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하이데거에서 랑시에르까지, 현대철학자들의 미술론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하이데거에서 랑시에르까지, 현대철학자들의 미술론" 내용보기
2018학년도 1학기에 나는 무엇을 배웠나: 미학교육연구교육과정 시스템상 등록되어 있는 강의명이라 어쩔 수 없지만 원래는 '미적 교육', '심미적 교육'을 다루어야 하는 교육과정이라고 강조하셨다. 타과생으로 자선으로 들은 강의라 다소 손님 같은 느낌이 있었으나(이 지점은 우리과 강의를 들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아, 파견 때 동기샘들이 그립네.) 과문하여 민폐 끼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하이데거에서 랑시에르까지, 현대철학자들의 미술론" 내용보기

2018학년도 1학기에 나는 무엇을 배웠나: 미학교육연구

교육과정 시스템상 등록되어 있는 강의명이라 어쩔 수 없지만 원래는 '미적 교육', '심미적 교육'을 다루어야 하는 교육과정이라고 강조하셨다. 타과생으로 자선으로 들은 강의라 다소 손님 같은 느낌이 있었으나(이 지점은 우리과 강의를 들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아, 파견 때 동기샘들이 그립네.) 과문하여 민폐 끼칠까 죄송했는데 첫 시간부터 철학교육 전공자가 와야할 곳에 왔다며 교수님께서 잘 왔다고 환영해주셔서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칸트-실러 미학을 공부해서 석사 논문으로 정리하긴 했지만,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전반적인 미학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일 없이 진중권님 등의 미학 관련 서적을 통해서만 훑어오고 있었다. 학술적으로 접근했다기 보다는 취미처럼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주워 듣고 있는 상태였다. 이 강의는 대학원 강의라 미학사 전반보다는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이 어떤 미학과 예술론을 제기했는지를 주로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현대 미학 논의에서 프랑스가 주류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어서일까 싶다. 아, 그리고 당연히 근대에 "판단력 비판"을 저술해서 미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중요한 학자 중 하나인 칸트 이름도 매우 자주 나온다(보통은 현대 철학자들이 참조점으로 삼는 듯하면서 결국에는 비판하지만...). 논문을 썼다는 이유로 첫 시간에 칸트-실러 미학을 발제했다.

 

이 책을 주 교재로 삼고, 필요하면 관련 있는 소논문을 함께 읽었다. 발제 담당자를 정해 철학자-화가(혹은 조각가)에 대해 매우 꼼꼼하게 글로 정리하고 ppt로 발표했다. 주 교재인 이 책은 서동욱 교수님께서 엮으셨는데, 우리나라에서 그 철학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학자들이 그의 미학 내용 핵심을 정리한 깊이 있는 소논문들을 모아두셨다. 교수님께서는 이런 책이 나와주어서 강의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고마운 책이라고 말씀하셨다. 밑줄 치며 정독했는지라 옮겨두고 싶은 부분은 매우 많은데, 포스트잇 붙어 있는 몇 군데만 인용해본다.

 

일단은 이 책이 프랑스 철학자들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보니 책의 많은 부분에서 현상학(후설 그림자)적 토대가 엿보였다. 개인적으로는 푸코 관심자라 동시대 철학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지점들이 보여서 흥미로웠다. 들뢰즈의 "푸코"를 읽고 싶은데 여력이 안 된다면 우리 학자가 정리한 에센스 판이라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ebook으로 구매해두었다.

"푸코 역시 들뢰즈와 마찬가지로 언어와 회화(가시적 대상)가 서로 다른 질서 속에 있음을 강조한다. "언어와 회화는 서로 환원될 수 없다"(미셸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p. 34). 들뢰즈는 "푸코"에서 이러한 푸코의 생각을 중요하게 부각시키기도 한다. "말한다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347쪽, 주15)

 

레비나스는 윤리과에서 논문 쓰기 좋아하는 철학자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도 '타인의 얼굴' 논의를 바탕으로 윤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고마운 철학자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한창 푸코, "주체의 해석학"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기' 개념이 가진 의미를 생각할 때였던 듯하다. 특히 휴직 들어가기 시작한 때라 '경제'적 관점에서 '자기'의 의미, 자기 부양(을 포기할 수 있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는 바로 이 미래와의 관계이다. 그리고 이 시간에 대한 몰두는 나의 존재함을 초월하는 일이다. 나의 존재함은 어디서 성립하는가? 바로 '자아moi가 자기soi이다'라는 데서 성립한다. 의식의 차원에서 이는 '자기의식'으로 표현될 것이고, 인간학적으로는 노동과 그에 상응하는 봉급을 통해 자아가 자기를 부양하는 경제적 관계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존재함이란 자아와 자기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므로, '아무개가 존재한다'가 아니라 "아무개는 '그 자신에 대해 존재한다on s'est'"라고 표현해야 한다.("존재에서 존재자로, p. 42). 그런데 자아가 존재의 일반경제의 틀을 깨뜨리고 나와 자기를 부양하지 않고 타자에 '보다' 몰두한다면? 그렇다면, 존재자를 존재하게 했던(즉 '존재함'을 가능하게 했던) '자아가 자기이다'라는 관계는 깨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타자에 대한 몰두는 앞서 인용한 "존재와 다르게"의 표현을 상기시키며 말하자면, "존재 너머로의 움직임"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초월 말이다. 순간의 영원한 지속일 뿐인 예술작품은 바로 이 타자와의 만남 안에서 일어나는 초월, 미래와의 조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92-93쪽.

