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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사건이 발생하고, 단서가 하나씩 제시되고, 탐정이나 형사가 치밀한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구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약속』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니 이 책은 범인을 찾는 과정 자체보다 ‘현실은 과연 소설처럼 논리적으로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에 가까웠다. 『약속』과 『사고』를 함께 읽으면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이용해 오히려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규칙을 비판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약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추적하는 형사가 결국 자신이 세운 논리와 약속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는 점이었다. 보통 추리소설에서는 탐정이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발휘할수록 사건 해결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현실이 그렇게 깔끔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치밀하게 추리하고 범인을 기다려도 우연이 개입하면서 예상했던 결말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특히 작품 속에서 추리소설의 사건 진행을 장기 게임에 비유하며 비판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소설에서는 작가가 모든 사건을 배치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우연한 사건 하나가 사람의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의 결말은 단순히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실패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이 현실을 자신의 논리대로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더 큰 비극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모든 일이 원인과 결과에 따라 정확하게 이어진다고 믿는다면 예상하지 못한 우연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작품에서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다림 역시 이러한 집착을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약속이 처음에는 정의를 위한 의지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삶 자체를 지배하는 굴레가 된다는 점이 씁쓸했다. 『사고』는 『약속』과 다른 방식으로 현실의 우연성을 보여준다. 평범한 외판원 트랍스가 우연한 사고로 하룻밤을 보내게 된 집에서 퇴직한 판사와 변호사들의 모의재판에 참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가벼운 놀이처럼 보였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트랍스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믿고 오히려 유죄 판결과 형벌을 원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기묘했던 점은 트랍스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오히려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모의재판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사건처럼 바라보게 되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한다. 특히 ‘참된 삶을 영위한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는 그의 태도는 불편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죄가 없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사람이 오히려 죄를 찾고, 그 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는 설정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인간이 현실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약속』에서는 사건을 논리적으로 완성하려는 집착이 인간을 파국으로 몰고 가고, 『사고』에서는 우연히 시작된 놀이가 한 인간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두 작품 모두 현실을 하나의 깔끔한 공식으로 설명하려는 태도에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추리소설인데 왜 이렇게 결말이 예상과 다르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그 점이 뒤렌마트가 의도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작품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범인을 찾아내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인간과 현실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느꼈다. 책을 덮은 뒤에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가 세운 계획과 논리가 우연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 추리소설의 재미를 기대하고 구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특히 『약속』의 ‘추리소설에 부치는 진혼곡’이라는 부제가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활용하면서도 그 형식이 현실을 지나치게 질서정연하게 만들어버리는 문제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역시 평범한 사람의 일상과 우연한 사건을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의 사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사건의 범인을 맞히는 추리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사건 뒤에 있는 인간과 현실까지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느꼈다. 읽는 동안의 재미뿐 아니라 책을 덮은 뒤에도 작품 속 상황과 질문이 계속 남는다는 점에서 구매해서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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