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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까지 숨가쁜 시대를 살아오면서 양적인 풍요,물질적인 가치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다가오는 시대는 아마도 질적인풍요,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요시 하는 시대가 오는 듯하다. 요즘들어 특히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라든지 마음을 위로해주는 책들의 출간량이 부쩍 많아진 것을 볼때 이제 껏 물질적인 것에 치중했던 삶을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바뀌는 과도기가 아닌가 싶다. 우선 제목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에서 말하는 것도 나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라는 모태로부터 시작하는데 나는 이 책을 "나"라는 자아발견의 책으로 보고 싶다. "나"라는 사람이 민감한 사람인지 아닌지 나이 사십이 되어도 모르고 있던 터라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좀 심각해졌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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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 교실에서의 추억. 고2 때, 국어 선생님이 농담을 했다. 선생님의 말을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만들어 본 나는 너무 웃겨서 소리내서 하하하 웃고 말았다.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들릴 듯한 조용한 교실에 내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렇다. 나 혼자 웃은 것이다. 63명중 단 한명 나 혼자....재밌는 것은 내가 웃은 것은 진짜로 재밌어서 웃은 것이었고, 웃지 않은 다른 친구들은 정말로 웃기지 않아서 안 웃었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으로 웃은 거라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아니었다. " 아니. 이게 하나도 안 웃기다고? 왜?..." 라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는데, 선생님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웃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영상을 그대로 내가 출력해서 웃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심전심이라고 해야 하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생님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는데, 그 뻘쭘함이란...그는 내가 웃어준 것에 대해 --다시 말해 공감한 것에 대해--고마워 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젠 다른 애들과 정말 다르군. "이란... 난 그것이 고등학교 3년 내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난 늘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달랐다. 때론 그것이 그럭저럭 넘어갈만했지만, 못 견딜만큼 괴로울때가 더 많았다. 친구가 있긴 했지만, 외로웠고, 나를 어떻게 다루고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난감했었다. 난 나를 이방인으로 여겼고, 고립자이며,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3년 내내 그렇다보니, 고등학교 졸업식때 내가 얼마만한 해방감을 느꼈을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난 춤을 추면서 정문을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론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 적이 없다. 정문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 이젠 내 동지를 찾아 가야지. 어딘가에 분명히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거야."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을 보면서 그때 고2 교실에서의 외로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성들. 나에겐 너무 자연스러운데, 남들에겐 이해되지 않은 특성들이 오랫동안 나를 혼란스럽게 했었으니 말이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이라면서,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특성을 열거하는데, 이거 내 이야기잖아. 했다. 그들 역시 나처럼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를까 고민했다고 한다. 고립감과 외로움, 두려움, 고통...역시 익히 내가 아는 감정들이다. 그리고 그걸 설명할 길이 없어 난감한 심정들까지...아니, 이런, 내 평생 찾아다닌 동지들이 여기 다 있었네 싶었다. 결국 별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민감할 뿐... 하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청소년 시절엔 정말로 굴욕적일만큼 치욕적인 것이다. 민감함이 때론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글쎄...그건 그 고통이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가 아니었을때 할 수 있는 말이고. 하여간, 나와 비슷한 특성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반가웠다. 내가 갖는 특성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실은 난 내가 외계인이 흘리고 간 외계인의 자손이 아닐까란 상상을 줄곧 해 왔었다.-- 그것을 장점으로 활용하라는 저자의 말도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그걸 응용할 수 있는가는 별개로 치고 말이다. 민감함. 단순히 남들보다 더 잘 알아차린다는데 그치지 않고, 남들보다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게 되기에 때론 당사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민감함. 