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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새를 무척 좋아하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름이면 보리밭을 누비고 다니며 밭고랑 둥우리에 있는 종달새 새끼를, 눈 쌓인 겨울이면 뜰 앞 짚가리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방울새를 잡아 새장 속에 키우며 기뻐했습니다. 그 소년은 자라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듦으로써 삶의 후끈한 의미를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모든 것, 결혼까지를 포기하고 다만 한가지 지적 추구의 세계로 외로운 발길을 내딛었습니다. 앎의 길을 택하고, 진리, 선, 미와 그것들의 의미를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글을 쓸 줄 알고, 위상수학, 양자역학, 유전자, 컴퓨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습니다. 또한 중국의 역사, 아프리카의 지리에 정통했으며 수리경제 이론에 밝았습니다. 세계의 역사에도 훤하고 인간을 의학적, 생물학적, 화학적 그리고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생명체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세계와 인생에 대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설명 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측면에서 특정한 현상에 대해 행한 모든 설명이 한결같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설명이 서로 모순된다는 사실을 넘어, 아니 그 이전에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로 모든 신념, 설명, 주장은 필연적으로 언어를 통해서 표현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인식론적으로는 관념론자이며 존재론적으로는 유명론자nominalist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어떤 특정한 종교도 믿지 않지만 누구 못지않게 종교적인 사람으로 자처한다. 나는 물리적인 우주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신뢰한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우주야말로 가장 신비스러운 것으로 본다. …… 나는 언어를 떠난 인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식 역시 인간의 의식과 독립해 존재하는, 개념화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인식이지 인간의 상상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나는 궁극적으로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한지, 어떤 삶이 옳고 어떤 삶이 그릇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선과 악, 옳고 그릇된 삶은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에 달려있지 않다고 확신한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그러나 그냥 편안함으로서의 혹은 쾌락으로서의 행복은 멸시한다. …… 나는 유토피아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꾸준한 개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나는 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이성의 존재를 확신한다. 나는 이성이 판단의 절대적 잣대라고는 믿지 않고, 이성을 무조건 의지할 수 있는 빛으로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성은 역시 사유의 잣대이며, 이성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빛은 아무데서도 찾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제 손자뻘 되는 대학생들 앞에서 자신이 학문을 위해 내딛던 때를 들려줍니다. 자랑스레 그 때를 너다섯번씩 반복하여 중얼거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듣는 이들도 그 반복이 지겹기 보다는 그에 대한 친밀함으로 쌓입니다.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어떤 특정한 종교도 믿지 않지만 누구 못지않게 종교적인 사람으로 자처한다. 나는 물리적인 우주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신뢰한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우주야말로 가장 신비스러운 것으로 본다. …… 나는 언어를 떠난 인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식 역시 인간의 의식과 독립해 존재하는, 개념화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인식이지 인간의 상상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나는 궁극적으로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한지, 어떤 삶이 옳고 어떤 삶이 그릇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선과 악, 옳고 그릇된 삶은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에 달려있지 않다고 확신한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그러나 그냥 편안함으로서의 혹은 쾌락으로서의 행복은 멸시한다. …… 나는 유토피아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꾸준한 개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나는 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이성의 존재를 확신한다. 나는 이성이 판단의 절대적 잣대라고는 믿지 않고, 이성을 무조건 의지할 수 있는 빛으로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성은 역시 사유의 잣대이며, 이성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빛은 아무데서도 찾아낼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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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부터 다음 학년에 배울 책을 학년말에 받을 때면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었다. 미처 옷을 입히지 않아 책에 손 때가 묻을까 조심조심하며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이나 수필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겠지만 동화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어떤 기쁨을 나는 거기서 발견했던 것 같다. 교과서에 실리는 글은 전문 편집인들이 다각도로 검토해 신중하게 채택한 작품이라 작품성이 높을뿐만 아니라 오탈자 하나 없는 좋은 글이란 걸 알게 된 건 물론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후로도 제법 많은 세월이 흘러 더이상 국어 교과서를 받을 일이 없어진 때, 어떤 시험 준비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다시 손에 잡게 됐다. 거기서 나의 길, 나의 삶이란 수필을 보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갈증끝에 마신 차가운 얼음물이 주는 해갈의 시원함 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그건 그 당시 조금은 힘들었던 나의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 내가 미처 언어로 표현해 내지 못했으나 마음 깊숙이 묻혀있던 엉킨 실타래같은 갈망이 논리정연한 언어로 활자화되어 내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것을 공감이라도 불러도 좋을 지 모르겠다.
그러다 최근에 박이문이라는 낯설지 않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의 출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것을 신문의 서평란을 통해 알게 됐다. 난 혹시하는 마음으로 그 책을 샀고, 책머리를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교과서 수필의 저자와 동일인물이란걸 알게 됐다. 괜한 안도감이 주는 차분함 속에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다. 그러면서 오래전 그때처럼 지금도 그로부터 변함없이 받게 되는 느낌은 어떤 부러움이란 걸 나는 새삼 확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택한 배움의 길에서 아쉬움없는 보람을 느낀다. 나의 환경이 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내 운명에 대한 불만이 적었던 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뜻대로 앎을 찾아 배움의 길만을 갈 수 있게 해준 내 환경을 고마워하고 내 운명에 감사한다. 겉으로 보기에 나의 삶은 사치스러웠다고 할 만큼 배움만을 위해 살아왔고 앎의 길만을 따라다녔지만 나는 아직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배운 것이 있다면 잘 알 수 없다는 사실뿐이며…’바로 이부분에서 나는 내가 접었던 내 꿈의 한 자락을 다시 읽고는 마음이 조금 아팠다. 내 배움이 평균 이상은 되지만 난 평생 배우며 공부하며 살기를 원했으면서도 그것은 그가 말한대로 사치라고 여기며 현실적인 필요라는 나름대로의 변명을 붙이고는 다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른 길을 택해서 그 길에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역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마저 떨칠 수는 없었던가 보았다. 내가 가지 않은 평생동안 배우고 공부하는 길을 걸어간 그에게서 이렇게 일차적으로 부러움을 느끼며, 나는 그가 오랜 공부를 통해 답을 찾고자한 근본적인 물음에 빠져들었다.
