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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그 분의 삶을 배우고 따른다는 것이고 이는 곧 제자를 뜻한다.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따른다는 것은 행동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 책은 ‘팬인가 제자인가, ’거짓 신들의 전쟁‘ 등의 책을 저술하신 카일 아이들먼의 책으로서 제자로서의 삶에 대해 또 다른 각도의 삶의 전환을 안내하는 책이다.
어쩌면 제자의 삶의 반열에 올라선 사람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제자의 삶으로 들어와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책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제까지 사람들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삶의 변화를 위한 어떠한 법칙을 관찰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아하(AHA' 이다. - 깨달음, 그리고 정직함, 그리고 행동하기!
이 책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 아들이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에게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바로 이 ‘아하’ 의 과정을 통해 설명하면서 새로운 통찰력으로 관찰하도록 시각을 열어주고 있다.
'<아하> 는 우리의 현재 위치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삶의 몇 가지 영역에서 먼 나라에 와 있다.’ (p.20)
저자의 말 그대로 아는 것 - 깨닫는 것에서 시작해야한다. 일반적으로 별 탈 없이 교회 잘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된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어떤 면이든 주님과 멀리 떠나 있는 먼 나라에 있는 탕자와 같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를 깨닫게 되고 알게 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제자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제목 그대로 자신에게 ‘독하게 정직’ 해 질 필요가 있다. 안다고 해도 자존심 때문에 부인할 수 있는 예가 저자의 운전 경험에서 잘 나타나 있다. 부인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고 이야기했을 때 저자 역시 알고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더 헤매고 부인이 잠든 뒤에야 돌이켜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챤의 삶으로 회복되는 것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처럼 깨닫고 정직한 후에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탕자가 깨닫기만 하고 아버지 집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서점의 수 많은 서가에 자기발전에 관한 책이 있지만 그것을 읽는다고 삶이 변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읽는 것에 그친다면 이 책도 역시 소용없는 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행동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진정한 자유의 시작인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방법이 엔딩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크나큰 아버지의 사랑임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탕자가 돌아와서 아버지가 시큰둥하게 맞이했거나 잘못을 지적하고 탕자의 생각대로 하인으로서 대하여 겨우 잘 먹게 해 주기만 했다면 탕자의 결심은 그다지 대단한 결론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깨닫고 정직하게 되고 행동할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이 책은 아버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큰 아들에게도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맺고 있다. 우리가 ‘아하’ 라는 값지불을 할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누가복음 15장의 이야기는 불순종하는 두 아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자신의 자녀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어떤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p 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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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7)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2:22)
책을 읽는 내내 야고보서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어느 순간 성령 충만하지 못하여 교회의 일을 뒤로 미루고 있을 때,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모든 것들이 내 것이라고 느껴질 때 나를 스스로 채찍질 하며 떠올리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믿음의 결실로 행함이 동반되어야 함을 말한다. 아니 성도가 아닐지라도 계획만 장황하게 세운 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성경구절을 나에게 그리고 본인에게 적용한다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 카일 아이들먼은 말한다. 당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면 ‘쿰!’ 일어나서 행동하라.
저자는 끊임없이 ‘아하’라고 외친다. 아하는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내가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아하가 일어나면 삶은 변화될 수 있다. 저자는 아하를 경험하기 위하여 반드시 아래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1. 별안간의 각성 2. 가차없는 정직 3, 즉각적인 행동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는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각성은 있지만 정직이 없거나, 각성과 행동이 수반되지만 정직이 빠진 아하는 단명하고야 만다.
