방하면서 마음대로 규칙과 행동양식을 정하는 바람에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스스로 움직일 능력이 없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아서,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때만 그런 공공장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뿐이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멋진 꽃밭을 지나가면서 구경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환경을 바꾸고 식물을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65p 작게는 화단에서부터 빈공간의 꽃씨를 뿌리며 아름다움 이상을 추구하기도 하며, 누구는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서 또는 건강을 위해서 때로는 추모하거나 시위를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아래의 사례는 내게 신선함을 주었는데, 도시 속 광고판에 대항하기 위해서 담쟁이를 심는다는 발상은 참으로 기발한 것 같다. 이처럼 게릴라 가드닝은 우리 삶에 더욱 세밀하고 다양하게 발전되어 가는 것 같다. 캐나다에서 반소비주의자 조직인 애드버스터는 상업광고를 공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담쟁이를 심어 옥외광고판을 뒤엎도록 하는 것이다. 2001년 5월 그들은 애드버스터 간행물의 독자들이 바로 행동에 돌입할 수 있도록 담쟁이 씨앗을 나누어주었다. 112p
승리하는 전쟁, 게릴라 가드닝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선 군인이 총과 같이 챙겨야할 것들이 있는 것처럼 후반부에서는 게릴라 가드닝에 참여하기 위한 자세한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책의 흐름은 마치 전쟁을 참여하기 위한 대비서처럼 쓰여 져 있는데, 마치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 무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무기고로 표현되는 식물을 심기위해서 필요한 장비들이나 전장으로 비유된 씨를 뿌릴 장소에 대한 사항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때로는 그러한 전쟁이 실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패배라고 말하지 않는 가드너들. 이러한 혁명을 위해서 때로는 위기나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작게는 이웃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와 싸우는 일이 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큰 부담으로 다가오진 안는 것 같다. 그만큼 그들의 하는 운동은 분명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치있는 원동력이 될 터이니 말이다. 나 또한 총 대신 꽃을 붙잡을 수 있길 원한다. 게릴라 가드너는 기본적으로 이상주의자들이다. 하지만 게릴라 가든이 풍요롭게 번성하려면 게릴라 가드너는 실용주의자의 심장을 가져야 한다. 이 장의 내용은 게릴라 가드너의 질주하는 심장을 안정시켜 전장에서 견실한 승리를 거두도록 도울 것이다. 196p 승리의 순간이 언제 올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늘 모자라면서도 버려지기도 하는 것을 상대로 싸우는 세계적인 규모의 도전은, 초라한 가로수 보호시설 하나를 바꾸어놓으려고 애쓰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멀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싸움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흥미진진한 기회와 실망스러운 탈선이 되풀이되어 언제든지 행로에서 밀려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을 음미하면서 유유자적 평화를 말하기란,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에게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싸우든 게릴라에게 싸움이란, 전통적인 대결밖에 모르는 사람보다 그 성격이 더 모호하다. 그런 이유로 게릴라 가드너는 승리란 칼로 자른 듯이 경계가 분명한 것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267~268p 그가 뿌른 씨앗은 메마른 땅에 떨어졌다. 무지라는 가혹한 서리에 굳어져 죽은 바위처럼 보이지만, 지식이라는 생명의 태양이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휘저어 일깨우면, 생명이 돌아오고 싹이 나 웅장한 나무로 자라 생기를 주는 과실을 내고, 그 가지의 그늘 아래에서 휴식과 안전을 찾는 모든 이를 기꺼이 보호하리니. 3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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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함께 놓았을 때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있다. ‘전쟁’과 ‘평화’, ‘사랑’과 ‘무관심’처럼 의미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게릴라’와 ‘가드닝’도 마찬가지이다. 게릴라는 정규군에 속해 있지 않으며 전투를 치르는 사람이나 단체를 의미하며, 가드닝은 말 그대로 정원이나 꽃밭을 가꾸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작가는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함께 사용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리처드 레이놀즈의 『게릴라 가드닝』은 총 대신 꽃씨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도대체 꽃씨를 들고 어떻게 싸운다는 것인지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 집에 꽃을 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터이니 싸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게릴라들이 벌이는 싸움은 무엇인가?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땅―특히 공공 소유의 땅―에 불법―정부는 자신의 땅에 꽃을 심는 것조차 법을 어긴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으로 꽃밭을 가꾸는 싸움이다. 그야말로 ‘작은 혁명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다. 소규모로 몰래 게릴라전을 수행하듯 꽃밭을 가꾼다. 