내가 남들보다 양심적인 것이나, 남들에게 공감하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 공포 영화를 못 보는 것, 도박등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중독이 되려해도 재미가 없어서 그만 두게 된다. 자연적으로---가만 냅두면 혼자 잘 노는 것, 혼자 있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 쉽게 피로해지는 것, 어떤 공간이건 들어서는 즉시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직관이 발달한 것등 많은 것들이 이해되서 좋았다. 특히 내가 왜 늘 피로하다고 하는지, 왜 혼자 있으려 그렇게 애를 쓰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는걸 말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말해봤자 이해할리 없지만서도, 적어도 내 자신이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그렇다. 민감한 사람이 살기 힘든 것은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종종 나는 그들에게 나를 설명할 길이 없어 억울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서 유추해본 바로는 민감하지 않은 사람에게 민감함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내 엄마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말 다했다. 차라리 괴짜라는 타이틀을 달면 조금 더 나으려나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를 개조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테니까.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고 여길테니까. 적어도 내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하여간 다르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 다름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적응하는 수밖엔 없고. 그렇다면 일단 그 다름을 이해하는 부분에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 그런면에서 이 책은 민감함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유용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민감함이 유전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조카를 보면서 유심히 살핀다. 혹시나 녀석도 그렇지 않은가 하고...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조카는 나처럼 어둠속에서 고통받지는 않게 하리라 다짐한다. 자신이 가진 다름을 유용한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시행착오를 휘향찬란하게 거친 고모가 옆에 있으니 적어도 나보다는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한다. 성장하는데 있어 본인이 겪어야 할 몫은 물론 본인이 해결해야 겠지만서도... 나처럼 민감함이 고민이신 분들에게 추천한다.유난히 민감한 사람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 분들에게도. 그들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지도 모르니까. 특히 자신은 민감하지 않는데 자식이 민감한것 같다시는 분들에겐 필독을 권한다. 괜히 자식 잡지 말고 말이다. 무지는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우겨도 결론은 사랑이 아닌 걸로 난다. 하니 사랑을 위해서라도 책을 읽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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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가 던지는 왠지 친근한 어감, 아니 무엇보다 내 성격적 특성을 말하는 것만 같아 냉큼 읽게 된 책이다. 심리학에서는 특별한 이유 없이 계속 불안해하는‘신경증’이라는 질병적 해석이 있긴 하지만, 이는‘민감함(sensitive)'과는 전혀 다른 것임에도 사회적, 학문적 관심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인류의 공격적인 문화, 즉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전사(戰士), 확장과 이익에 관심을 갖는 전사중심의 문화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신중하며,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을 정상적 고려의 대상으로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략 전체 인구의 20~25퍼센트는 유전적으로 '매우 민감한(highly sensitive)'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외부의 소음(noise; 정신적, 물질적)에 대해서 75~80퍼센트의 사람들보다 훨씬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는 것인데, 이는 정신적 긴장을 차단하는 신경계가 긴장하는 정도차이로 자극을 걸러내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소음이나 자극에 노출되면 그것을 견뎌내는데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결국에는 완전히 탈진해 버려서 이후에 어떠한 행위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수선한 주변을 무시해버리고, 복잡한 놀이시설이나 쇼핑공간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도 저녁에 다시금 술자리를 하기위해 나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뻗어서 그저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이 매우 민감한 특성은 신경계적 유전의 산물이지만 영유아기는 물론 성장기에 부모의 양육방식 등 환경적 여건이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태어나서 최초로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고통이 긴장이란 것인데, 이는 세상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멈추어진다고 한다. 