책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많은 비유들 중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등장한다. 자신의 유산을 미리 요구하여 받은 뒤 먼 나라로 떠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산의 뿌리까지 내려간 후에야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며 돌아오는 어디서인가 들어봄직한 이야기 이다. [탕자의 비유]는 어느 아버지의 둘째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였다. 아예 하나님을 떠나 먼 나라로 떠난 사람, 아예 떠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부분에서 만큼은 먼 나라로 떠난 사람 이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탕자의 비유를 듣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한 아버지가 문제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택한 잘못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지 알고 계신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의 머리털의 수 까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모르실리 없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허용하여 주시기도 한다. 뜨거운 맛을 봐야, 그래야 다시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아끼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자기 맘대로 먼 나라로 떠난 둘째아들은 결국 유흥과 놀음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우리에서 고돈 노역을 하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으려 하지만 그것조차 그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때서야 아들은 따듯했던 아버지의 집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가에 대하여 인지하게 되고 그 즉시 일어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먼 나라로 떠난 둘째아들에게서 아하를 경험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가 포착된다. 1. 돼지만도 못한 자신을 각성하며 깨달음 2. 아버지를 거역하고 먼 나라까지 와서 재산을 유흥과 놀음에 탕진한 죄에 대한 인정 3. 즉시 일어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감 이 세가지중 어느 하나가 결핍되었다면 탕자는 그냥 그 어느 먼 나라에서 그런 끝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탕자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아버지는 거지모습을 하고 나타난 둘째아들이 멀리서 보이자 집에서 뛰어나가 그를 껴안고 입 맞추고 굶주린 아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준다. 이 변화의 시작은 탕자의 돌이킴 즉 행동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을 선택 할 때 우리를 걱정하신다. 때로는 교회의 사역자를 통해서, 지체를 통해서 알람을 울리기도 하시며 때로는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잠시 동안 용인해 주시기도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행동으로 돌이키고 하늘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마치 둘째아들에게 달려가서 입 맞추고 잔치를 베푼 아버지처럼 말이다.
'돌이키기에 늦었다'라고 생각 하는 둘째아들,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음을 알고 잘못된 길로 갔음을 알지만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둘째아들, 하나님의 알람소리를 들은 둘째아들, 소극적인 둘째아들, 먼 나라로 떠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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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카일 아이들먼은 실제적 변화를 원한다. 그리스도인은 실제적인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실제적 삶이란 성경의 삶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이 말씀과 삶의 거리차 쉽게 좁혀지지 않음으로 인해 힘겨워한다.
저자는 현실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변화를 원한다.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 말씀이다. 말씀으로 무장되지 않는 경우는 실패한다. 말씀은 능력이다. 능력을 소유한 이들만이 세상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삶을 깊이 관찰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처방을 했다. 독자인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자신의 삶을 살폈다. 하나님을 믿노라하는 나의 신앙과 삶을 면밀히 주시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내 자신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바라본 나의 모습, 내가 내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 이웃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떠할까. 사실 많이 실망스러웠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 신앙으로서 자질과 소양을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알람을 통해 깨우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운다.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기에 우리를 깨우는 여러가지 알람을 이용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말씀, 사람 등으로 깨우도록 하는 하나님의 관심은 나에게 소망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절망과 좌절속에 갇혀 있는 나를 부르시고 깨우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은 다시금 나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에게 독하게 정직해야 할 것을 저자는 말한다. 가장 관대한 존재는 자신이다. 남에게는 관대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이는 자신을 퇴보시키는 것인줄 모른다. 나 스스로도 그렇다. 가장 사랑하는 나의 삶에 부족함을 알면서 관대하게 넘어간다. 나를 채찍하지 않는다.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을 정확하게 점검하도록 한다. 자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정확한 진단이 없으면 처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발견하고 훈련하고 치료할 때만이 희망을 갖게 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제자여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최상의 삶이어야 한다. 이는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요 실천하는 것임을 말한다. 자신에게 관대한 시간으로 삶을 허비했다면 깨우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행동은 믿음에서 나온다. 주저하지 않는 행동은 그리스도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미루었던 삶은 패배주의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말한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로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금은 행동할 때이다. 행동하는 삶이 결국 주님의 뜻을 이루어감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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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세상과 예수님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매번 저울질하는 반쪽짜리 마음이 아니다. 