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산마을고등학교 학부모 영농단에 들어 밭농사를 지었다. 산 속에 있는 살아 있는 밭이었다. 2주에 한 번 밭에 나가는데다 두어 시간 농사를 지은 것이 농사라고 할 수 있을까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참여했다. 때로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때에도 밭에 홀로 나가 농작물이 잘 자라는지 살펴보았고, 풀이 한참 자라는 여름에는 주말마다 밭에 나가 풀을 뽑거나 벴다. 그렇게 나름으로는 열심히 하며 농사를 지었지만 가을 소출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전업 농사꾼의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완전 초보들의 어설픈 농사였던 것이다. 농사로 먹고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라더니 그것을 절감했다.
농사의 ‘農’자를 보면 노래 곡(曲)에 별 신(辰)자가 합쳐진 말인데, 이는 별의 노래 곧 우주의 기운을 말한다고 의역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조상들은 농사를 별의 기운, 우주의 기운으로 짓는 일[事]로 이해한 것이다.
또한 『산림경제(山林經濟)』등 옛 농서를 보면 농사의 재배력을 육십갑자(六十甲子) - 십간(十干)십이지(十二支) - 에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육십갑자라는 것은 해와 달을 중심으로 한 천체의 운행에 맞춰진 달력으로, 농사의 일정을 이에 따랐다는 것을 보아도 농사를 우주의 리듬에 맞춰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 - 14쪽)
그러나 밭에 나가 농사를 짓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았다가 자연 속에 들어가니 해방감이 일었다. 밤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 한잔 하던 맛과 몸을 써서 땀 흘린 뒤에 마시는 막걸리 맛이 같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꺼운 것은, 농사는 혼자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농사는 하늘도 땅도 함께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일이었다. 그런 깨달음은 머리가 한 게 아니라 몸이 절로 깨달았고 그러다 보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소중했다. 도시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올해도 주말 농사는 이어진다. 비록 작은 밭이지만 이러한 밭농사가 우리가 사는 땅별을 살리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면 좋겠다.
이 시대, 도시에서 텃밭 가꾸기는 단순히 몇 평의 땅에 작물을 가꾸어본다는 의미를 넘어 생명의 근원인 자연과, 흙과 만나는 삶의 시작이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런 사실을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텃밭 가꾸기를 통해 도시적 삶으로 인해 멀어져 버린 땅과, 흙과의 만남이란 그 자체가 뿌리뽑혀 시들어가는 생명을 치유하는 출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텃밭 가꾸기란 가족이 먹을 밥상의 한 부분을 직접 마련해봄으로써 먹거리, 생명의 양식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일깨우게 하는 일일 뿐 아니라, 흙을 만나고 그 속에서 작물이라는 생명을 가꾸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자연과의 교감을 이루며, 생명에 대한 공경심을 회복하고 생태맹(生態盲)을 치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병철,「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