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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청년 시절에는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새로운 문화를 익히고 외국 음식을 맛보았다. 딸아이가 그곳에서 외국인 친구와 살게 되었을 때는 짐을 날라주러 다니다가 외국인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딸아이가 전시회를 할 때는 식구들 모두 축하하러 찾아갔다. 외국인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하여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딸아이가 사랑하는 장소, 우리 식구에게 익숙한 곳. 그곳에서 2022년 10월 29일 참사가 터졌을 때 가슴이 미어져 아내랑 참사 장소를 직접 찾아가 추모했다. 그러고는 어느덧 2년이 지나도록 당시에 느꼈던 가슴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왜 그런 참사가 터졌는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우리 사회가 충분한 추모를 하지도 않았다고 여긴다.
이태원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 당시의 참사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놓은 데 큰 의미가 있다. 1029 참사가 이태원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저마다 자신의 처지에서 행하는 다양한 추모의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제가 진짜 좋았던 건, 저한테 ‘몇 살이세요?’ ‘어떤 일 하세요?’ 같이 조사하듯 묻는 게 아니라 ‘오늘 어디 갔다 와서 뭐 마셨어요?’ 이런 식으로 가볍게 질문하는 점이었어요. 이 사람에게 나의 배경은 중요하지 않구나. 그냥 지금 내가 좋고 마음에 드는 거구나. 그러면서 정말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144쪽)
“이태원은 희생자들이 재밌게 시간을 보낸 공간이잖아요. 이태원을 죽음의 땅으로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다시 살리는 것이야말로 추모 방법 중 하나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추모’라고 하면 왠지 모든 것을 중단하거나 슬퍼하는 방법만 상상했던 것 같아요. 추모와 애도에 관해 많이 논의했으면 좋겠어요.” (200쪽)
참사 이후 이태원에서 활동하는 DJ들은 예정된 파티를 그대로 진행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에 합의했다. 이태원을 사랑하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건 그렇게도 가능하다.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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