이제 예수 앞에 전부를 내려놓고 오직 그분만을 따르라고 하신다. 진정한 기쁨과 영혼의 만족은 오직 제자의 삶에만 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사는 신앙의 연수가 아니라 헌신의 깊이다. 예수님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고 말씀하셨다. 요즈음 성도들은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려고 한다. 목사님들도 설교를 통해서 최대한 성도들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애쓰고, 건강과 부를 약속하며, 불편한 내용은 아예 빼 버리고 있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제자는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교회의 교육목사로 섬기면서 <팬인가, 제자인가>, <거짓 신들의 전쟁>의 저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카일 아이들먼 목사가 현재 우리가 처한 위치를 냉정하게 성찰하도록 돕는 한편 아버지 집을 떠나면서부터 틀어진 우리의 삶에 ‘변화의 방향성’이라는 좌표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누가복음 15장 20절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하’의 세 가지 구성 요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세 가지 구성 요소는 별안간의 각성, 가차 없는 정직, 즉각적인 행동이다. 각성과 정직은 있는데 행동이 없으면 ‘아하’는 발생하지 않는다. 각성과 행동은 있는데 정직을 간과하면 ‘아하’는 단명 한다.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로’로 갔다. 그는 이 땅의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도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현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명확히 자각하게 된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직각으로 벌떡 일어나 앉았고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탕자는 돼지우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람 소리를 듣게 되었다. 탕자는 즉각 행동을 취했다. 그는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인가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이야기에도 “이에 그가 일어나서” 혹은 “이에 그녀가 일어나서”라고 쓰여 있지 않다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삶에서 '아하'가 일어나지 않는 까닭이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매 순간 우리의 삶에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분은 하나님을 배제한 채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 삶의 특정 영역에 알람을 울려주신다. 저자는 ‘잠귀 어두운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알람을 울려주신다”고 하면서 말씀을 통한 조기 알람, 주변 사람의 말을 통한 조기 알람, 미래 결과를 미리 겪어보는 조기 알람, 선례를 통한 조기 알람 등을 우리의 인생길에 울려 주신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아직까지 돼지우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강조한다. 왜, 제자는 행동해야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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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세례를 받고, 직분을 맡아 충성한다고 했지만 예수님과 상관있는 사람이라고,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부끄럽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를 믿고 따르며, 그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가 과거 이기적인 죄의 삶에 대하여는 “아니요”라고 하며, 예수님에게는 “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적인 신앙은 외적인 순종을 동반해야 한다. 순종이 없다면 진정한 믿음도 제자도도 없다. 나는 가끔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내가 믿고 행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보다 나 자신일 때가 너무도 많다”는 것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판단 그리고 가치관들이 나의 선택 기준의 우선순위로 올라와 1위 자리를 치열하게 다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제자의 삶과는 무관하다. 믿음이라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나 자신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자 하는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교회의 교육목사이며 ‘팬인가, 제자인가’, ‘거짓 신들의 전쟁’의 저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카일 아이들먼이 현재 우리의 위치를 냉정하게 성찰하도록 돕는 한편 아버지 집을 떠나면서부터 틀어진 우리의 삶에 ‘변화의 방향성’이라는 좌표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아하’라고 명명한 순간들, 정신을 차리는 각성의 순간, 자신의 영혼에게 정직하게 선포하는 순간, 즉각 행동에 옮기도록 도우시는 결정적인 하나님의 순간을 경험함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변화된 인생을 살도록 촉구한다. 제자에게는 반드시 변화된 삶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말만이 아닌 제자의 행동을 기대하신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제자훈련에 힘써왔다. 그러나 성경공부자체가 제자훈련인 줄 알거나 온유, 친절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제자훈련인 줄 알았다. 오히려 이것을 잘못하면 율법적인 신자 및 머리만 커지는 교만한 신자를 만들기 쉽다. 또한 영성개발이나 영성훈련을 통한 개인신앙 성숙이 제자훈련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나를 따르라 하면서 예수 닮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도구로 쓰여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이 책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잊고 아직까지 돼지우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탕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한다. 우리는 언제나 최선의 삶,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변화된 삶을 살기 원한다. 하지만 지식과 깨달음으로만 그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잠귀 어두운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는 알람을 울려주시는데, 말씀을 통한 조기 알람, 주변 사람의 말을 통한 조기 알람, 미래 결과를 미리 겪어보는 조기 알람, 선례를 통한 조기 알람을 우리 인생길에 울려 주신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더 이상 믿는다고 말만 하지 말고 행동하는 제자로서 변화된 삶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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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아이들먼의 책 "팬인가 제자인가"를 최근에서야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예수님을 팬으로서 좇았던 나의 실상을 회개하고, 제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갈망을 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기도와 말씀묵상을 게을리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며
삶이 변화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이전 책에 비해 내 마음을 더 괴롭게 했다.