다만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혁명이 아닌 꽃을 가꾸기 위한 게릴라전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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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자연의 모습을, 녹색의 풍경을, 꽃들의 화사함과 풍성함을 얼마나 즐길 수 있을까. 눈여겨 살펴본다면,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을 찾아간다면, 길 가에 줄지어 서있는 가로수들을 보면서, 혹은 그 주변에 화분을 통해 약간의 꽃들이 자라고 있는 공간이 이 도심에서 푸름을 초록을 붉고 노란 꽃들을 살필 수 있는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나무의 경우는 꽃들보다 생명력이 좋기도 하거니와 관리도 어느 정도 되고 있어서 오래 볼 수 있지만, 주변에 피어 있는 꽃들의 경우는 관리도 상대적으로 소홀한 부분이 없지 않으며, 때로는 쓰레기가 버려지기도 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뽐내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 땅을 되찾아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다. 이 도시, 이 나라에는 사람들이 입장료를 내거나 음료를 사지 않고 언제든지 함께 모여 앉거나 꽃을 키우거나 고기를 굽거나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장소가 너무 적다. 콘크리트 상자 속이 아니라 뭔가를 배우고 기술을 익히거나 그저 흙을 만질 수 있는 바람직한 장소가 모자라는 것이다.” (「게릴라 가드닝」책 54쪽에서 발췌) 그렇기에 “게릴라 가드닝”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공유지나, 누군가가 소유한 땅이지만 소유자의 관심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소속의 경계에 놓여 있어서 관리와 관심이 소홀한 땅을 버려지고 쓰레기로 덥힌 무관심의 공간이 아닌, 자연과 소통하고 화사함에 맘이 설레기도 하는 그런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게릴라 가드닝”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자발성과 창조성을 가지고 행해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확한 방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이와 유사한 가드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으며, 이것이 꽃 등의 화초 뿐 아니라 식량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작물의 경작에까지 다양한 활동이 행해지고 있다. 이렇게 식량을 자급하는 행위를 통해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무상으로 작물을 나누기도 하고, 어떤 과정으로 먹거리를 얻게 되는지를 살피고 생명의 순환을 확인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며, 자원을 고갈시키는 오늘의 현실에서 자연의 부담을 줄이면서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불법적인 행위이고,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버려진 모퉁이의 공간, 쓰레기로 가득하고 어두운 후미진 공간 그로 인해 그 누군가의 관심과 책임에도 벗어난 공간에 생명력 가득한 작물들과 화초로 꾸미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공간 자체의 환경미화의 측면에서도, 또 그 주변 공동체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적인 결속과 공감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옹호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행위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요즘의 경우는 활동을 알리고 공동체의 관심과 호응을 얻기 위해 전단지와 팜플랫을 활용하기도 하고 대화를 통해 소통을 시도하면서 과정들을 조율해나가고 있고, 모든 과정을 합법화하고자 한다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합법화를 위한 노력들도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녹색의 공간이 증가하고, 꽃과 작물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보다 평화롭게 서로를 이해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며 그들의 활동을 지속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의 경우는 부동산이 재테크의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말이 자주 듣게 된다. 하지만, 땅이라는 것의 존재의 이유는 각자의 생명이 각자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호흡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어울려 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오늘의 땅은 그것의 가격과 효율성, 그리고 투자와 재개발의 가능성에만 너무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장소에 경제적인 효용을 벗어난 여유의 공간, 삭막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생한 색을 뽐내는 나무와 꽃들이 존재한다면 그만큼 우리의 삶과 생각의 기준도 조금은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시에 살다보면,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살필 수 없기에, 그 부족으로 인해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화분에 몇 가지 꽃들을 키우기도 했었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가꾸다가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그 아름다움의 가치에 조금은 무심해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래서 물을 주는 것도, 또 적절한 양분을 제공하는 것도 바쁘다는 이유로 잊어버리기도 해서 그들에게 몹쓸 행동을 하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책임감있게 작은 화분이라도 가꿔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돌봐야함을 다지는 잊지 말아야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