여기서 애착심리, 회피심리, 불안심리 등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즉 부모의 보살핌이 무관심과 과잉보호의 사이에서 여하하게 제공되는가에 따라 일종의 자극에 대한 반응체계인 아이의 행위억제시스템(멈춤 확인시스템)에 대한 숙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는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기 전에 미리 젖병을 물려주는 것이 좋은 것인가? 어떻게 부모가 반응하는 것이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안전성, 신뢰를 높여주는 것이 되는 것일까를 배우게 된다. 이처럼 매우 민감한 당사자가 아니어도 아이를 양육하는 모든 부모들을 위해서도 이 책은 아주 중요한 심리학적 가르침을 준다. 한편 이 책이 말하려 한 것, 즉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내성적 또는 숫기 없음과 같은 부정적 시각을 포함하는 민감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겪는 곤란함과 편견적 시선의 극복에 대한 실례(實例)를 포함한 방법론은 매우 민감한 사람으로서의 저자의 체험적 기술방식으로 인해 더욱 친근하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신체적 활동에 참여하기보다는 구경할 때가 많았다는 저자의 체험담으로부터 자신감과 희망을, 모험을 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실망감과의 대체를 고려해보라는 조언으로부터 시작해서, 민감한 사람들의 성격인 자극의 회피나 우선순위 설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을 타인의 일들보다 나중으로 미루거나, 인생의 의미와 죽음과 복잡한 세상사에 대한 생각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직관적이고 반의식이나 무의식으로부터 정보를 찾아내려하며, 정치놀음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영악하지 않으며, 가면을 쓰지 않는 순수함과 양심적 결벽성 등이 오늘의 주류적 사회 문화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소외되는 원인을 탐색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과 사회의 속성을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세상과 조화하고 그러함으로써 자기, 즉 자신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그 길을 안내한다. 때론 물리적 피난처로 긴장을 피해 도피하는 것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피난처를 만들고 의지하는 법을, 세상을 견디고 기꺼이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법, 좋은 페르소나를 의식적으로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 결코 민감한 사람인 우리가 거부하는 위선이 아니라 적당히 솔직한 것으로서 필요하다는 것, 내면의 이상을 마비시키는 세속적 요구를 떨치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개성화 과정에 대해서, 다수자의 모임에서 말없는 행동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며 그래서 그들에 표현하여야 할 긍정적 신호의 발신에 대해서, 조직 내 상사와 주변인들에 대한 신뢰와 의심에 대한 용기에 대해서처럼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격적 특성을 발휘하는 구체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아가서 매우 민감한 사람들의 사랑이 “바깥세상으로부터 소중한 내면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를 안으로 쏟는” 특성 탓으로 안에 쌓였던 에너지가 터져 나오면 한 사람, 한 장소나 물건에 기착해서 물불을 가리지 못해 상처를 커다랗게 받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자신들의 속성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랑으로 그리고 치유법을 세심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제각기 살아오면서 쌓은 그 경험의 무게가 다르겠지만 우리들의 지나간 기억, 경험을 민감성이 지닌 재능, 그 장점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삶의 기대치를 높여주는 적응성 높은 현실적 심리프레임을 제시한다. ‘매우 민감함’이란 성향이 획일적인 어떤 것이 아닌 만큼 정도의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사교적이며 수다스러운 민감한 사람도 있겠지만 혹여 사회가 무차별적으로 발산하는 자극을 회피하기만 했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지닌 엄청나게 놀라운 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그 빛나는 재능을 사회에 마음껏 발휘하는 작은 불씨가 되어줄 수 도 있다. 내적인 경험은 보이지 않기에 비교가 되지도 않으며 타인들이 알 수도 없다. 단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미묘한 차이까지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편견에 의해 억압의 기제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내부로 침잠한 많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안도와 구원을 주는 책이다. 주변에 민감한 친구나 동료, 부하직원을 두신 분들, 민감한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에게도 이 책은 귀중한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민감한 자아를 확인하고 돌보는 방법을 말해주는 최초의 심리학 연구서이자 치유서로서 감동스럽고 고마운 저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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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다른 식으로 돌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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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은 사람뿐 아니라, 옆집 아이 보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느라 마음이 몹시 지쳐서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 하고 있는 아기 엄마들에게 더욱 권하고 싶다..