좀 더 뉘우치게 했고, 더 생각하게 했다.
책을 인용하자면 스누즈로는 지연시킬 수 없는 시끄러운 알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세상의 소리보다 주님의 소리가 더 크고 위협적으로 들렸다.
이게 각성이었다.
늘 그랬다. 신앙서적을 읽으면 각성하기가 쉬웠다.
일상생활은 편안하지만 뭔가 내 할일을 다 한것 같지는 않은 찜찜함.
주님과의 친밀함에는 이렇게 게으른데도 너무 평온해서
정신 좀 차리라는 채찍질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나는 이런 것들로 게으른 중에도 주님의 눈치를 보고 있다.
뭔가 고요할 때 내가 쉽게 선택하는 방법은 신앙서적을 읽는 것이었다.
참회가 되고, 뉘우쳐지는 것이 쉬우니까.
물론 쉽다고 거짓은 아니다. 난 늘 솔직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을 뿐이다.
이 책이 알려줬다.
난 거의 늘 각성만 했다는 것을...
신앙서적을 읽고 감상문까지는 쓸 수 있는 단계이다.
내 잘못을 인정해야만 후회에서 뉘우침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난 그 용기를 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책을 읽다가 기억이 났다.
3년 전인가 갑자기 가고싶었던 새벽예배에 가서 들은 말씀이 오전내 귓가를 떠나지 않고,
회사에서 영상설교를 듣다가 눈물이 흐르며 바로 오늘 실천해야겠다는 의지가 나를 밀어부치던 날.
자존심상하고,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주변 몇 분에게 중보기도를 부탁드리고, 퇴근 후 아버지에게 가서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아버지와 대화라는 것을 해본 기억이 없다.
어릴 때부터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진지드세요.
사춘기때부터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용서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아무문제 없는 척도 하고,
내 마음을 여기붙였다 저기붙였다 말없는 씨름을 했더랬다.
그날은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속에서 무슨 말들을 주절거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감사하다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옛날 이야기들은 잘 기억이 안나시는 듯 당황스러워했지만,
따뜻한 눈빛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이어나가셨다.
그렇게 완전히 성령께서 등떠밀어 일어난 그 일 이후
얼마간은 새로운 날들과 같았다.
일단 말을 조금은 더 편하게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눈도 안마주치고 말이 없던 그 습관이 다시 슬그머니 찾아왔다.
지금은 그날 이전처럼 내 마음이 괴롭거나 힘들지는 않다.
익숙해져버린 행동 때문에 말을 잘 건네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만족하고 위안삼았던 나의 모습에
다시 블랙 라이트를 켜야만 했다.
왜냐하면, 행동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부작용이 있다고
진단해주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참 제자가 되고 싶고, 그런 내 마음을 거슬러 산다는 것은 피로와 좌절감을 주며,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내적 확신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방어적이 되고,
때론 막연한 분노가 일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부작용으로 나는 괴로웠었다.
내적인 가치는 고상한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더 눈치를 봤다. 사람이든 하나님께든 떳떳하지 못한 내가 싫었다.
나는 행동하는 것도 주님의 몫으로 떼어놓았었다.
주님이 마음을 주셔야만 행동이 나올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생각도 신랄히 비판해 주었다.
마치 영적인 태도로 하나님 뜻에 고분고분 복종하고 있는 듯 하지만,
하와의 죄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담과 같은 소극성의 죄를 짓고있는 것이라고.