 

몇 년 전에 소중한 주말 시간을 쪼개가며 머나먼 수유너머에 가서 즐겁게 푸코 강의를 들었다(실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만 먹으면 꼭 비싼 돈 내고 대학교 커리큘럼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시대다, 학위로 딱히 뭘 할 게 아니니...). 기말 보고서를 쓰면서 참고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그때 받은 문건을 꺼내보니 허경님 성함이 보인다. 심세광님과 함께 푸코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시고 명쾌한 글을 써주시는 분인 듯 푸코를 다룬 논문 참고문헌에 자주 등장하시는 이름들이다. 이 책에는 그 허경님께서 "마네의 회화"를 중심으로 푸코의 예술론을 정리해주셨다. 푸코가 자신의 연구에서 고고학이나 중후기에 계보학 방법을 활용했고, 근대 에피스테메를 논할 때 '역사학, 인간학'적 측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허경님께서 왜 아래와 같은 부분을 매우 강조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푸코 나름의 시대적 구분과 실제 미술에서 그 시대 에피스테메가 구현된 상황 간에는 시간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푸코는 왜 이렇게 독특한 자신만의 시대 구분을 고집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러한 푸코의 미술사적 시대 구분론이 그의 사상 전체의 기획과 분리 불가능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389쪽.

 

시간이 부족해서 몇 챕터는 다루지 못했기에 종강 이후에 틈틈이 다 읽었다. 다루지 못했던 마크 로스코 부분이나 데리다의 미술론도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이번 학기에 현암사 신간 "서양 미술사의 거장들"과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철학 분야에 미학이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미학이야말로 다른 철학 분야들(존재론, 인식론, 윤리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은 없으므로 시공간, 물질 감각적 유한성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세계 안에 살고 세계와 만날 때 어떤 식으로든 몸의 감각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현대에 미학은 그 의미가 중요하게 부상할 만한 학문 분야이다. 구체적으로는 생물학 시대인 현대에 신경생리학, 몸 등 인간의 자연 영역 중요성에 대한 재발견을 위한 이론적 토대로서(현상학이 유행할 수 있는 이유일 테다), 또 앞으로 나타날 다른 존재들에 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을 돌아보는 측면에서 (형이상학적이라서 '낡았고, 죽었다'고 취급 받는 다른 철학 분야들에 비해) 그래도 실용적인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 같은 강의를 듣고 있어도 미술 교사와 도덕(철학) 교사가 미학을 받아들이는 성향, 다루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체 성향도 구체적이지 않고 직관적인 성향이라(INTJ, NT 기질!!) 숲을 보며 전체적으로 대충 이해하고 넘어갈 때가 많은데다가 철학이라는 분야도 인간 삶에서 다소 붕 떠있는 듯한 큼직한 개념들을 다루는 분야라 한 번에 암기해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반복해서 보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 샘들께서는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술을 다루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공부할 내용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노력하시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공부 자세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구체적인 내용 전부를 '잘 기억'하는 부분에는 자신이 없다). 또한 미술교육과에서 미술사, 미학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입장은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강의 들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예술작품 감상 후 비평(글쓰기)하는 일에 대해 다룰 때였는데, 예술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 말할 필요 없고 말할 수 없다(여러 의미로...)는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들을 가지고 계셔서 대화를 나누었다. 부수적으로는 자코메티 전시를 함께 관람했고, 샘들께서 꽉 막힌 강의실보다 카페, 잔디밭에서 수다떨듯 웃으며 공부하고 싶어하셔서 이벤트처럼 그렇게 했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는 책상, 의자에서 정자세로 앉아서 해야 집중해서 잘할 수 있다고 믿는 다소 꼬장꼬장한 진지충 스타일이라, 이 부분도 성향의 차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이 강의 수강과 책 읽기 덕분에 '철학자들은 왜 예술작품으로 자신의 사상을 논의했는가'라는 큼직한 질문을 내내 붙들고 있다.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변용하자면 문학은 철학의 입이다, 음악은 철학의 귀다. 특히 푸코, "주체의 해석학"을 읽다보니 고대인들은 눈보다 귀가 영혼에 가깝다고 믿었다는 내용이 있어서 매우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감각 가진 인간의 유한함 때문에 철학자들은 대중의 눈에 바로 보이는 회화, 조각 작품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유를 설명하려고 시도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처럼 음악을 가지고도 철학을 논할 수 있고, 철학을 이야기하기에는 시각보다 청각이 비교적 적합한 지점이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내가 가사 없는 음악만 듣는 '클덕'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드는 듯). 그래서 기회가 생긴다면 음악 미학을 접해보고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8.06.11. 신고 공감 7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