그는 네가지의 질문을 말한다. 무엇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은 후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하는 칸트적인 세가지 물음과 함께 네번째로 거기에서 빠져있지만 더 중요한 도대체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문제로 그의 긴 학습의 최종 목표는 이 네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을 기대하며 열심히 읽어가던 나는 세가지 질문을 포함해, 막상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대목에서 비록 예상한 답안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허망함을 느꼈다. 투명하게 삶을 알아내기 위해 그 오랜시간 공부했는데, 대답이 불가능하다니. 내가 영원히 배우고 공부하는 삶을 원했던 궁극적인 이유가 이 저자의 철학적인 목적과는 비록 다르다고 할지라도 또 그것을 인정한다 할 지라도 허탈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고 해서 물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이 그가 말했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의 궁극적 의미, 뜻은 무엇인가? 더 압축해서 이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지적으로 괴롭히면서 정신적, 영적으로 놀라게 하며 결코 넌센스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어쨌든 영원히 살 수 없지만 지각적, 과학적, 철학적 그리고 종교적 인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그냥 사실보다도 월등 높은 차원의 궁극적 의미, 뜻으로만 부를 수 있는 무엇인가 성스러운 차원, 성스러움보다 더 성스러운 영적·정신적 영역, 물질도 정신도 아닌, 존재와 인식을 뛰어넘은 초월의 세계, 우리가 알고 생각할 수 있는 세계보다 더 높고 고귀하고, 더 성스러운 세계가 반드시 있다고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멀더라도 충만한 의미의 한 없이 높은 산정으로 향하는 길을 도중에 멈출 수 없노라고 그는 말을 맺었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는데, 그건 아마도 이제부터는 그냥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분명한 철학적 물음을 안고 좀 더 의미있게 그리고 더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충만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겉으로 보기에 나의 삶은 사치스러웠다고 할 만큼 배움만을 위해 살아왔고 앎의 길만을 따라다녔지만 나는 아직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배운 것이 있다면 잘 알 수 없다는 사실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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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 에세이집이다.. 그동안 실용서들을 많이 보아 왔는데.. 그런 류의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갈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공감가는 부분도 상당했다..특히.. '나'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그 무엇이란 게 있는가 하는 그의 물음에서 크게 공감이 갔다...그렇지만.. 그것은 잠시의 심적 동조에 그치고 말 뿐..이내.. 나의 생활 속으로 돌아가곤 한다.. 계속해서.. 지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박이문씨는 오랜만에 나에게 많은 생각의 빌미를 제공해주었다.. 글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깊은 사색과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길래..이렇게 깊은 통찰로서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책 읽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인상깊은구절]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맡으면 맡을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렇다. 감동이 깊으면 깊은만큼, 생각이 투명하면 투명한만큼 한결 더 그렇다. 정말 모든 것들이 마냥 신기하고 경이롭다. 눈을 크게 뜨고 사물을 새로 보자. 귀를 깨끗이 씻고 소리를 새로 듣자. 머리를 식혀 새로 생각해 보자. 세계가 지금과 달리 무한히 신기해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황홀한 감동의 원천, 투명한 인식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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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박이문님을 알게된 것은..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이라는 책에서였다. 그 책에서 그가 주장한 것은 생태학적 세계관이었다. 처음엔 낯선 그의 주장들이..이시대를 읽어내는 진정한 철학자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에..다시 출간된 나의 출가...처음엔 제목에서 풍기는 출가의 의미를 읽을수없었지만..이내..그의 출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는 형식적인 보이는 세계에서의 출가가 아닌...마음의 출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 평생을 학문에 전력하여왔고..앞으로 남은 일생또한 학문으로 채워가겠다는 그의 그 소명의식이 나를 감동케 한다. 인간은 단 한번밖에 살지 못하고...이내 죽으면 흙으로, 분자로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기에..집착에서 벗어나..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자각하라는 그의 목소리는 종교인보다도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참다운 자아와 참다운 영생은 <나 자아="">라는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자연에 흡수되어 자연의 일부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이 책은 광범위한 독자층을 위해 .정리되었듯..내용도 간결하고...쉽게 서술되어 있다..한 노 철학자의 삶의 깊이를 엿볼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인간이 그거 갈대가 아니라 생각하는 갈대라는 사실은 이성의 거울에 비추어 알 수 있고, 인간이 동물, 식물, 세포, 물질과 다름없는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은 과학이 보여주는 진리이다. 이성과 과학이 모든 대답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과 과학이 그려 보이는 세계보다 더 믿을 만한 것도 없다. 이성과 과학은 진리의 원칙이다. 믿든 말든 사실은 사실이고, 싫든 좋든 진리는 진리이다. 진리는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요청한다. 사실은 사실대로 진리를 진리로 인정하는 혜안이 필요하고, 이러한 혜안을 가지려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직성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성,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의 인식이야말로 참다운 나의 발결의 유일한 바탕이며 뜻 있는 삶의 원초적 출발점이기 때문이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