그저 형용사로써 사람의 기질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단어중 하나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던 "민감성" 을 이렇게 독립적인 성격으로 분류하여 연구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효율성의 논리로 인해 흔히 "다르다" 는 "틀리다" 로 여겨지게 마련이어서, 친절한 많은 사람들은 "민감한" 사람들을 고쳐 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런것에 익숙해져 있는 나 역시 이 책이 사회생활에 많은 장벽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는 민감성을 고치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씌였을거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열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열어 보니 그와는 정 반대로, "민감성" 을 "소극적", "내성적" 등으로 분류되는 그룹과는 다른 개별적인 하나의 성격 그룹으로 이해 하고 받아 들여 오히려 그것을 장점으로 활용하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본인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하는 경우이고 나 역시 어려서 부터 그런 이유에서 많은 심리학 책들을 보아 왔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인 프로이드에 의하면 나는 가벼운 '히스테리아' 환자일테고, 존경하는 최명희 교수님의 심리학 개론 책에 의하면 나는 양육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될것이다..
어느쪽이든 나는 '개선되어야 할' 사람인거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 하고 그 분들의 책을 읽어도 나는 문제점만을 알아낼 뿐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시 유년기로 돌아가 다시 양육될 수는 없는 문제니까.. 그래도 이유를 아는것이야 말로 해결의 실마리이고 그 만큼만 해도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며 위로를 할 뿐이였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어려서 부터 성격적으로 극도의 대립을 하고 있는 부모님의 양육방식에 대한 원망이 쌓이고 "양육 받은 대로 양육한다" 는 말이 소름 끼치도록 머릿속을 맴돌 뿐이였다..
헌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내 부모도 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러한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 수가 있었다..
내 성격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다른' 것 뿐이고, 나와 같은 성향을 갖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15% 뿐이기에 나를 이해 하는 사람이 극히 적었던거다.. 사람 뿐 아니라 영장류도 전체 개체 중 10~15%에 해당하는 개체수가 이런 부류에 속하므로, 우리는 "성격 개선이 필요한" 부류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류라는 말씀을 하신다, 작가 선생님 께서는..
책의 서두에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상당 부분의 지면을 할애 하시는데, 한줄 한줄 정확하게 내 모습과 일치 했고 이러한 사람들이 나 말고도 15% 가까이나 존재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것 자체 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예로 들어 주신 많은 상담 사례중 나와 동일시 되는 부분이 여럿 있어 이러한 부분들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나는 전반적으로 표면상으로는 무난하고 문제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몇몇 예로 들어 주신 극단적인 상담 사례와 같이 집중적인 치료를 요하지는 않기에 중간에 치료 방법을 안내 해 주신 부분은 오히려 약간 지루한 면이 있기는 했다.
다른 모든 심리학 책에서 그렇듯 이 책에서 역시 유년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태어나서 만 2년까지를 특히 중요하다 했는데, 다시 한번 심리학 서적은 나 보다도 내 자녀들을 위해 읽어 두는 것임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기억이 나는 한 최대로 어렸을적 부터 결혼으로 독립하기 직전까지 엄마와 성격상 극도의 대립을 보였던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 해 보게 되었다. 엄마가 나를 몰랐듯이, 나 또한 엄마를 몰랐던것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극도로 민감한 부류였고, 엄마는 대다수에 해당하는 민감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였기에 나 같이 민감한 아이를 이해 하기 어려웠고, 나에게 온통 집중하여 노력을 기울이기 이전에 이미 둘째를 양육해야만 했던것 뿐이였던거다..
그래서 이 책을 아기 엄마들에게 더 권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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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 저자가 말하는 민감한 사람들에 속하는지는 긴가민가했다. 그렇게 민감한 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른 특징들에는 포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길 모든 민감한 사람의 특성이 같은 게 아니라자신이 해당되는 게 있을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특성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
| 예민해서 고통받았던 나날들을 이해받고 위로받게 만들어준 책. 앞으로도 스스로를 지지해주고 민감함과 예민함을 특별한 재능으로 뒤바꾸기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고 다짐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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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유난히 불편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소리나 냄새에 반응한다. 한 번 겪은 일은 오래 기억하기 때문에 폭력물이나 공포물을 보는 게 힘들다. 경쟁을 하거나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평소보다 훨씬 못한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직관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로부터 ‘숫기 없다’, ‘내성적이다’, ‘울보’라는 말을 듣는 이들. |