소극적인 것은 성격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내 머릿속은 복잡한 계획을 세워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던 게 맞다. 무언가를 해결해야 한다면 복잡한 계획 따위로는 절대 실타래를 풀 수 없다는 말이 이젠 끄덕여진다.
어쨋든 순종해보라고 했다.
우리의 감정과 태도가 우리의 행동을 따라오고 조화를 이룰거라고 용기를 준다.
간단한 행동, 즉각적인 행동이 돼지우리로 가는 길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성령님은 알람을 울려주신다.
각성케 해주신다. 용기도 주신다. 그러니 내가 일어나야 한다.
주님과 연합해야 한다.
독자가 실행한 행동 이야기를 넣어야 진정 결론이 맺어진다고 했다.
매일 출근길에 아버지에게 열쇠만 맡기고 인사도 없이 후다닥 집을 나섰는데,
지난 금요일에 커다란 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했다.
가끔 인사하면 잘 안받아주셔서 더 하기 싫었는데,
그날따라 "오야~~"하신다.
괜스리 그날 하루가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오늘도 무뚝뚝하지 않으려나 여러생각이 자리잡을 겨를을 만들지 않고,
그냥 해부쳤더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속이 시원했다.
행동함으로 완전한 기쁨을 누렸던 것이 얼마나 되던가.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주저하고, 생각뿐이었던 회개가 얼마나 많았던가.
생각은 어렵고 행동은 쉽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그리고, 내 계획은 내려놓자. 주님께 이 생각많은 자의 마음도 다 내려놓자.
나는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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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AHA(아하!)는 별안간의 각성(AWAKENING), 가차없는 정직(HONESTY),
즉각적인 행동(ACTION)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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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식사하셨다. 그 식사 시간에 삭개오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어떤 일이 일어났다. 그는 엄청난 부자였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고 있었다. 바로 만족감이었다. 그는 돈이 아쉽지 않았지만 자신의 인생에 만족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만족감을 얻기 위해 애썼지만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함께 앉아 식사하던 중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찾고 있던 게 바로 이거였어!” 그는 예수님과 만나 각성의 순간을 체험했다. 그는 그동안 자기가 애써 추구해온 것이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그는 자신에 관한 곤혹스러운 진실과 마주했다. 사실 그는 자신의 동포들에게 등을 돌린 배신자였고 그 사실에 대해 다른 누구를 탓할 수가 없었다. 가난한 동포들은 그의 행동으로 더욱더 가난해졌고, 간신히 연명하던 소작농들은 그의 탐욕 때문에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 해야 했다. 그는 자기 삶의 실상을 정직하게 직시했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말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그는 깜짝 놀랄 깨달음에 뒤이어 자신의 삶의 실상을 정직하게 인정했고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이런 그의 태도가 여리고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하는 간증과 증거가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좀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대접을 받는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지금 그 죄인, 그 세리장, 그 삭개오가 밖으로 나와 자기가 결심한 것들을 공언한다. 그때 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들은 분명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우리 삶의 실상을 각성하고, 그 실상에 대해 자신에게 정직해지고, 즉각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의 ‘아하’ (AHA, 각성 Awakening, 정직 Honesty, 행동 Action) 체험은 충분히 성취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여리고의 백성들은 완전히 변화된 삭개오를 보았을 때 그것이 오직 예수님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지 못한 채 먼 나라에서 죄를 짓고 반항하며 살아간다. 친구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각성과 정직의 순간을 체험하고, 그것이 즉각적인 행동을 낳고, 그리하여 우리 삶이 완전히 변화될 때, 그들은 그 변화가 우리의 능력이나 결연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변화된 제자에게는 반드시 예수님 때문에 변화된 삶이 있다.
-제자는 행동한다 중 발췌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신학적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칭의의 단계에만 머물러서 한걸음도 제자의 삶이 요구되는 성화의 단계로는 진입하려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소 경쾌하게 풀어감으로 그리스도인 = 제자임을 인식케 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며 삶을 살아갈 것을 권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